"이렇게 숨어서만 만나는 게 우리의 운명 같군." 공주가 말했다.
"운명일지는 모르겠지만, 저의 의지는 아닙니다." 지그프리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공주님이 저를 원하신다면, 저는 가장 하찮은 농부라 할지라도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공주님의 신이나, 저의 신들 앞에서 어떤 맹세를 원하셨더라도 말입니다. 만일 제가 왕이 되어 돌아오면, 반드시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크림힐트는 거의 동정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보았다. 그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일을 떠맡게 된 어린아이와 비슷했다. "나에게 약속한날 밤을 기억하느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꿈에서도 그날 밤을 자주 본답니다."
"내가 그날 밤에, 나를 위해 전투를 벌이고 왕국을 정복하라고 부탁했더냐?"
지그프리트는 이 질문을 듣고 잠시 동안 고민해야만 했다. "만일 제가 공주님 마음의 왕이 아니라면..."
그녀는 손을 들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나의 마음은, 지그프리트, 너의 것이야. 너를 보기 전부터 이미 나는 너에게 속해 있었어. 나는 너 때문에 에첼 왕자를 거부했고, 네가 파프니어를 죽이러 떠났을 때 종소리에 맞춰 기도를 드렸다. 넌 영웅이고, 부르군트에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어. 나의 오라버니는 나를 기꺼이 너에게 줄 거야. 네가 왕좌에 오르지 않더라도, 가슴에 표식을 달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야.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는 게야?"
그녀의 말들은 지그프리트의 머리속에서 울려 퍼졌고, 그는 자신의 감정과 그녀의 말들을 조화시켜 보려고 노력했다. - P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