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장춘익

다큐멘터리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 제임스 볼드윈의 미완성 에세이 <리멤버 디스 하우스>

<세상과 나 사이> 타네히시 코츠

1장 갈증의 언어

우리는 매일매일
남자들의 지식은 전수되는데, 왜 여성은 처음부터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까. 나를 비롯해 여성도, 여성주의자도 젠더에 대해 알기 어렵다. 여성주의는 과정의 사유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인 사유이기 때문에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누가 여성이며,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현실이 계급 문제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듯, 젠더만으로는 설명할 수없다. "여성은 구조적 피해자"는 상식이지 논쟁거리(?)가 아니다. 젠더는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남녀 간 권력관계로 ‘보이는‘ 젠더는, 여성들 간의 차이와 남성들 간의 차이를 매개로 하여 작동한다. - P43

최근 작고한 철학자 장춘익은 그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주 인용하게 된다. "오래가는 항의는 아무튼 짜증나는 거야. 내가 잘 돌보고 싶은 아이도 자꾸 울면 짜증나는데, 별로동의해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자꾸 하면 정말 짜증이 안 나겠어? ………… 항의는 내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는것이고, 같은 항의가 오래 반복된다는 것은 그렇게 오랫동안 결핍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항의 기간이 길어지면 저쪽은 짜증나고 이쪽은 초라하고 비참한 거야. 네가 세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야.……… 페미니즘(다른 입장도 마찬가지다-필자)이 네 주장의 설득력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라, 너의 지식이 너의 페미니즘에 설득력을 가져다주는 것이야. 페미니즘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지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네 페미니즘도 신뢰한단다." - P53

비밀은 없다
어느 맞벌이 부부의 이야기다. 대개 그렇듯 아내‘만‘ 바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 중이다. 기지개를 켜며 남편이 다가와 묻는다. "내 여권 못 봤어? 12시 비행긴데, 큰일이네."
이 경우 아내의 ‘바람직한‘ 반응은 무엇일까. "(쿨하게) 그걸 - P54

나한테 물어?" 여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격하게)아니,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어젯밤에 말했어야지! (그랬으면 내가 찾아놨지!)" 그러자 남편은 화를 냈다. "너는 찾아주지도않을 거면서, 왜 소리부터 지르냐 맨날 이런 식이라니까." 억울한 아내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 P55

불안이 정상이다. 불안은 몸의 외부와 자신의 몸이 불일치할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이성(理性)의 반응이다. "안정돼 보인다." 나는 이 말, 이런 사람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이 안정을 욕망하는 현실이 싫다. 안정만큼 계급적인 단어도 없을 것이다. 넉넉하고 아쉬움이 없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며 사랑받고 아프지 않은 상태, 어떤 부정의에도 분노하지 않는 우아한 세계 불일치와의 투쟁이 필요 없는 삶. 이런 인생이 가능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실상 가능하지 않은 상태다. - P63

암수살인
지식인의 개념보다는 지식인에게 필요한 태도를 묻는 것이좀 더 현실적인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식인이나 예술가에 - P66

게 필요한 덕목은 사명감이 아니다. 윤리성 추구와 지향. 가장기본적인 윤리적 자세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지식은 공부하고 조사해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어딘가에 있어서 찾아내는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시각이 없다면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다. 시각이 지식을 드러나게 하므로 지식은 발명(making)되는 것이다. 그래서객관적인 지식이란 존재할 수 없다. 시각이 앞을 결정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우리가 끼고 있는 렌즈의색깔에 달려 있다. - P67

스톱
문제는 ‘도쿄‘와 ‘서울‘이 특정 지역(후쿠시마, 밀양, 강정………)에 위험 시설을 건설하여 끊임없이 내부 식민지를 만들어내는현실이다. 한국은 문제가 생기면, 은폐(그것도 대충), 책임자의거짓말, 손바닥으로 하늘 가림, 여론이 조용해질 때까지 방관,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기, 피해자 고립을 대책으로 삼는 나라다. 진상 규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를 고사시키고 문제를 떠넘긴다. 통치 세력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대단히 발전된 메커니즘과 언어를 갖고 있다. - P78

필요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을 뜻하는 용어, ‘필요악‘. 인식과 문법 면에서 모두 틀린 표현인데 사회는 이 말을 좋아한다. 불의와 불평등을 손쉽게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원전, 성매매, 누가 군대에 갈 것인가 같은 문제가 대표적인 예다. 일상에서 가장 만연한 필요악 논리는 아마 성매매일 것이다. 성매매는필요악이다? 누구의 입장에서 필요하고, 누구의 입장에서 악이란 말인가. 필요도 악도 모두 남성의 시각이다. 악은 악일 뿐이다. 사회 문화적으로 제도화하면서까지 유지해야 할 필요한악‘은 없다. - P79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미국 흑인의 현실을 유려한 언어로 서술한 작가 타네히시 코츠는 《세상과 나 사이>(2015년)에서 맬컴 엑스의 말을 인용한다. "당신이 흑인이라면, 감옥에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흑인이 감옥에 가기 쉽다는 얘기가 아니라, 흑인의몸은 흑인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 전체 인구에서 흑인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6퍼센트 정도지만, 미국 전체 교도소수감자들 중 흑인 남성의 비율은 40퍼센트에 달한다. 미국에서흑인 남성의 인생은 17살에 결정된다. 마약을 하거나 교도소에가거나 총에 맞아 죽거나 학교에 가거나 타네히시는 말한다. "아들아, 너는 항상 맞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바로 뒤에는 사냥개들이 쫓아오는 레이스에 던져졌어."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삶은 사냥개가 쫓아오는 처지의 연속이다. - P98

흑인은 백인과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좌석에 앉을 수 없지만, 한국의 젊은 여성은 한국 남성의 옆 좌석에 앉을 수 있다. 환영받는다. 그 대신 성추행당할 위험이 높다. 한국 사회의 ‘미투 국면‘에서 우리는 버스 안에서 행해지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폭력(몸 만지기, 남성의 자위와 사정, 몰카……)을 알게 되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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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구장

베이스 간의 거리 27미터는 인간이 추구해온 완벽함에 가장 가깝다.
- 레드 스미스, 명예의 전당 입성 기자 - P140

보스턴의 펜웨이 파크ㅡ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이 야구점은 1912년 4월 20일에 문을 열었다.(바로 그주에 북대서양에서 타이태닉호가 침몰했다.) 펜웨이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11미터 남짓한 좌측의 벽이다. 1947년에 초록색으로 페인트칠하면서 그린 몬스터로 알려졌고(나중에는 ‘펜웨이 그린‘으로 저작권 등록이 되었다), 레드삭스광고가 붙어 있다. 홈까지 거리가 95미터가량밖에 되지 않고 예전구단주인 톰과 진 요키의 이니셜을 모스부호로 새겨놓은 그린 몬스터는 타자에게 축복이자 저주이다. 평범한 플라이 볼을 장타로 탈바꿈시키는 일이 많지만, 모든 타구를 그쪽으로만 보내려고 애쓴다면 타자의 스윙이 망가져버릴 수도 있다.(전 레드삭스 투수 빌 ‘스페이스맨‘ 리는 그린 몬스터를 처음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게임 중에도 저렇게 내버려두는 거요?") - P144

6장 심판

우리는 이 일을 맡는 첫날부터 완벽해야 하며,
그후에도 끊임없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 에드 바고, 전 메이저리그 심판 - P156

7장 기록

선수생활 18년 동안 나는 거의 1만 번을 타석에 섰다.
1700번쯤 삼진을 당했고, 1800번쯤은 걸어 나갔다.
선수가 한 시즌에 500번쯤 타석에 나선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러니까 내 선수생활 중 7년은 볼을 맞히지 않고 보냈다는 얘기다.
- 미키 맨틀, 명예의 전당 외야수 - P177

메이저리그에서 ‘보통의 노력‘으로 다룰 수 없는 플레이는 안타로 판정받는다. ‘보통‘ 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이며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공식기록원이다. 홈팀이 선택하고 메이저리그가 승인하는 이 기록원은 경기를 쉬지 않고 쫓으며, 어떤 기록 범주에 들어가야 할지 결정하고 경기당 130달러를 받는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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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 유행병, 우울증 유행병, 보육 시설의 아동학대 유행병??
여성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온갖 유행병이라 이름 붙이는 언론의 유행병 중독!!

해제 손희정

"사회 진보와 변화 등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뜻하는 ‘백래시’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표현이었던 셈이다. - P10

페미니즘 운동과 그 성과가 백래시의 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무기력을 증명한다기보다는 페미니즘의 파워를 증명한다. 그리고 그 힘이 셀수록 반격은 더 촘촘하게 문화에 스며든다. 이 책은 "세련되면서도 진부하고, 얼핏 보기엔 ‘진보적‘이지만 동시에 보란 듯이 후진"(43) 반격에 대한 정밀한 추적이자 반박이다. - P11

그리하여 1990년대, 페미니즘은 드디어 ‘여학생들의 짐‘(29) 이 된다.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의 개막이었다. 이제 페미니즘이 말하는‘양성평등‘은 달성되었고, 페미니즘의 유효성은 지나갔다. 페미니즘을 고수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거나 역차별을 야기하는 부정의한 것으로 낙인찍혔다. 페미니즘이 구시대의 잔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의 가장 처절하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효과였다. 미국 사회는 1990년대가 "여성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 단언했지만, 팔루디는 이를 깊은 한숨 속에서 의심했다. - P12

이처럼 집단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기록으로부터 우리는 역사가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여성의 역사는 계속되는 백래시에 부딪히고, 그러면서 퇴보하기도 하고 우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멈추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앞서간 사람들이 그려 놓은 지도 안에서, 비록 협로일지라도, 다음 발걸음을 놓을 길을 발견하는 일일 터다. 『백래시』가 그린 지도는 지금 여기의 페미니스트들에게 그런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이다. - P15

여성의 몸 위에서 억압과 착취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렇게 반복되는 역사와 벌이는 싸움은, 시대적, 계급적, 인종적인 한계를 안고 있을지라도, 그 한계에 갇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운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 운동이 야기하는 인식의 전환은 다른 문제들을 사고하는 데 뚜렷한 족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팔루디가 멈춘 자리가 우리가 멈추는 자리는 아니기를 바란다.

이제 여러분 앞에 ‘새로운 페미니즘의 선언‘을 놓아 드린다. 하지만페미니스트의 싸움은 짧게 끝나지 않는다. 선언을 실천으로 옮기는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실천이 기어코 변화로 이어지는 기쁨은 찰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페미니즘에 모두를 거는 열정보다는 나가떨어지지 않고 버티는 기술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이제는 고전이 된 『백래시』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아마도 그것일 터다. 그 길 위에서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 P17

15주년 기념판 서문

이런 노골적인 광고는 오늘날 세련된 판매 전략으로 훨씬 더 발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는 페미니즘의 기본 정신들이 상업적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마치 세 개의 황금 사과처럼 우리 발밑을 굴러다닌다. 경제적 독립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구매력이라는 황금사과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매력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카드 빚과, 터져 나갈 것 같은 옷장, 그리고 절대 끝나지 않는 허기를 안겨 줄 뿐이다. 허기가 절대 채워지지 않는 건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결정이라는 페미니즘 윤리는 ‘자기 계발’이라는 황금 사과로 변신했다. 이 자기 계발은 주로 외모와 자부심, 그리고 젊음을 되찾으려는 헛수고에 바쳐진다. 그리고 공적 주체라 - P27

는 페미니즘 윤리는 언론의 관심이라는 황금 사과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이 세상을 얼마나 많이 바꾸는지보다 이 세상의 틀에 얼마나 멋지게 맞춰 사는지에 좌우되는 인기를 좇고 있다. - P28

1장 프롤로그: 그건 페미니즘 탓이야!

반격은 세련되면서도 진부하고, 얼핏 보기엔 ‘진보적‘이지만 동시에 보란 듯이 후지다. 이 반격은 ‘과학 연구’의 ‘새로운’ 발견들에 왕년의 싸구려 도덕주의를 버무린다. 이 반격은 영악하게 트렌드를 포착하는 대중 심리학자들의 번드르르한 선언과, 뉴라이트 설교사들의광란의 수사들을 미디어의 입맛에 맞는 표현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반격은 여성의 권리라는 문제 전체를 자신들의 프레임으로 포장하는데 성공했다. 마치 레이건주의가 정치 담론을 극우로 전환시키고 진보주의를 악마화했듯, 이 반격은 여성해방이 이 시대 미국의 진정한재앙이라고, 끝없는 개인적·사회적·경제적 문제의 원인이라고 대중들을 설득시켰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여성들이 불행해진 것은 (여성들이 아직 손에 쥐어 보지 못한) ‘평등‘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탐색을 중단시키려는, 심지어는 역전시키려는 압력이 점점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 품귀 현상‘과 ‘불임 유행병‘은 해방의 대가가 아니다. 사실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런 망상들이 바로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반격의 수단이다. 이는 가차 없이 여성들의 콧대를 깔아뭉개는 과정의 일부로서 (많은 경우 이는 노골적인선동과 다를 바 없다) 여성들의 개인적인 근심을 휘저어 놓고 정치적 의지를 꺾는 역할을 해 왔다. 페미니즘을 여성의 적이라고 지목하는 것은 여성의 평등을 상대로 자행되는 반격의 핵심적인 역할을 주의 깊게 보지 못하게 만들고 여성들이 자신들을 위한 대의명분을 공격하도록 부추김으로써 반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 P43

페미니즘이 여성들을 ‘더 미천한 삶’으로 몰아넣었다는 비난은 여성들에게 더 넓은 경험의 폭을 선사한다는 페미니즘의 핵심을 완전히 놓치고 있다. 페미니즘에 분칠을 해서 페미니스트들을 우스꽝스러운 광대로 만들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고 이는 엄청나게 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페미니즘은 상당히 간단한 개념이다. 1913년에 리베카 웨스트Rebecca West가 표현했듯 "나는 페미니즘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건, 내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할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다는 것이다."73)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뜻은 1895년 4월 27일 비평지 《애서니엄 Athenaeum》의 리뷰 란에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역량을 품고 있는" 여성을 묘사하기 위해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사실상바뀌지 않았다.74) 한 세기 전 입센Henrik Ibsen 의 『인형의 집』에서 노라가 말했듯 페미니즘은 "다른 모든 것 이전에 나는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진술이다. 페미니즘은 1970년에 열린 ‘여성 평등 집회 Women‘sStrike for Equality‘에서 한 어린 소녀가 들었던 피켓의 단순한 문구에 다름 아니다. 소녀의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바비 인형이 - P49

아니다."75) 페미니즘은 이 세상을 향해 여성은 장식품도, 값비싼 그릇도, ‘특수 이익집단‘의 일원도 아님을 이제는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여성들은 국민의 절반(사실 이제는 절반이 넘는다)이고, 나머지절반만큼 권리와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고, 세상사에 참여할 능력이있다. 페미니즘의 의제는 기초적이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공적인 정의와 사적인 행복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정체성을 그 문화와 남성들이 규정하는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규정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아직도 그렇게 선동적이라는 건 미국 여성들이 평등이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서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 P50

1부 신화와 회상
2장 남자 품귀 현상과 불모의 자궁

하이트와 블로트닉의 연구 결과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대중문화가 취사선택해 가장 크게 홍보하는 통계야말로 우리가 가장 조심해서봐야 할 통계임을 시사한다. 이런 것들이 널리 유통되는 것은 진실이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믿는 미디어의 편견을 뒷받침하고 있 - P59

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통계는 ‘바람직한‘ 여성의 행동을 지시하는 처방전이자, 여성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만일 그 요청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어떤 처벌을 받게될지를 설명하는 여성에 대한 문화적 통지서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이런 ‘데이터‘는 여성들을 위해 그저 ‘세상의 이치‘를 알려 주는 거라고, 기반암처럼 단단해서 변경 불가능한 인구학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들의 유일한 선택은 그저 숫자를 받아들이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눈높이를 낮추는 것뿐이었다. - P60

「이들에게는 결혼을 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만일 심리학 연구를 통해 확인된 한 가지 패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결혼제도가 남성의 정신 건강에 압도적으로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정부의 저명한 인구학자 폴 글릭 Paul Glick 이 한때 평가했듯 "결혼은 - P70

생존을 지속한다는 측면에서 여성보다 남성에게 두 배 정도 더 유익하다." 60) 가족사회학자 제시 버나드Jessie Bernard는 1972년에 이런 글을남기기도 했다.

결혼 경험이 없는 남성보다 기혼 남성이 거의 모든 (인구학적, 심리적, 사회적) 지표에서 때로는 기막힐 정도로, 일반적으로는 인상적인 수준으로 우월하다는 연구 결과는 가장 일관되고 확실하며 설득력이 높은 편에 속한다. 결혼에 만족하는 남성에 대한온갖 조롱과, 남성들이 결혼에 대해 제기하는 온갖 불평에도 불는 구하고 남성들에게 가장 요긴한 것 중 하나는 결혼이다.

버나드의 관찰은 아직도 유효하다. 미시건 대학교 사회연구소Institutefor Social Research에서 남성의 정신 건강 변화를 추적하는 로널드 케슬러Ronald Kessler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돌아가는 상황을 들여다보면 싱글 여성으로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떠들어 대는 이모든 활동들은 대단히 황당무계해 보입니다. 여기서 가장 악전고투하는 건 싱글 남성들이에요. 남성이 결혼을 하면 정신 건강이 크게향상되죠."62) - P71

1985년을 기준으로, 전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 싱글맘 880만 명 중에서 어쨌든 돈을 조금이라도 받은 여성은 절반에 불과했고, 완전한 액수를 받는 경우는 이 중 절반뿐이었다.98) 1988년 연방의 자녀양육이행국은 아버지들이 체납한 양육비 250억 달러 중에서 겨우 50억 달러밖에 징수하지 못했다. 그리고 양육비 징수 전략에 대한 연구들은 태만한 아버지들의 도덕의식을 깨우는 건 단 한가지 전략, 즉 강제적인 수감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 Arlie Hochschild의 말처럼 일부 이혼 남성들이 과거의 가족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경제적 유기라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100) "따라서 결혼 관계 밖에서의 ‘새로운’저항이 결혼 관계 내에 있는 여성들에게 말 없는 위협이 되고 있다" 고 그녀는 적고 있다. "가부장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 P81

결국 이혼 후 발생하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교정할 수 있는 가장효과적인 방법은 간단하다. 직장 내 임금 불평등을 교정하는 것이다. 연방의 한 자문위원회는 1982년 만일 성별 임금 격차가 없어진다면, 여성 가장 세대의 절반은 가난에서 즉각 벗어나리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104) 여성들이 보수가 좋은 일자리에 접근하게 되면 많은 이혼 여성들이 생활수준의 추락을 면할 수 있음을 확인한 던컨은 "직장여성의 극적인 증가는 이 취약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고의 보험"이라고 말한다.105) 그리고 그의 지적에 따르면 여성들이 보수가 좋은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대체로 여성운동의 결과물이다." - P82

지금은 이미 밝혀졌듯이, 사회과학자들이 싱글 여성의 정신 건강에 대해 확인한 사실은 단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고용이 싱글 여성의 정신 건강을 향상시킨다는 점이다. 1983년의 획기적인 인생 흔적Lifeprints 연구는 싱글 여성에게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은 부실한 결혼 가능성이 아니라 부실한 고용 상태임을 보여 주었다. 168) 여성의 건강에 대한 20년치의 연방 데이터를 검토한 사회연구소와 건강통계국의 연구자들 역시 유사한 결론을 내놓았다.169) "우리가 검토했던 세 요인 [고용, 결혼, 자녀] 중에서 여성의 건강과 관련있는 가장 강력하고 가장 일관된 요인은 단연 고용이다." 이들은 일을 하는 싱글 여성은 자녀가 있건 없건 집에 있는 기혼 여성보다 심신의 건강이 훨씬 더 낫다는 사실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싱글 여성을 하나의 범주로 다룬, 보기 드문 장기 연구에서 연구자 폴린 시어스Pauline Sears와 앤 바비Ann Barbee는 이들이 추적했던 여성들 중에서싱글 여성들의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170) 그리고 그중에서도 살면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일을 했던 싱글 여성들이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 - P96

‘하지만 실제 증거(직장 여성과 비직장 여성에 대한 수십 건의비교 연구)는 모두 이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185) 전문직이건 생산직이건 직장 여성은 주부보다 우울증을 더 적게 경험한다. 그리고도전적인 업종에 종사할수록 심신의 건강은 더 양호하다. 우울증 수준이 가장 높은 집단은 한 번도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는 여성이다. 직장 여성들은 자살과 신경쇠약에서부터 불면증과 악몽에 이르기까지 크건 작건 정신적 문제에 시달릴 가능성이 주부보다 더 낮다. 이들은 집에서 지내는 여성들보다 덜 예민하고 덜 소극적이며, 걱정을적게 표출하고 향정신성 약물을 적게 복용한다. 186) ‘미국 보건 인터뷰조사U.S. Health Interview Survey‘의 데이터를 기초로 한 연구의 결론에 따르면 "무기력은가장 큰 스트레스를 야기할 수 있다." - P99

오히려 해당 연구는 만일 어딘가에 위기 수준의 학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집이라고 지적했다. - P104

"훗날 회상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모든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이 많은 경고들을 강조했고, 자신의 연구 결과는 어린이집을 없애는 근거가 아니라 더 많은 연구와어린이집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229) "나는 어린이집이 필요 없다는 말을 한 게 아니었어요.내 말은 우리에겐 좋은 어린이집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중요한 건질이에요." 하지만 벨스키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연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한번 미디어에 흘러들어 가자 뿌리 뽑기 불가능한 상태가 된 것 같았다. "기가 막혔던 건 언론인들이 서로의 신문을 그냥 베끼고 있었다는 거예요. 실제 내 논문을 읽은 기자는 거의 없었죠." - P107

이에 대해 벨스키는 이 모든 것이 해당 연구 안에 실린 데이터를 어떻게 독해하기로 선택하는지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뒤얽힌 이 연구 분야의 그 많은 ‘연구 결과들’처럼 "결국 모든 게 컵이 반이 차 있는지 아니면 반이 비어 있는지의 문제"라고 그는 말한다.
사회과학자들은 어머니가 집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보살필 때 최소한 미국 가정의 구성원 중 한 명은 더 행복하고 더 잘 적응한다는걸 보여 주기 위해 많은 연구를 제시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아버지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235) 그런데 반격의 나팔수들은 이 연구 결과를 꼭 쥐고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 어쨌든 1980년대 말이 되자 언론들은 더 이상 주장을 뒷받침할 확실한 데이터를 요구하지도않고 있다. 이쯤 되자 대중들은 반격의 구전 지식에 워낙 젖어 들어서 애써 통상적인 통계를 찾아다닐 필요도 사라진 것이다. 누구에게증거가 필요했을까? 모든 사람들이 이미 1980년대 여성에 대한 신화가 진실이라고 믿어 버렸는데 말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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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우프, 엄마의 이름 낮은산 키큰나무 3
사라 윅스 지음, 김선영 옮김 / 낮은산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쑤우프, 말하지 못한다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님을,
쑤우프, 말하지 못한다고 그리워하지 못하는 것은 아님을,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어제 밤 1시가 넘어서야 다 읽고 잤다.
따뜻한 화해의 손길로 아름답고 훈훈하게 급 마무리 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이 책 원서로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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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이나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어 갈비뼈가 으스러지며 열리는 것같았다. 마치 내 심장이 자그마한 빨간 새가 되어 새장을 벗어나 더 믿음직한 사람을 찾아 날아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자기의 지난날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가 누군인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로.
얼마 뒤에 방문이 열리고 버니 아줌마와 엄마가 들어왔다.
아줌마가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가 차를 만들어 왔단다, 하이디, 네가 좋아하는 대로 만들었어. 일어나 앉으렴. 엄마가 만든 차를 받아야지, 그렇지?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 P59

"이제부터는 조심해라, 하이디."
아주머니가 기다란 초록색 외투를 입으며 말했다.
그 외투를 입고 르노 시 버스 터미널에 나타나서 내 옆에 앉아 주었을 때, 그때는 아주머니가 날 구해 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야옹거리는 고양이들을 혀를 차서 달래며 버스를 내려가는 아주머니를 보고 있으려니 지금껏 이만큼이나 내동댕이쳐진 적도 없었단 생각이 자꾸만 밀려왔다. - P107

"아무 일도 없어요. 난 여기 왔어요, 버니 아줌마 리버티에 왔어요.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에요. 너무 달라요."
"어떻게 다르다는 거니?"
"무언가 시작되는 게 아니라 끝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무슨 뜻이니?"
"버스에서는 어딘가로 가는 것 같았는데, 막상 와서보니 어디에도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여기 있는 줄 아는 사람도 없고요." - P138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 하이디, 내가 알고 있잖니."
아줌마가 말을 이었다.
"네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다니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구나. 지금 네가 서있는 바로 그곳을 지도에서 찾아냈단다. 리버티, 내가 지금 널 보고 있단다. 사실은, 너에게 손을 흔들고 있단다. 내가 안 보이니? 분홍색 잠옷바람으로 이틀째 잠도 못 자고 걱정하고 있는 사람 말이야."
나는 조금 웃었다.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줌마와 다시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
"옳지, 그래야 우리 하이디지." - P139

"아주머니?"
"왜 그러니, 하이디?"
"시트가 우리 집 거랑 다른 느낌이에요. 더 빳빳하고요."
"빨랫줄에 널어 말려서 그렇단다. 마당에서 말렸지."
"꼭.……… 하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표현할 생각은 꿈에도 못해 보았구나."
아주머니가 속삭였다.
"잘 자거라, 하이디."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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