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현 축제란 같은 날, 같은 곳에 모인 사람들이 우리가 동시에 같은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자리인것 같아. 공간이 사람을 불러들여 축제를 만든다.
새벽 심오하다. 그치만 축제로 사회적 에너지를 최고로 끌어올린 뒤에 남는 허탈함과 외로움은 어쩌지? 나는 요즘후유증이 사흘은 가.
세영 군산북페어 전시에서 이런 질문을 봤어. ‘만약에 아트북 페어가 그저 공간이나 플랫폼에 그치지 않는다면?‘ 그런데 군산에서 동아시아의 사회참여예술을 다룬 책『점(占): 아시아, 참여, 예술』을 발견했거든. 도시를 점거한 홍콩의 우산혁명, 티베트 땅의 흙을 인도로 ‘이주‘시켜서 여러 티베트인들의 작은 화단을 만드는 참여예술 등을 다루고 있어. 축제가 그저 특정 공간이나 스쳐가는 플랫폼이 아니라면, 어느 시간 어떤 공간을 점유하는 일, 거기서 뭔가를 키워 내는 일일 수 있겠다.
축제를 즐기고 집에 돌아가는 길 혼자가 되어서도 뭔가 충만한 느낌이 남아 있잖아. 그걸 붙잡고 다음에 다시모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축제가 시작된 바로 그곳을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지.
새벽 잠시 차지한 땅에서 뭔가 키우기.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헛헛하지 않을 방법이구나. 다음 호 주제인 ‘혼자‘에서 나눌 이야기도 기다려져. - P16

이수유_죽음과 축제

내가 만난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례의 축제적 외양은 집집마다 찾아오는 비극의 시기를 함께 다루면서 빚어진 무늬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볼 때 축제란 각자가 지닌 색색의 쾌락을 충족시키는 것이기보다 - P33

는 홀로 맞서기 힘든 비극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것일 수 있다. 죽음은 하나의 공백을 만들어 내지만, 그 공백으로 수렴하는 힘들을 느끼게 하는 계기이기도하다. 웃음과 울음은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독이나 침묵에 견주었을 때는 같은 편이다. 어쩌면 지금이 순간에도 축제적인 것은 크고 작은 비극으로 모여드는 이들, 비극 곁에 머무는 이들 가운데 잠재해 있는지모른다. - P34

정윤영

폭죽 터지는 소리 대신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소리와 고래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축제. 폭탄이 터지듯굉음을 내며 번쩍이는 불꽃 대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초록 나무에 닿은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쓰레기가 없는 축제였고, 아무도 죽이지 않는 축제였다.
동물의 삶을 상상하며 나의 1분과 말의 45분을 헤아릴 줄 아는 체험, 어린이가 어린이로 존중받고 말과고래가, 산천어와 나비가 그 존재만으로 존중받는 경험, 그래서 인간도 동물도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가슴 뻐근하게 느끼는 시간. 그게 놀이가 되고 서로의 기쁨이 되는 축제를 기다린다. - P84

김경은

「메밀꽃 필 무렵」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이효석(1907~1942년)은 욕망, 노동, 월경(越境), 자연과 같은주제를 미시적으로 풀어낸 작가다.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효석은 흔히 토속적인 공간, 이국적인 정서 그리고 세련된 미감을 지닌 작가로 설명된다. 그런데 이효석은 인간의 현실을구성하는 복잡하고 첨예한 문제, 가령 계급, 인종, 폭력의 문제를 정밀하게 재현한 작가이기도 하다. 「깨트려지는 홍등」을 비롯해 기존의 소설 연구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이효석의 작품들은 일관된 하나의 경향을추구하지 않고 이분법적 구도를 지양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2025년인 지금 읽어도 현대적인 작품으로 다가온다. - P92

국명표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나오자, 나중에 ‘97년생촛불집회 사회자‘로 유명해진 보조요원이 사회자로 무대에 올랐다. 그는 에스파 「위플래시」로 시작해 로제「아파트」, 지드래곤 「삐딱하게」, 데이식스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등 대중적인 아이돌 노래들을 연달아 틀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는 당시 「다시 만난 세계」가조성한 새로운 분위기를 보고 "지금 「위플래시」를 틀어야 해."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위플래시」 박자에 맞춰 외치는 구호는 참가자들을 다시 하나로 묶어냈고, 이것은 연이은 아이돌 그룹 노래의 활용으로, 즉 "탄핵송 플레이리스트"의 생성,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 P114

집회의 축제화로 이어졌다. [6]

유튜브 채널 씨리얼 - P115

결국 무언가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이 실현되었으며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기를 바라는 동력과 정향이 12월 이후 집회 경험의 핵심이며 이후의 집회 담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벤야민이 남긴 말처럼 말이다. "인식은 오로지 번개의 섬광처럼 이루어진다. 텍스트는 그런 후에 길게 이어지는 천둥소리와 같다."[11] - P118

신동일

지난 여름의 경험으로 드러난 자신의 경직된 모습이 못마땅했거나 충동적 위반으로 오해와 갈등에 휩쓸리는 자신이 싫었다면, 오디세우스적 금욕과 오르페우스적 방종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단련된 자유를지향한 고대 그리스의 통찰을 빌려 자신을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창조해야 할 때다. 물론 쉽진 않을 것이다. 삶의 질서에 새롭고도 규칙적인 형식성을 부여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자신만의 근력, 심력, 혹은 권력(덕)을 강화하는 건 수개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윤리의 어원인 에토스(ethos)가 ‘습관‘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듯, 각자의 정체성은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재형성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품성의 힘을반복된 에토스에서 보았듯이, 작은 습관만이 큰 변화를만든다. 나는 언어 사용에도 에토스가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학생들에게 애미 커디의 테드 강연 영상을 보여주곤 한다. 신체언어(body language)를 바꾸는 작은 습관이 마치 사기꾼처럼 느껴지더라도 결국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기회를 새롭게 연다는 메시지 "Fake it until - P150

you become it. Tiny tweaks become big change. (될 때까지 그런 척 하세요. 작은 변화가 모여서 큰 변화를 만듭니다.)"는 습관의 형식성이 결국 정체성마저 바꿀 수 있다는 논점을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 P151

예를 들면, 삶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미학적 실천의 예시로 에크리튀르(e‘criture, 일상의 자기에 대해 쓰기)를 언급했다. 일기를 포함한 서사 형식을 가진글쓰기는 주체가 자신을 돌보고 변형하는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 자신이 쓴 글이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질 때까지 반복될 때 글쓰기는 단편적인 사건에 그치지 않고새로운 에토스를 세울 수 있는 반복 가능한 실천이 된다. [5]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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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시인선 184
고명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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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혼이 맑은 사람인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많은 시에서 사랑과 다정함이 가득하다. 특히, 엄마와 할머니를 부르는 시에는 따스한 마음이 그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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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사의 멸종 - 사라지는 직업들의 비망록 한승태 노동에세이 3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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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 작가의 노동 에세이 3부작 중 3부. 회사 그만두면 뭐하며 살지? 청소일이나 할까. 식당일이나 할까. 하고 쉽게 말하지만 그 노동에는 모멸감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콜센터라는, 까대기라는 구조적으로 폭력적인 직업에서 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전작처럼 처절함의 와중에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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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10-24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고명재 시인 산문집 읽고 있는데 ^^ 반가워요!

햇살과함께 2025-10-24 11:04   좋아요 0 | URL
오 산문집 읽고 계시군요. 찾아보겠습니다^^

다락방 2025-10-26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집 사두고 읽지는 않았는데 올려주신 시들을 보니 참 좋으네요.

햇살과함께 2025-10-26 21:03   좋아요 0 | URL
나중에 읽어보세요! 시인의 말이 좋아서 샀는데 시도 좋더라고요.
 

‘말하는 힘의 관성‘에 대해 생각했다. 한번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말하기를 시도한 사람들은 계속 말하게 된다.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자연히 안다. 부당한 일을 목격해 왔고, 차별과 혐오를 발견하는 시선이 생겼으며, 아주 조금씩이지만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일이 그저 관성이라고 생각하니 어깨가 조금 가벼워지는 것같았다. 가볍게 더 멀리 미끄러질 수 있도록, 다른 건 제쳐 두고 다음엔 지민과 동숲 통신을 하기로 약속했다. - P29

변재원 작가의 책 <장애시민 불복종》에서 작가와 함께 술을 마시던 장애인 활동가는 "데모를 통해 중증장애인이 세상을 만나게 된다."라고 데모의 의의를 설명한다.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애를 지닌 몸 그 자체가 장애인 권리 보장의 유일한 근거가 되며, 그로 인해 "장애인은 자신의 몸을 더 아끼는 동시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라는 책의 설명이 떠올랐다.
휠체어를 타면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다는, 넌 평생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성희가, 세상의 온갖 부조리한 일을 목격하던 성희가 그 진창 속에서 자기 몸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찾아냈다는 것이 좋았다. - P76

지우 갔다 오시니까 어땠어요?
서윤 이제 무기울게 없다. 이거 뭐 이제 무서울 거 없다.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하고. 하기 싫은 거 있으면 안 하고, 못하는 거 있으면 두드려 보고, 안 되면 말고. 딱 진짜 정신 무장이 된 것 같더라고요.

인터뷰어는 듣는 이로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난 거리 두기에 늘 실패하고 만다. "또 갈 수 있겠는데?"라던 성희 언니의 말을 들었을때처럼, "이제 무서울 게 없다."라는 서윤 언니의 말에 거리를가늠하던 마음이 성큼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장애가 있는 여자들이 "직접 해 보니 할 수 있었다."라고말하는 게 왜 이리 좋을까. 자신의 성공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에게 가능성을 전달하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은아닐까. 언니들이 간 곳은 가 보지 않아도 가 본 곳 같고, 해낸일은 해내지 않아도 내 성취 같다. 먼저 해낸 언니들이 전하는 "할 수 있었다."라는 말은 나를 투과해 저 멀리 퍼져서, 비슷한 몸을 가진 이들을 연결하는 망이 된다. 그래서 난 하염없이 이 말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 P106

한 어머니는 내게 와서 "A가 혼자 외출한다는 건 상상이 안 돼요......."라며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나 역시 스무 살에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탔다. 별거 아닌 그 행동에도 터질 듯한심장을 진정시키면서, 홀로 무언가 해 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제야 깨달았다. 한 바퀴 더 굴러갈수록 세상이 넓어졌다. 나는 엄마 없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에서 동네를 누비고, 가족과 다른 공간에서 살고,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있는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명확히 안다. 얼마만큼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알아야 내 세계가 커진다는 걸. 그러려면 길거리에서 넘어져도보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던 동네를 돌아다녀도 봐야 한다.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일탈도 해 봐야 한다. 아이를 걱정하는부모님의 고민을 들으면 나의 독립을 도왔던 문장 하나를 전해 드린다.
"애들 내보내세요. 안 죽어요. 다쳐도 병원 가면 돼요. 혼자 내보내세요."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총장의 말이다(그 역시 뇌성마비다). - P155

이 말이 우리 몸에서 살아 숨 쉬는유산과도 같이 느껴진다. 이 문장은 성희 언니에게서 "또 갈 수있겠는데?"라는 말로, 서윤 언니에게서 "이제 무서울 게 없다." 라는 말로 조금씩 바뀌어 흐른다. 그렇게 세상으로 한 바퀴 나간 언니들은, 그 순간을 혼자만의 성취로 간직하지 않고 자꾸만 다른 이들을 불러 모은다. 이 기분을 나만 느낄 수 없다고, 우리는 함께해야 한다고 말하며 운동을 하고, 모임을 만들고, 민원을 넣고, 사업을 한다.
나도 그 움직임에 동참하고 싶다. 그게 내가 이 글을 쓰는이유다. 우리와 공명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이 글을 읽고있다면, 두려워서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얼른 이 보물같은 문장 "나, 갈 수 있구나."를 자신의 언어로 직접 만나라고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꾹꾹 힘을 눌러 담아 글을 쓴다. - P207

언니의 말에 괜히 기운이 났다. 온몸으로 내게 "계속하면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실망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인권 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이 호소하는 감정 중 하나는 ‘소진감‘이다.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는 알겠는데, 현실에서끌어내기는 어렵고,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기에 자꾸만 실망하게 된다. 나 역시 종종 지쳤고 실망했다. 사실 지금도 그 상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말하는 게 두려워졌고, 이전 같으면 분노하고 행동할 일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나를발견한다. 그렇게 무던해진 나를 보고 또 실망하곤 했다.
효선 언니는 흐릿해진 나를 보며 계속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계속하라고. 조금씩 쌓다 보면 분명 변하게 되어 있다고. 그러니 실망하지 말라고. 나를 실망하게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먼저 길을 떠난 언니가, 수많은 변화를 목도했을 언니가 그렇게 말한다. 시야가 조금은 선명해지는 기분이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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