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 - 어느 알코올중독자의 회복을 향한 지적 여정
박미소 지음 / 반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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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출신 작가의 필력(특히, 술을 넘길 때의 그 느낌, 감정을 묘사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못먹는 소주가 땡길 지경이다!!), 기자 특유의 정보에 대한 호기심(중독의 매커니즘, 뇌과학 관점에서의 중독의 영향, 중독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다양한 독서와 리서치)이 개인적 중독 경험과 어울려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중독에 관련되 다양한 책을 인용하고 있는데, 특히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에 대한 언급이 많다. 작가가 이 책을 쓰는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고, 나도 읽고싶은 책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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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7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인디 책방에서 책+맥 취향대로 골라주는 이벵을 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만 작품 읽으면서 작품 속 도시에서 생산된 맥주 마시능 ㅋㅋㅋ
코로나 팬더믹 시기 겨울나기는
결국 집콕+음주+책!^^

햇살과함께 2021-12-07 11:20   좋아요 2 | URL
오~ 가고 싶네요~ 치맥보다 피맥보다 책맥이죠~!!

프레이야 2021-12-07 1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독 와독 좋지요. 소독은 안 해봤는데 햇살 님 못 마시는 소주가 땡길 지경이시라니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책 소개 고맙습니다. 담아가요.

햇살과함께 2021-12-07 13:53   좋아요 2 | URL
절주하려고 읽었는데 술이 더 먹고 싶어지는 부작용이 있어요 ㅎㅎ
 

"알코올중독자들은 거의 자동으로 인간관계가 엉망이다. 우리는 자기 존재감을 느끼며 당당하게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못하고 술에 취해 질척질척 흘러 들어간다."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에 나오는 그 문장 그대로다. 10대 때부터 알코올 의존적이던 관계 맺기가 일종의 습관으로 굳어지고 나니 나 자신의 온전한 ‘원래‘ 모습으로 남을 대하기가 어려웠고 술이라는 위장막을 한 겹 펼쳐야만 보호받는 느낌, 안전한 느낌을 받았다. - P284

오히려 숙취와 함께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들어 한결 더 우울해지곤 했으니 결국 진정한 의미의 ‘해소’가 아니었던 거다. 자학하듯 술로 신경을 온통 마비시켜서 그날의 스트레스를 애써 외면하는 것에 가까웠고 어두운 감정은 자각도 못한 사이 차곡차곡 쌓여 내 안의 시커먼 응어리로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 P309

『술의 사회학』에서 고영삼 부경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렇게 썼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절대 명제를 달성하면서 지속적으로 역사의 분단, 민족정체성의 훼손, 정치권력 및 부 형성의 정당성 부재, 일상화된 국가적 동원체계, 급격한 도시화, 시민 가치관의 혼란, 그리고 이른바 ‘개방적‘ 서구화 등으로 혼란을 경험해왔다. 도대체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사건과 사고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술과 종교 등이 어느 정도의해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P316

맨정신을 벌거벗은 것처럼 느끼고 술에 취해 한 겹 장막을 두르고서야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자아를 온통 취기에 의존하며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 하지만 결국에는 힘겹게 그 나쁜 관계를 끝내고 몸과 정신의 건강을 되찾은 회복의 서사. - P327

그리하여 이 글은 단주 아닌 절주라는 결말을 선택한 최초의 중독자 수기가 될지도 모른다. 지각 있고 상식적인 선에서 술을 사랑하되, 그보다 내 삶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야지. 그것이 중독에 마침표를 찍는 나의 다짐이었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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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뭐든지 절반씩’, ‘내 새끼는 네 새끼다.‘라는 모토로 육아와 가사는 남편과 철저히 분담해오고 있었지만, 하필 승진 시기가 임박해 그도 매일 야근이었다. 집안일도 육아도 아이의 유치원 대소사를 챙기는 것도 전부 나 혼자의 몫이 됐다.(결혼과 출산을 생각하는 분들은 이 부분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당신의 배우자가 피치 못하게 조력을 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 P151

"알코올중독자 중에는 완벽주의자가 많죠."
나의 첫 정신과 진료 날 의사가 했던 말이다. 자기 인생을 진창으로 던져버리는 알코올중독자가 완벽주의자라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해봤기에 어떤 의미인지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 그 누구도 자기가 바라는 이상형의 자기 자신이 될 수는 없다. 부족한 나를 용서하고 추스르며 어느 정도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까탈을 부린다. 자기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불안과 긴장에 시달린다. 멍청하게도 자기 손으로 자기 목을 옥죄는 꼴이다. - P154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멍청하게도 귀한 시간을 술에 타서 하염없이 흘려 버리는 한심한 족속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속 편해 보이는 그들의 속마음을 까뒤집어 보면 미세하게 누적된 실패와 좌절된 열망이 얽히고설켜 내면에서 몇 번이나 폭발한 끝에 폐허가 되고 만 풍경이 보일 것이다. - P159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앨릭스 코브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에는 감정과 인식은 각자 다른 뇌 영역이 매개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정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반응을 ‘인식‘하면 계획과 실행 등 이성적인 활동을 주관하는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 뇌에서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 부위를 진정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이 신경생물학적 통찰의 의미도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 P171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라는 그 유명한 문장처럼, 술꾼 기질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대물림된다. 성향, 기질, 부모와의 관계 등 복잡미묘한 요소들이 뒤섞여 저마다의 독특한 유전의 배경이 완성된다. 그러니 중독의 기원을 찾으려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평생의 기억을 뒤적거려야 한다. - P193

내 중독이 (프로이트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남근선망에서 비롯됐다는 발상은 다소 터무니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 바우어라는 분석심리학자가 쓴 『알코올중독과 여성』이라는 책에서 이와 비슷한 분석이 언급된 것을 발견했다. 융 정신분석학의 관점으로 여성 중독자를 다룬, 다소 특이한 내용의 책이다. 바우어는 우리 문화에서 남성성의 가치가 너무 높게 평가되기 때문에 완벽주의적인 여성들이 남성적인 속성을 취하려다 술에 빠지곤 한다고 분석한다. "여성 알코올중독자들은 특히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아폴로적 기준을 따르는 완벽주의 아니무스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칼 융의 이론에서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 속의 남성적 요소를 뜻하고 아폴로는 궁극의 남성성의 상징이다. - P196

문득 카르마와 다르마에 대해 떠올렸다. 거스를 수 없는 숙명, 카르마가 나를 중독의 길로 인도했다 하더라도 다르마, 즉 내 선택과 의지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따라 삶을 다른 방향으로도 이끌 수 있다는 거야말로 내 희망이다. - P197

뇌신경학자 마이클 쿠하가 쓴 『중독에 빠진 뇌』에 따르면 뇌의 정상상태는 시소가 수평을 이룬 모습과 같은데, 약물이나 술에 중독되어 뇌의 화학적 신호가 변화하면 시소 한쪽이 아래로 기울어진 상태가 된다. 그러면 우리 뇌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고 반대쪽을 눌러 평형을 맞추려한다.
그런데 중독자가 술 마시는 걸 멈추면 반대 방향으로 균형을 잡으려던 뇌의 노력들만 남아 시소의 다른 한쪽만 눌러진 상태가 된다. 즉 술이나 약물 복용을 멈추면 그걸 복용했을 때와 반대로 불쾌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거다. 이게 바로 금단증상이다. - P209

페미니즘 서적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인간 ‘디폴트 값‘이 남성으로 설정된 사회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현상을 다룬다. - P237

"남성의 음주 원인은 내적 요인 이외에도 사회적 요인의 비중이 컸고, 여성은 반대로 개인의 우울이나 스트레스와 같은 내적 요인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는 기존의 연구들과 유사한 결과로도 해석해볼 수도 있다." 즉 남성은 친교 모임 등 사회적 활동의 일환으로 마시지만 여성은 우울이나 스트레스를 감소하기 위해 마신다는 거다. - P249

남자가 술을 마시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지지만 여자가 마시면 그 자신이 위기에 처한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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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맥주 안마시는 날엔 캐모마일이나 루이보스 티 마시는데.. 뭐라도 마셔야 한다;;

"전 요즘 집에서 보리차를 마셔요."
또 다른 친구가 조언을 해줬다.
"혼술을 줄이려고 맥주 대신 보리차를 만들어 마시거든요."
맥주 대신 시원한 보리차라…… 왠지 공룡 대신 이구아나 같은 소리다.
"그걸로 욕구가 충족되긴 하나요?"
"물론 완벽히 대체되지는 않지만, 뭔가를 마시는 동작과 습관을 대신해주거든요." - P96

- "보상이 없어서 그래요. 지금까지 술이 자기 삶에서 어떤 보상으로 매번 주어졌는데, 그게 갑자기 없어지니까 다른 보상을 찾게되는 거죠." - P101

지금 주어진 내 삶에서 충족감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중독으로부터 나를 영원히 벗어나게 해줄 해답이라는 걸. 하지만 그건 술을 끊는 것보다 더 어려울 거라는 걸.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하는 걸까. - P103

달리기는 내게 명상이었다. 육체를 극한으로 가동할수록 반대로 마음은 천천히 비워진다. 이따금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들은 바르고 명징하다. 가만히 혼자 있을 때는 ‘이루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들’에 관한 생각이 나를 뒤흔드는데, 신기하게도 달릴 때만은 내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들만 또렷한 표지판처럼 떠올랐다. 샘솟는 아드레날린이 ‘너는 능히 할 수 있다.‘ 라며 부족한 자신감을 넘치도록 채워줬다. - P107

생각해보면 달리기의 쾌감은 일면 음주와도 비슷하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과도한 음주에 속이 다 문드러지는 걸 알면서도 취기가 주는 흥분이 좋아 멈추지 못하고 계속 마시는 것처럼, 러너스 하이에 푹 빠진 사람들은 운동의 고통을 중화시켜주는 엔도르핀의진통 효과와 행복감, 쾌감에 중독되어 관절이 닳도록 달리고 또 달린다. 극한의 고통과 피로로 스스로를 몰아넣으며 환희를 느끼는 그들을 보면 ‘건강한 자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 P109

황당하다 못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행동이 나는 이해가 됐다. 파괴해버리는 것 외에는 삶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라는 점에서 그들과 나는 같기 때문이다. 비록 인생을 망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그 ‘파괴‘만은 스스로가 일으킬 수 있는 변화다. 그것만이 자기 삶을 실감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운동으로 혹사해 단단하게 만든 몸처럼, 자기 삶도 부여잡고 바꿀 수 있는 실체로 느끼고자 하는 안타까운 발악. 나 역시 자포자기한 심정을 한 채 폭음으로 스스로를 짓이기면서 비뚤어진 만족감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과연 운동이 어떤 궁극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걸까? - P112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성 음주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해의 일종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홀로 앉아 폭음하면 처음에는 기분이 붕 뜨고 즐겁지만 곧 축축 처지면서 울적함이 몰려든다. 계속 들이켜다 보면 어지럽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며 속이 메슥거린다. 술이 독주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부터는 마시면 마실수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몸을 해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건 이것대로 괜찮다. 계속 마시고 속이 넝마가 되도록 간을 혹사해서 한심하게 오전부터 술에 취한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거다.
그러니까 폭음하는 이면에는 양가적인 감정이 숨어 있다. 재미를 보려고 마시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려는 내밀한 욕구도 존재한다. 엉망진창으로 마셔서 자신을 구제 불가능한 꼴로 만들고, 멍청한 실수를 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더 마시려 든다. 나의 추한 모습을 극한까지 반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스스로를 괴롭히고 징벌한다. 거기에는 구제 못 할 정도로 깊고 참담한 자기혐오가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그 혐오는 음주를 절제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됐기에 이 모든 것이 악순환이다. - P121

고치고 싶은 버릇이 있는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오늘만 참는다고 생각하자."
후회해도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술에 대한 갈망으로 대낮부터 취하고 말았던 어제의 일은 잊자. 오늘부터 다시 애써 참는 하루를 시작해본다. - P124

중독이 비밀의 병이 된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들여다봤지만, 결국 무엇보다 큰 요인은 바로 수치심이다. 남들 앞에 나서기 부끄럽기 때문에 우리는 술과의 은밀하고 부적절한 관계를 숨긴 채 세상에서 고립되어간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술고래와의 대화를 떠올려보자.
"술은 왜 마셔?"
"잊어버리려고 마신다."
"무얼 잊어버려?"
"창피한 걸 잊어버리려고 그러지."
"무엇이 창피해?"
"술 마시는 게 창피하지!" - P132

내가 ‘음주에 대한 인류의 기록 중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캐럴라인 냅의 에세이 『드링킹』에는 멀쩡한 알코올 중독자의 전형이 잘 나타나 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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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12-02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커피 두 잔을 마시다 보니 한 잔을 줄여야겠단 생각을 했고
그래서 커피 한 잔 마신 뒤에 뜨거운 보리차로 대신 마셨더니 두 번째의 커피는 생략할 수 있었어요.
대체 효과라고 해야 할지...
문제는 구수하게 보리차를 끓여야 한다는 게 귀찮다는 것.
그래서 커피 한 잔 반을 마시게 되었죠. ^^

햇살과함께 2021-12-02 15:59   좋아요 0 | URL
저는 커피는 무조건 최소 2잔입니다^^ 아점 후 커피 안마시면 일 못하겠어요..
 

나의 출퇴근 메이트^^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믿고 보는 책 추천맛집 켈리님이 지난주에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을 어제 퇴근하면서 듣고 넘나 반가워서 읽던 책을 던지고 이 책을 집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랑 비슷한 수준의 알코올 의존증(?)인 켈리님의 책 소개에 공감하며, 이 책의 저자에게 공감하며(물론 저보다 훨씬 고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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