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나면, 어머니는 읽을 책들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해서 방이나 마루에서 책을 읽었다. 인쇄된 글자들은 마술 같았다. 나는 책에 관한 모든 것이 좋았다. 냄새, 종이의 질감, 그리고 그 안의 이야기들까지. 테레사도 나와 비슷하게 책을 느끼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책을 대했을 거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가르쳤던 것처럼. "다정하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겨라. 책은 네 영원한 친구다. 힘주어 넘기려고 하지 말고, 손가락으로 너무 문지르지도 마. 구김 자국도 남기지 말고, 절대로 책에 낙서나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그것은 신성한 것을 더럽히는 짓이어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제부터, 네게 책을 간수하는 법을 보여 줄게. 두꺼운 방습지나 보통의 포장지를 가져다가 책 주위를 쌀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잘라. 그러고 나서 커버 앞면과 뒷면의 끝 부분을 이렇게 잘라. 그리고 테이프를 붙이는 거야. 그렇게 커버를 만들어 책에 입히는 거다. 장갑처럼, 이제 너는 책을 깨끗하고 깔끔하게 보관할 수있을 거야." - P47
"당신 말이 맞아요. 내가 잘한 일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내가 마지막에 망쳤던 것에 대해서만 기억합니다. 당신 여동생 사건처럼, 사람들은 모두 그 사건을 ‘사건 현장을 놓친 케이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당신한테 물어봐요. 사건현장을 발견한 가족 맞나요? 그들은 이야기의 절반밖에 모르면서 말이지요." - P86
그런데 지하실에서 발견한 네 장갑이 모든 걸 바꾸었다. 난 인생이 변한다는 걸 알았지만 어떻게 변할지는 몰랐다. 난 장갑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그 장갑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을 껴안는 이미지는 언제나, 아무 때나 아무런 예고 없이 날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그 시끄러운 포리니 식당에서 마티와 그의 동료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도 장갑은 미스터리였다. 너는 우리가 장갑을 발견하도록 한 거야. 경찰이 아닌 우리가 그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가 뭘까? 넌 장갑으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인가? 하지만 난 몰랐다. - P93
폴과 마티가 실험 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여러 번 항의했다. 그들은 수사관의 직감으로 뭔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런데 사건 담당 검사는 생각이 달랐다.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더 조사를 할 수 없다고 해서 다른 검사가 배정되었다. 나는 뉴욕으로 가서 2월 16일에 그를 만나기로 했다. 새로 사건을 맡은 마일즈 말만 검사는 현재 수사가 힘든 상태에 빠져 있다고 했다. 수사관들이 플로리다 교도소에 수감된 산자에게 몇가지를 질문하러 가야 하는데, 뉴욕 시에서 장거리 수사 비용을 지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마티를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 마일즈 말만 검사를 만났다고 말했다. 마티는 ‘뉴욕 시장 앞으로 가족 이름으로 된 편지를 보내요. 내가 편지 쓰라고 했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구요.‘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너의 책상 위에 놓인 레밍턴 타자기 앞에 앉아서 시장 사무실에 있는 형사 사건 주무관 존 키넌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 P94
이건 낙담할 만한 소식들이다. 지금까지 두 명의 검사가 왔다갔으니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과연 세 번째로 검사가 오기는 할까? 아니면 이제 수사는 중단되고 살인 사건은 풀리지 않은 채로 미궁에 빠지는 것일까? 뉴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살인 사건들이 해결은 되는 것일까? 다음달 내내 나는 밤낮으로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일상생활‘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뭐가 ‘일상생활‘일까. 그건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 P98
나는 그 사진 속에서 12세, 엘리자베스는 9세, 테레사 너는 7세, 제임스는 4세이었다. 그리고 버나데트를 내 위에 앉혔는데 겨우 100일 된 아기였다. 너는 단발머리였고 단순한 스타일이었다. 어떤 꾸밈도 없다. 머리카락이 반듯하게 내려와서 네모진 모양이다. 그런데 앞머리가 조금 이마 앞으로 내려와 있었다.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나서 함께 그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너에게 물어봤지. 왜 그날 얼굴이 그렇게 울상인지. 너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 머리를 좀 봐. 이런 머리 스타일이면 오빠도 울상이지 않겠어?" 그때는 즐거웠다. 우리가 네 머리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웃던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그때는 몰랐다. - P109
버나데트는 자주 이런 전화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일하고 있는 극단에 대해서 이야기한 후에, 최근 일하고 있는 작품, 순회공연, 수다, 새로운 작품 등에대해서 계속 더 이야기했다. 할리우드에서 있을 오디션 때문에 로스앤젤레스에 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남쪽으로 이사를 와야 하는지 고민한다고 했다. 나는 항상 전화를 끊을 때에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해. 니가 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마."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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