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니도 크로퍼드 씨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모를 수는 없었다. 벌써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사려고 애쓰는 것이 역력했으니, 정중하게 대접하며 세심하게 배려하는 등 사촌 언니들에게 하던 태도와 비슷했다. 언니들한테 그런 것처럼 내 마음도 흔들고 싶은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목걸이 건에도 얼마간 관여한 것은 아닐까!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크로퍼드 양은 말 잘 듣는 누이동생일지는 몰라도 한 여자이자 친구로서는 경솔한 구석이있었기 때문이다. - P372

"네 입장에선 못 하겠다 하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패니, 걱정할 필요 없어. 이런 일은 조언을 구할 문제가 아니니까. 이런 문제는 조언을 구하지 않는 편이 나아.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테고. 자기 양심에 위배되는 쪽으로 등을 떠밀어 주기를 원한다면 모를까. 난 그저 너한테 털어놓고 싶을 뿐이야."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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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노리스부인 정말 어이상실일세.. 대책없는 인간이군요..

토머스 경은 그렇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심사숙고하며 망설였다. 이것은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일이었다. 아이를 데려다 키운다면 제대로 뒷받침을 해 주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아이를 가족한테서 떼어 놓는 것은 친절이 아니라 잔인한 짓이 될 터였다. 그는 자신의 네 자식들을, 두 아들을 생각했고, 사촌 간의 사랑 등등을 떠올렸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이견을 제기하기가 무섭게 노리스부인이 말을 가로막으며, 그가 거론했든 안 했든 모든 이견에 답했다. - P13

엄밀히 따지자면 만족감의 몫이 같아서는 곤란했다. 토머스 경은 선택된 아이한테 진실하고 일관된 후원자가 되기로 단단히 결심한 반면, 노리스 부인은 양육비를 한 푼도 부담할 의사가 없었으니 말이다. 찾아다니고 떠들고 일을 꾸미는 한에서 그녀는 한없이 자애로웠고, 남에게 후하게 베풀라고 명하는 데는 누구보다도 능했다. 그렇지만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기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돈을 좋아했고, 친지들의 돈을 쓰는 법만큼이나 자기 돈 아끼는 법을 잘 알았다. 평소 기대했던 것에 못 미치는 수입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결혼 초부터 엄격한 절약 노선을 취하기로 마음먹었다. - P16

"자라나는 아이들 사이에 적절한 구별을 유지하는 문제 말입니다. 딸아이들한테는 사촌을 너무 내려다보지 않으면서도 자기 신분을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고, 또한 그 애한테는 너무 기를 꺾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버트럼 가문의 딸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가르쳐야 할 테니까요. 나는 아이들이 아주 친하게 지내길 바라고 딸아이들이 사촌 동생한테 조금이라도 오만하게 구는 건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서로 대등하지 않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신분이나 재산이나 권리나 물려받을 유산에서 늘 차이가 날 겁니다. 이건 대단한 섬세함이 요구되는 문제니, 우리가 아주 올바른 방침을 취할 수 있도록 처형도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 P20

패니는 사촌 언니들이 옆에 있으나 없으나, 공부방에서나 거실에서나 관목 숲에서나, 늘 버림받은 기분이었고,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 있든 그저 무섭기만 했다. 아이는 레이디 버트럼의 침묵에 상심하고, 토머스 경의 근엄한 표정에 겁먹고, 노리스 부인의 훈계에 기가 완전히 죽었다. 사촌 언니들은 아이의 작은 키를 들먹여 상처를 주고, 수줍은 태도를 지적하여 무안을 주었다. 리 양은 아이의 무지에 놀라워했고, 하녀들은 아이의 옷가지를 보고 비웃었다. 이런 슬픔에 더해 자기를 놀이 - P24

친구이자 선생이자 보모로 언제나 귀하게 여기던 형제자매 생각이 날 때면, 아이의 작은 가슴을 짓누르는 낙심은 더욱 커졌다. - P25

노리스 부인이 이런 조언들로 조카딸들의 생각을 바르게이끌어 주었으니, 이 아이들이 뛰어난 재능과 올된 지식은 갖추었으되 자기 인식과 관용, 겸손함이라는 보기 드문 배움을 완전히 결여하게 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품성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 P31

그는 딸들이 버트럼이라는 성을 갖고 있는 동안에는 그 성에 새로운 기품을 더해 주리라 여겼고, 그 성을 버릴 때가 되면 점잖은 인맥을 넓혀 주리라 믿었다. 그리고 뛰어난 분별력과 올곧은 마음을 지닌 에드먼드의 성품은 본인은 물론이고 모든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명예와 행복을 안겨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에드먼드는 성직자가될 것이었다. - P33

다른 식구들이 모두 패니를 뒷전으로 밀쳐 두는 상황에서 에드먼드의 지원만으로는 패니를 앞으로 나서게 하기에 한계가 있었지만, 패니의 정신이 함양되고 정신적 즐거움들이 확장되는 데 그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몫을 했다. 그는 패니가 영리하며 분별력과 이해력이 뛰어나고 독서를 좋아하니, 잘만 이끌어 주면 독서만으로도 훌륭한 교육이 되리라 생각했다. 리 양이 패니에게 프랑스어도 가르치고 날마다 정해진분량의 역사책을 낭독하게 했다. 그러나 패니가 남는 시간에빠져들어 읽은 것들은 에드먼드가 추천한 책들이었고, 패니의 독서 취향을 격려하고 판단력을 바로잡아 준 사람 역시 에드먼드였다. 그는 패니가 읽은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유익한 독서가 되도록 이끌면서 사려 깊은 칭찬으로 독서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이러한 도움에 패니는 윌리엄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서 에드먼드를 가장 사랑하게 되었다. 이 두사람이 패니의 마음을 나누어 가졌다. - P35

가난한 혈혈단신 과부에다, 남편 시중에 병구완까지 하느라 건강도 망가지고 마음은 더 망가졌는데. 이승에서의 평화는 이제 다 무너졌고, 재산이라고 해봐야 양갓집 부인으로 내 한몸 간수하며 고인의 기억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살림을 꾸려가기도 빠듯한 형편인데, 패니 같은 짐까지 떠맡는 게 나한테 무슨 위로가 되겠어? 설령 내 입장만 생각하면 그게 낫다 해도, 그 가엾은 아이한테 어찌 그렇게 부당한 짓을 하겠나. 지금 훌륭한 집에서 잘 크고 있는 아이를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내 자력으로 헤쳐나가야지." - P45

토머스 경의 동의를 얻으려면 몇 달 더 기다려야 했지만, 그역시 이 연분을 진심으로 기뻐할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그사이 두 집안은 거리낌 없이 왕래했고, 약혼을 비밀로 해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노리스 부인만 아직은 이일을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고 가는 곳마다 떠들고 다녔다. - P59

아내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는 우리의 시인이 사려 깊은 시구에서 가장 잘 표현한 것 같네요. ‘천국이 보내 준 마지막 최고의 선물‘14)이라고요."

14) 존 밀턴, 『실낙원』 5권 1장 18~20행. - P63

그러나 버트럼 양은 약혼한 몸이니 그는 당연히 줄리아의 몫이 될테고 이는 줄리아도 잘 알았다. 그래서 그가 맨스필드에 온 지 일주일도 채 안돼 이미 줄리아는 언제든 사랑에 빠질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 P66

"그럼, 그렇고말고. 동생이 그렇게 말해 주니 기분이 좋네. 그렇지만 실은 줄리아가 더 마음에 드는 거지?"
"아, 그럼요! 줄리아가 더 마음에 들어요."
"정말? 대체로 언니가 더 미인으로 통하는데."
"그럴 테지요. 이목구비가 더 뛰어나고 안색도 더 보기 좋더군요. 그렇지만 난 줄리아가 더 마음에 들어요. 버트럼 양이더 미인이고 호감 가는 타입이지만, 난 언제나 줄리아를 더 좋아할 거예요. 누님 명령이니까요."
"이래라저래라 할 생각은 없네. 하지만 동생도 결국은 줄리아를 더 좋아하게 될걸."
"아니, 지금 말했잖아요, 처음부터 줄리아가 더 좋았다고."
"게다가 버트럼 양은 이미 약혼을 했잖아. 명심해, 동생. 그 아가씨는 결혼할 사람이 있다고." - P67

"어머, 프라이스 양,"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지자 크로퍼드 양이 말했다. "기다리게 만들어 사과하러 왔지만 도무지 변명할 말이 없네요. 시간을 많이 넘겼고 큰 잘못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랬으니 말예요. 그러니 부디 용서해 주셔야 해요. 이기심은 언제나 용서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잖아요. 고칠 가망이 없으니까요." - P103

노리스 부인은 패니에게 애정이 전혀 없었고 즐거운 일을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에드먼드의 말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자기가 세운 것이니만큼 자신의 계획이야말로 최상책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모든 걸 자기가 아주 훌륭하게 계획해 놓았으니 어떤 변경도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 될 거라고 믿은 것이다. - P118

"정말 피곤하지가 않아요. 저도 이상할 정도예요. 이 숲을 적어도 1마일은 걸었을 텐데 말예요. 그 정도는 걸었죠?"
"반 마일도 안 됩니다." 이것이 그의 꿋꿋한 대답이었으니, 아직은 여자처럼 마음대로 거리나 시간을 늘리고 줄일 만큼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어머! 이리저리 한참 돌아서 온 것도 감안하셔야죠. 우리가 온 길은 굴곡이 매우 심했고요, 그리고 이 숲만 해도 직선거리로 반 마일은 될걸요. 첫 번째 큰길에서 벗어난 뒤로는 한번도 숲의 끝을 보지 못했잖아요."
"글쎄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그 첫 번째 큰길에서 벗어나기 전에 저 앞에서 숲이 끝나는 것을 보았는데요. 전경이다 내려다보이고 끝에 철문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을 보면 이 숲은 기껏해야 1펄롱 밖에 안 될 겁니다." - P140

패니는 자기가 사람을 곁에 붙잡아 두기보다는 떠나보내는데 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에 러시워스 씨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글쎄요." 그가 말했다. "정말 내가 가 보는게 좋겠다고 생각하신다면 한번 가봐야겠군요. 기껏 열쇠를 가져왔는데 그냥 있는 것도 우습고요." 그러고는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더니 인사치레도 없이 훌쩍 사라졌다. - P152

줄리아보다 마리아의 사정이 더 딱했다. 그녀에게 아버지의 귀국은 곧 남편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누구보다 그녀의 행복을 바라는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그녀는 행복을 맡기기로 선택한 연인과 맺어질 것이었다. 생각만 해도 우울한 일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일을 안개 속에 묻어 두고 안개가 걷히고 나면 뭔가 달라져 있기를 기대해 보는 것뿐이었다. 11월 초가 될 리는 없었다. 험한 항로든 뭐든 이유가 생겨 일정이 지연되는 게 다반사였다. 뻔히 보면서도 눈감아 버리거나 뻔히 알면서도 생각을 멈춰 버리는 사람들이 마음의 위안으로 삼는, 뭔가 운 좋은 일이 생겨서 말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귀국은 빨라도 11월 중순에나 될 터였고, 11월 중순이면 아직 석 달이나 남았는데, 석 달이면 열세 주고, 열세 주면 많은 일이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 P159

어떻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 안을 서성일수록 망설임은 커져 갔다. 그렇게 열심히 청하고 그렇게 강력히 원하는데, 그녀가 가장 순종해야 할 몇몇 사람들이 마음먹고 추진하는 계획에 꼭 필요해서 그러는지도 모르는데, 끝내 거절하는 게 과연 옳은 행동일까? 혹시 심술이나 이기심이나 창피를 당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에드먼드의 판단만으로, 토머스 경이 이런 일에 찬동하지 않으리라는 에드먼드의 믿음만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의 청에도 불구하고 단호히 거부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연기가 너무나 두려운 게 사실인만큼 그녀는 자신의 신중한 처신의 진실성과 순수함까지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 P224

이런 생각을 하는 마리아한테 시간을 끈다는 것은 설령 훌륭한 혼수 준비를 위해서라도 견딜 수 없는 일이어서, 서두르는 품이 러시워스 씨도 못 따라갈 정도였다. 중요한 마음의 준비는 이미 다 되었으니, 적막하고 속박뿐인 집에 대한 염증, 실연의 고통, 신랑감에 대한 경멸에 하루 빨리 결혼해 버리고만 싶었다. 나머지는 나중에 하면 되는 일이었다. 새 마차와 가구 들이야 봄에 런던에 가서 마련하면 될 테고, 취향껏 고르기에도 그 편이 더 유리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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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어떤 책에서 추천한 건지 기억은 안나지만, 읽기 잘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만 한 아이에게 괜찮은 어른 한두명만 있어도 좋겠다. 아이들 읽으라고 사둔 작가의 “쑤우프~”도 조만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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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쯤 뒤에 아빠는 근처 마트에서 일하던 계산원 아가씨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엄마와 나더러 알아서 살아가라는 듯이. 나쁜 일은 세 가지씩 일어난다는 속담이 있다. 몇 달 뒤 전화가 한 통 왔다. 새피 이모가 일하던 체리 통조림 공장에서 사고가 나서 이모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엄마는 이모가 다 나을 때까지 이모랑 같이 지내야겠다며 트래버스 시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그때는 이모에게 생긴 일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 나쁜 일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속담이 하나 차이로 틀렸거나, 그 특별한 불행은 나에게 일어난 세 가지 나쁜 일 가운데 하나로 칠 수 없는 일이었나 보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나쁜 일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 P9

"사람 죽은 냄새는 참 오래가거든요."
이모는 이렇게 대꾸했다.
"사람 사는 냄새도 마찬가지죠." - P19

잘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시간 주 북부는 체리로 유명한 고장이다. 미국을 통틀어 파이에 들어가는 체리의 75퍼센트가 여기서 난다. 이 고장에서 조금이라도 살아 본 사람이라면 좋든 싫든 간에 체리에 관해 한 부대가 넘는 상식을 지니고 살게 된다. 체리에 대한 상식 하나. 보통 크기 체리나무 한 그루에서는 한 해에 체리가 칠천 개 정도 열리는데, 이 정도라면 두툼한 체리파이 스물여덟 개를 구울 수 있다. - P23

이모는 사고를 당한 뒤 여러 의사들과 상담을 했는데, 그중 한 선생님은기억상실증에 걸렸더라도 어떤 특별한 물건을 보면 갑자기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고 얘기해 주었다. 기억을 되살려 줄 마법의 실마리는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사진 한 장, 노래 한 곡, 오븐에서 구워지는 체리파이 냄새 같이 이모의 기억은 둥그런 고리에 매달려 절그럭절그럭대는 열쇠 뭉치 같아서, 굳게 잠긴 문을 열어 줄 열쇠를 찾아낼 때까지 엄마랑 내가 이것저것 시도해 보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 P52

나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를 선생님에게 내밀었다. 선생님은 앞뒤로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스톤 선생님."
아서 씨가 선생님에게 말했다.
"사과 안 하셔도 됩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란 앞으로 멋진 일이 일어날 징조거든요."
선생님은 짧지만 날카롭게 웃었다.
"나라면 기대 같은 거 안 할 거예요." - P90

선생님의 눈은 번쩍번쩍 빛났고 양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 말을 적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몰라도, 작가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은 게 분명해."
아서 씨가 말했다.
"그럴지는 몰라도, 어른이 자기한테 말하는 것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듣고 있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그 말 뒤에 숨은 진실한 감정까지도 들었다는 것이 드러나 있으니까요. 바로 이런 것이 좋은 대화문입니다."
선생님은 두 손을 꽉 부여잡더니 아서 씨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입을 꼭 다문 채 웃음을 지어 보였다. - P98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이 사람이 미스터에 대해서 알 수 있지?
"초능력이 있으세요?"
엉뚱한 말이 갑자기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서 씨는 웃었다. 하지만 기분 나쁘게 비웃는 게 아니라 목소리만큼이나 부드러운 웃음이었다.
"지금 굉장한 걸 물어보았는데! 아이들은 날 보면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오는지, 책 한 권을 완성하려면 얼마나 고치고 지우는지 주로 물어보는데, 초능력이라고? 난 초능력은 없단다. 그런 건 믿지도 않아."
"그럼 저한테 고양이가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네가 말해 주었잖아."
"전 말 안 했는데요." - P111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생각이 안 났어요."
"그러면 안 된다고? 왜? 오늘 수업의 핵심을 알고 있던 사람은 너뿐이었어."
"누가 나에게 한 말을 썼을 뿐인 걸요. 제가 지어내서 쓴 게 절대 아니에요."
"알아. 그 글은 진짜였어. 그래서 참 훌륭한 글이었단다. 혹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 해본 적 있니?"
"제가요? 저는 글을 못써요."
"나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단다."
"예………. 그래도 전 정말 글재주가 없어요. 게다가, 별로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요."
말을 꺼내 놓고 보니 좀 심했다 싶었다.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얼굴이 붉어져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어쩐 일로 버터 스카치 사탕 맛이 나지는 않았다.
아서 씨가 말했다.
"글 쓰기에 대해서 한 가지만 말해 줄게. 제임스, 글을 쓰면 세상이 달라보인단다." - P114

"나한테는 얘기해도 돼."
모자를 찾기 위해 온갖 소동을 피우다가, 한참 만에 자기가 머리에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이모가 옳았다. 이모한테는 말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이모만이 내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음 날이면 기억도 하지 못하니까.
"나한테 다 말해 봐."
이모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모에게 모든 걸 다 말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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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끔찍한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7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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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복수를 나설 수 밖에 없는 범인. 읽는 내내 머릿속에 경찰영화가 생각나지만, 미국식 영웅주의? 훗 그런 줄 알았니? 라고 한껏 비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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