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쭐떠기의 한 구절 (쭐떠기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8 Aug 2026 22:40:24 +0900</lastBuildDate><image><title>쭐떠기</title><url>https://image.aladin.co.kr/img/blog2/manage/profileimg.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쭐떠기</description></image><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천재와 광기 사이의 선 - [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9708</link><pubDate>Sat, 08 Aug 2026 2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97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8402&TPaperId=174397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3/41/coveroff/89659684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8402&TPaperId=174397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a><br/>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성소희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천재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비슷한 모습을 떠올린다. 남들과 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 평범한 사고의 범위를 벗어나는 사람. 그래서 천재의 뇌 역시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뇌가 만든 천재들』은 그 막연한 믿음을 실제 예술가들의 뇌와 삶으로 가져간다. 프리다 칼로의 고통,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 버지니아 울프의 정신적 고통과 남다른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천재에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보다 먼저 묻게 되는 것이 있다.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한 사람의 뇌를 ‘정상’이라고 부르는가.<br/><br/>인간의 뇌는 처음부터 모두 다르다. 감각의 민감도도, 기억하는 방식도, 집중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에게 소리는 색으로 경험되고, 어떤 사람은 특정한 영역의 정보를 놀라울 만큼 오래 기억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그 차이는 재능보다 먼저 이상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런데 평균은 능력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더 온전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br/><br/>천재를 특별한 뇌의 소유자로 보는 관점에는 이 모순이 따라붙는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천재라고 부르면서, 다른 사람의 차이는 병리나 결핍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차이를 숭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교정하려 한다. 신경다양성을 천재성의 증거처럼 소비하는 태도 역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떤 뇌가 특별하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특별한 예술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사이에는 수많은 삶의 경험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br/><br/>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그녀의 고통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녀가 겪은 사고와 수술, 반복되는 통증은 분명 작품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지만, 고통이 곧 예술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고통받은 예술가’라는 이미지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오히려 위험하다. 상처가 작품을 낳았다는 설명이 반복될수록 그 상처를 가진 사람의 삶은 작품을 위한 재료처럼 취급되기 쉽다. 도스토옙스키의 뇌전증 역시 마찬가지다. 질병은 그의 삶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지만, 그것을 문학적 천재성의 비밀로 만들어버리는 순간 질병은 인간의 경험에서 떼어져 하나의 낭만적인 장치가 된다.<br/><br/>예술가의 정신적 고통을 바라보는 방식은 여성에게서 더욱 복잡해진다. 버지니아 울프나 실비아 플라스, 앤 섹스턴의 삶에는 오래도록 ‘광기’라는 단어가 따라다녔다. 그들의 고통을 병리적인 개인의 문제로 기록하는 동안, 그들이 어떤 시대를 살았고 여성에게 무엇이 요구되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이야기되었다. 한 사람의 고통을 설명하면서 그 사람이 놓여 있던 세계를 지워버리는 것이다.<br/><br/>‘광기’라는 이름은 그래서 중립적인 단어가 아니다. 누군가의 경험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순간 그 기준을 가진 쪽에 해석의 권한이 생긴다.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살핀 것도 이러한 분류의 역사였다. 한 시대가 정상이라고 정한 범주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치료되거나 격리되거나 기록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천재로 다시 불렸다. 과거의 광인이 오늘날의 천재가 되는 이 역설 앞에서, 천재와 광기를 처음부터 서로 다른 본질로 생각하기는 어려워진다.<br/><br/>더구나 천재라는 이름은 때때로 예술가의 고통을 아름답게 포장한다. 칼로의 상처, 도스토옙스키의 발작, 울프의 정신적 고통이 작품의 위대함과 한데 묶이면 고통은 예술가에게 주어진 운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질병은 누구에게나 잔인한 현실일 뿐이다. 그것이 작품의 가치 때문에 아름다운 경험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예술가를 존중하는 일은 그의 고통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 작품과 삶 가운데 어떤 자리를 차지했는지를 구별해서 바라보는 데 있을 것이다.<br/><br/>결국 ‘천재의 뇌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물음은 그리 오래 남지 않는다. 더 오래 붙잡게 되는 것은 인간의 뇌를 하나의 기준으로 나누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다. 평균에서 멀어진 감각을 가진 사람에게 이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사람이 뛰어난 작품을 남기고 나서야 천재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러주는 일. 그 과정에서 바뀐 것은 그 사람의 뇌가 아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br/><br/>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만드는 지금은 이 문제를 다른 방향에서도 바라보게 한다. 계산하고 기억하고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만으로 천재성을 설명한다면 인간의 독점적인 영역은 빠르게 줄어든다. 그렇다고 인간의 창작이 단순한 능력의 결과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인간은 몸으로 세계를 겪고, 어떤 경험은 오래 기억하고 어떤 경험은 잊으며, 관계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같은 사건을 겪은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유도 그곳에 있다.<br/><br/>천재를 특별한 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을 능력의 차이로만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인간마다 다른 뇌와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면 천재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진다. 누군가의 특별함은 정상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으로 어떤 세계를 경험했고, 그 경험을 어떤 형태로 남겼는지가 중요하다.<br/><br/>천재의 비밀을 특별한 뇌에서 찾으려는 시선은 결국 인간을 분류하는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평균에서 벗어난 감각에는 이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뛰어난 성취가 확인된 뒤에는 같은 차이를 천재성이라 부른다. 달라진 것은 그 사람의 뇌가 아니다. 달라진 것은 그 차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언어다.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차이를 지워왔고, 천재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차이를 지나치게 미화해왔다. 천재와 광기 사이의 선은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선의 두께가 아니라, 누가 그어놓은 선인가 하는 데 있다.<br/><br/>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그가 살아온 세계가 얼마나 많이 들어 있을까. 감각의 차이, 기억의 방식, 몸에 남은 고통과 설명하기 어려운 정신의 움직임까지. 《뇌가 만든 천재들》은 천재를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로 세워두기보다 그 능력이 태어난 자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경과학과 예술의 접점을 따라 천재성과 창의성의 본질을 궁금해하는 독자, 프리다 칼로와 도스토옙스키, 버지니아 울프처럼 작품만큼이나 삶의 궤적이 강렬한 예술가들을 다른 각도에서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 특히 어울린다.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 광기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삶을 규정해온 방식에 의문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책의 여러 사례가 한층 복잡한 표정을 보여줄 것이다. 인간의 뇌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사실 앞에서 천재라는 이름도 조금 낯설어진다. 특별한 사람을 찾아내는 책을 기대했다면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인간을 특별함과 평범함으로 나누어온 우리의 시선까지 마주하게 될 것이다.<br/><br/>✏️흐름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3/41/cover150/89659684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34192</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A story of experience - [일: 경험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8925</link><pubDate>Sat, 08 Aug 2026 11: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89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0692&TPaperId=174389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5/70/coveroff/k87213069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0692&TPaperId=174389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 경험의 이야기</a><br/>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저녁달 편집부 옮김 / 저녁달 / 2026년 07월<br/></td></tr></table><br/>하루를 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일한 시간만큼의 돈,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경력, 혹은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피로 같은 것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일: 경험의 이야기』는 그 뒤편에 남는 것을 바라본다. 스무 살의 크리스티 데번은 제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시작하고, 하녀와 배우, 가정교사와 재봉사, 간호사로 살아간다. 직업은 수없이 바뀌지만 그녀가 얻는 것은 경력의 폭이 아니다. 한 번 겪은 일은 다음 일을 대하는 태도가 되고, 한 사람과의 만남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된다. 그렇게 지나간 날들이 크리스티 안에 조금씩 쌓인다.<br/><br/>크리스티의 직업에는 특별한 상승 곡선이 없다. 어떤 일은 그녀에게 기쁨을 주고, 어떤 일은 모욕과 피로를 안긴다. 재능을 발견하는 순간도 있지만 노동의 대가가 지나치게 적다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순간도 있다. 올컷은 그 과정을 성공담의 문법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노동의 풍경을 차례로 펼쳐 놓으며, 사람이 일하면서 무엇을 겪는지를 보여준다. 노동은 매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고, 그 안에서 크리스티는 계급과 가난, 편견과 친절, 타인의 욕망과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다.<br/><br/>이때 일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의 크리스티에게 노동은 독립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여러 일을 경험할수록 노동은 세상을 알아가는 방법이 된다. 책으로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일터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누군가에게 하인으로 불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모욕이 있고, 가난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헐값에 내놓아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 있으며, 아픈 사람의 곁에서 밤을 지새운 뒤에야 알게 되는 삶의 무게가 있다. 크리스티가 얻는 것은 직업적 능력만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자기 바깥의 일로 여기지 않게 되는 감각이다.<br/><br/>그래서 이 소설에서 자립은 경제적인 독립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크리스티는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살아가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만이 자유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도 배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면서도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고,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올컷이 그리는 자립은 고립과 거리가 멀다.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삶에도 마음을 내어주는 태도에 가깝다. 여성에게 허락된 삶의 폭이 지금보다 훨씬 좁았던 시대에 쓰인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크리스티의 선택은 개인의 독립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선언처럼 읽힌다.<br/><br/>원제의 A Story of Experience는 이 모든 과정을 묶어주는 말이 된다. 경험은 지나간 일들의 합계가 아니다. 한 번 겪은 일이 다음 선택에 영향을 주고, 한때의 상처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는 감각이 되며, 실패했던 기억이 삶의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크리스티에게 경험은 과거에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내는 재료다. 하녀였던 시간과 배우였던 시간, 재봉사로 버티던 시간과 간호사로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던 시간이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은 이유다. 각각의 시간은 사라지는 듯하면서도 그녀 안에 남아 다음 삶을 결정하는 힘이 된다. 올컷은 한 사람이 성장하는 모습을 거창한 사건 하나로 설명하지 않는다. 수없이 지나간 날들이 사람의 성격을 조금씩 바꾸고, 그렇게 달라진 사람이 다시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br/><br/>노동은 고되고, 불합리하며, 때로는 인간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삶을 비관으로만 기울게 두지 않는 이유는, 경험에는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지만, 그 흔적은 다음 걸음을 내딛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살아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 안에 축적되어 앞으로의 삶을 지탱하는 근력이 된다.<br/><br/>『일: 경험의 이야기』가 오늘에도 읽히는 이유는 시대를 초월하는 노동의 가치에 있지 않다. 삶을 이루는 방식에 대한 통찰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일은 하루를 채우고 지나가지만, 경험은 사람의 다음 하루까지 따라간다. 오늘의 노동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사실은 때로 버겁고, 때로는 위로가 된다. 모든 시간이 의미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무 의미도 없다고 여겼던 시간조차 지나고 나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하나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 크리스티의 삶이 보여주는 것도 그런 변화다. 사람은 살아온 시간을 등에 지고 다음 날로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아보면,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대단한 성공보다 수없이 반복해온 하루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 경험의 이야기』가 오래된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도, 노동의 의미를 설명해서가 아니라 경험이 인간을 빚어가는 과정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br/><br/>일은 하루를 채우고 지나가지만, 그 하루에 무엇을 겪었는지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일: 경험의 이야기』는 노동의 가치를 말하면서도 시선을 임금이나 성공에 오래 묶어두지 않는다. 하녀와 배우, 가정교사와 재봉사, 간호사로 이어지는 크리스티의 시간은 직업의 이력이 되어가는 대신 한 사람의 감각과 태도를 바꾸는 경험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자신의 힘으로 삶을 꾸려가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크리스티의 모습은 자립과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깊은 읽을거리를 건넨다. 여러 번의 실패와 상실을 지나며 조금씩 달라지는 사람의 모습을 좋아한다면 이 오래된 성장소설의 호흡도 즐거울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노동과 삶을 잠시 다른 시대의 창문 너머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하루를 살아내고 그 경험을 다음 날의 자신에게 건네는 일만큼은 여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으므로.<br/><br/>✏️도서출판 저녁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5/70/cover150/k87213069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157021</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포착하는 힘 - [좋아하게 되었습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6258</link><pubDate>Thu, 06 Aug 2026 21: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62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0123&TPaperId=174362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1/45/coveroff/k5921301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0123&TPaperId=174362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좋아하게 되었습니다</a><br/>미우라 시온 지음, 김은경 옮김 / 시공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하루는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이름도 모르던 식물이 눈에 들어온다. 창밖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새를 오래 바라보게 된다. 무심히 지나치던 계절의 변화가 문득 반갑다. 앞으로 찾아올 24절기가 괜히 궁금해지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기다리게 된다. 책 한 권을 펼쳤다가 또 다른 책을 만나고, 우연히 들어간 골목이 다음 계절에도 다시 찾고 싶은 장소가 된다. 하루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마음이 머무는 곳은 조금씩 늘어난다.<br/><br/>미우라 시온의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그런 마음들을 모아놓은 에세이다. 식물과 새, 책과 만화, 여행과 영화, 고양이와 사람.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이 더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시선을 더 오래 두게 된다. 작가는 세상을 대단한 의미로 포장하지 않고,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 시간을 기꺼이 들려준다. 엉뚱할 만큼 솔직하고, 우스울 만큼 다정하다.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좋아한다’는 말은 취향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세상과 가까워지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곁에 있는 존재들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는 마음. 미우라 시온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br/><br/>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새롭게 얻는 일이다. 식물을 아끼게 되면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 새를 바라보게 되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이 많아진다. 책을 가까이하면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제철 과일과 채소를 기다리고, 계절에 맞는 풍경을 반기는 일도 결국 같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새 하루를 붙잡아 둔다. 관심은 시선을 바꾸고, 시선은 삶의 반경을 넓힌다. 마음을 내어주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씩 넓어진다. 풍요는 더 많은 것을 손에 쥐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더 많은 것들과 연결되는 데서 시작된다.<br/><br/>그 연결은 특별한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작은 기쁨을 놓치지 않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같은 여름을 보내도 누군가는 더위만 기억하고, 누군가는 슬그머니 불어오는 바람을 기억한다. 어떤 날은 매미 소리가 계절을 알려주고, 어떤 날은 느즈막히 일어난 아침 이마에 내려앉는 햇살이 하루를 시작하게 한다. 듣고 싶은 음악이 마침 흘러나오고, 횡단보도에 도착한 순간 신호가 바뀌는 작은 우연들도 있다. 세상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기꺼이 발견하는 감각에 숨어 있다.<br/><br/>삶이 팍팍해질수록 사람은 거대한 행복부터 찾기 시작한다. 언젠가 모든 것이 괜찮아질 날,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미래. 하지만 그런 날들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을 버티게 하는 것은 훨씬 작고 평범한 것들이다. 제철 과일의 맛을 기다리는 일. 돌아올 사람을 위해 저녁밥을 준비하는 일. 삼각김밥 같은 몸매와 고소하고 뽀송한 냄새를 겸비한 고양이의 온기를 느끼는 일. 겨울의 시리게 푸른 하늘, 가을의 낙엽으로 만들어보는 책갈피, 짝꿍 몰래 슬그머니 주워 모아보는 도토리와 알밤들. 하루 끝에 마시는 시원한 탄산수 한 잔. 오래 아껴 읽는 책 한 권. 삶은 이런 작은 애착들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오래 다정하다.<br/><br/>『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더 많이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권하는, 그리고 더 많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세상을 향해 시선을 내어주는 일이 결국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미우라 시온은 자신의 일상으로 증명한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하루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게 달라진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 어쩌지. 이 책을 읽고 난 후부터 마음이 머무는 곳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하나 생길 때마다 세상은 넓어지고,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br/><br/>좋아한다는 마음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 어제와 같은 풍경 속에서 새로운 계절을 발견하고, 스쳐 지나가던 존재 하나에 오래 시선을 두게 되는 순간 하루는 조금 다른 온도를 가진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그런 변화의 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둔 책이다. 『마호로 역』 시리즈를 비롯한 작품들에서 보여준 미우라 시온 특유의 따뜻하고 유쾌한 문장 감각은 이번 에세이에서 일상의 가장 작은 부분을 포착하는 힘으로 한층 깊어진다. 평범한 하루 속 숨은 기쁨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 식물과 동물, 계절과 책처럼 오래 곁에 둘 존재들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새로운 감각을 열어준다. 또한 삶이 조금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 거창한 위로보다 오늘을 살아갈 작은 이유를 찾고 싶은 사람에게도 잘 어울린다. 좋아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세계는 넓어진다는 사실을, 미우라 시온은 자신만의 다정한 시선으로 보여준다.<br/><br/>✏️도서출판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1/45/cover150/k5921301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14573</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먼저 믿어 주는 일 - [그림과 만난 소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5615</link><pubDate>Thu, 06 Aug 2026 14: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56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401&TPaperId=174356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3/75/coveroff/k1821304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82130401&TPaperId=174356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림과 만난 소년</a><br/>임홍순 지음 / 클래식북스(클북) / 2026년 07월<br/></td></tr></table><br/>교육은 교실 안에서 시작되지만, 그 의미는 교실 밖에서 증명된다. 한 사람에게 건네진 말과 태도가 얼마나 오래 남는지는 성적표나 졸업장이 아니라 이후의 삶이 말해 준다. 『그림과 만난 소년』은 스무 해라는 시간을 건너 다시 이어진 한 인연을 통해, 교육이라는 행위가 남기는 흔적을 바라본다. <br/><br/>이야기의 중심에는 마음을 닫은 소년 진영과 그의 곁을 지키는 교사가 있다. 진영은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종이 위에 뿌리 없는 나무와 사막에 홀로 남겨진 거북이를 그린다. 아이가 그린 그림은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이 남긴 흔적이다. 선생님은 그림 속 상징을 해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림 너머에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왜 그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 한 장의 그림 뒤에 숨은 시간과 감정을 살핀다. 그림은 진영의 내면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이면서도, 동시에 선생님이 아이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언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의 의미를 빠르게 규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태도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그림을 읽는 기술보다 한 사람을 바라보는 방법이다.<br/><br/>이 지점에서 『그림과 만난 소년』은 교육을 ‘가르침’보다 ‘기다림’의 문제로 전환한다. 선생님은 아이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상처의 원인을 단정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가진 결핍을 찾아내고 그것을 수정하려 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칼 로저스가 말한 ‘무조건적인 긍정적 존중’은 이러한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인간은 완성된 모습을 인정받을 때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졌을 때 변화할 힘을 얻는다. 판단을 유보한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자신의 모습. 아이를 움직인 것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도 사라지지 않을 관계가 있다는 경험이었다.<br/><br/>이러한 관점 속에서 작품 속 교육은 기존의 의미와 조금 다른 방향을 향한다. 오늘날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거나 능력을 계발하는 제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빠르게 배우는지, 얼마나 높은 성과를 얻는지가 교육의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교육은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도록 곁을 마련하는 일이다. 선생님은 아이의 삶을 대신 해결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교육이 남기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존중받았던 경험은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가 된다. <br/><br/>물론 진영의 변화가 선생님의 기다림만으로 완성된 것은 아니다. 교육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마음을 내어 준 만큼, 진영 역시 자신의 마음을 꺼내 보이는 용기를 냈다. 수없이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과정은 아이 스스로 선택한 변화의 시간이었다. 좋은 교육은 누군가를 대신 성장시켜 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결국 한 사람의 변화는 가르치는 사람의 노력과 배우는 사람의 용기가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br/><br/>학창 시절, 모두 한 번쯤은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라는 노래를 불러본 적 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어른이 된 뒤에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때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익숙한 가사였지만, 『그림과 만난 소년』은 그 노랫말 속 ‘은혜’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특별한 희생이나 위대한 가르침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아이의 마음이 닫혀 있을 때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일, 아직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먼저 믿어 주는 일이다.<br/><br/>좋은 스승은 많은 것을 알려 준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삶의 한 시절을 함께 견뎌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림과 만난 소년』은 결국 교육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안전하게 내어놓을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존중받았던 경험은 시간이 지나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이 되고, 결국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삶 안에서 뿌리를 내린다.<br/> <br/>한 사람의 삶에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몇 개의 시선이 있다. 누군가가 건네준 믿음과 기다림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사람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남는다. 『그림과 만난 소년』은 한 아이의 변화를 기록하는 이야기이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떻게 머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42년간 교단에 서 있었던 임홍순 작가는 그림과 미술치료를 중심에 두고, 시와 음악, 문학 작품을 함께 엮어 아이의 내면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을 펼쳐 보인다. 정답을 알려주는 교육보다 한 사람의 속도를 기다리는 교육을 믿는 교사와 교육 관계자에게,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바라보며 이해받지 못했던 마음의 자리를 돌아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특별한 의미를 전한다. 또한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변화를 담은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오래 생각할 거리를 건넨다. 『그림과 만난 소년』은 누군가를 바꾸는 힘이 거창한 말이나 특별한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오래 바라보고 기다려 준 시간 속에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br/><br/>✏️도서출판 클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3/75/cover150/k1821304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37526</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다시 바라보기 위해 수천 년의 시간을 돌아오는 -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3929</link><pubDate>Wed, 05 Aug 2026 16: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39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0603&TPaperId=174339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10/coveroff/k2621306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130603&TPaperId=174339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a><br/>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07월<br/></td></tr></table><br/>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이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는 이유로, 언어를 가졌다는 이유로, 문명을 만들고 지구를 지배해 왔다는 이유로 자신을 생명의 정점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인간은 언제나 다른 존재를 정의하는 기준이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중심이었다. 그러나 가와카미 히로미의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그 오래된 믿음을 인류의 가장 먼 미래에 놓아둔 채, 인간이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본다. 인류가 거의 자취를 감춘 세계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멸망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면서도, 이상하리만큼 인간을 오래 응시한다. 종말을 이야기하는데도 절망보다 애정이 먼저 읽히는 이유는, 이 소설이 사라져 가는 문명보다 사라져 가는 존재를 끝까지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다.<br/><br/>수천 년에 걸친 열네 편의 이야기는 서로 흩어진 조각처럼 시작된다. 시대도, 화자도, 문체도 조금씩 다르다. 공장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인간과 다른 생명들이 함께 살아가며, ‘어머니’라 불리는 존재가 긴 시간을 건너 인류를 지켜본다. 처음에는 낯설고 기이한 풍경들이 이어질 뿐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서로를 비춘다. 연작이라는 형식이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아름다움. 하나의 생애를 완성하는 시간의 구조. 조각난 세계는 흩어지는 대신 서로를 완성하고,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인류라는 긴 생애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멸망조차 하나의 서정으로 직조해 내는 이 작품의 힘은 바로 그 거대한 연결감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미래를 예견하는 SF라기보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무대로 인간이라는 종의 오래된 민담을 새롭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br/><br/>인간다움은 이성이나 우월함보다 훨씬 사고한 곳에 남아 있는 듯하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쟁심, 이유 없이 피어나는 질투, 누구에게도 완전히 닿지 못하는 외로움, 그럼에도 끝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 효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 때로는 인간을 가장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들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우리는 오랫동안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정의를 자랑해 왔지만, 이 소설은 생각보다 감정을 먼저 기억한다. 가장 연약한 부분이 가장 오래 남는다. 역설적이게도.<br/><br/>인류가 사라진 뒤에도 생명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세계는 멈추지 않고, 인간이 비워 낸 자리는 또 다른 존재들이 살아간다. 그 긴 시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중심에서 내려온 인간은 비로소 하나의 생명으로 선명해진다. 작품은 인간 중심주의를 무너뜨리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를 함께 지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계의 중심에서 내려온 뒤에야 인간이라는 존재는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특별했던 이유는 가장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쉽게 상처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외로웠고, 가장 쉽게 사랑했기 때문이다.<br/><br/>『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의 마지막을 상상하기 위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기 위해 수천 년의 시간을 돌아오는 소설이다. 기술과 진화, 멸망과 탄생이라는 거대한 상상은 결국 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우회로가 된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이르면 마음속에 남는 것은 미래의 풍경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지구 위를 살아가던 한 종이 끝내 품고 있었던 외로움과 사랑.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기억. 이 소설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인간을 기억하는 방식을 들려준다.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의 마지막을 그리면서도 끝내 생명의 지속을 믿고, 인간의 종말을 말하면서도 인간을 향한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 인간은 가장 위대한 생명이어서 오래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은 생명이기에 전해진다. <br/><br/>한 존재의 생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 존재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려는 마음은 시간을 건너 새로운 형태로 이어진다.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의 마지막을 그리는 소설이면서도, 사라짐보다 이어짐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먼 미래의 풍경 속에서 인간을 낯선 거리로 바라보는 이 소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고 싶은 독자, 기술과 진화 너머의 생명에 대해 사유하는 철학적 SF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때로 하나의 이야기는 사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오래 이어진다. 또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무는 가와카미 히로미의 문학 세계를 좋아하는 사람, 조각난 이야기들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생애로 완성되는 연작 소설의 매력을 찾는 사람에게도 특별한 작품이 될 것이다. 한 생명의 역사를 넘어 한 종의 기억을 따라가는 독서가 되어줄 작품이다.<br/><br/> ✏️도서출판 디플롯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10/cover150/k2621306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01048</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랑이 품고 있는 믿음의 형태 - [다시 만날 확률,  100%]</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0731</link><pubDate>Mon, 03 Aug 2026 21: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07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73741&TPaperId=174307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63/coveroff/89544737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73741&TPaperId=174307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시 만날 확률,  100%</a><br/>김빵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07월<br/></td></tr></table><br/>사랑은 시작되기 직전 가장 눈부시다. 아직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기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시간. 이름을 부르는 일조차 특별해지고, 같은 방향으로 걷는 우연이 오래 기억되는 순간. 사람들이 첫사랑을 오래 간직하는 이유는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때의 자신이 품고 있던 무한한 가능성,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믿었던 마음까지 함께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직 현실이 되기 전, 모든 미래가 열려 있던 순간의 빛.<br/><br/>김빵의 『다시 만날 확률, 100%』는 사랑이 가진 가능성을 시공간의 경계 너머로 확장한다. 바닷가 마을, 서툴고 조심스러운 마음, 서로를 향해 천천히 가까워지는 두 사람. 풋풋한 관계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곧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묻는 자리로 이동한다. 전생과 현생, 인간과 신수라는 판타지적 장치는 사랑을 낭만적으로 꾸미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시간과 존재의 조건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감정의 본질을 바라보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br/><br/>우리는 왜 운명이라는 말을 믿고 싶어 할까. 수많은 우연 중 하나를 특별한 만남으로 기억하고 싶은 마음, 지나간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삶의 서사를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결국 운명은 하늘에서 내려온 답이라기보다, 평범했던 순간을 특별한 장면으로 바꾸는 인간의 해석 속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수많은 사람 중 유독 한 사람이 오래 남는 이유 역시 그 순간에 부여된 의미 때문이다. 사랑은 평범한 하루의 조각 위에 특별한 의미를 새기는 방식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다시’다. 다시 만남은 과거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다. 흘러간 시간을 되돌리는 대신, 변화한 시간 속에서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마음을 의미한다. 키르케고르는 반복을 이미 지나간 경험을 새로운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사랑 역시 반복 속에서 깊어진다. 같은 이를 다시 사랑한다는 것은 과거의 감정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라, 변화한 서로를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br/><br/>그렇기에 기억은 사랑의 전부가 될 수 없다. 기억은 흐려지고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지만, 어떤 감정은 기억보다 먼저 상대를 알아본다. 설명하기 어려운 익숙함, 이유 없이 마음이 향하는 방향,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 김빵 작가는 사랑을 기억의 기록으로 바라보는 대신, 존재를 향한 지속적인 선택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이 소설이 말하는 운명은 정해진 미래보다 선택의 결과에 가깝다. 수많은 갈림길 속에서 반복적으로 같은 방향을 향하는 마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선택들이 쌓이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운명은 누군가를 만나게 만드는 힘보다, 만난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에서 시작된다.<br/><br/>『다시 만날 확률, 100%』라는 제목은 사랑의 확률을 계산하는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품고 있는 믿음의 형태에 가깝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시간이 아무리 멀리 데려가도 마음의 방향까지 바꾸지는 못한다는 믿음. 결국 사랑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완성되는 감정이 아니라, 수많은 순간 속에서 같은 사람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다.<br/><br/>어떤 만남은 우연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선명하다. 어떤 마음은 확률이라는 숫자로 계산하기에는 너무 오래, 너무 깊게 남는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란,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단 한 사람을 향한 확신을 만들어 가는 가장 아름다운 선택일 것이다.<br/><br/>어떤 마음은 한 생의 시간만으로는 다 이야기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진다. 『다시 만날 확률, 100%』는 그렇게 남겨진 마음의 흔적을 따라가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시간과 존재의 경계를 넘어 이어질 수 있는지를 그려낸다. 지나간 첫사랑이나 오래된 인연을 마음 한편에 간직하고 있는 독자,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관계의 의미를 오래 바라보는 독자라면 이 소설이 펼쳐 보이는 시간 너머의 사랑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존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설렘을 넘어, 한 사람을 기억하고 선택하는 마음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 속에 판타지적 상상력이 스며든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풋풋한 로맨스와 함께 삶과 관계에 대한 사유를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작품은 특별한 만남의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br/><br/>✏️도서출판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0/63/cover150/89544737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06377</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기원 -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0001</link><pubDate>Mon, 03 Aug 2026 13: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300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0205&TPaperId=174300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82/99/coveroff/k08213020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130205&TPaperId=174300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a><br/>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07월<br/></td></tr></table><br/>누구에게나 부모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세상의 전부로 받아들이고, 조금 더 자라서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부모 역시 한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 역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지금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감정과 습관, 두려움과 침묵은 개인에게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흔적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br/><br/>시그리드 누네즈의 데뷔작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시선은 자꾸만 부모의 삶으로 향한다.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 전쟁과 이민이라는 거대한 역사는 한 가족의 배경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말수가 적은 아버지의 침묵이 되고, 끝내 고향을 놓지 못한 어머니의 그리움이 되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흔적으로 자녀의 삶에 스며든다. 부모에게 머물렀던 시간은 부모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한 세대를 지나온 기억은 다음 세대의 감정이 되어,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만든다.<br/><br/>오래 바라볼수록 익숙했던 얼굴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부모라는 이름은 너무 오래 불려온 탓에, 그들이 한때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었고, 전쟁과 가난, 상실을 통과해온 개인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부모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사람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들에게도 처음부터 정해진 역할은 없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시대를 통과하며 사랑하고 상처 입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품은 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br/><br/>시그리드 누네즈는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겹쳐 있는지를 바라본다.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의 삶에는 전쟁과 이민, 언어와 상실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 역사는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침묵, 잃어버린 고향을 향한 그리움,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은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한 사람의 삶은 자신이 경험한 시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보다 먼저 존재했던 수많은 삶의 흔적들이 하나씩 포개지며 지금의 자신을 만든다.<br/><br/>그래서 화자가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은 결국 자신의 삶을 다시 읽는 과정이 된다. 설명하기 어려웠던 마음의 방향에는 저마다의 기원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감정과 쉽게 설명되지 않던 외로움, 세상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문장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인간은 자신의 기억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을 물려받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새로운 자신이 되어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현재의 나에 따라 달라진다.<br/><br/>침묵은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것은 말이 사라진 자리에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어머니는 많은 것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침묵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말해지지 못한 기억들이 머무는 자리이고, 언어를 잃은 감정들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믿지만, 정작 가장 오래 품고 사는 것은 끝내 전하지 못한 삶들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의 침묵은 자녀에게 또 다른 감각이 되어 이어진다. 이유를 알 수 없던 불안과 외로움, 설명되지 않던 마음의 방향 역시 오래전 누군가의 침묵의 흘러와 닿은 자리일 것이다.<br/><br/>『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이라는 제목을 다시 떠올려 보자. 깃털은 스스로 바람의 방향을 선택하지 못한다. 다만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숨결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인간의 삶 역시 그렇지 않을까. 누구도 부모를, 시대를, 태어날 자리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시간은 한 사람을 조금씩 밀어 올리고, 마침내 하나의 삶을 그려낸다. 이 소설은 그 궤적을 따라가며, 지금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보다 먼저 살아낸 삶들을 함께 이해하는 일임을 조용하고도 깊은 목소리로 들려준다.<br/><br/>어떤 삶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보다,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흘러왔는지를 돌아보기 위해 읽게 된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그런 시간을 건네는 소설이다. 부모를 이제야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이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성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오래 헤아려본 적 있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가족 안에 남겨진 침묵과 쉽게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을 오래 품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문장이 품은 사유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데뷔작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던 그녀의 시선을 발견하는 기쁨도 함께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현재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때로는 자신보다 먼저 살아낸 시간들을 천천히 더듬어 올라갈 때 비로소 또 다른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br/><br/>✏️도서출판 복복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82/99/cover150/k08213020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829957</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법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 [자력 구제 금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8873</link><pubDate>Sun, 02 Aug 2026 21: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88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613&TPaperId=174288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50/coveroff/k1421306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613&TPaperId=174288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력 구제 금지</a><br/>김성민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07월<br/></td></tr></table><br/>법은 인간의 복수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누군가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개인이 직접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자력 구제 금지’라는 법률 용어는 결국 감정에 휩쓸린 판단이 가진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법의 문장처럼 반듯하지 않다. 누군가는 신고 이후에도 안전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남겨진다. 법이 모든 사람을 구해주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흔들린다. 기다리는 것과 직접 나서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정의와 복수의 경계에서 길을 잃는다. 김성민 작가의 『자력 구제 금지』는 바로 그 불완전한 지점에서 시작된다.<br/><br/>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과 그 안에 얽힌 인물들의 욕망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작품은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가 정의라고 믿는 것은 정말 정의일까. 누군가를 벌해야 한다는 마음속에는 과연 타인을 향한 올바른 판단만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선택을 정의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붙인다. 하지만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행동이라도 그것이 타인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되는 순간, 정의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변할 수 있다.<br/><br/>이 작품이 더욱 몰입되는 이유는 소설 속 사건이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아동 학대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이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놓이는 경우도 존재한다. 법과 제도가 모든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완벽하게 지켜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더욱 복잡한 윤리적 갈림길에 놓인다. 『자력 구제 금지』는 바로 그 현실의 틈에서 출발해, 법과 정의 사이에 놓인 인간의 불안한 모습을 바라본다.<br/><br/>특히 은아라는 인물은 책임과 연민이라는 서로 다른 감정을 동시에 불러낸다. 그녀의 선택에는 분명 돌아봐야 할 잘못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녀가 지나온 삶까지 함께 바라보는 순간, 단순한 판단은 불가능해진다. 죄를 지은 사람은 어디까지 죄인으로 남아야 할까. 인간을 하나의 잘못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 일일까. 물론 잘못에는 책임이 따른다.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행동을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은 스스로를 끝없이 벌하는 것과는 다르다.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죄책감은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이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지배하는 순간 과거는 반성이 아닌 또 다른 형벌이 된다. 『자력 구제 금지』는 죄를 지은 인간을 쉽게 용서하지도, 그렇다고 영원히 단죄하지도 않는다. 대신 잘못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을 따라간다.<br/><br/>한편 이 작품은 철학적인 질문뿐 아니라 장르소설이 가진 재미 역시 충실하게 담아낸다. 챕터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형사의 사건 수첩은 용의자들의 진술, 민법 내용, 신문 스크랩 등을 통해 독자를 사건 안으로 끌어들인다. 독자는 수동적으로 진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리하게 된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인물을 마음껏 의심하고, 숨겨진 진실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추리 스릴러 소설만이 가진 매력이다. 더불어 스릴러의 긴장감과 로맨스의 감정을 서로 충돌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엮어낸 작가의 구성력 역시 인상적이다. 사건의 냉혹함과 인간 사이의 감정이 함께 흐르며 작품의 폭을 넓힌다.<br/><br/>법은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지만, 인간의 마음까지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 사이에 남겨진 존재들을 바라봐야 한다. 죄를 지은 사람, 상처받은 사람, 그리고 잘못된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완벽한 정의를 향한 욕망은 때때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지만, 그렇다고 불완전한 인간을 외면하는 것 역시 답이 될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심판하는 시선보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일 것이다.<br/><br/>『자력 구제 금지』는 정의를 둘러싼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법이 닿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을 향한다. 법은 행위의 결과를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감정까지 모두 재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빠르게 나누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진 선택의 무게를 바라본다. 정의를 향한 마음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동력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고, 옳다고 믿었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김성민 작가는 『자력 구제 금지』를 통해 정의와 복수, 책임과 용서 사이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비춘다. 이 소설이 남기는 것은 하나의 답이 아니다. 다만 법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마음의 영역, 그 선택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인간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br/><br/>누군가의 잘못을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까지 함께 재단하려 한다. 『자력 구제 금지』는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 속에서 법이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과 선택의 무게를 세밀하게 비춘다. 정의를 향한 마음이 언제든 또 다른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며,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분 너머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법과 윤리 사이의 복잡한 경계에 관심 있는 독자,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아낸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또한 치밀한 추리 과정과 심리 묘사가 살아 있는 스릴러를 좋아하거나,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한 인물이 아닌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에 끌리는 독자에게도 깊은 몰입을 선사할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이 바라보는 것은 사건의 진실만이 아니다. 법과 정의의 언어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인간의 선택과 그 책임의 무게를 파고든다.<br/><br/>✏️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50/cover150/k1421306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5092</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자연의 품에서 - [해풍주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7295</link><pubDate>Sat, 01 Aug 2026 20: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729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9196&TPaperId=1742729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6/75/coveroff/k9921391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139196&TPaperId=1742729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해풍주점</a><br/>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6년 06월<br/></td></tr></table><br/>인간이 세계의 주인이라고 믿어 온 시간 이전, 이 땅에는 인간보다 오래 살아온 존재들이 있었다. 산의 모습을 한 거인, 바다의 숨결을 품은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이어져 온 수많은 생명의 기억. 우밍이의 『해풍주점』은 인간보다 긴 시간을 살아온 존재들의 시선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비춘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무엇으로 사라짐에 저항하는가. 이 작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남긴 흔적이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지 섬세하게 탐색한다.<br/><br/>작품의 중심에는 어린 시절 서로의 운명을 바꾼 수쯔와 투누흐가 있다. 위험을 피해 달아난 두 아이는 우연히 만나고, 서로의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선택을 한다. 한 사람의 이름을 품고, 한 사람의 자리를 지켜주는 일은 두려움 속에서도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우밍이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타인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이어가는지를 깊이 들여다본다. 두 아이의 관계에서 사랑은 거대한 구원의 서사보다 오래 지속되는 마음의 형태로 그려진다. 상대의 상처를 없애려 하기보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맞이할 계절을 함께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누군가를 향해 걸어간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이 이어질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해풍주점』 속 사랑은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닿으며 만들어지는 조용한 연대의 모습으로 존재한다.<br/><br/>이러한 사유는 해풍촌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깊어진다. 해풍촌은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를 넘어 세월과 기억이 축적된 하나의 세계다. 산과 바다의 풍경, 조상의 흔적, 마을 사람들이 이어 온 삶의 방식은 그곳에 살아 있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해풍촌의 변화는 한 마을의 모습이 바뀌는 사건을 넘어, 한 공동체가 자신들의 삶을 기억하는 방식이 흔들리는 순간으로 다가온다.<br/><br/>우밍이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세계를 나누지 않는다. 시멘트 공장을 둘러싼 갈등 속에는 생존을 위한 욕망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기대가 함께 존재한다. 작품이 오래 바라보는 것은 발전의 방향보다 그 과정에서 희미해지는 것들이다. 오래된 기억, 자연의 목소리,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사라질 때 인간 역시 자신의 뿌리를 잃어간다.<br/><br/>거인은 이러한 세계관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존재다. 인간보다 먼저 이 땅에 머물렀던 거인은 자연이자 인간이 잊어버린 오래된 기억이다. 우밍이는 자연을 인간 바깥의 풍경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인간 역시 거대한 생명의 흐름 안에 놓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거인의 몸속에서 피난처를 찾는 장면은 문명 이전부터 이어져 온 자연의 품이 인간에게 얼마나 근원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거인은 인간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닮은 감정이 흐른다. 사랑을 기다리고, 상처를 품으며, 사라짐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우밍이는 인간만을 중심에 둔 세계의 경계를 넓혀 모든 생명이 서로 관계 맺는 세계를 그려낸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이며, 인간은 그 목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br/><br/>해풍주점은 이러한 세계가 만나는 장소다. 제목 속 주점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려놓는 공간이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다른 기억이 하나의 테이블 위에서 교차한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상처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이다. 해풍주점은 인간이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방식에 대한 우밍이의 가장 따뜻한 대답이다.<br/><br/>우밍이는 생태와 공동체, 사랑과 기억을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엮어낸다. 각각의 주제는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를 비추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확장한다. 『해풍주점』이 보여주는 세계에서 인간은 독립된 존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어받고 기억을 나누며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 간다.<br/><br/>우리가 기억하는 이름, 우리가 지켜낸 장소, 그리고 누군가가 돌아왔을 때 다시 머물 수 있는 자리.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완벽하게 홀로 선 삶이 아니라 서로에게 남겨진 흔적들이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대신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다시 자신의 계절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두는 일은 가능하다. 『해풍주점』은 그 가능성을 거인의 오래된 숨결과 해풍촌을 스쳐 가는 바람, 그리고 밤마다 작은 불빛을 밝히는 주점 안에 담아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넨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 계절을 살아갈 힘으로 이어진다.<br/><br/>오래된 산과 바다에는 인간이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잠들어 있다. 『해풍주점』은 그 잊힌 시간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어떻게 이어가며 살아가는지 섬세하게 바라보는 작품이다. 거인의 숨결과 한 마을의 기억,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작은 주점은 인간이 홀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사유하는 소설을 찾는 독자, 상처 입은 존재들이 만들어 내는 연대의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펼쳐 보이는 해풍 속을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또한 사라져 가는 장소와 그 안에 깃든 기억을 바라보는 문학, 현실과 신화가 교차하며 인간 존재의 깊은 층위를 비추는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해풍주점』은 오래된 세계와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의 끝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기억한다는 일이 한 세계를 지켜내는 가장 오래된 방법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br/><br/>✏️도서출판 비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16/75/cover150/k9921391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167506</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좋아하는 일에는 언제나 약간의 숨참이 따라온다 -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 러닝 앤솔러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6655</link><pubDate>Sat, 01 Aug 2026 12: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66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275&TPaperId=174266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73/coveroff/k0421302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275&TPaperId=174266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 러닝 앤솔러지</a><br/>김연수 외 지음 / 판미동 / 2026년 06월<br/></td></tr></table><br/>달리기에 대해 말하는 책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던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눈물이 나는 것이었나.<br/><br/>책에도 욕심이 많고, 다른 것들에도 욕심이 많다. 운동만큼은 욕심이 없다. 전혀 없다. 그런데 왜 남이 달리는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행위와 감정이 이토록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신기하다. 이들이 달리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를 천천히 좁혀 놓는다. 그 무한한 거리를 당신들은 걷고, 또 달려 내게까지 왔다. 마음은 그렇게 경험보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넌다.<br/><br/>『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은 러닝을 주제로 한 에세이 앤솔러지다. 달리기는 이 책의 시작점일 뿐, 일곱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것은 결국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우울과 불안을 지나가기 위해, 미처 다하지 못한 안부와 후회를 품기 위해. 일곱 명의 작가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신발 끈을 묶는다. 달리는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그 발걸음 끝에는 저마다 지키고 싶은 삶이 있다.<br/><br/>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달리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이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늘 더 빠른 속도를 권하지만, 사람은 남의 속도로 오래 살아갈 수 없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누구보다 빠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호흡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반복되는 ‘내게 맞는 속도와 보폭’이라는 말은 운동의 원칙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로 읽힌다.<br/><br/>앙리 베르그송은 삶의 시간을 시계가 재는 숫자가 아닌 저마다의 의식 속에서 흐르는 ‘지속’으로 바라보았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누군가는 천천히 회복하고, 누군가는 오래 망설이며, 또 누군가는 제자리처럼 보이는 시간을 견딘다. 삶의 시간은 언제나 사람마다 다르게 흐른다. 달리기가 가르쳐 주는 것도 결국 같은 사실이다. 자신의 호흡을 지키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시간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있다는 것.<br/><br/>책 속의 달리기는 승부와는 거리가 멀다. 김연수에게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감각이고, 노지양에게는 오롯이 자신이라는 사람의 본질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윤이나는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리고, 박은지는 뛰고 또 뛰는 사이 조금씩 만들어지는 자신을 믿기 위해 달린다. 김혜나는 미루어 두었던 마음들을 다시 꺼내기 위해 달린다. 같은 길을 달려도 모두가 다른 세계를 본다. 그래서 이 책은 달리기를 이야기하면서도 끝내 사람을 이야기한다.<br/><br/>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이상하다. 좋아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더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는 사람도 그렇고, 글을 쓰는 사람도 그렇고, 달리는 사람도 그렇다. 좋아하는 마음은 효율을 따지지 않는다. 손익을 계산하지도 않는다.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는데도 자꾸만 발걸음을 그쪽으로 향하게 만든다.<br/><br/>어쩌면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통해 자기 삶의 리듬을 만들어 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는 글을 쓰며, 또 누군가는 달리며 하루를 견딘다.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그 마음은 닮아 있다. 삶을 조금 더 오래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br/><br/>『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을 읽으며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달리는 모습보다 그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일이 한 사람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살아갈 힘이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달려 본 적 없는 사람도 이 책 앞에서는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춘다. 누군가의 숨찬 고백이, 오래 품어 온 사랑이,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려는 다짐이 어느새 내 호흡과도 같은 박자가 되어 가기 때문이다.<br/><br/>좋아하는 일에는 언제나 약간의 숨참이 따라온다. 그 숨은 버거워서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이 너무 선명해서 차오르는 숨.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사랑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백처럼 오래 마음속을 달린다.<br/><br/>어떤 마음은 오래 움직일수록 더 선명해진다. 처음에는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숨이 차오르는 순간에도 다시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은 일곱 명의 작가가 각자의 보폭으로 기록한 러닝의 이야기이자,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한 사람의 삶에 스며드는 방식에 대한 에세이다. 아직 서툰 시작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 바쁜 하루 속에서 자신의 호흡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한 속도로 곁을 내어준다. 또한 책이나 음악, 글쓰기처럼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떤 것을 오래 사랑해 온 사람이라면 일곱 작가의 달리기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달리기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이 책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숨과 걸음을 이해하게 된다. 서로 다른 길을 달려온 마음들이 결국 같은 곳에 닿는 순간, 좋아한다는 일이 얼마나 한 사람을 오래 움직이게 하는지 알게 되는 책이다.<br/><br/>✏️도서출판 판미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73/cover150/k0421302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67386</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흑과 백 - [백의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4508</link><pubDate>Fri, 31 Jul 2026 18: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45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0008&TPaperId=174245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75/coveroff/k9121300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12130008&TPaperId=174245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백의 세계</a><br/>고혜원 지음 / 다이브 / 2026년 07월<br/></td></tr></table><br/>흑과 백, 단 두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작은 바둑판 위에는 세계가 담겨 있다. 돌 하나를 어디에 놓을지 결정하는 순간마다 수많은 가능성이 갈리고, 한 번의 착점은 이후의 모든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바둑은 선택과 기다림,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이 축적된 삶의 축소판과도 같다.<br/><br/>고혜원의 《백의 세계》는 이러한 바둑의 본질을 궁궐이라는 정치적 공간과 결합한다.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궁궐은 또 하나의 거대한 바둑판이다. 왕권과 외교, 신분과 권력이 서로 다른 돌처럼 놓이고, 그 위에 선 인간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계산 속에 배치된다. 별궁에 머무는 공주 연화 역시 그러한 판 위에 놓인 존재다. 공주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br/><br/>이 작품에서 바둑은 승리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를 지키기 위한 사유 방식으로 확장된다. 스승이 공주에게 가르치는 것은 정해진 수를 외우는 법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상대의 의도를 읽으며, 제한된 조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법이다. 바둑판 위에서 집을 만들고 활로를 찾는 과정은 곧 자신의 삶을 지키는 방식과 닮아 있다. “살아남으셔야죠. 바둑에서든, 궁궐 안에서든.”(52쪽)이라는 말은 이 작품이 말하는 생존의 의미를 압축한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버티는 일을 넘어,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br/><br/>그러나 궁궐이라는 공간은 인간을 쉽게 하나의 수로 환원한다. 『백의 세계』 속 권력은 사람을 마음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기보다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다룬다. 왕실의 관계와 정치적 질서는 끊임없이 계산되고, 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일수록 더욱 쉽게 희생된다. 작품 속 바둑판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인의 계산 속에 놓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동시에 그 판 위에서 자신의 수를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함께 드러낸다.<br/><br/>이 소설이 깊어지는 지점은 승리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바둑에서 승리는 상대보다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의 승리는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백의 세계』는 가장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언제나 올바른 승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가 아니라,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향하고 있는가에 있다. 타인이 정한 승리의 기준을 따라가는 삶과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한다.<br/><br/>또한 이 작품은 철저한 계산의 세계인 바둑 안에서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을 보여준다. “이 세상엔 흑돌과 백돌로는 계산 안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라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시선이다. 사람 사이의 믿음과 연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다. 바둑판 위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수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때때로 비효율적인 선택이 가장 깊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마음은 모두 계산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들이다.<br/><br/>결국 『백의 세계』는 한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바둑이라는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바둑판 위에서 살아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진 조건과 위치가 있고, 때로는 원하지 않는 판 위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돌을 놓을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흑과 백 사이에 놓이는 하나의 돌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듯, 인간 역시 수많은 선택을 쌓아 삶을 완성해간다.<br/><br/>삶은 언제나 완성된 바둑판 위에서 시작되지만, 그 위에 어떤 돌을 놓을지는 누구도 대신 결정해줄 수 없다. 『백의 세계』는 정해진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넘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권력과 신분이 뒤엉킨 궁궐이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바둑은 단순한 승부가 아닌 삶을 읽는 방식이 되고, 한 수 한 수를 고민하는 과정은 결국 자신을 지키는 태도로 이어진다. 한 번의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을 좋아하는 독자, 역사 속 권력과 인간의 내면을 함께 바라보는 소설을 찾는 독자, 그리고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다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인물의 이야기에 끌리는 독자라면 이 작품의 깊은 결을 오래 따라가게 될 것이다. 흑과 백으로 나뉜 바둑판 위에서도 인간의 마음만큼은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결국 자신의 삶이라는 판 위에서 어떤 수를 둘 것인지 조용히 돌아보게 한다.<br/><br/>✏️도서출판 빅피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59/75/cover150/k9121300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597563</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낯선 - [내가 없는 세계 - 제6회 넥서스 작가상 대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1309</link><pubDate>Thu, 30 Jul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213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300&TPaperId=174213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85/9/coveroff/k74213030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42130300&TPaperId=174213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가 없는 세계 - 제6회 넥서스 작가상 대상 수상작</a><br/>이태희 지음 / &(앤드) / 2026년 07월<br/></td></tr></table><br/>사람은 세상이 아닌 누군가의 삶에서 사라진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는 빈 공간으로만 남지 않는다. 함께 바라보던 풍경이 달라지고, 익숙했던 일상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띤다. 부재란 존재 하나가 사라지는 일보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던 하나의 삶이 형태를 바꾸는 사건에 더 가깝다.<br/><br/>이태희의 『내가 없는 세계』는 이러한 부재를 개인의 상실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가는 현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그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고 설명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함께 풀어낸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걸어나가기’ 시작하고, 남겨진 사람은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저마다의 단서를 모은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차례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하나의 실마리가 되고, 현실은 조금씩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기울어 간다. 그러나 작품은 ‘걸어나감’의 정체를 서둘러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현상 앞에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오래 바라본다.<br/><br/>실종은 이 책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머물지만, 해석은 이야기 전체를 움직인다. 인물들은 예언과 신화, 철학과 언어를 경유하며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갈래로 읽어 낸다. 특히 “표현이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표현이 전부다.”(175쪽)라는 문장은 작품의 방향을 압축한다. 같은 현상도 어떤 이름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실종’과 ‘걸어나감’은 같은 사건을 가리키지만, 표현이 달라지는 순간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 인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덧입히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삶과 관계를 맺는다.<br/><br/>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그 수많은 해석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최종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언은 현실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우연은 끝내 우연으로 남으며, 철학 역시 모든 것을 해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우연을 연결하며, 하나의 문장을 품는 일. 작품이 탐구하는 것은 미스터리의 해답보다, 설명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도 저마다의 이유를 만들어 가는 인간의 모습이다.<br/><br/>지점에서 『내가 없는 세계』는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걸어나감’은 단순한 판타지적 장치에 머물지 않고 존재와 부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누군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빈자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이며, 부재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감각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내가 없는 세계’는 떠난 사람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사람이 다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의 이름이기도 하다.<br/><br/>다만 작품의 관심은 사건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사유에 조금 더 머무는 듯하다. 그 결과 독자가 기대하는 긴장감의 방향 역시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걸어나감의 진실을 추적하는 서사보다, 그 현상을 둘러싼 사유를 따라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러한 구성은 작품의 철학적 깊이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미스터리의 전개를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호흡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br/><br/>그렇기에 이 작품은 쉽게 이해되는 소설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독자가 하나의 해석에 다다르려는 순간마다 또 다른 층위를 펼쳐 보이며, 명료한 결론보다 사유가 오래 지속되는 시간을 택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모호함이 오래 머물고 싶은 사유의 공간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닿지 않는 거리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없는 세계』가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분명하다. 설명되지 않는 삶 앞에서도 사람은 이야기를 만든다. 누군가를 잃은 뒤에서 삶은 이어지고, 남겨진 사람은 그 삶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받아들인다.<br/><br/>누군가 사라진 뒤에도 세계는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생기고, 남겨진 사람은 그 빈곳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간다. 『내가 없는 세계』는 사라짐이라는 낯선 사건을 통해 존재와 부재, 그리고 인간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소설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하며 사유하는 문학을 찾는 독자에게 이 작품은 특별한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상실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모습을 담은 서사와 명확한 답보다 오래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 속 ‘걸어나감’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만들어 내는 세계를 천천히 따라가 보기를 권한다.<br/><br/>✏️도서출판 넥서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85/9/cover150/k74213030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850905</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뒤따라오는 이에게 남겨 두는 발자국 -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7330</link><pubDate>Tue, 28 Jul 2026 17: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73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306&TPaperId=174173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0/69/coveroff/k1421303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306&TPaperId=174173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a><br/>피코 아이어 지음, 최지숙 옮김 / 서사원 / 2026년 07월<br/></td></tr></table><br/>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참 쉽게 건넬 수 있는 말이다. 힘든 일을 겪는 사람에게, 실패 앞에 선 사람에게,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사람들은 습관처럼 이 문장을 건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말은 자주 위로가 되지 못한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건네는 확신은 때로 공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br/><br/>위로는 말의 내용보다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삶의 무게를 먼저 증명한다. 같은 문장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건네는 위로는 가능성을 말하지만, 삶을 통과한 사람이 건네는 위로는 시간을 말한다. 그 시간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상실과 실패, 이별과 기다림이 켜켜이 쌓인 끝에 비로소 한 문장은 자신의 무게를 갖게 된다.<br/><br/>피코 아이어의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바로 그 무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고,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딸의 병을 지켜보는 동안 그는 삶을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를 찾지 않았다. 대신 세상의 소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침묵 속에 오래 머무른다. 이 책은 수도원의 평온함을 찬미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침묵을 통해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여준다.<br/><br/>침묵은 삶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는 장치로 기능한다. 현대 사회는 고통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한다. 해결되지 않는 슬픔은 미완의 과제로 남고, 오래 지속되는 상실은 극복하지 못한 감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이 분명 존재한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고, 상실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해결되지 않는 현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 아닐까.<br/><br/>‘결국’이라는 두 글자는 시간을 압축한 말이다. 그 안에는 하루도, 한 계절도 아닌,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났던 시간이 포개져 있다. 그래서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문장은 미래를 섣불리 낙관하는 약속이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내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끝내 이 문장을 말할 수 있다. 삶이 언제나 자신의 기대를 배반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도, 다시 삶을 선택해 온 사람만이 그 말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위로의 문장이기 전에 시간과 신뢰의 문장이다. ‘괜찮아질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 앞에 놓인 ‘결국’이다. 그 두 글자는 희망을 낙관으로 만들지 않고, 삶을 견딘 시간을 한 문장 안으로 불러들인다. 누군가의 생애를 통과한 끝에 도착한 말이기에, 이 짧은 문장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br/><br/>피코 아이어가 수도원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슬픔조차 서둘러 정리하려 들지 않는다.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견디며,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를 기다린다. 삶에는 회복보다 먼저 필요한 시간이 있다. 고통을 해결하기에 앞서,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 그렇게 흘러간 시간은 슬픔의 크기를 줄여 주지는 못해도,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조금씩 만들어 간다.<br/><br/>상처는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상처는 흉터가 되어 오래도록 삶에 남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흉터를 지닌 채 다시 시간을 건너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피코 아이어가 건네는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말도 그런 시간을 지나온 끝에 닿은 문장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믿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 그의 삶이 그 문장을 대신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보다 오래 살아남은 신뢰. 삶이 몇 번이나 무너져도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오래 견딘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가장 깊은 다정함이자, 고통이라는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이 뒤따라오는 이에게 남겨 두는 발자국이다.<br/><br/>어떤 말은 들은 순간보다, 살아낸 시간이 쌓인 뒤에야 의미를 드러낼 때가 있다.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도 그런 문장으로 시작해 그런 문장으로 끝나는 책이다. 상처를 너무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지친 사람, 삶이 번번이 자신의 기대를 비껴간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침묵이 오래 곁을 지켜 줄 것이다. 삶은 언제나 앞으로만 흘러가지만, 사람은 때때로 잠시 멈추어야만 다시 걸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좋은 위로란 무엇인지,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말에는 어떤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한 번쯤 헤아려 본 적 있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괜찮아지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할 자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 시간을 함께 지나고 나면,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문장은 더 이상 희망을 권하는 말이 아니라 삶이 스스로 증명해 낸 한 문장으로 읽히게 될 것이다.<br/><br/>✏️도서출판 서사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90/69/cover150/k1421303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906948</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포기하지 않은 질문 - [나쁜 질문 - 선을 넘어야 비로소 열리는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5711</link><pubDate>Mon, 27 Jul 2026 22: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57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0716&TPaperId=174157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0/47/coveroff/k8721307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0716&TPaperId=174157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쁜 질문 - 선을 넘어야 비로소 열리는 것들</a><br/>이동원 지음 / 에피케 / 2026년 07월<br/></td></tr></table><br/>진실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래 침묵하는 것일수록 더 깊이 감춰져 있다. 그리고 인간은 거짓보다도 삶을 흔드는 진실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다시 묻지 않고, 불편한 사실은 상식이라는 이름 아래 봉합해버리곤 한다. 침묵은 그렇게 진실을 숨기는 가장 견고한 장소가 된다. 이동원의 『나쁜 질문』은 그 침묵을 걷어 내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질문의 요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앞에 선 인간이 어떤 태도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br/><br/>저자가 말하는 ‘나쁜 질문’은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관성을 깨고, 본질을 향해 나아가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과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질문이다. 진실은 누구도 들춰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는 저자의 말은, 수많은 취재 끝에 얻어낸 하나의 지혜이자 윤리처럼 읽힌다. 가장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고, 애써 감춰 온 모순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순간, 현장에는 짧은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다.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이야기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질문은 진실이 스스로 걸어 나올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br/><br/>이 책이 오래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질문보다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건과 비극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사람이라면 인간을 믿기보다 의심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이동원 PD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 질문은 상대를 궁지로 몰아세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끝내 말할 수 있는 인간, 끝내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의심만으로는 질문을 이어 갈 수 없다. 상대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진실이 남아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에만 질문은 추궁이 아닌 기다림이 되고, 집요함은 상대를 향한 압박이 아닌 진실을 향한 인내가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날카로운 질문의 기술이 아니라, 그 질문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br/><br/>그래서 이동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콘텐츠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질문이 폐기되고, 살아남은 질문 하나가 한 편의 이야기를 이끈다. 독서와 비평 역시 다르지 않다.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이 품고 있던 질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사유와 언어로 이어 가는 일이다. 좋은 창작은 화려한 답변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익숙한 답을 반복하는 작품은 빠르게 소비되지만, 오래 살아남는 작품은 독자의 사고를 흔드는 질문을 품고 있다.<br/><br/>진실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침묵을 깨는 일도, 불편을 견디는 일도, 그 질문이 남긴 결과를 감당하는 일도 결국 누군가의 몫이다. 이동원 PD가 말하는 『나쁜 질문』은 질문의 기법이 아니라 질문 뒤에 따라올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 듯하다. 질문에는 언제나 불편함이 따르고, 불편함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자만이 금기를 지나 본질에 닿을 수 있다. 질문은 결국 타인을 향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안온함을 겨누는 일이다.<br/><br/>침묵은 안전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이라도 앞으로 움직여 온 것은 침묵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며 한 걸음 더 다가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와 기획자, 사람을 만나고 기록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더욱 깊이 읽힐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결국 좋은 답보다, 포기하지 않은 질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익숙한 상식 앞에서 한 번쯤 멈춰 본 적 있는 사람에게도 오래 곁에 둘 만한 책이다. 질문을 잘하는 법보다, 질문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하는 책.<br/><br/>✏️도서출판 에피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0/47/cover150/k8721307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304759</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예술과 외설 - [선 넘는 미술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3144</link><pubDate>Sun, 26 Jul 2026 19: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314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750288X&TPaperId=1741314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6/83/coveroff/894750288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750288X&TPaperId=1741314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선 넘는 미술사</a><br/>이지호 지음 / 한경arte / 2026년 07월<br/></td></tr></table><br/>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나누고, 허용과 금지를 구분하며,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 사이에 하나의 선을 긋는다. 경계는 그렇게 태어나고, 오래지 않아 진실의 얼굴을 한다. 예술과 외설 역시 그 선 위에서 갈라진 두 개의 이름이다.<br/><br/>이지호의 『선 넘는 미술사』는 그 이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따라간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 에두아르 마네, 귀스타브 쿠르베, 모딜리아니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미술사 속 명화이기 이전에 당대가 가장 불편해했던 이미지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외설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사회를 위협하는 위험으로 규정했다. 시간이 흐르자 같은 작품은 걸작이 되었고, 금기였던 표현은 예술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되었다.<br/><br/>그림은 처음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시대는 끊임없이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레 작품에서 인간에게로 향한다. 무엇이 예술인지보다 무엇을 예술이라 부를 권한을 누가 가졌는지가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미술사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온 역사인 동시에, 아름다움을 정의하려 했던 역사이기도 하다. 작품의 가치는 캔버스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시대의 윤리와 권력은 작품의 해석을 만들고, 그 해석은 반복될수록 상식이라는 이름을 얻는다.<br/><br/>예술과 외설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를 가르는 선은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고, 사회가 승인하며, 시간이 그것을 하나의 규범으로 굳힌다. 그렇게 잣대는 절대성을 획득한다. 인간은 그 경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고 믿지만, 경계가 먼저 만들어 내는 것은 이해보다 안도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모호함은 질서가 되고, 질서는 반복될수록 확신이 된다. 아름다움과 추함, 예술과 외설, 허용과 금지는 한 사회를 지탱하는 언어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미술사는 그 절대성이 얼마나 자주 수정되어 왔는지를 쉼 없이 증언한다. 한 시대의 금기는 다음 시대의 미학이 되었고, 가장 위험하다고 여겨졌던 작품은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인간은 또 다른 경계를 세운다. 기준이 무너질 때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br/><br/>미술관의 벽에 걸리기 전, 많은 그림은 먼저 법정에 서야 했다. 시대는 그것들을 외설이라 불렀고, 예술은 그 이름을 오래 견뎌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자 심판은 방향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그림을 다시 보기 시작했고, 흔들린 것은 자신들이 믿어 온 판단이었다. 검열의 역사는 창작이 실패한 흔적이 아니다. 사회가 자신의 확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계를 세워 왔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선 넘는 미술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림보다 인간이 먼저 읽힌다. 작품보다 오래 시선을 붙드는 것은 캔버스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시대의 감각이다.<br/><br/>인간은 끊임없이 잣대를 만들고,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미술은 그런 확신 앞에서 쉽게 침묵하지 않는다. 늘 경계 가까이에 머물며 당연하게 여겨진 감각을 흔들고, 익숙한 언어의 바깥을 가리킨다. 그래서 한 시대의 문제작은 다음 시대의 걸작이 되고, 절대적이라 여겼던 판단은 또 하나의 시대적 감각으로 남는다. 『선 넘는 미술사』는 명화를 통해 인간을 읽는다. 인간이 자신의 잣대를 만들고, 그것을 절대화하며, 마침내 다시 수정해 온 시간. 미술사가 오래 기록해 온 것은 아름다움의 역사만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확신을 어떻게 수정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다.<br/><br/>경계는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때로는 세상을 가장 좁게 바라보게 만드는 선이 되기도 한다. 『선 넘는 미술사』는 그 선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흔들려 왔는지를 미술이라는 언어로 들려준다. 당연하다고 믿어 온 판단의 출처를 되짚어 보고 싶은 사람, 명화를 감상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아름다움을 정의해 온 방식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명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그림보다 시대를, 작품보다 인간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책.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지고, 그보다 먼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br/><br/>✏️ 한국경제신문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16/83/cover150/894750288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168377</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간절한 생존의 몸짓 -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1716</link><pubDate>Sat, 25 Jul 2026 23: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17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0494&TPaperId=174117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5/coveroff/k1221304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130494&TPaperId=174117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a><br/>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06월<br/></td></tr></table><br/>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계절은 옆으로 이동한다. 이 단순한 차이가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를 특별하게 만든다.<br/><br/>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내일이다. 내일이 사라지면 미래도 함께 사라진다. 시간은 미래를 약속하는 가장 오래된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베이 발레는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시간을 빼앗긴 뒤에도 인간은 미래를 가질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불가능한 명제 위에 자신의 세계를 세운다.<br/><br/>1권에서 반복은 출구를 찾기 위한 시간이었다. 모든 시도는 내일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2권에서 반복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진다. 내일을 되찾기 위해 견뎌야 했던 하루는 어느새 그 안에서 삶의 방식을 새롭게 익혀가는 시간이 된다. 출구를 향하던 시선이 계절을 향하는 순간, 이 소설 역시 시간의 서사에서 삶의 서사로 방향을 튼다.<br/><br/>1년째 같은 11월 18일을 살아가는 타라 셀테르는 더 이상 출구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시선은 시간에서 공간으로 옮겨간다. 앞으로 갈 수 없다면 옆으로 움직이면 된다. 북쪽에는 겨울이 남아 있고, 남쪽에는 아직 봄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시를 이동하며 계절의 파편들을 수집한다. 시간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이 공간을 건너 계절을 이어 붙이는 순간, 달력은 더 이상 삶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br/><br/>시간은 직선이지만 계절은 지리다. 이 한 문장으로도 작품의 세계는 거의 설명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계절은 장소를 따라 흩어진다. 그래서 시간을 잃은 사람도 계절만큼은 잃지 않는다. 타라는 시간을 되찾지 못하지만, 계절을 다시 만들어낸다. 인간은 시간을 숫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해의 4월보다 벚꽃이 늦게 피었던 봄을, 어느 해의 8월보다 숨이 막힐 만큼 뜨거웠던 여름 햇살을 더 오래 기억하곤 한다. 삶은 달력보다 계절의 감각으로 저장된다. 그래서 시간을 잃은 타라가 계절을 붙드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계절은 시간을 대신하는 기억의 언어인 까닭이다.<br/><br/>‘계절을 가지려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미래를 가지려면 그 역시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125쪽) 이라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떠받치는 하나의 축이다. 미래는 흘러오는 시간이 아닌 스스로 빚어내는 시간이라는 선언이다. 타라가 북쪽으로 향하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며, 봄과 여름을 ‘거짓말처럼’ 이어 붙이는 이유다. 그녀가 모으는 것은 계절이면서 동시에 미래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이 그 계절을 끊임없이 ‘거짓말’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봄의 거짓말, 여름의 거짓말. 계절은 실제가 아니다. 기상학자의 그래프를 따라 이동하며 잠시 빌려온 풍경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거짓말은 이상할 만큼 진실하다. 인간의 삶 역시 그런 작은 허구들 위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새해라는 이름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다짐도 모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먼저 믿는 행위가 아닌가. 삶은 사실만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상상하는 능력이 오늘을 견디게 한다. 타라는 계절을 통해 삶을 다시 설득한다.<br/><br/>그래서 이 작품에서 기록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행위로 읽히지 않는다. 계절의 수첩은 일기가 아닌 시간을 대신하는 장치다. 한 장 한 장 적어 내려가는 문장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조금씩 조립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기록은 미래를 향한 기술이 된다.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기록은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과 하루를 남기는 일은 같은 의미를 품게 된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이동이 이 작품에서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타라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오래 머물수록 괴물이 자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괴물은 절망이라기보다 정지한 의식이 스스로를 끝없이 증식시키는 형상에 가까워 보인다. 시간이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삶은 다른 방향을 발명해야 한다. 타라가 선택한 방향은 ‘앞’이 아닌 ‘옆’이다. 시간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공간을 통과한다. 그녀의 여행은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라기보다, 시간을 대신할 또 하나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오래 머문다는 것은 장소에 머무는 일을 넘어 하나의 감정에 머무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삶의 호흡을 이어가기 위해 이동한다.<br/>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는 시간이라는 관념을 해체한 뒤, 인간이 무엇으로 미래를 구성하는지를 탐색하는 철학소설에 가깝게 읽힌다. 2부에서도 작품은 끝내 시간의 비밀을 설명하지 않는다. 11월 18일이 왜 반복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견디는 힘은 해답에서 오지 않는다. 타라는 계절을 모으고, 기록을 남기고, 계속해서 이동한다. 하루를 하루 위에 포개며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시간은 우리를 미래로 데려가는 가장 익숙한 방식일 뿐,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미래는 달력보다 먼저, 오늘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모아온 계절들의 총합에서 만들어진다. 그녀에게 달력은 끝내 다음 장을 허락하지 않지만, 타라는 계절을 모으며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빚어낸다. 시간은 멈췄지만 삶은 멈추지 않는다. 타라가 만들어낸 것은 내일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한 사람의 시간이다. 느리고도 완강한 지속.<br/><br/>모든 시간이 앞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은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머물고, 어떤 사람은 달력 대신 계절을 따라 자신을 이어간다. 그래서 이 소설은 시간을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멈춰 있는 삶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아름다운 비유가 된다.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듯한 감각 속에서 오래 머물러 본 사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타라의 이동이 얼마나 간절한 생존의 몸짓인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기다림 역시 하나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계절과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이들, 시간과 존재를 천천히 사유하는 철학적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국내에 아직 2권까지만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유난히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잃고도 삶을 계속 빚어내는 법을 보여주는 드문 소설. 그래서 다음 계절이, 다음 권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오기를 바라게 된다.<br/><br/>✏️도서출판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5/cover150/k1221304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28592</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인간이라면 원래 그렇다 - [문화가 다르면 마음도 다를까 - 마음의 본질을 찾아가는 문화심리학의 도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0686</link><pubDate>Sat, 25 Jul 2026 1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106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0296&TPaperId=174106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9/93/coveroff/k9621302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130296&TPaperId=174106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문화가 다르면 마음도 다를까 - 마음의 본질을 찾아가는 문화심리학의 도전</a><br/>기타야마 시노부 지음, 박준하 옮김 / 김영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사람은 다 똑같다’는 말은 이해를 위한 문장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가장 오래된 오해이기도 하다. 심리학은 오래도록 인간의 보편성을 탐구해 왔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분노, 행복과 자존감은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 믿음 위에서 인간을 설명하는 수많은 이론을 세웠다. 그러나 그 보편성은 과연 누구의 것이었을까. ‘인간이라면 원래 그렇다’는 명제는 모든 인간에게서 발견된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특정한 문화에서 출발한 경험이 어느새 인류 전체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br/><br/>기타야마 시노부는 이 낡은 전제를 다시 묻는다. 문화는 인간의 마음을 둘러싼 배경이 아니라 마음이 형성되는 조건이며, 개인의 내면은 사회와 역사, 관계와 생태가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라는 것이다. 행복을 느끼는 방식도, 타인과 관계를 맺는 태도도, 자존감을 세우는 기준도 문화라는 삶의 환경 속에서 빚어진다. 이는 저자가 30여 년 동안 문화심리학의 중심에서 탐구해 온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헤이즐 마커스와 함께 제시한 ‘독립적 자기’와 ‘상호의존적 자기’에 관한 연구는 자아를 개인 내부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문화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로 다시 이해하도록 만들었고, 이후 이어진 문화와 마음의 상호구성(mutual constitution) 연구는 문화를 인간 행동의 배경이 아닌 마음의 형성 조건으로 재정의했다. 이 책은 그렇게 축적된 연구들이 하나의 사유로 응축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br/><br/>문화심리학은 타인의 문화를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절대적인 기준에서 내려놓는 학문이다. 자연스럽다고 믿었던 감정과 상식은 자연이 아니라 익숙함이었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판단 역시 오랜 문화적 학습의 결과였다.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새로운 지식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하나의 문화로 다시 인식하는 일이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은 개인의 내부가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읽히기 시작한다.<br/><br/>이 책이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통찰은 다양성과 보편성을 대립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편성은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결과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역사와 환경, 관계 속에서 마음을 형성해 간다는 과정에 놓여 있다. 인간은 같은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서로 닮은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문화 속에서 삶에 적응하며 마음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공통의 기반을 공유한다. 다양성은 보편성을 흔드는 예외가 아니라, 보편성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다.<br/><br/>이러한 관점은 심리학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보편’이라는 개념도 다시 성찰하게 만든다. 서구 사회를 중심으로 축적된 연구가 인간 일반의 심리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오늘날 심리학에서도 중요한 성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한계를 지적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협력 방식에서 일본과 미국의 관계 맺기, 생태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화의 기원까지 시야를 넓혀 보이며, 서로 다른 문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인간적 과제를 풀어 왔음을 보여 준다. 문화와 마음은 서로를 끊임없이 형성하는 상호구성의 관계에 있으며, 문화의 차이는 인간을 구분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단서가 된다.<br/><br/>사람을 이해하는 일보다 사람을 규정하는 일이 더 쉬워진 시대다. 몇 번의 말과 행동만으로 성향을 단정하고, 하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일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준이 아니라 더 많은 맥락이다. 『문화가 다르면 마음도 다를까』는 인간을 하나의 잣대 안으로 모으려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삶이 형성된 배경을 먼저 이해할 것을 권한다. 저자가 평생에 걸쳐 축적해 온 문화심리학 연구는 결국 하나의 사실을 향해 나아간다. 보편은 다양성을 지운 끝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끝까지 이해했을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문화심리학을 소개하는 교양서를 넘어,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한 권의 연구이자 깊은 사유의 기록으로 남는다.<br/><br/>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 온 마음과 생각은 정말 ‘보편적’인 것일까. 『문화가 다르면 마음도 다를까』는 그 익숙한 믿음에 물음을 던지며, 인간의 마음이 문화와 관계, 역사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자신이 당연하게 여겨 온 생각과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돌아보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간의 마음을 개인의 성향이나 타고난 본성만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했다면, 이 책은 마음이 사회와 역사, 문화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며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다. 또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단순한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만들어진 배경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깊은 통찰을 전한다. 심리학을 넘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우리가 믿어 온 ‘보편’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유해 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읽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br/><br/>✏️ 도서출판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9/93/cover150/k9621302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99396</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시간을 살아가는 방식 - [루미너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9368</link><pubDate>Fri, 24 Jul 2026 15: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93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9635&TPaperId=174093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35/47/coveroff/k40213963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9635&TPaperId=174093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루미너스</a><br/>박지선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06월<br/></td></tr></table><br/>함께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드문 기적이다. 같은 계절을 지나고, 같은 풍경을 기억하며, 서로가 변해 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일. 우리는 그것을 너무 오래 누린 탓에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한 존재만 시간이 멈춰 버린다면. 함께 흘러가던 시간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것이 된다면. 이 작품은 그 고요한 상실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br/><br/>박지선의 『루미너스』는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근미래의 통일 한국을 무대로 한다. 실종된 반려 로봇 소녀를 둘러싼 미스터리, 인간과 다름없는 안드로이드, 그리고 오래전 사라진 한 로봇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첫 장부터 독자를 낯선 세계로 이끈다. 여러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고 새로운 용어와 세계관이 쏟아지는 초반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낯섦은 이 작품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의 규칙을 하나씩 익혀 가는 과정 자체가 SF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자 고유의 ‘맛’이며, 어느 순간 독자는 그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br/><br/>이 미래는 한국인의 상상력만으로 빚어진 공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재미 한인인 박지선이 그려 낸 통일 한국은 분명 서울을 닮았지만, 중국의 풍경과 미국의 정서가 희미하게 겹쳐진다. 익숙한 도시인데도 어딘가 이방의 공기가 감도는 이질감은 작품의 세계를 더욱 독창적으로 만든다.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그려 내는 일이면서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공간의 감각만으로도 보여 준다.<br/><br/>그러나 『루미너스』가 오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정교한 세계관 때문만은 아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이 작품이 들여다보는 대상은 인공지능의 발전이나 기술의 윤리가 아니라, 가족과 상실, 그리고 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이다. 인간을 닮은 기계를 상상하는 일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일. 이 작품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곳에 있다.<br/><br/>그 중심에는 요요가 있다.<br/><br/>요요는 인간이 아니지만, 작품은 단 한 번도 그를 기계처럼 다루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는 처음부터 가족이었다. 다만 누구보다 먼저 시간이 멈춰 버렸을 뿐인 존재. 몸은 어린 소년의 모습에 머물러 있고, 기억은 여러 번의 죽음과 복제를 거쳐 이어진다. 모든 부품이 교체된 배를 여전히 같은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래된 형이상학의 사고 실험인 ‘테세우스의 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렇다면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남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루미너스』는 그 답을 논리보다 관계에서 찾는다.<br/><br/>그 모습은 피터 팬을 떠올리게 한다. 피터 팬은 영원한 어린아이로 기억되지만, 그 영원은 결코 축복만은 아니다.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과 함께 살아갈 기회를 잃는 일이기도 하니까. 모두가 나이를 먹고 서로를 떠나보내는 동안 혼자만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삶. 사람은 함께 늙어 가며 관계를 완성한다. 같은 시간을 살아냈다는 사실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기억이 되고, 그 시간은 서로를 가족으로 만든다. 『루미너스』가 그려 내는 슬픔은 죽음보다도 시간에 닿아 있다. 시간을 함께 흘려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작품이 품은 가장 큰 비극이기 때문이다.<br/><br/>그래서 『루미너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비는 인간과 로봇이 시간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인간은 시간을 견디며 변한다. 기억은 흐려지고 몸은 늙으며, 상실은 사람을 이전과 다른 존재로 만든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지만 시간은 사람을 앞으로 데려간다. 반면 요요는 기억을 간직한 채 같은 자리에 머문다. 인간은 변하기에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요요는 변하지 않기에 끝내 홀로 남는다. 그 역설은 이 소설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br/><br/>작품 속 로봇들은 인간보다 더 깊이 사랑하고, 상실 앞에서 무너지고,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 그들이 인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감정을 흉내 내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를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 관계를 잃는 아픔을 견디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이 사랑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착각하곤 하지만, 실은 사랑이 비로소 하나의 존재를 생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br/><br/>독서인의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 2026에서 ‘여름, 첫 책’으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으고, 《가디언》이 선정한 올해의 SF와 《LA 타임스》 도서상, 어더와이즈 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거대한 세계관과 미스터리, 감정의 깊이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만큼 영상화 소식이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활자로도 이토록 선명했던 시간과 감정이 화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게 될까. 『루미너스』는 화려한 미래 기술을 내세우는 대신, 그 기술을 통해 인간이 오래도록 품어 온 감정을 이야기한다.<br/><br/>시간을 함께 흘려보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깊은 상실일까. 언젠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 없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누군가는 먼저 늙고, 누군가는 먼저 떠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기억 속에서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함께 웃고, 같은 식탁에 앉고, 같은 계절을 건너는 일.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얼굴들. 서로의 변화를 지켜보며 살아가는 일. 너무 오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시간들은 사실 가장 쉽게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감정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루미너스』는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낸다. 가장 먼 시간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가장 가까운 삶을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오늘날과는 다른 기술과 도시를 바라보는 동안, 문득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그 순간 『루미너스』는 가장 먼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삶에 닿은 것이다. 바로 지금, 당신에게.<br/><br/>어떤 이야기는 미래를 상상하면서도 현재를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SF를 통해 인간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사람, 가족과 상실의 시간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루미너스』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작품이 될 것이다. 미스터리의 긴장감과 거대한 세계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응시하게 된다. 기억과 사랑, 존재의 동일성 같은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독자에게도, 영상처럼 선명한 장면과 감정을 오래 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에게도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가장 먼 미래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드문 SF 소설이다. 미래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새 오늘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br/><br/>✏️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35/47/cover150/k4021396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354762</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카르마 - [칼날을 벤 물결 - 카르마, 고통의 대물림을 멈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7458</link><pubDate>Thu, 23 Jul 2026 13: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74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139491&TPaperId=174074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4/40/coveroff/k92213949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139491&TPaperId=174074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칼날을 벤 물결 - 카르마, 고통의 대물림을 멈추다</a><br/>유영식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06월<br/></td></tr></table><br/>사람은 과거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과거를 해석하며 살아간다. 같은 사건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경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벗어나지 못하는 상처가 된다. 사건은 한순간에 지나가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후의 선택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며 삶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는 저마다의 궤적이 생긴다. 『칼날을 벤 물결』은 그 해석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따라간다. 삶을 뒤흔드는 것은 비극 그 자체보다, 비극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가에 있다.<br/><br/>소설은 가족 안에서 대물림된 상실과 원망을 겪으며 살아온 도윤의 시간을 따라간다. 이어지는 죽음과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그의 삶을 오래 붙든다. 소설 속에서 고통은 단절된 사건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상처는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를 따라 이동하고, 이해받지 못한 감정은 또 다른 침묵을 낳는다. 삶은 과거의 사건보다 과거를 품는 방식에 더 오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작품이 끝까지 보여주는 것은 사건의 비극성이 아니다. 상처는 왜 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건너가는가. 그리고 그 흐름은 어디에서 멈출 수 있는가. 이야기는 이 질문을 놓지 않는다.<br/><br/>불교에서 말하는 업은 흔히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본래 업은 반복된 마음과 행위가 만들어 내는 결과다. 삶을 움직이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오랫동안 몸에 밴 반응과 선택이다. 그렇기에 업은 숙명이면서도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을 품는다. 같은 마음을 반복하면 같은 삶이 이어지고, 다른 마음을 선택하면 삶의 방향 또한 달라진다. 작품 속 도윤이 수행을 이어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통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이 더 이상 다음 사람의 삶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br/><br/>니체의 영원회귀 역시 반복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철학은 아니다. 지금의 삶을 다시 살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 사유다. 『칼날을 벤 물결』은 그 물음을 삶의 자리로 끌어온다. 다시 살아도 괜찮은 삶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 답은 일상의 태도에 가까이 놓여 있다. 익숙한 원망을 내려놓는 일, 상처를 또 다른 상처로 돌려주지 않는 일, 자신의 삶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살아 보려는 선택. 반복은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만들어진다.<br/><br/>작품의 제목은 마지막에 이르러 하나의 해석을 얻는다. “칼날로는 베어낼 수 없던 것들이, 물결에 닿으며 서서히 깎여 나갔다.”(189쪽) 칼날은 단번에 해결하고 싶은 인간의 조급함을 닮아 있다. 반면 물결은 같은 자리를 끊임없이 지나며 모양을 바꾼다. 사람의 상처도 다르지 않다. 한순간의 결심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고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방식을 조금씩 바꾸는 과정 속에서 다른 형태를 갖게 된다. 작가는 변화를 칼날이 아닌 물결에 맡긴다. 그 선택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은유가 된다.<br/><br/>인간은 자신의 과거를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어떤 모습으로 이어 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삶은 한 번의 결심으로 달라질 수 없다. 같은 방향을 오래 선택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된다. 작은 선택들이 쌓이며 얻어지는 방향성. 『칼날을 벤 물결』은 고통을 없애는 방법을 말하는 소설이 아니다. 고통이 더 이상 삶의 유일한 언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한 사람의 선택은 한 사람의 삶에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물려줄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상처를 멈추게 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이 오래 붙드는 것은 바로 그 가능성이다.<br/><br/>사람의 삶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반복이 있다. 벗어났다고 믿었던 감정이 다시 찾아오고, 오래 지나간 일인데도 같은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는 순간들이다. 『칼날을 벤 물결』은 그 반복을 운명이라는 말로 덮어두지 않는다. 반복되는 삶에 지쳤다고 느끼는 사람, 가족 안에서 이어져 온 상처와 관계를 오래 돌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익숙했던 시간을 다른 각도에서 읽게 한다. 또한 니체의 영원회귀나 불교의 업처럼 삶을 해석하는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 상실을 자극적으로 소비하기보다 천천히 사유하는 문학을 찾는 독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사람은 과거를 선택하지 못한다. 하지만 과거를 이어 가는 방식은 스스로 만들어 간다. 이 소설은 그 사실을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br/><br/>✏️도서출판 미다스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44/40/cover150/k92213949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444010</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경계인의 초상 - [나는 노래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5972</link><pubDate>Wed, 22 Jul 2026 17: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59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298&TPaperId=174059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4/64/coveroff/k1421302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130298&TPaperId=174059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는 노래한다</a><br/>이주혜 지음 / 다람 / 2026년 07월<br/></td></tr></table><br/>대부분의 소설은 누군가의 ‘나’로 시작하지만, 좋은 소설은 그 ‘나’를 한 사람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처음에는 낯선 타인의 목소리였던 문장이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을 흔들고, 이해할 수 없었던 삶이 어느 순간 자신의 언어를 빌려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노래한다』는 그 오래된 문학의 원리를 아이누 신요에서 발견한다. 신의 노래는 모두 ‘나’로 시작한다는 이야기. 그 ‘나’는 신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며, 인간이기도 하다. 노래하는 순간 하나의 목소리는 여러 삶을 품는 자리가 된다. 이 소설에서 노래는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형식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자신의 목소리로 이어 부르는 형식이다.<br/><br/>인간은 무엇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살아갈까. 이주혜는 그 질문을 특별한 사건보다 경계 위에 선 인물들의 감각을 통해 드러낸다.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들, 하나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혈통보다 기억이, 출생보다 시간이 더 많은 것을 결정해버린 사람들. 이들에게 정체성은 태어나는 순간 주어지는 명확한 이름이 아니라, 살아오며 품게 된 기억과 관계가 오래 축적되어 이루어진 서사다. “어떤 언어도 제 것이 아니고 어떤 언어라도 제 것인 것 같은”(169쪽) 감각은 특정 인물의 고백이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경계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을 이루는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보다 무엇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는가에 있다.<br/><br/>『나는 노래한다』에는 누군가를 완전히 구원하는 인물이 없다. 대신 마지막까지 한 사람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시선이 있다. 서로를 스쳐 지나간 인물들은 상대의 운명을 대신 살아주지 못하지만, 그의 삶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는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목격자’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보내오는 짧은 편지는 그래서 단순한 후일담이 아니다. 그것은 결말을 알려주는 문장이 아닌, 한 사람의 삶이 끝내 익명으로 흩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문장이다. 인간은 타인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삶은 너무 쉽게 세상 밖으로 밀려난다. 이 소설은 구원보다 먼저, 누군가의 삶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일이 왜 윤리인지를 되묻는다.<br/><br/>그래서 이 작품의 다정은 쉽게 낭만과 감동을 약속하지 않는다. 선의는 실패할 수 있고, 진심은 오해를 낳기도 한다. 타인의 삶은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책임질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다. 결과를 장담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소설에서 다정은 상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는 절제로 작용한다. 누군가의 파도를 대신 건널 수는 없어도, 서로가 지나온 바다를 잊지 않는 마음. 서로의 파도를 계속해서 목격하는 일. 이주혜는 다정을 감정이 아닌 타인을 대하는 태도로 보여준다.<br/><br/>그래서 『나는 노래한다』에서 노래는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 안에서 다시 시작되는 방식이며, 서로의 시간을 이어받는 약속이다. 아이누 신요에서 모든 노래가 ‘나’로 시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나’는 혼자만의 목소리를 넘어, 수많은 삶을 통과하며 계속 이어지는 자리다. 그렇게 노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고, 타인의 삶을 기꺼이 자기 목소리로 이어 부르는 일이 된다. 우리는 혼자 살아온 시간으로만 완성될 수 없다.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다시 불러주고, 자신의 삶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오래된 소망을 품은 소설.<br/><br/>✏️도서출판 다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4/64/cover150/k1421302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46420</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때는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 [두 도시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4014</link><pubDate>Tue, 21 Jul 2026 16: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40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9216&TPaperId=174040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69/47/coveroff/k0321392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9216&TPaperId=174040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 도시 이야기</a><br/>찰스 디킨스 지음, 리처드 맥스웰 해설,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 / 2026년 05월<br/></td></tr></table><br/>『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혁명을 다룬 역사소설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작품은 런던과 파리라는 두 도시를 오가며 혁명의 격변을 치밀하게 그려 낸다. 그러나 이야기가 오래도록 살아남는 이유는 혁명의 장면보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디킨스에게 혁명은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마련된 거대한 무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시대를 기록한 소설을 넘어, 극한의 시대 앞에서 인간성이 어디까지 무너지고 또 어디까지 회복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 소설이다.<br/><br/>혁명은 언제나 정의를 약속한다. 오랫동안 억눌린 사람들은 자유를 외치고 특권은 무너진다. 『두 도시 이야기』 역시 그러한 역사적 필연을 부정하지 않는다. 귀족 사회가 만들어 낸 폭력과 불평등은 혁명을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이끌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러나 디킨스의 시선은 그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작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의가 실현되는 순간조차 인간 안의 증오가 얼마나 쉽게 복수로 변하는지를 바라본다. 혁명이 시작될 때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두대는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증오를 끝없이 재생산하는 기계가 된다. 피해자는 새로운 가해자가 되고, 억압받던 사람들은 또 다른 억압을 만들어 낸다. 폭력은 주인을 바꿀 뿐 사라지지 않는다.<br/><br/>이러한 시선 때문에 디킨스는 어느 한쪽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다. 귀족도, 혁명가도 절대적인 선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작품은 선악의 단순한 대립보다 훨씬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정의는 복수와 어떻게 다른가.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순간, 혁명은 과연 무엇을 완성하는가. 디킨스가 바라본 비극은 혁명이 실패했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이 증오를 정의라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 혁명은 스스로의 이상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이 소설의 가장 무서운 장면은 단두대가 아니라 타인의 죽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제도가 아닌 인간의 마음이 무너질 때 혁명은 자신의 이상을 잃는다.<br/><br/>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시드니 카턴이라는 인물에게 이어진다. 흔히 그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선택을 ‘희생’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는 순간, 카턴이라는 인물이 걸어간 긴 여정은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그가 평생 견뎌야 했던 것은 삶의 불행보다도,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을 낭비하고, 누구보다 예리하게 세상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삶만큼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는 살아 있었지만 자기 삶을 살아낸 적은 없었다. 그가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실패가 아닌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는 공허’로 보인다.<br/><br/>루시를 만난 뒤 그의 삶에 찾아온 변화 역시 사랑의 성취와는 거리가 멀다. 루시는 카턴에게 얻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은 스스로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존재다.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려는 감정으로 머물지 않고, 이전의 자신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사건으로 번져 간다. 카턴이 품었던 것은 결국 루시라는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발견한 더 나은 자신이었다.<br/><br/>그래서 그의 마지막 선택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숭고한 희생이라기보다, 평생 미루어 두었던 삶을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이는 순간으로 읽힌다. 그는 타인의 운명을 대신 짊어지는 데 머물지 않고, 처음으로 삶의 방향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다. 평생 우연에 떠밀려 살아온 인간이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 결단은 죽음을 향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삶에서 가장 자유로운 순간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동안 그는 수없이 많은 날을 흘려보냈지만, 마지막 단 한 번의 선택만큼은 누구의 기대도, 누구의 시선도 아닌 자신의 신념으로 이루어진다. 존재는 그저 오래 살아남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한 가치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맡길 때 비로소 하나의 인간으로 설 수 있다.<br/><br/>카턴의 마지막 결정이 특별한 이유는 죽음 때문이 아니다. 작품은 육체의 생존보다 삶이 획득한 의미를 더 중요하게 바라본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 낸다. 디킨스가 말하는 부활 역시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아니다. 삶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게 되는 순간, 그곳에서 새로운 삶은 시작된다. 부활은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자기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br/><br/>이 때문에 『두 도시 이야기』에서 사랑은 감정의 언어를 넘어선다. 작품 속 사랑은 타인의 삶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경험이다. 사랑은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죽음을 막지도 못한다. 대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이야말로 디킨스가 말하는 부활이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듯 살아가던 사람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br/><br/>디킨스는 역사를 인간보다 앞세우지 않았다. 『두 도시 이야기』의 무게중심 역시 혁명 자체보다 그 격랑 속에서 변화하는 한 인간에게 놓여 있다. 정의와 복수 사이의 경계를 끝까지 응시하며,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인간을 어디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역사는 이 작품에서 가장 거대한 배경이지만,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아니다. 역사는 시대를 뒤흔들고 사회의 질서를 바꾸지만, 한 인간의 삶은 스스로의 의지로 방향을 정해 간다. 혁명은 시대를 바꾸었고, 시드니 카턴은 자기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디킨스는 그 두 변화 가운데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은 후자라고 믿었던 작가다. 『두 도시 이야기』는 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는 순간을 끝까지 믿어 준 소설이다.<br/><br/>혁명의 기록 위에 한 인간의 부활을 새겨 넣은 걸작. 『두 도시 이야기』는 거대한 역사를 통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그래서 혁명과 전쟁 같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인간을 끝내 놓치지 않는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정의와 복수의 경계가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오래 바라보고 싶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디킨스가 오래 보여 주는 것은 혁명의 승패보다, 그 격랑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드니 카턴처럼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인물에게 자꾸 시선이 머무는 사람, 사랑을 누군가를 소유하는 감정이 아니라 한 인간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힘으로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욱 오래 곁에 두게 될 작품이다. 시대는 혁명을 기억하지만, 독자는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게 된다. 역사는 거대한 사건으로 남고, 한 인간의 선택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살아 있다.<br/><br/>✏️펭귄클래식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69/47/cover150/k0321392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694793</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오래 사랑해 온 것 - [난생처음 번역 - 마감에 쫓기고 문장에 울지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1975</link><pubDate>Mon, 20 Jul 2026 14: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197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0298&TPaperId=1740197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5/9/coveroff/k7221302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0298&TPaperId=1740197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난생처음 번역 - 마감에 쫓기고 문장에 울지만</a><br/>이소담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6년 07월<br/></td></tr></table><br/>인간은 자신이 오래 머문 곳을 닮아 간다. 오래 바라본 풍경은 시선이 되고, 오래 품은 문장은 사고방식이 되며, 오래 사랑한 대상은 마침내 한 사람의 삶을 빚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묻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오래 좋아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애정은 순간의 감정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견딘 애정은 삶의 방향이 된다. 『난생처음 번역』은 번역가라는 직업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인 동시에, 오래 좋아한 마음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br/><br/>이소담 작가는 처음부터 번역을 직업으로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 문화를 좋아했고, 이야기를 좋아했고, 그 세계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덕질은 공부가 되었고, 공부는 반복이 되었으며, 반복은 어느새 생업으로 이어졌다. 특별한 계기보다 오래 지속된 애정이 한 사람의 이력을 완성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인상 깊다. 세상은 결과를 보며 재능을 말하지만, 삶은 대부분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시간 위에서 천천히 형태를 갖춘다. 재능은 가능성을 열어 주지만, 애정은 그 가능성을 끝까지 살아남게 한다. 좋아한다는 것은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는 일이다. 그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래 머문 자리만큼 사람을 닮게 만든다.<br/><br/>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반복하는 행위가 결국 그 사람의 성품을 만든다고 보았다. 덕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닌 습관을 통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소담 작가의 여정은 이 오래된 통찰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 그에게 번역이란 하루아침에 얻은 초능력이 아니라 수없이 읽고, 찾아보고, 고쳐 쓰기를 반복한 시간이 만든 결과였다. 전문성은 오랫동안 한 세계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반복은 단순히 능숙함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미해질 것 같지만, 어떤 애정은 오히려 반복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반복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한 사람만의 기준을 만든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다듬어진 기준은 결국 그 사람의 세계가 된다.<br/><br/>번역이라는 작업은 흥미롭다. 좋은 문장은 가장 많은 가능성을 품은 문장이 아니라, 가장 많은 가능성을 기꺼이 포기한 문장이다. 번역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단 하나를 남기는 작업이다. 더하는 기술보다 덜어 내는 감각을 요구하는 것. 이 표현도 가능하고, 저 표현도 가능하지만, 그 가운데 단 하나만을 남겨야 한다. 좋은 번역은 더 많은 말을 아는 사람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만든다. 이것은 우리의 삶과도 비슷하다. 삶 역시 선택보다 포기의 총합에 의해 모양을 갖춘다. 모든 가능성을 붙잡은 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길을 놓아주어야 하고, 어떤 가치에 마음을 주는 순간 다른 욕심은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결국 한 사람의 삶도 수많은 가능성을 덜어 낸 끝에 완성되는 하나의 문장이다.<br/><br/>번역가라는 직업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번역가는 자신의 문장을 뽐내기 위해 글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최대한 감춘 채 원작의 목소리가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좋은 번역일수록 번역가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보다 다른 이의 문장이 온전히 살아 숨 쉬도록 자리를 내어 주는 까닭이다. 세상은 자신을 드러내는 능력을 성공의 조건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책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자신의 목소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 빛을 독차지하기보다 빛이 지나갈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에게 느껴지는 깊은 품격.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에게서만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br/><br/>그래서 『난생처음 번역』은 번역에 관한 책을 넘어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책으로 기억된다. 누군가는 취미라고 불렀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일이 되었고, 가볍게 시작한 애정은 결국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이소담 작가의 작업은 살아가며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보다 무엇을 오래 사랑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묻게 한다. 삶은 쉽게 놓지 못한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오래 사랑한 세계는 결국 그 사람의 언어가, 태도가, 삶의 모양이 된다. 인간은 자신이 오래 사랑한 것들로 이루어진 존재다. 그러니 자신이 오래 사랑해 온 것들을 떠올려 보라. 그것은 어느새 당신을 이루는 한 편의 문장이 되어 있다.<br/><br/>좋아하는 마음은 좀처럼 소리 내어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물며 사람을 조금씩 바꾸고, 어느 날 문득 삶의 방향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보다 오래 사랑할 대상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건네고 싶다. 어떤 애정은 결과보다 먼저 한 사람을 성장시킨다. 그 시간은 눈에 띄지 않아도 결코 헛되이 흘러가지 않는다. 취미와 일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줄 알았던 사람, 좋아하는 마음이 과연 삶을 지탱할 수 있을지 망설여 본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오래된 확신 하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번역이나 글쓰기처럼 결과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더 많이 쌓아 올리는 일을 하는 사람, 재능보다 꾸준함을 더 믿어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한다. 오래 품은 애정은 언젠가 재능을 앞질러 한 사람만의 언어가 된다. 『난생처음 번역』은 그 조용한 시간을 끝까지 믿어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br/><br/>✏️도서출판 티라미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65/9/cover150/k7221302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650904</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오늘의 SF - [존재의 대연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0105</link><pubDate>Sun, 19 Jul 2026 16: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4001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130190&TPaperId=174001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6/79/coveroff/k6721301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130190&TPaperId=174001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존재의 대연쇄</a><br/>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06월<br/></td></tr></table><br/>현재가 스스로를 낯설게 바라보는 방식은 때로 미래라는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단요의 『존재의 대연쇄』는 바로 그 낯섦을 통해 세계의 질서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소설집이다. 로마 황제와 연결되는 오래된 유선전화기, 온도를 읽는 사람들, 전류를 따라 이어지는 의식, 성경을 하나의 프로그래밍 언어처럼 다루는 세계. 여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상상력을 품고 흩어져 있지만, 그 끝마다 닿아 있는 곳은 하나다. 어떤 존재도 홀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진실이다.<br/> 소설집의 제목인 ‘존재의 대연쇄(Great Chain of Being)’는 중세 형이상학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신과 천사, 인간과 동물, 식물과 광물까지 우주의 모든 존재가 하나의 질서 안에서 이어져 있다는 오래된 세계관. 단요는 이 오래된 사유를 현대의 언어로 다시 번역한다. 그 연쇄에는 신과 인간만이 아니라 데이터와 전류, 코드와 신화, 역사와 기술까지 함께 놓인다. 그 순간 인간은 세계의 중심에서 내려와 수많은 존재 가운데 하나가 된다. 특별함을 잃어서가 아니다. 인간 역시 다른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통과하며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얻는다. 오래된 철학은 미래를 배경으로 삼아 새롭게 호흡하기 시작하고,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위계에서 연결로 옮겨간다.<br/><br/>그렇기에 이 소설집이 이야기하는 존재는 홀로 완성되는 실체가 아니다. 다른 존재를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새롭게 생성되는 과정이다. 하나의 생명은 기술과 맞닿으며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고, 오래전 신화는 현재의 시간과 겹쳐지며 또 다른 의미를 얻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인간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는 순간 이전에는 없던 세계가 탄생한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처음부터 하나의 모습으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각으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다른 질서를 드러낸다. 인간이라는 이름 또한 그 관계망 밖에서 정의될 수 없다.<br/><br/>이 책을 읽는 경험 역시 이러한 구조를 닮아 있다. 초반에는 로마사와 종교, 컴퓨터공학과 과학기술이 한꺼번에 등장하며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각각의 설정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걸음을 늦추게 되지만,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의 구조를 이루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독서의 감각도 달라진다. 이야기 하나를 이해하는 기쁨보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는 감각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단요의 서사는 목적지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여러 갈래의 길을 천천히 돌아가며 독자의 시야를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이끈다. 이해는 읽는 과정에서 조금씩 자라난다. <br/><br/>이러한 독서 경험은 자연스레 해석하는 즐거움으로 이어진다. 작품은 현실과 상상, 과학과 신화 사이에 넓은 여백을 남겨 둔다. 그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독자가 자신의 사유를 채워 넣을 자리이며, 서로 다른 독서가 서로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다. 그 흐름을 따라가는 동안 독자는 이야기를 소비하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구조를 함께 완성하는 사람이 된다. 서사를 따라가는 일은 하나의 철학을 체험하는 일과도 맞닿아 있다.<br/><br/>『존재의 대연쇄』가 보여주는 세계에서는 어느 하나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신과 인간, 생명과 기계, 현실과 상상은 서로를 밀어 올리고 스며들며 하나의 거대한 연쇄를 이룬다. 그 안에서 인간 역시 독립된 실체가 아닌 수많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쓰여 가는 존재가 된다. 단요는 오래된 형이상학을 미래의 상상력으로 치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온 존재의 정의를 다시 움직인다. 세계를 이루는 것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닌 서로를 이어 주는 관계이며, 인간 역시 그 연결 안에서 자신의 의미를 얻는다. 오래된 철학이 오늘의 SF와 만나는 순간,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이전과는 다른 높이에 닿는다. 그곳에서 바라본 세계는 조금 더 넓어지고, 인간이라는 이름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풍성한 의미를 품게 된다.<br/><br/>세상은 때때로 설명보다 상상으로 더 깊이 이해된다. 『존재의 대연쇄』는 그 낯선 상상 속에서 오래된 철학을 다시 숨 쉬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SF를 단순히 미래를 그리는 장르가 아닌 존재를 사유하는 문학으로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 인간과 기술, 현실과 신화가 서로를 비추는 풍경을 오래 바라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하나의 세계를 읽는다는 일이 곧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배우는 일이라 믿는 독자라면 더욱 반가운 만남이 될 것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하나의 세계를 스스로 조립해 가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흩어진 이야기들이 하나의 질서로 이어지는 순간의 전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남겨 둔 여백 위에 자신의 해석을 덧입히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은 한 권의 이야기를 넘어 끝없이 확장되는 사유의 공간으로 오래 함께할 것이다. 좋은 SF는 미래를 보여주는 문학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만드는 문학이다. 이 책이, 그리고 단요가 그렇다.<br/><br/>✏️도서출판 사계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56/79/cover150/k6721301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567936</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잠시 멈춰야만 - [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8679</link><pubDate>Sat, 18 Jul 2026 17: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86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0009&TPaperId=173986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0/43/coveroff/k7221300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0009&TPaperId=173986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a><br/>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07월<br/></td></tr></table><br/>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한다. 저 사람처럼 혹은 저 사람과 가까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그 동경이 오래될수록 이상한 일이 생긴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삶을 더 열심히 바라보게 되고, 그의 성공에 웃고 그의 실패에 무너진다. 마음의 중심이 조금씩 옮겨가는 동안, 정작 자신의 삶은 배경이 되어 버린다. 『파우사』는 복수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실은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내어주게 되는지를 들여다본다. <br/><br/>사람은 결핍이 깊어질수록 우상을 세운다. 완전한 존재를 만나서가 아니다. 혼자 감당하기 벅찬 삶을 잠시 기대어 둘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한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그 사람이 살아내는 삶을 선망할 때가 많다. 그 안에 미래를 겹쳐 보고, 이루지 못한 가능성을 슬그머니 맡겨 둔다. 그래서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은 단순한 호감을 넘어선다. 그의 승리가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지고, 그의 빛으로 자신의 그늘까지 덮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 일은 오래 걸린다. 이미 빛을 얻은 사람 곁에서 미래를 빌려오는 편이 훨씬 쉽다. 우상이란 동경의 이름을 빌린 안식처다. 사람은 그곳에 잠시 불안을 내려놓고, 아직 도착하지 못한 미래를 미리 살아본다. 작품 속 명관 역시 그런 마음으로 한 사람을 바라본다. 삶이 흔들릴수록 사람은 자신보다 단단해 보이는 존재를 찾는다. 그 곁에 서 있기만 해도 자신의 삶까지 조금은 단단해질 것이라 믿으면서.<br/><br/>그러나 우상은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지는 만큼, 무너질 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배신은 신뢰 하나를 잃는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쌓아 올린 시간과 믿음, 그리고 그 안에서 그려왔던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허물어진다. 우상이 무너질 때 사라지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에게 기대어 세워 두었던 자기 자신도 함께다. 사랑과 증오는 서로 등을 돌린 감정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마음을 내어준 만큼 상처도 깊어진다. 복수는 상대를 겨누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기도 하다. 상대를 향한 칼끝에는 무너져 버린 자신의 삶도 함께 걸려 있다. 그래서 오래 미워할수록 삶의 중심에는 여전히 그 사람이 머문다.<br/><br/>작품 속 ‘NPC’라는 표현은 현대인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처럼 읽힌다. 게임 속 NPC는 스스로의 목적 없이 주인공의 이야기를 채워 주는 존재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가족의 삶을, 누군가는 조직의 성공을, 또 누군가는 동경하는 이의 꿈을 마치 제 목표인 듯 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선택한다고 믿지만, 하루의 기쁨과 슬픔이 늘 다른 사람을 따라 움직인다면 삶의 중심은 이미 그곳으로 기울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삶은 타인의 이야기 속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간다. 처음에는 동경이었지만, 어느새 기쁨과 슬픔마저 남의 삶을 따라 움직인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위대한 성공을 이루는 일이 아니다. 하루의 기쁨과 슬픔을 다시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일, 그 작은 회복이 한 사람을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만든다.<br/><br/>우리 모두에게도 ‘파우사’는 필요하다. 우상을 좇는 사람은 좀처럼 멈추지 못한다. 달리는 방향이 자신의 의지인지, 타인의 욕망이 스며든 길인지 돌아볼 틈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제목인 ‘파우사(PAUSA)’는 축구에서 잠시 공을 멈춰 상대를 끌어들이는 기술을 뜻한다. 이 한 단어는 경기장을 벗어나 삶의 태도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멈춘다는 것은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다시 살피는 일이다. 누군가를 동경하는 이유를 돌아보고, 미움의 끝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며, 타인의 그림자를 좇느라 자신의 얼굴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천천히 확인하는 시간이다. 삶은 때때로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보다 멈춰 서는 용기에서 새로운 방향을 얻는다. 잠시 멈춰야만 삶이 향하던 방향도 또렷해진다.<br/><br/>『파우사』가 오래 이야기하는 것은 복수의 성패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던 한 인간이 다시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려는 여정이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를 통해서도, 미워하는 이를 통해서도 삶의 중심을 내어줄 수 있다. 그 중심을 타인에게 맡긴 동안에는 어떤 감정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삶은 자신의 이름으로만 완성된다. 누구도 대신 살아 줄 수 없고, 누구의 빛도 자신의 시간이 되어 주지는 않는다. 자기 삶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기쁨과 슬픔을 다시 자기 손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파우사』가 말하는 멈춤은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br/><br/>누군가를 바라보다 문득 자기 자신을 잃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더욱 깊게 읽힐 것이다. 동경은 누군가를 향하는 감정이지만, 그 끝에서 시험받는 것은 언제나 자기 삶이다. 오래 품었던 동경이 어느새 삶의 중심을 대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 타인의 성공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으려 했던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드라마를 오래 연출해 온 작가답게 장면의 호흡과 인물 사이의 긴장은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야기를 읽는다는 감각보다 한 편의 작품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듯한 몰입이 이어진다. 복수보다 자기 삶을 되찾는 이야기에 더 오래 시선을 머무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다. 이야기의 끝에서 타인의 삶이 아닌 자신의 것을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은 흔치 않다. 『파우사』는 그런 작품이다.<br/> <br/>✏️도서출판 쌤앤파커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60/43/cover150/k7221300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604362</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삶은 판결문보다 길고, 이념보다 복잡하며, 기록보다 깊다 - [비밀구락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7225</link><pubDate>Fri, 17 Jul 2026 19: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72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9283&TPaperId=17397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91/coveroff/89356792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9283&TPaperId=173972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밀구락부</a><br/>이화경 지음 / 한길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우리는 사람을 이름으로 기억한다. 이름은 한 사람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표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한 사람의 삶은 이름 하나로 설명될 수 있을까.<br/><br/>천아지였던 소녀는 엘렌이 되고, 애란이 되고, 신여성이 되고, 통역사가 되고, 누군가의 연인이 되고, 누군가의 정부가 되고, 스파이가 되고, 배신자가 된다. 시대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그 어떤 이름도 그녀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모든 이름으로 살아냈고, 동시에 그 어느 이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다. 한 인간의 삶은 하나의 호칭이 아니라 수없이 겹쳐진 시간과 선택, 상처와 희망이 만들어낸 서사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애란이라는 존재를 통해 증명해 보인다.<br/><br/>그녀가 가장 바라고 있었던 것은 그저 살아남는 일이었다.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 하나였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내리는 선택은 언제나 누군가의 손쉬운 판단을 불러왔다. 시대는 생존의 흔적을 신념으로 오해했고, 신념을 배신으로 기록했으며, 사람을 하나의 낙인으로 정리하려 했다. 애란 역시 수많은 선택 끝에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세상은 그녀의 사정을 읽기보다 이름표를 붙이는 데 익숙하다. 인간은 타인의 삶을 한 단어로 정리하려 하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한 문장이 될 수 없다. 삶은 하나의 선택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견뎌낸 시간까지 함께 바라볼 때 비로소 이해의 문이 열린다.<br/><br/>애란은 이름보다 자유를 갈망했던 사람이다. 돈을 벌려 했던 것도, 언어를 배우려 했던 것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디려 했던 것도 결국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Go Forward.”라는 짧은 문장은 단순한 좌우명을 넘어 그녀의 생애 전체를 떠받치는 의지다. 민며느리였던 소녀는 지식을 향해 걸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얼굴을 수없이 갈아입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발걸음은 영광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향한 가장 처절한 몸부림이다.<br/><br/>소설 속 인물들은 누구도 쉽게 미워할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시대 안에서 살아남으려 애쓴 사람들이었다. 시점이 바뀔 때마다 선과 악의 자리는 끊임없이 뒤섞이고, 독자가 내렸던 판단은 여러 번 수정된다. 누군가에게는 변절자였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지막까지 신의를 지킨 사람이 되고, 악인으로 보였던 사람의 독백에서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슬픔이 흘러나온다. 인간은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해와 오해는 서로 등을 맞댄 채 존재하며,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간과 시선을 함께 품어야 한다. 이해는 누군가를 쉽게 재단하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기에.<br/><br/>그렇다면 우리는 왜 오래전 끝난 역사를 다시 소설로 읽는 것일까. 역사책은 사건을 알려주지만, 소설은 그 시대의 공기를 살게 만든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분단과 전쟁이 이어지던 1926년부터 1955년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며, 제대로 알지 못했던 시대 앞에서 여러 번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살아가야 했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접어야 했는가. 얼마나 많은 삶이 역사의 거대한 문장 속에서 지워졌는가. 문학은 이 질문에 대해 숫자가 아닌 얼굴로 대답한다. 몰랐던 시간을 알게 하고, 보지 못했던 삶을 마주하게 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문학이 가진 가장 깊은 역할. 문학이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유.<br/><br/>『비밀구락부』에는 승자가 없다. 살아남은 사람도, 신념을 지킨 사람도, 사랑을 선택한 사람도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품은 채 시대를 통과한다. 애란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수없이 바꾸어야 했지만, 그 변화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였다. 버려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고, 이름을 잃을 때마다 또 다른 이름으로 삶을 이어간 애란. 어느 이름에서도 편안히 머물 수 없었던 그녀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은 이념도 사랑도 아니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기 삶이었다. 현욱 역시 시대를 바꾸겠다는 신념을 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논리만으로는 건널 수 없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두 사람 모두 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었다는 바람만은 닮아 있다. 역사는 승자와 패자의 기록으로 남지만, 인간의 삶은 언제나 그보다 훨씬 복잡한 마음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과 우정, 신념과 배신은 시대 앞에서 너무도 쉽게 뒤바뀌고, 그 선택은 누구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채로 한 사람의 생애가 된다. <br/><br/>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이름을 얻는다. 그러나 삶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이름이 아닌 그 이름 아래에서 견뎌낸 시간들이다. 시대는 한 사람을 몇 개의 단어로 정리하려 하고, 권력은 저마다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단하려 한다. 누군가는 배신자로 남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렇게 붙여진 이름들은 한 인간의 생애를 설명하기에는 언제나 부족하다. 삶은 판결문보다 길고, 이념보다 복잡하며, 기록보다 깊다. 『비밀구락부』는 잊힌 시대를 복원한 소설인 동시에, 한 사람의 삶을 함부로 대신 써 내려가는 모든 시선에 저항하는 작품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것은 비밀도, 첩보도, 이념도 아니다. 누구도 타인의 삶을 하나의 문장으로 끝맺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살아내려 했던 사람들의 침묵이다. <br/><br/>역사는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낸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과거가 되지 않는다. 이화경은 그 격동기를 거대한 사건 속에서 숨 쉬는 인간군상의 얼굴로 복원해 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한 시대를 이해하는 일을 넘어,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선을 필요로 하는지 보여준다. 누군가의 삶은 기록될 수는 있어도, 결코 한 줄로 요약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깊이 들여다보는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살아남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고민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오래 곁에 두게 될 이야기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문학을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도 건네고 싶은 소설이다. <br/><br/>✏️도서출판 한길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91/cover150/89356792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59104</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되풀이 속에서 익숙함은 걷혀가고 -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5408</link><pubDate>Thu, 16 Jul 2026 16: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540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0493&TPaperId=173954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1/coveroff/k8321304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0493&TPaperId=1739540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a><br/>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06월<br/></td></tr></table><br/>시간은 가장 익숙한 것이면서도 가장 늦게 의심하게 된다. 내일이 오늘의 뒤를 잇고, 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시간은 삶의 가장 단단한 질서이니까.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1』은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대신, 단 한 사람만 그 밖으로 밀어낸다. 세상은 여전히 11월 18일을 살아가지만, 타라 셀테르의 기억만은 하루씩 앞으로 나아간다. 시간은 멈췄지만 기억은 멈추지 않는다. 작품이 끝없이 바라보는 것은 바로 그 낯선 비대칭이다.<br/><br/>이 작품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시간이 아닌 기억이다. 타라는 같은 하루를 수백 번 살아간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사람과 같은 대화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녀 안에는 반복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기억이다. 하루는 언제나 처음으로 돌아가지만, 기억은 단 한 번도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삶은 흘러간 시간보다, 잊히지 않고 쌓여온 경험의 두께에 의해 조금씩 다른 모양을 갖게 된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타라는 반복되는 11월 18일에 남편 토마스를 다시 만난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타라는 수백 일을 살아낸 사람이고, 토마스는 언제나 첫날을 살아가는 사람인 까닭이다. 둘 사이에는 함께 쌓아 올린 기억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거대한 간극으로 놓인다. 함께한 시간이 관계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 관계를 만드는 것일까. 나눈 대화가 한 사람에게만 남아 있다면, 그 대화는 정말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br/><br/>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서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이 소설은 그 믿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직접 겪지 않은 경험은 온전히 건너갈 수 없다. 토마스는 타라를 믿는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가 살아낸 시간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믿음과 이해는 같은 자리에 놓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상상할 수는 있어도, 타인의 시간을 대신 살아낼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타인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며,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거리는 더욱 선명해진다.<br/><br/>작품은 되풀이되는 하루를 지루함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복되는 하루는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을 세계를 끝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같은 비가 내리고, 같은 새가 울고, 같은 빵 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평범하다고 여겼던 풍경은 수백 번 같은 하루를 지나며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익숙함은 많은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그 되풀이 속에서 익숙함은 걷혀가고,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준다.<br/><br/>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낯선 사건은 시간이 멈춘 일이 아니다. 함께한 시간이 한 사람에게만 남는다는 사실이다. 타라는 같은 하루를 살아가지만 결코 같은 사람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기억이 그녀를 조금씩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녀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누구와도 온전히 나눌 수 없는 시간이 되어간다. 인간은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라기보다, 자신 안에 축적된 기억의 밀도만큼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라는 제목은 어쩌면 그렇게 저마다 다른 두께로 쌓여가는 삶의 부피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br/><br/>✏️도서출판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1/cover150/k8321304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28137</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재난은 훨씬 작은 얼굴을 하고 - [컬러 크라이시스 - 색과 재난에 관한 다섯 편의 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3538</link><pubDate>Wed, 15 Jul 2026 1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35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275&TPaperId=173935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76/coveroff/k2421302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275&TPaperId=173935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컬러 크라이시스 - 색과 재난에 관한 다섯 편의 소설</a><br/>공현진 외 지음 / 상상 / 2026년 06월<br/></td></tr></table><br/>‘재난’을 떠올려보자. 대개 거대한 풍경이 먼저 머리를 스친다. 도시를 집어삼키는 화재와 홍수, 땅을 뒤흔드는 지진, 뉴스 속 속보 자막처럼 삶을 단숨에 갈라놓는 사건들. 그러나 삶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재난은 훨씬 작은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관계를 무너뜨리고, 이해받지 못한 기억 하나가 오랜 시간을 붙들며, 상실은 아무 일 없던 하루의 색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이 앤솔러지는 그 작고 사적인 흔들림을 재난이라 부른다. 재난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비극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서 한 번쯤 마주하는 흔들림이 곧 재난이라는 사실을 이 앤솔러지는 다섯 가지의 색으로 펼쳐 보인다.<br/><br/>작품마다 재난의 모습은 서로 다르다. 전쟁에서 돌아왔지만 전쟁 밖으로는 돌아오지 못한 사람, 꿈을 품은 채 생계를 버텨야 하는 사람, 말하지 못한 죽음의 이야기를 대신 기록하는 사람, 기후 재난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 평범함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을 잃고도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 하나같이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자신의 재난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맞서는 대상은 재난 그 자체보다도, 재난 이후에도 계속 흘러가는 시간이다. 무너지는 순간보다 무너진 뒤를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이다.<br/><br/>공현진의 「오렌지나 망고」에서 화자는 전쟁 후유증 속에 갇혀 살아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그의 삶을 가엾게 여길 수는 있어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다섯 작품을 하나로 엮는 문장처럼 읽힌다. 우리는 이해를 관계의 도착점처럼 여길 때가 많다. 상대를 이해해야 비로소 화해할 수 있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관계는 실패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타인의 삶은 언제나 자신의 경험 바깥에 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이 전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은 사람이 상실의 무게를 대신 짊어질 수도 없다. 누군가의 절망은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끝내 닿지 않는 영역을 품고 있다. 삶은 설명되는 순간보다 설명에서 흘러넘치는 순간이 훨씬 많다. 타인을 이해했다는 확신은 때로 그 사람을 자신의 기준 안으로 가두는 일이 되기도 한다. 이해란 쉽게 결론 내리지 않으려는 태도에 더 가깝다. 『컬러 크라이시스』가 보여주는 관계 역시 이해의 성공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기. 그 조심스러운 머무름은 서로를 하나의 존재로 남겨 두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작품집이 품고 있는 힘은 이해의 결과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음을 견디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피어난다. 작품 속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곁을 지킨다. 말을 건네고, 기록하고, 기다리고, 함께 머문다. 누구도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상처를 없애 줄 수도 없다. 그럼에도 곁에 머무는 일은 가능하다. 이해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이어진 관계가 조금씩 이해를 닮아 가는 것임을 이들은 자신의 삶으로 보여 준다.<br/><br/>소설 속에서는 반복해서 대피할 자리가 등장한다. 지진을 대비해 마련한 공간처럼 삶에도 저마다의 피난처가 필요하다. 인간은 재난을 막을 수 없다. 대신 잠시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은 어떤 때에는 식탁 아래가 되고, 어떤 때에는 한 권의 소설이 되며, 함께 가꾸는 텃밭이 되거나, 누군가와 나란히 걷는 길이 되기도 한다. 재난이 삶에서 사라지는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삶은 흔들림을 지운 뒤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을 품은 채 계속된다. 그래서 우리는 재난을 피하는 법보다 그 안에서 머무는 법을 먼저 배운다. 서로에게 잠시 기댈 자리를 내어 주는 일, 어쩌면 그것이 삶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대피소일 것이다.<br/><br/>제목에 담긴 ‘컬러’는 재난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같은 재난이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빛깔로 기억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언어다. 누군가에게는 붉은 전쟁의 기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벽 직전의 푸른 빛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막 위에 피어난 해바라기의 노란색일 것이다. 재난은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는다. 삶의 수만큼 다른 색을 띠고, 그 색만큼이나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흔든다.<br/><br/>『컬러 크라이시스』는 재난을 견뎌 내는 법을 가르치는 소설집은 아니다. 대신 타인의 삶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이해는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래서 관계는 완성을 향하기보다 지속을 향해 나아간다.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를 구원하지도,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 주지도 못한다. 다만 상대가 홀로 무너지지는 않도록 자신의 자리를 조금 내어 준다. 재난은 그렇게 삶의 한가운데를 오래 지나간다. 그 시간을 함께 지나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삶은 다시 무너지지 않는다. <br/><br/>재난은 언제나 사건의 크기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어떤 것은 오래전 들은 말 한마디로 남고, 어떤 것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던 하루를 조금씩 다른 색으로 물들인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세상을 뒤흔드는 비극보다 사람 안에 오래 머무는 흔들림을 바라본다. 타인을 이해하고 싶지만 그 거리를 좀처럼 좁힐 수 없었던 사람, 상실 이후에도 관계를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 거대한 사건보다 일상의 미세한 감정을 오래 들여다보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깊게 읽힐 작품이다. 성급한 위로나 손쉬운 해답을 내놓기보다, 서로의 삶을 모두 알 수 없어도 같은 시간을 건너는 일은 가능하다고 이 앤솔러지는 이야기한다. 어쩌면 우리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섣불리 재단하지 않은 채 곁을 내어 주는 일인듯 하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색을 품고 있지만, 그 색들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비로소 우리 시대의 재난이 어떤 얼굴이 아니라 어떤 시간으로 살아지는지를 보여 준다.<br/> ✏️도서출판 상상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6/76/cover150/k2421302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67674</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미궁은 신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 [개와 괴물의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1323</link><pubDate>Tue, 14 Jul 2026 15: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913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770&TPaperId=173913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7/30/coveroff/k0421307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770&TPaperId=173913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개와 괴물의 시간</a><br/>마크 해던 지음,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07월<br/></td></tr></table><br/>평온해 보이는 풍경 한가운데를 날카롭게 찢어놓은 표지처럼, 『개와 괴물의 시간』은 익숙한 세계에 작은 금 하나를 낸다. 신화와 디스토피아, 현실과 우화를 오가는 여덟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에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의 시선으로 모인다. 그 시선은 인간이 오래전부터 품어 온 존재, ‘괴물’을 향한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괴물을 낯선 존재로 그려내는 대신,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괴물을 만들어 왔는지를 바라본다.<br/><br/>신화 속 괴물은 인간과 가장 멀리 떨어진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마크 해던은 그 오래된 신화를 다시 펼치며 시선을 바꾼다. 미궁 속에 갇힌 아이는 처음부터 괴물이었는지, 아니면 괴물이라는 이름 아래 평생을 살아야 했기에 괴물이 되어 갔는지 되묻게 만든다. 학교에서는 평범한 아이들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폭력을 일상의 언어로 익혀 간다. 핵전쟁 이후의 폐허에서는 국가가 인간을 숫자처럼 다루고, 저주받은 사냥꾼도, 영원을 견디는 노인도, 황야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도 결국은 같은 곳을 향한다. 타인의 시선은 한 존재를 어떻게 바꾸고, 또 어떻게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가. 괴물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가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 낸 이름처럼 보인다.<br/><br/>르네 지라르는 공동체가 자신의 불안과 폭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희생양의 구조를 이야기했다. 푸코는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며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했다. 『개와 괴물의 시간』은 이 두 사유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규정하는 편을 선택하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상대를 낯선 존재로 밀어낸다. ‘괴물’은 어쩌면 실체라기보다 사회가 만들어 낸 오래된 언어가 아닐까. 인간 바깥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아닌, 이해하기를 포기한 순간 태어나는 하나의 시선.<br/><br/>괴물이 된 존재보다 괴물을 만들어내는 인간들을 바라보자. 누군가를 미궁에 가두고, 누군가를 침묵하게 만들며, 누군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세우는 동안 가장 크게 변하는 것은 ‘괴물’이라 불린 존재가 아니다. 타인을 하나의 얼굴이 아닌 기능과 대상, 위험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인간의 마음이다. 악은 특별한 괴물이 저지르는 행위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타인을 사유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우리와 유달리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어쩌면 평범하다고만 표현할 수 있을 사람들이며, 바로 그렇기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폭력은 더욱 현실의 감각을 닮아 있다. 괴물은 탄생의 문제가 아닌 관계의 문제다. 한 사람을 ‘너’로 부르는 일을 멈추면, 그 자리에 괴물이라는 이름이 들어선다.  인간은 언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가. 인간다움은 눈앞의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드러난다. 상대를 하나의 이름과 삶을 가진 존재로 마주하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인간다움 역시 지켜낸다. 반대로 한 사람의 얼굴이 기능과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 낙인은 너무도 손쉽게 탄생한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그 변화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무감각하게 이루어지는지를 놓치지 않는다. 타인을 괴물이라 부르는 순간, 가장 먼저 허물어지는 것은 상대의 인간성이 아닌 자신의 인간성이다.<br/><br/>이 소설집은 제목부터 ‘개’와 ‘괴물’이라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대비를 품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동물과 인간에게 가장 먼 타자처럼 여겨지는 괴물. 개는 끝까지 ‘너’를 잃지 않는 존재이고, 괴물은 ‘너’를 ‘그것’으로 바꾸는 순간 탄생하는 이름이다. 관계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오래된 약속이며, 그 약속이 끊어진 자리마다 괴물이라는 이름은 반복되어 왔다. 개와 괴물은 서로 정반대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존재들이지만, 결국 두 단어 모두 인간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다. 결국 이 소설집이 응시하는 대상은 개도 괴물도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다.<br/><br/>수천 년 전 신화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은 이유는 신들이 살아 있어서가 아니다. 그 신화 속 인간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권력은 여전히 타인을 구분하고, 공동체는 여전히 희생양을 만들며, 인간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괴물이라 부른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인간이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br/><br/>『개와 괴물의 시간』은 괴물이 누구인지를 밝히려는 소설집이 아니다. 인간은 어떤 순간 타인을 괴물로 호명하고, 그 선택이 다시 자신을 어떤 존재로 바꾸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미궁은 신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이해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마다 인간은 새로운 미궁을 만든다. 그 안에서 어떤 이는 괴물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어떤 이는 자신이 미궁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한다.<br/><br/>괴물은 늘 멀리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어쩌면 오래된 착각일지도 모른다. 『개와 괴물의 시간』은 그 믿음을 뒤집으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변주한 서사와 철학적 소설을 즐기는 독자, 짧은 이야기 안에서 오래 사유할 문장을 발견하는 단편 애호가라면 특히 깊게 빠져들 것이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듯하면서도 하나의 풍경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선과 악을 선명하게 가르기보다, 한 사람이 타인을 낙인찍고 밀어내는 과정을 끝까지 따라가 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괴물을 따라 걷던 발걸음은 어느새 인간이라는 오래된 미궁 한가운데에 닿아 있다. 그 미궁을 지나고 나면, 사람을 함부로 괴물이라 부르던 입술도 조금은 더디게 움직이게 된다.<br/><br/>✏️도서출판 문학수첩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7/30/cover150/k0421307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973018</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삶의 가치는 품위에 있다 - [솔 벨로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89330</link><pubDate>Mon, 13 Jul 2026 14: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8933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0494&TPaperId=1738933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5/coveroff/k03213049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130494&TPaperId=1738933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솔 벨로 2</a><br/>솔 벨로 지음, 김현우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07월<br/></td></tr></table><br/>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을 우리는 너무 쉽게 사용한다. 그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을 알게 되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그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찾으면 이해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삶에는 이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오래전의 굴욕을 평생 놓지 못하는 마음, 사소한 물건 하나를 잃고 자신의 삶 전체가 흔들리는 감각, 이미 지나간 가족사를 저마다 다른 기억으로 붙잡고 살아가는 이들. 인간은 논리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며, 설명되지 않는 감정 역시 삶의 일부를 이룬다. 솔 벨로는 그런 인간을 오래 바라본다.<br/><br/>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어긋나 있다. 「사촌들」에서는 같은 가족사조차 사람마다 다른 기억 속에서 전혀 다른 진실이 되고, 「벨라로사 커넥션」에서는 감사가 오랜 시간을 지나며 한 사람을 움직이는 집념으로 자라난다. 「어떤 도둑질」에서 잃어버린 것은 반지 하나였지만 흔들린 것은 삶을 읽는 감각이었고, 「나를 기억하게 해줄 것들」의 수치는 세월이 흘러도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는다. 「세인트로렌스 강가에서」의 시선은 흘러가는 강보다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인간의 시간을 오래 응시한다. 어느 누구도 완전한 이성을 가진 채 살아가지 않는다. 감정보다 논리가 앞서는 인물은 없으며, 자신의 삶을 한 치의 모순 없이 살아가는 사람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벨로의 관심은 결핍을 폭로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인물들의 모순을 차례차례 펼쳐 보이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다.<br/><br/>그래서 그의 소설은 선과 악을 가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판결하는 데에도 관심이 없다. 인물들은 때로 속물적이고, 자기기만에 빠져 있으며, 타인을 상처 입히기도 한다. 그 모습은 불편할 만큼 적나라하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의 행동보다 먼저 보이는 것은 그 행동을 낳은 삶의 무게이기 때문이다. 행동은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어도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분류되지 않는다. 벨로의 시선은 변호보다 이해에, 심판보다 관찰에 머문다. 한 사람 안에 이성과 비이성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응시하며, 그것까지 포함한 전체를 한 인간의 생애로 받아들인다.<br/><br/>이런 시선은 문학이 인간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까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문학은 언제나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만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장 초라한 얼굴을 외면하지 않을 때 인간을 더욱 깊이 헤아릴 수 있다. 누구나 상반된 마음을 품은 채 살아간다. 합리적이라고 믿는 선택 뒤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숨어 있고, 이성적인 판단 뒤에도 오래된 상처는 남는다. 벨로의 소설은 그 모순을 없애려 하지 않는다. 이해란 모순을 지워 얻는 결과가 아니라, 그것까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설명이 멈추는 자리에서 이해가 시작된다.<br/><br/>그의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에서 언급된 ‘삶의 가치는 품위에 있다’는 말은 그의 작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품위는 흠 없는 삶에서 생겨나는 성질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허영과 불안, 뒤틀린 마음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을 단순한 결함으로 축소하지 않는 태도 속에서 드러난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누군가의 가장 반듯한 모습만 바라봐서는 부족하다. 감추고 싶은 마음과 설명되지 않는 감정, 비이성적인 선택까지 함께 바라볼 때 한 사람의 생애는 비로소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솔 벨로 문학의 품위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인간을 믿게 만들기보다 인간을 쉽게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br/><br/>인간을 이해하는 일은 드러난 모습 너머에 머무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설명할 수 있는 부분보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 속에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솔 벨로는 그 불가해한 영역을 외면하지 않은 작가다. 이 책은 완벽한 인물보다 흔들리는 인물에게서 삶의 진실을 발견한다. 그래서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모순과 복잡한 감정을 깊이 탐구하는 독자, 아름다운 위로보다 현실의 결을 가진 문학을 찾는 독자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인간을 쉽게 판단하는 대신,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는 법을 알려준다. 또한 가족과 기억, 상실과 시간의 흔적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과 한 작가가 평생 바라본 인간에 대한 사유를 따라가고 싶은 독자에게도 자신의 인간 이해를 넓혀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br/><br/>✏️도서출판 현대문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2/85/cover150/k03213049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28562</link></image></item><item><author>쭐떠기</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다음 발걸음을 어디에 둘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 - [영혼의 왈츠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88301</link><pubDate>Sun, 12 Jul 2026 22: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25402264/173883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798&TPaperId=173883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36/40/coveroff/8932925798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5798&TPaperId=173883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혼의 왈츠 2</a><br/>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06월<br/></td></tr></table><br/>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온 문제의식이 있다.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영혼, 문명을 움직여 온 지식,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 『영혼의 왈츠』는 그 익숙한 소재들을 다시 꺼내지만, 이번에는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낸다.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그러나 시선은 미래보다 훨씬 먼 과거를 향한다. 인류가 처음 불을 지피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 이야기는 결국 한 가지 사실을 보여 준다. 오늘의 세계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선택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br/><br/>외제니가 전생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오를수록 문명은 태어나고 성장한다. 불이 전해지고 문자가 만들어지며 지식이 축적된다. 하지만 그 곁에는 언제나 그것을 없애려는 힘도 함께 존재한다. 작품은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리는 데 머물지 않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을 따라간다. 시대가 달라져도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지식은 반복해서 의심받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먼 과거를 다루면서도 이상할 만큼 현재의 이야기처럼 읽힌다.<br/><br/>작품 속에서 문명은 거대한 업적보다 전해지는 과정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누군가는 불을 지키고, 누군가는 문자를 남긴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이어받아 다음 시대로 건넨다. 그 흐름이 한 번 끊길 때마다 인간은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발전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얻은 것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 또한 문명을 이어 온 힘이었다. 그래서 작품이 말하는 문명은 기술의 발전보다 인간의 태도에 더 가까이 닿아 있다. 문명은 눈에 보이는 성취보다 보이지 않는 신뢰를 통해 이어진다. 앞선 세대가 남긴 것을 다음 세대가 기꺼이 받아들여 자기 삶으로 이어 갈 때, 시간은 비로소 역사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br/><br/>문명에서 반복되는 것은 전쟁이나 폭력이 아니다. 두려움 앞에서 사고를 멈추고, 다른 목소리를 밀어내며, 자신의 확신만을 진실이라 믿는 태도다. 그런 선택은 한 사람에서 끝나지 않는다.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공동체의 분위기를 만든다. 결국 역사는 거대한 사건보다 수많은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한 번의 잘못으로 시대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사고방식이 오래 반복될 때 그것은 개인의 습관을 넘어 한 시대의 상식이 된다. 종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오래도록 외면해 온 선택들이 도착한 자리에 그것이 있다.<br/><br/>그렇다고 『영혼의 왈츠』가 인간을 비관하는 소설인 것은 아니다. 같은 영혼이 다시 만나고, 비슷한 삶이 이어진다고 해서 미래까지 정해지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작품이 과거를 향하는 이유도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서다. 자유 의지는 운명을 거스르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태도에 가깝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어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판단이 미래라는 시간을 계속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바꿀 수 있는 것이다.<br/><br/>『영혼의 왈츠』는 영혼과 윤회, 문명과 역사, 사랑과 자유 의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낸다. 그러나 작품이 오래 보여 주는 것은 영혼의 신비보다 생각하는 인간의 가능성이다. 서로 다른 의견과 새로운 지식을 밀어내고 하나의 답만을 진실로 믿는 순간 문명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는다. 반대로 익숙한 믿음을 의심하고,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을 조금씩 다음 시대로 이끈다. 그래서 이 작품이 끝까지 지키려는 것은 불이나 문자보다 먼저 스스로 사고하려는 의지이다. 오래 남는 것은 영혼이 시간을 건넌다는 설정보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일이 문명을 이어 왔다는 믿음이다.<br/><br/>제목 속 왈츠는 같은 리듬을 반복하는 춤이다. 그러나 같은 춤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매 순간 발을 디디는 자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도 그 리듬을 닮아 있다. 비슷한 갈등과 욕망은 되풀이되지만, 다음 발걸음을 어디에 둘지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영혼의 왈츠』는 12만 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가장 오래된 과거를 보여 주지만, 그 긴 여정 끝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미래다.<br/><br/>가장 먼 과거를 향해 떠난 이야기가 결국 오늘의 우리 앞에서 멈춰 선다.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꾸준히 읽어 온 독자라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세계관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소설을 관통해 온 영혼과 문명, 자유 의지라는 문제의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완성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한 읽을 이유가 된다. 또한 문명의 발전보다 인간의 사고와 선택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 역사를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는 언어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이 품은 시간을 더욱 깊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의 왈츠』는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앞으로 어떤 생각을 이어 갈 것인지를 조용히 되묻게 하는 작품이다. 인류의 시간을 따라가는 거대한 여정이면서도, 마지막에는 한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br/><br/>✏️도서출판 열린책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36/40/cover150/893292579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36408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