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창비세계문학 16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이한정 옮김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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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긴 읽었고 쓰긴 써야겠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누군가는 <열쇠>를 읽고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왜 거장인지 알겠다고 까지 했는데, 솔직히 나는 정말 모르겠다. 이건 그냥 마치 음, 변태적인 치정극일 뿐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56세의 남편과 45세의 아내는 이미 이십 여 년 간을 함께 살아왔고, 스물이 넘은 딸도 하나 있다. 남편은 평생에 걸쳐 일기를 써왔지만, 그동안은 금기시해왔던 자신들의 성생활에 관해 56세를 맞는 새해 벽두부터는 과감하게 적기로 한다. 그간은 혹시라도 아내가 읽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를 삼가왔지만, 이제야말로 아내에게 읽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오히려 읽히기를 기대하며), 일기를 쓰기로 작심한 것이다. 아내 또한 이에 화답하듯이 자신들의 성생활에 관한 일기를 쓰기로 하는 데, 그 이유는 이렇다.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 속내를 말하지 않는 사람은 하다못해 자기 자신에게 그것을 말하거나 들려줄 필요가 있다. 단지 나는 자신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들키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남편이 외출해서 없는 틈을 타서 일기를 쓰고, 남편이 절대로 생각하지 못하는 어떤 장소에 숨겨둘 것이다. 내가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첫 번째 이유는, 나는 남편의 일기장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반면, 남편은 내가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는 그 우월감이 더할 나위 없이 즐겁기 때문이다. (15)

 

 

왜 일까, 이십 여 년을 함께 살고도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부부 사이의 화두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이십 년이 지난 부부사이에도 성생활이 중요한 것이기는 할까? 56세의 남자가 탐하는 것이 45세의 아내가 아니라 차라리 다른 여자였다면 더 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실성이 없다.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질 때까지 6개월 동안 이들 부부에게는 일반적인 생활이 없다. 그저 성적 욕구와 배설만 있을 뿐이고, 그를 위해서는 딸도 제자도 모두 도구가 될 뿐이다(사실은 딸과 제자의 성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 것이 이들 부부일지도 모른다).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매혹도 없이 그저 뿐으로, 그것이 이 소설을 읽는데 가장 큰 난점이었다. ‘변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알아내는 데 실패했다. 작가가 현실성이 없는 성생활에 대해 집중한 것은 그것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서일 텐데, 그것에 도대체 정신이 가지 않을 정도로 소설의 내용이 난잡하다. 다만 자신이 고지식하고 봉건적인 사상을 가진 전통적인 여인상인 것처럼 남편을 속여온 여자의 마지막 일기는 소름이 돋는다. 반드시 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할 뿐이라는 것이 유일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57세에 쓴 <세설>은 전쟁과 무관하게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다루었다. 도저히 오십 대 후반의 남자가 썼다고는 보여지지 않는 여자의 심리에 대한 세심한 묘사가 좋았다. 때문에 <세설>을 읽는 것은 특별한 스토리가 없는 일일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아늑했다. 반면, 작가가 70세의 나이에 썼다는 <열쇠>는 해소되지 않는 노년의 성을 대리만족하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퇴폐적이다. 무엇보다 매혹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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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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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하고 싶지 않는 일을 내키지 않는 방식으로 처리 해야만 할 때, 얽히고 싶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끊임없이 복닥 여야만 할 때, 어떻게 살아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가족과 동료,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턱까지 차올라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그때... 그럴 때면 그만 이쯤에서 모든 것을 끝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그런 생각은 아무일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해 보는 생각일 텐데(아니,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도 분명 있을 터이지만!), 어쨌든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삶을 끝내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내 아이라면 어떤 기분이 될까, 삶을 그만 끝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 크리스토퍼 키터리지는 엄마인 올리브에게 바로 그렇게 말한 때가 있었다.

가끔 모든 걸 끝내버리는 생각을 해요...”(128)

 

엄마는 행동이 거의 편집증적이에요

크리스토퍼는 중년에 들어서 늦결혼을 했다. 수잔은 남편 크리스토퍼에 대해 다 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올리브는 수잔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잔이 제아무리 의학박사에 철학박사라 하더라도 엄마인 자신보다 크리스토퍼에 대해 더 잘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사 같던 아기 크리스토퍼가 자라서 모든 걸 끝내버리는 생각을 한다고 고백하던 시절도 있었음을 수잔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수잔에 대한 못마땅함이 그녀가 아들과 잘 지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면서 그것은 엄마로서의 느낌이 아니라 바람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크리스토퍼가 고향을 등지고 아내를 따라 대륙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간 것도, 그렇게 멀리가고도 일년 만에 이혼을 당한 것도,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려하는 것도 모두 매사에 명령하기를 좋아하고 뭐든 다 안다는 태도를 보인 수잔 탓이라고 여긴다.

세월이 흘러 크리스토퍼는 재혼을 하고, 오랫만에 아들을 만나러 뉴욕으로 날아간 올리브는 말이 많아진 아들의 모습에 놀란다. 올리브가 알고 있는 크리스토퍼는 엄마인 자신을 닮아 뭐든 말로 다 표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 자신도 과묵한 타입이였다. 그러나 다시 만난 크리스토퍼는 말을 아끼지 않았으며, 때때로 거친 말을 쓰기도 했다. 급기야 크리스토퍼는 다정한 아들부부의 모습에 소외감을 느껴 불현듯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올리브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행동이 거의 편집증적이에요. 엄만 언제나 그랬어요. 적어도 많이 그랬어요. 그리고 전 엄마가 그에 대해서 책임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일 분은 이랬다가, 일 분 후에는 또 마구 화를 내고. 아주 피곤해요. 주변 사람들을 너무 지치게 해요.”(411)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었어

키와 체구가 큰 올리브는 언제나 당당하게 보인다. 그녀는 굳이 말로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만큼 자신이 하는 말은 꼭 해야만 하는 말 이라고 여기는 괴팍한 성격이다. 올리브는 초등학교 수학선생이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거침없는 그녀를 무서워했다. 그녀는 처음 만난 사람의 얼굴에는 많은 것이 드러난다고 믿었는데, 숱한 아이들을 보아온 교사인(였던) 만큼, 자신의 판단은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감에 차 있는 그녀도 불현듯 외로움을 느끼는 때가 있다. 외로움은 불안과 공포의 다른 표현이곤 했는데,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했듯 사랑받고 사랑할 것을 갈망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이었다. 올리브는 크리스토퍼에게 자신의 불안을 투사했다. 아들은 자신을 꼭 닮았으며, 무엇이 아들에게 좋은 것인지, 또는 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따위를 판단했다. 그런 그녀에게 뒤늦게 나타난 수잔은 적이 될 수 없었다. 수잔은 크리스토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부 아는 것처럼 뻐기는 얄미운 연적일 뿐이다. 그러니 아들의 변심은 수잔이거나, 혹은 아들이 뒤늦게 알게 된 어떤 사람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이 자신을 꼭 닮았다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올리브의 잘못이었다. 크리스토퍼는 변심한 것이 아니라, 그제서야 제 모습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결혼식에서 새 신부인 수잔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인 힘든 시간을 겪었어. 외동아들인 게 그이한테는 정말 죽음이었지.“(127)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니까

올리브는 뻔한 것에 대해 말이 많은 사람들과 감정의 낭비를 즐기는 사람들의 한심함을 자신이 언제나 참아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못 알고 있거나, 그들이 표현하는 것은 시시하다고 여기면서도 그에 대해 가타부타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변덕스럽고 괴팍하며 자기중심적인 올리브를 참아주고 있는 것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중년의 나이에 늦장가 든 아들이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박사 출신의 수잔과 결혼을 하자,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 필요는 없다. 뭐든 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사람은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니까.”(133) 라고 혼자서 되뇌지만, 사실은 올리브 역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 였으며, 아들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와 살아오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고 수잔에게 고백했던 것이다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하는지

<올리브 키터리지>는 연작 소설 형식을 취한 단편 소설집이다. 각각의 단편은 다른 인물의 다른 이야기이지만, 반드시 올리브 키터리지와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올리브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이던가, 올리브가 주인공의 수학 선생님 이었다던가, 주인공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바에 단골손님이라던가, 단순히 그저 이웃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일반적인 단편소설집과 다르게 연작 소설은 앞에 등장했던 인물이 계속해서 등장하거나, 앞의 이야기에 이어서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신경을 쓰며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매번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특별한 설명이 없어 어떤 단편은 이야기가 다 끝나가도록 인물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두 번째 단편 <밀물>같은 경우이겠는데, 첫 번째 이야기인 <약국>의 아련함에 취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밀물>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해 읽자, <약국>에서 느낀 아련함은 <밀물>의 애잔함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열세 편의 단편을 천천히 읽었다. 그런 후에야 연작의 형식을 취한 이 이야기들이 결국은 한결로 모인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것은 점점 더 무서워지는 삶의 바다에서 나는 안전하다(279)”고 느끼길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한는 것이다.

보이는 곳에 두고 가끔 모든 걸 끝내버리고 싶어질 때, 혹은 내가 아직은 사랑 쪽에 속한 사람이라는 걸 믿고 싶을 때, 또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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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4-12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리뷰의 마지막 문장이 참 와닿아요. 잘 읽었습니다~

비의딸 2016-04-12 18:16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다 읽는데 일 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약속>이 너무 좋아 시작했다가 <밀물>에서 턱 막혔었거든요, 지금은 물론 저한테도 무척 소중한 책이 되었어요~
 
미국의 비극 -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5
디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김병철 옮김 / 범우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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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인 너무나도 통속적인

빈곤하고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남자가 부유한 여자를 이용해 신분상승을 꾀하고, 그에 걸림돌이 되는 가난한 애인을 걷어차는 이야기는 문학에서도 그렇지만 실제로도 흔하디 흔한 이야기이다. <미국의 비극>은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내용인데,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이 이야기의 소재를 신문기사에서 얻었다. 1906년 뉴욕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에 대한 기사로, 광신적인 부모 밑에서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빈곤하게 자란 한 남자가 역시 마찬가지로 가난한 여공을 유혹하고 임신시켰다. 그러나 그후 미모와 재물과 지위를 겸비한, 그리하여 자신을 상류사회로 이끌어줄 새로운 애인과의 교제에 그녀가 방해되자 호수로 여자를 유인, 테니스 라켓으로 머리를 쳐 익사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씌여진 <미국의 비극>은 이토록 간단한 이야기지만, 상·하로 나뉘여 도합 1,000쪽에 이른다.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크라이드의 성장기를 비롯한 각각의 장면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와 변화에 대해 매우 세밀하고도 반복적으로 묘사했다. 그로인해 소설은 다소 장황하고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또한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다는 반전없는 뻔한 결과 때문에 그의 첫 장편 <시스터 캐리>보다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러나 <시스터 캐리>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비극> 역시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보다 낫다고 여겨지는 것을 향한 주인공의 욕망과 갈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보편적 인간의 고뇌로 이어지면서 마치 나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처럼 여겨진다. 때문에 다소 지루한 반복에도 불구하고 한번 잡은 책을  내려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지위도 돈도 뭐든 갖춰져 있거든요, 팔자가 좋은 거죠. 그와 반대로 난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목적을 달성하기란 여간 힘이 들지 않아요. 더욱이 그 여자들을 상대로 돈과 신분에 대항해 나가야만 하니까……(상권 424쪽)

죄책감은 학습의 결과?

어린 크라이드는 전도관을 열고 가족을 전부 동원해 가두 설교를 일삼는 부모의 광신적인 행위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성장했다. 뿐만아니라 그처럼 열성적으로 믿고있는 하나님은 실제로 자신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증거로 돈벌이를 등한시한 부모의 전도 생활 때문에 그의 가족은 늘 궁핍했던 것이다. 이에 크라이드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로 부터 벗어나 직접적인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부모가 강요하는 보답없는 신앙생활보다는 일반적인 시류, 즉 물질을 쫓는 것이 젊은이다운 생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도 상대적 박탈감에 몸서리치는 보통의 젊은이들이 그렇듯 특별한 철학이나 목표없이 동료들과 어울려 그때그때의 즐거움을 맛보고, 흐르는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상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닥치고, 크라이드는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양심을 버리기로 한다. 그것이 한때나마 사랑했던 여자를 죽이는 일 일지라도.

 

크라이드는 처음엔 공포에 부들부들 떨면서 무서움에 가라앉은 속삭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마치 철인과도 같은 초연한 태도로 바뀌고 말았다. 마치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광포하고도 악마적인 방법이라도 허용되어야만 한다는 그러한 배짱을 이미 세워버린 것 같이도 보였다. 사실 그는 단념하려 해도 단념할 수 없는 꿈과 환락을 앞에다 놓고서 그만 그 유혹에 지고 말아, 그 방법이 자못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저 한 번만 그 흉행을 결행하면 모든 욕구와 꿈이 실현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하권 74쪽)

가난과 궁핍에 더해 신을 향해 늘 죄인의 모습일 것임을 강요하는 부모 밑에서 성장한 크라이드는 임신까지 한 가난한 애인을 죽이고서는 이상하게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살인의 순간 순간적인 정신분열을 일으켜 자신은 살인에 관여하지 않았고, 그녀의 죽음은 우연의 결과라고 자신을 속이기까지 한다. 광신적인 부모의 전도 생활을 부끄럽게 여겼다고는 하지만, 낳아서부터 들어오고 배웠던 하나님에 대한 경외나 구원에 대한 설교를 듣고 자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쩌면 과잉된 강요가 그로부터 종교적 믿음뿐만 아니라, 인간다운 양심의 싹조차도 잘라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경우 크라이드의 부모는 자식 하나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아니 오히려 자아가 제대로 설 수 없는 강요된 환경으로 인해 아들이 죄악의 구분 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밀어넣고는 제대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할 수 있을까.

 

'미국'이 의미하는 것

어떻게 된 것인지 나는 양심도 없고, 몰지각하며, 자기 욕망을 위해서라면 임기응변적이고,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권위 앞에서는 겁쟁이인 크라이드에게 많은 공감을 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신에 대한 부모의 경외를 의심하는 크라이드, 남의 목숨은 앗았을망정 정녕 자신은 죽고싶지 않다고 울부짖는 크라이드,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당장 도망부터 치고보는 크라이드, 들키지만 않는다면 거짓말도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크라이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벌인 옳지 않은 일에 대해 죄책감을 갖거나 후회하는 대신 그 모든 것이 자기만의 잘못이냐고 되묻는 크라이드, 그리고 끝내는 강요당하는 죄책감 보다는 차라리 그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크라이드. 부족하고 못날 뿐만 아니라, 부정하기까지 한 그의 모습은 누가 보고 있지 않을 때 본능적인 욕망에 갈등하며 고뇌하는 나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드라이저는 크라이드의 이야기는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가 빚어 내는 전형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왜냐하면 사회가 권장하는 가치관이 그 가치관을 따를 수 없는 무능력자들에게 오히려 가장 욕구를 충동시켜 주고 있으며, 이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무능력자들은 온갖 제약을 받고 끝내는 범죄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권 517쪽, 작품론 중)

소설의 제목이 '크라이드의 비극'이나, '개인적인 비극'이 아닌 '미국의 비극'인 것은 출세와 부, 권력, 야망으로 상징되는 시류를 쫓느라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대사회의 인간을 '미국'이라는 이름에 담았기 때문이다. 만약 크라이드가 로버타를 죽이고도 들키지 않았다면, 그래서 상류사회의 여자인 손드라와 가정을 꾸미고 무난히 상류사회의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크라이드는 상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성실한 인간군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럴수 있었다 해도 그는 그외의 더 많은 것을 욕망했을 것이고,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했을 것이며, 수중의 것 중 무엇 하나라도 잃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때로는 갖지 못한 것 때문에 몸 달아 했을 것이며, 갖았거나 갖고싶은 것을 위해 양심을 버리고 자신조차 속이는 일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1차세계대전 후 황금기를 누리던 1920년대 미국의 보편적인 모습이었다고 드라이저는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인 욕망만이 자아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준이 되어 안달복달하며 삶을 꾸리는 것이 1920년대의 미국의 일만은 아니므로, 크라이드의 욕망에 공감하는 독자는 오늘날에도 끊이지 않는 것이다.

 

시어도어 드라이저

<시스터 캐리>를 읽고, 인간의 욕망에 집중하는 드라이저의 소설에 매혹되어 <미국의 비극>을 읽었다. <시스터 캐리>를 읽을 때, 혹여 소설이 신문기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그대로 내 추측이었을 뿐이고, <시스터 캐리>는 드라이저의 누나 에마로부터 출발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미국의 비극>을 읽으며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신문기사를 토대로 씌여진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다소 놀랐다. 역시 소설가는 한줄의 기사에서도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천재라는 내 견해는 옳다. 한편,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출간 된 것은 단지 <시스터 캐리>와 <미국의 비극> 이 두 편 뿐이지만, 조만간 <제니 게르하트>니, <금융업자>, <천재>, <금욕주의자>도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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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처 소나타/레프 톨스토이 지음/김경준 옮김/뿌쉬낀하우스

 

<크로이처 소나타>는 똘스또이의 후기 작품으로 '회심' 이후 자연주의에 경도된 작가의 도덕적, 사상적 측면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삶을 위해 음주와 흡연 그리고 육식을 피하고 금욕 생활을 할 것을 주장했던 똘스또이는 이 작품을 통해 그 무엇보다도 절제하는 삶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똘스또이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남성의 성적 절제와 금욕은 결혼 후 부인에 대해서도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여 당시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여성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러한 주장의 일부는 다분히 현대에도 유효한 페미니즘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언젠간 꼭 읽고 싶었던 <크로이처 소나타>이지만, 무엇보다 표지가 너무 이쁘기때문에 이번에야 말로 꼭 읽고 말리라!)

 

 

홀/ 편혜영 지음/문학과지성사

 

특별한 일 없이 흐르던 일상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기도 한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재앙과 고난을 기다렸다는 듯이 편혜영은 그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를 당긴다. 이 책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사고로 시작한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교통사고. 이 사고로 오기는 아내를 잃고, 스스로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어버린다. 예상치 못한 사건은 오기의 일상을 한순간 뒤흔든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이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 그나저나 이것도 표지가 맘에 든다)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파트릭 모디아노 지음/권수연 옮김/문학동네

 

기억을 떠올리는 일은 먼지가 수북한 다락방을 방문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그곳에 무엇이 어떤 논리로 정돈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기억의 주인은 그를 과거로 이끌어가는 표지들을 발견하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흔적들은 완벽히 지워지지 않고 그것들을 다시 알아보기 위해서는 구별하기 힘든 표지들을 해독하고 그들의 관계를 연결하고 의미를 짐작해가며 하나의 사실을 가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결코 확실치 않아 실재했는지 믿을 수 없다. 의혹은 여전히 남는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러한 불확실한 수사로 걸작을 만들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중-

(이것도 역시 표지가 썩, 매우, 무지하게 맘에 든다)

 

 

 

 

 록스 호텔/피터 니콜스 지음/정윤희 옮김/알에치코리아

 

책을 읽는 동안 눈앞에 코발트 빛 지중해 바다가 펼쳐지고 이글거리는 태양이 피부를 간질이고 부드러운 모래알이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느꼈던 것도 극작가로서 탄탄한 필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요트를 타고 푸른 바다를 헤치고 갈 때는 사색하는 듯 담담한 문체로, 열여섯 소년이 첫 경험을 앞두고 있는 순간에는 사춘기 소년처럼 풋풋한 문체로, 오랜 증오를 품고 살아온 여주인공이 분노를 쏟아낼 때는 불이 붙은 화살처럼 날카로운 문체로 돌변한다. 이쯤 되면 이야기의 결말을 먼저 던져놓은 것이 아주 근거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구나 싶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옮긴이의 말 중

(오홍,, 이것도 표지가 맘에 든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라고 여겨짐) 

 

 

어쨌든 꽃피는 4월에 읽고 싶은 책은 대략 표지가 이쁘다. 그것이 책을 읽고싶은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으나,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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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캐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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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의 어느날, 시카고 발 조간 신문의 한 귀퉁이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살롱 피츠제럴드 앤드 모이스의 지배인, 금고를 털어 달아나다'

○○일, 유명인사들이 자주 찾는 시카고의 화려한 살롱 중 하나인 피츠제럴드 앤드 모이스의 지배인이 금고를 털어 달아났다. 살롱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메이휴 씨는 전날 영업이 끝난 후, 돈을 금고에 넣고 다이얼을 돌려 잠근 후 퇴근했다가 다음날 출근해 보니 금고는 잠겨있었지만 돈은 전부 사라졌다고 말했다. 메이휴 씨는 자신이 퇴근할 때 살롱의 지배인인 허스트우드 씨가 남아 있었으며, 영업 후 마지막까지 남아 문단속을 하는 것은 지배인의 일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배인 G.W. 허스트우드 씨는 돈과 함께 사라진 후,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적극적이면서도 정중한 태도로 믿음이 가는 분위기를 풍기는 허스트우드는 이제 막 사십 대에 들어서는 중년의 남자다. 그저그런 살롱에서 바텐더로 출발한 그는 영리한 두뇌와 빠른 상황판단으로 상류층이 드나드는 살롱의 지배인 자리에까지 올랐다. 최고급 양복과 금시계로 멋을 내고 배우, 사업가, 정치가들을 비롯한 유명인들과 격의 없는 태도로 지낼 수 있을 정도의 위치가 된 것이다. 그의 집은 당시 유행하던 삼층짜리 건물로, 멋진 가구들과 그랜드피아노, 수많은 장신구들로 완벽하게 꾸며져 있었고, 허영심 많고 화려한 아내와의 사이에는 아들과 딸을 두었다. 그의 가정은 인내와 배려가 있는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겉모양은 아주 그럴듯한 상류층에 속했다. 허스트우드는 완벽하진 않았으나 그런대로 자신의 지위와 위치에 만족했으며, 이미 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사에 몸을 사리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자신의 위치에 있는 남자들이 즐길 법한 재미를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를 속이고 가끔은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해 행동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항상 눈감아질 만한 지점에서 멈춰져야 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모험을 감행할 정도로 즐거움을 탐닉하는 법은 없었다.  그때까지 그가 원했던 것은 '안정'이였다.

그러나 어느날 모든 것이 달라졌다. 허스트우드가 '욕망하는 것'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금지 된 것, 즉 이웃의 아내를 탐하게 되었다.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질 것이 예상되던 지점에서,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처럼 생각되자 그는 이성을 잃는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캐리'라는 여자일 뿐이라고 자신을 속인다. 그러나 그는 단지 불가능을 욕망했을 뿐이다. 스스로 촛불에 몸을 던지는 부나비처럼 보이는 것 없이 달려들던 허스트우드는 이제 도둑이 되어, 한때나마 자신의 것이었던 모든 것들로 부터 버림받게 된다.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지위가 있고, 특별히 행복하진 않되 안정적인 가정도 있으며, 상류층으로서의 생활이 가능한 경제적 능력까지 갖추었던 허스트우드는 어째서 그 모든것을 던져버리고 단 하나의 여자만을 쫓게 된 것일까.

 

찰스 다윈의 진화론으로 부터 영향을 받은 자연주의 작가들은 한 인간의 성격은 유전과 사회적 환경과 행동할 당시의 외부적 압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다. 즉, 인간 행동의 근저에는 본능이 뿌리깊게 작용한다고 본 것이다. 때문에 자연주의 소설에는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로서의 인간이 아닌 본능과 욕망에 휘둘리며 풍랑을 겪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욕망의 특성이 그렇듯 타락과 배신, 빈곤, 질병과 같은 인생의 어두운 면에 집중하게 된다. '자연'을 생각할 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따뜻함이나 생명의 충만함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정제되지 않은 욕망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자연주의 문학이다. 시어도어 드라이저는 <시스터 캐리>로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우리는 인간이 정글의 법칙에서 멀리 벗어나 있으며 타고난 본능은 무뎌져 자유의지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는 아직 본능을 대신하여 인간을 완벽하게 이끌어줄 수 있을 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인간은 본능과 욕망에만 귀기울이기에는 너무 현명해졌으나 본능과 욕망을 압도하기에는 여전히 너무 나약하다. 짐승으로서의 생명의 힘은 인간을 본능과 욕망의 편에 세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우리는 아직 그 힘과 보조를 맞추는 법을 온전히 배우지 못했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 자연에 녹아들어 조화를 이루지도 못하고, 아직은 자유의지에 따라 현명하게 스스로를 자연과 조화시키지도 못한 채 어중간한 단계에서 흔들리고 있다. 인간은 바람 속의 나뭇잎처럼 한때는 자기 의지에 따라, 한때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식으로 열정의 숨결에 따라 그때그때 움직인다. 자유의지에 따라 실수를 저질렀다가 본능으로 회복하기도 하고 본능으로 인해 쓰러졌다가 자유의지로 일어나기도 하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변동이 심한 존재이다. 어쨌든 진화는 계속되며 이상은 결코 꺼지지 않는 불빛이라는 사실로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106쪽)

삶에 특별한 부족함이 없었던 허스트우드가 안정을 버리고 욕망을 쫓은 것은 의도되지 않은 본능적 행동이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성찰이나 철학이 끼어들 틈이 없다. 허스트우드 외의 또다른 주인공 캐리와 드루에 역시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 행동하며, 그로인해 잘못된 결과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부도덕한 행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배우로 성공하는 캐리는 인간들의 부질없는 과시와 욕망의 이면을 읽는 것처럼 보이는 명민하고 지적인 남자 에임스에게 마음이 끌리면서 삶의 또다른 측면에 대해 고민한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분신처럼 보이는 에임스는  본능을 넘어선 자유의지를 갖고있는 인물로 보여진다. 작가는 에임스라는 인물을 통해 캐리가 변화하는 모습을 예측하게 함으로써 인간 일반을 움직이는 것은 욕망이지만, 자유의지의 인간으로 발전할 가능성 또한 믿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한편, 지적인 성찰이 가능한 에임스가 자신의 지적 경험을 전부 뒤흔들만한 강렬한 욕망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할지가 궁금하다.

 

- <시스터 캐리>에는 '살롱 피츠제럴드 앤드 모이스의 지배인, 금고를 털어 달아나다'라는 식의 보도 기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신문 기사로부터 소설이 출발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을 뿐이다. 신문은 일어난 사건에만 촛점을 맞추고 단신으로 보도되지만, 작가는 기사 한 줄에서도 그 너머의 일을 상상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소설 <시스터 캐리>는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아니다. 주인공 캐리는 작가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누나인 에마 드라이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술집 지배인인과 동거를 하던 에마는 그가 훔친 돈으로 함께 뉴욕으로 도망쳤다.

 

 

* 알라딘 공식 신간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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