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0쇄 기념 한정판)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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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중산층 가정 출신이다.
2009년 현재 우리 사회에는 중산층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자란 70년대, 나는 확실히 중산층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자리에 있던 아빠를 두었기에 나는 도시락 반찬으로 유리병에 총각무 몇조각을 싸가지고 다니지 않았고, 주말이면 속리산으로 내장산으로 대천해수욕장으로 여행을 다녔으며, 피아노 학원을 다닐수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과외선생도 바꿔치울 수 있었다.
나는 고민이 없었다.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단지 어떻게 하면 엄마를 속여 책값으로 몇푼 더 타낼까. 어떻게 하면 학원을 빠지고 월미도로 놀러나갈까.... 
나는 그렇게 내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난.쏘.공>이란 책에 대해 많이 들어보았지만 관심이 없었다.
내가 관심을 갖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이 사회에 불만이 없었고, 세상은 누군가는 잘 살고 누군가는 못 사는게 당연한 이치라는 생각을 막연히 갖고 있었으므로.
그리고 내가 못사는 축이 아니라는걸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 기도하곤 했다.
부끄러운 내 젊음..............
이제와서 돌아보면 내 젊은날은 부끄럽다.

가진자가 갖는 이 사회에의 정의와 진실은 무엇일까.
가진자와 못가진자.
그들은 서로 반대편의 끝에 서서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며, 자신들이 보고자하는 것만 진실이라고 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으므로 나는 진실이고 너는 거짓이다...........
가끔은 세상이 불공평한 것이라는데 아주 강하게 동조한다.
가진자가 갖는 못가진 자에 대한 동정은 아주 가볍운 깃털같다.
내가 당해 보지 않았으므로 내가 못가져본 것이 없으므로 그것은 손에 쥘 수 없는 가벼운 깃털.....
그것을 쥐고자 주먹을 세개 쥐면 깃털의 가벼움은 뭉개져 버린다.
온전히 우리가 타인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할까..........
온전히 내가 너를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내게 다시 젊은날을 되돌려 준다면...
나는 치열한 젊음을 보낼 수 있을까..
내가 겪어보지 않은 가난을 고통을 내게 없는 결핍을 위해 내 땀방울... 내 핏방울을 보탤 수 있게 될까...
젊은 날이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처럼, 치열함 또한 내게는 거의 불가능한게 아닐까....
나는 비열한 소시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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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자존심 - 2002 대선을 향한 강준만의 제언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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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언론이 객관적일 수 없다는 데 공감한다.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변하고 있다.
객관적일 수 없다면 여과없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언론은 객관적인 사실과 함께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정당한 비판 또한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언론이다.
네권째 노무현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언론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점점 변하고있다.
처음엔 객관적이지 못한것에 분노하다가, 언론은 정녕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어떤 식으로든 자기 노선을 따라가되, 다수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정당한 비판을 정정당당히 실어 나를 수 있어야 진정한 언론이라는 믿음까지 오게 되었다.

이 책은 2002년 ’노풍’이 한참이던 시절에 씌였다.
역시 지금 읽어도 시간차를 느낄 수 없었다. 모든 국민이 전면적 개혁을 원하는 것 조차 지금과 닮아 있다. 
다만, 그시절 살벌했던 지역주의 정치, 보스 정치에서 조금 벗어났다고 해야하나.. 돈 정치는 어떤가... 그건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왔다. 군사정권에 기가 죽어 스스로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지휘봉이 가르키는 곳만 바라보며 여기까지 오느라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었다. 또, 정치는 더러운 것이라고 멀리하며 무지를 무관심으로 가장해 왔다. 강준만은 말한다. 무관심한 사람은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우리는 그간 자격이 없어서 비판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지휘봉이 무서워 입을 다물었던 것 아닐까.
부정부패, 그것이 내 가족만 잘 사는 것을 도모하는 것이라면 정치바닥을 무시하며 스스로 고고한 척 했지만 결국은 내가, 내 가족이 언제 어떻게 당할 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보았으면서도 보지 못한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입을 다물어왔던 우리모두가 부정부패와 한통속이였을 수 있다. 가족을 초월에 전체를 보아야 하는 것이 비단 공무원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든 노무현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우리 스스로가 주체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정치에 대해, 나라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말해도 좋은 세상으로 바꾸어 놓은것 아닐까.
노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 하나는 모두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기존의 정치는 죽었고, 우리가 달라졌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노무현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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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선물
박도 지음 / 말글빛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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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책을 읽기 전,  나의 아빠를 추억했다.
비가오는 날 학교 앞까지 혹은 직장 앞까지 차로 데려다 주시며 장난을 거셨다.
너땜에 창에 습기가 많이 서려 안보이니 내리라는 둥. 전철역이 여긴데 전철을 타고 가라는 둥....
기어 위에 내 손을 얹고 변속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기도 하셨다.
어렸을때 아빠는 늘 바쁘고, 별로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된 후 오히려 더 다정다감하게 나를 대하셨다.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 어깨를 주물러 주시기도 하고, 엄마 몰래 용돈을 주기도 하고.....
아마도 젊은시절 아빠는 너무 바빴기에 나에게 그렇게 다정하실 시간이 없으셨던 모양이다.
이제 아빠가 우리를 떠나신지도 10년 세월이고... 내게는 아들이 있다.
나는 아들 손을 기어위에 얹고 변속하며 장난을 건다.
"우리 아빠가 말야.. 그러니까 너희 외할아버지.... 비오는 날이면... 어쩌구......"

아빠와 아버지의 느낌은 조금 다르다.
아빠는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아버지는 근엄하고 바르시다.
아버지 '박도' 선생님이 그런 느낌이다.
항상 바르시고, 근엄하시고, 그럼에도 아빠의 따뜻함을 같이 갖고 계신분.
책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으나 '항상 바름'이 조금 힘들었다.
그만큼 나는 풀어지고 늘어진 삶을 살고 있나보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 그리고 나는 근본적으로 유교문화에 피해의식을 갖은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어려웠다.
세월이 많이 변했어도 변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의미에서 이 책은 참으로 도움이 되는 책이다.
세월과 무관하게 소중한 것들. 변해서는 안되는 것들. 그중 하나로 나는 '원칙'을 꼽는다.
원칙은 우리가 사람답게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이 된다.
이것 하나만 기억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훨씬 따뜻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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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죽이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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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 전대통령의 서거 직후 노무현 관련 서적을 6권 구입했다.
<노무현 죽이기> 이 책이 3권째....
조금씩 피곤해진다.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진보를 가장한 기회주의자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휘둘렸던 국민들......
모두 몇년 전에 씌인 책들인데 시간차를 느낄수 없다. 
이유인즉, 그들은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과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임기 후의 노무현, 한결같이 가열차게 ’인간 노무현’을 미워해왔기 때문이다.
그를 죽이기 위한 노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노무현이 초선 국회의원이 었을때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노 전 대통령이 취임을 하고 4개월 정도 후 쓰여졌다.

이 땅의 주류들은 학벌이나 재벌, 가문 여러가지 면에서 도저히 자기들과 같을 수 없는 서민 노무현에 대한 혐오감을 너무 표나게 표출해 왔고, 언론은 진정한 비판, 토론을 한것이 아니라 저속하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이용해 의혹을 제기한 후 아니면 말고 식의 꼬리말기를 계속해왔고..... 
그리고 우리들은 상처받은 주류가(노무현이 대통령이라는 자체가 이땅의 주류들에게는 씻지못할 오욕이였음으로) 가르키는 칼 끝을 바라보며 동조해왔다. 심지어는 노 전 대통령 시절 초등학생 조차 ’노무현 대통령은 말을 너무 막한다’고 했다지....
멀리 갈 것도 없다.
그 시절 우리는 너무 지쳤다. 아니 우리가 아닌 ’나’로 고쳐서. 나는 너무 지쳤다. 신문을 보기가 지겨웠다.
툭 하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대통령의 말실수... 그리고 한나라당의 말꼬리 잡기...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행태.....
그래서 였을것이다. 대통령이 제발 입을 다물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았던 것은..
추호도 그의 대통령 자질을 의심한 적없으나, 그 시절 그 혼란이 지겨웠다. 
서민인 나는 정치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저 잘 먹고 잘 살고 싶을 뿐.....
우리 수준에는 군사정권이 딱이었나.. 군사정권 시절 잘먹고 잘 살았다는 것이아니라, 너나할 것 없이 노무현정권을 씹어대는 내내 택시를 타면 약속이나 한듯 기사 아저씨들은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더라는 웃지못할 이야기..
이명박정권만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모두 반성하자.
겉으로만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서민대통령. 보통사람. 노무현을 우리모두가 무시해 오지 않았는지.... 그의 진실을 우리 모두가 같이 오도하고 있었던것은 아닌지. 탈권위주의를 반기는 척하면서 광대짓이라고 비웃지 않았는지....

반성하라.
자신들의 비전을 보여주기 보다 상대방을 비방하고 깎아내려 밟기에 급급한 이땅의 가진자들.
그들이 애국을 아는가?  애국을 하는가?
독선적이고 권위적이며, 자기에 대한 비판은 참지 못하고, 일반화시키길 좋아하고, 앞서가길 즐기는 그들.... 그것이 이땅의 주류이다.
반성하라.
특정 부분을 전체인양 포장하고, 맥락은 잘라버린채 자극적인 단어만을 확대하고  왜곡해 국민들을 흔들어 놓은 언론사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강준만도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참아줄 수 없었던 노무현은 고결한 그들과는 씨가 달랐다고. 
그러니 다시는 자신들의 몫에 기웃거리는 일이 없도록 밟아주어야 했다고. 


그리고 인간 노무현은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길을 가버렸다.
"존언성을 지닌 굶주림이 노예의 몸으로 먹는 빵보다 낫다." 프란츠 파농의 말이란다.

오늘, 문재인 비서실장의 한겨례신문 인터뷰를 보았다.
줄곧 내내 묵묵했던 그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충분히 슬퍼보였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어느 정도 익숙하게 바라보게 된 나는 삼십여분 남짓한 인터뷰를 보는 내내 담담할 수 있었다.
인터뷰 막바지에 기자는 비서실장 문재인이 기억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묻자, 문재인은 담담하지만 센 경상도 말투로 대답했다.
노 전 대통령을 비주류라 하지만, 사실 이땅의 진정한 주류는 서민아닙니까. 진정한 주류에게 주류의 몫을 돌려주고 싶어했던 대통령으로 기억하노라고............
그리고 기자의 마지막 질문.. 노 전 대통령의 그뜻을 이어갈 생각이 있느냐고(정확한 표현을 기억못하지만 이런뜻이였다)
문재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말했다.
"이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세상이 싫다. 세상이 깔고있는 악의가 무섭다. 세상과 거리를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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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아십니까? - 인물과 사상 제10권 출간기념 특별기획
김민웅 외 9명 / 개마고원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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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를 읽고 한인간은 객관적 관찰자가 될 수 없으나 언론은 객관적 관찰자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되었다.
신문 또한 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 객관적 사실 그대로를 반영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신문이란 것이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실 그대로를 온전히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취재하는 기자 자신의 가치관과 편집과정에서의 개입이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책 <조선일보를 아시나요>를 읽고 알게 되었다.
또 신문사도 사업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고상하게 사업이고 다시말해 ’장사’다.
조선일보의 역사는 국민의 알권리보다 장사 쪽을 택해 왔다는 것을 조선일보가 걸어온 길을 통해 알았다.
비단 조선일보만이 아니라 신문사들의 목표는 시장에서의 성공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얼마든지 끌고 갈 수 있는것이 바로 언론이다. 단지 목표는 같으되 누가, 어느신문이 공정하고 자신이들이 쥔 펜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까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조선일보는 단지, 장사라는 목표를 위해 그때그때 힘있는 쪽으로 몸을 실어왔고, ’힘’만이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쥔 것을 내려놓지 않았을 뿐이다. 다같이 잘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이미 믿어버리는 것이다.
한때, 내가 그렇게나 좋아했던 작가들.... 그들을 이제는 전처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또한 권력밑에서 기생하는 한종류의 광대들 아니었나.... 쓰다. 써...

이 책은 1999년 쓰여진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10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설마 지금도 그럴까...........
그렇지 않다고 십년전과 지금은 같을 수 없다고 누군가 나에게 말해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고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고 미래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누군가 나에게 믿음을 주면 좋겠다.
10년이 지난 이 책을 읽고 내가 알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에 더이상 믿음이 없어지고, 정말 우리에게 미래가 있는것인지 라는 의심이 생긴다.
우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는 권력을 쥔 높으신 분들 발밑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가엾은 존재인 나의 위치를 떠올리자 더이상 책이 읽기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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