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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은 안녕하십니까? - 흔들리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학
현병호 지음 / 양철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삶 앞에서, 교육 앞에서 자신만만한 이가 어디 있으랴. 외출타기를 하듯 끊임없이 흔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같기도 하다. (6쪽)
그런데 아닌 것 같다. 교육 앞에서, 삶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은 '나뿐'인 것만 같다. 모두들 저렇게 당당한 얼굴로 자신있게 나아가는데, 나만 혼자 날마다 흔들리고 매 순간마다 흔들리는 것 같다. 삶 앞에서, 아이의 교육 앞에서는 더더욱...
아이가 대안교육을 시작한 지 이제 일 년이 되었다.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중고등 과정의 대안학교에 진학했다(진학했다 라는 표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초등 6년 과정 중, 저학년 3년 동안은 학교 생활에 남들보다 뛰어나게, 혹은 남들만큼 적응시켜보려고 동분서주 했고, 그 후 3년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호시탐탐 대안학교를 넘보게 되었다. 주위에 대안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가 없어 나름 각개전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모르니까 일단 규모가 적은 곳은 기피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대안학교도 이름이 알려진, 나름 탄탄해 뵈는 학교였으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탄탄한 대안학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마음에 드는 학교는 편입이 쉽지 않았다. 해서 초등기간에 훌쩍 정규 교육을 포기하는 대담함은 감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면서 집 가까이의 대안학교를 선택하게 된 것은 나름 큰 모험이었다. 물론 입학하는 순간까지도, 아니 어쩌면 지난 일 년간 내내 제도권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를 고민했다(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므로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어느 중학교 학생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렇게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대안교육을 선택하기 까지 격월간 <민들레>의 힘이 컸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줄만 알던 무식한 엄마로서는 누군가 바람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아이에게 대안학교에 대해 알리는 것조차 꺼렸을 것이다. <민들레>를 통해 알게 된 작은 대안학교들은 내가 생각하던 바로 그런 학교들이었다. 내 아이의 자유로운 영혼을 있는 그대로 숨쉬게 해줄 바로 그런 곳이었던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지난 일 년간 무수하게 흔들렸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의 나태한 모습에 그랬고, 생각보다 작아도 너무 작은 학교 규모 때문에도 그랬고, 운영위원이니 대표니 학교를 이웃집 드나들듯 드나들며 선생님들의 온갖 시중들기를 마다하지 않던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모습에 기가 질렸던 나는 대안학교는 더더군다나 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운영된다는 사실이 부담이 되어서도 그랬다.
그런가하면, 입학 전 캠프나 사전 합숙을 통해 대안학교를 체험하고 두말없이 대안학교를 선택했던 아이도 역시 학기 중간 중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중간고사를 잘 보았냐고 묻는 초등학교 친구의 말에 그랬고, 수학이나 영어의 수준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면서도 그랬고, 공강이 있을 때 자기가 이렇게 여유있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스럽다고 했다(겨우 열 네살이 된 아이 입에서 자신이 여유있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내가 그동안 아이를 많이 닥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선뜻 일반 학교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에게 되돌아갈 것을 권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우리 모자는 흔들리면서 첫 대안교육 일 년을 보냈다.
흔들렸으면서도, 흔들리면서도 대안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역시 해보니까 알겠다는 거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무익함을, 그 횡포로 부터 벗어날 수 있었음은 대단한 행운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선택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는, 혹은 아이에게 일조하라는 그런 거창한 포부는 없다. 단지 오늘을 즐기는 아이가 내일도 역시 즐겁게 지낼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남들보다 학력은 부족할 지 모르지만 세상을 살아내는 실력만큼은 부족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아이는 여느 아이들보다 더 느린 템포로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만큼 신중한 아이인 것이다. 한 때는 그것이 세상살이에 큰 해가 되지싶어 아이를 닥달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아이가 달팽이보다 더 천천히 걷는다 해도 그 아이의 걸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다.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정해진 규율대로만 움직이며, 보이는 고지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야 그나마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아이가 제 머리로 생각하고, 가끔 자주 옆길도 흘깃거리며 부딪히고 깨지고 아파해야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다.
이 책은 격월간 <민들레>의 발행인 현병호 선생님이 지난 10여 년 동안 <민들레>에 쓴 글을 모은 것이다. 처음 대안교육을 고민할 때 <민들레>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지난 1년 간의 대안학교 생활을 생각해 보며 2013년 한 해를 정리해 보자는 의미에서 연말을 이 책과 함께 보냈다. 흔들리는 마음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잡을 수 있었고, 역시 우리의 선택이 그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안학교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다. 대안교육을 선택할 때 바로 이점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점이기도 하다. 좋은 학교, 좋은 교사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아이가 인생을 훌륭하게 살아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것이다. 그것이 대안교육 역시 또다른 형태의 교육과잉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현병호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다.
대안교육이 만능은 아닌 것처럼, 이 책 또한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와 교육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이유를 아는 이라면, 그가 부모이든 교사이든 혹은 그저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든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대안교육과는 무관하게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책이니까 말이다. 모두가 안녕하지 못한 시절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교육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