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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ㅣ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한 사회의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쓴 <미국의 목가>, <휴먼 스테인>과 함께 필립 로스의 3부작으로 불리우는 작품 중 하나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이다.
발표순으로 보자면 <미국의 목가>에 이은 두번째 작품이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이지만, 내가 읽은 순으로 보자면 이 책이 세번째로 읽은 필립 로스의 작품이다. 세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은둔 소설가 네이선 주커먼이 작품의 화자인 것 외에도, 사회 속에서 배신당하는 개인, 역사 속에서 무너지는 개인이겠지만,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대중은 한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왜 무너뜨리는가 이다.
삼부작의 주인공들은 사회와 역사에 꼬투리를 잡혔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고 악랄하며 다분히 의도적인 공격 아래 다시는 회생할 수 없을만큼 무참히 무너진다. 그리고 공격의 주체인 대중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한 개인을 희생양 삼을 수도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더더욱 서늘한 진실은 재미로 한 사람을 공격하는 자들의 발부리는 언제든 달아날 수 있게 바깥을 향하며, 그 대중은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일 수 있지만, 반대로 내가 가장 믿었던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공격하는 대중은 어느순간에는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럴 때는 이런 사람, 저럴 때는 저런 사람, 또 다른 데서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필립 로스가 말하는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배신당했지만, 또 다른 곳에서 그들은 배신자일 수 있고, 나 역시 배신당할 수 있지만, 언제든 배신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탓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신체적 조건으로 힘으로 살아남는 법을 일찍부터 익힌 아이라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에서 달아난 후로 탄광노동자, 공사장 인부, 제조공 등을 거치며 알게 된 공산주의자 오데이를 통해 이상주의를 꿈꾸게 된다. 아이라는 이후 노조행사에서 링컨의 연기를 맡으면서 더더욱 이상주의에 심취하고, 라디오 스타로까지 오르지만 그는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으며 혁명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꾀하는 한편으로, 아름다운 여배우와 결혼하고,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그것이 여의치않자 여대생 혹은 매춘부와 불륜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상주의를 꿈꾸는 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명백한 배신이며, 이는 이상주의가 아니어도 배우자에 대한 심각한 배신이다. 그러나 필립 로스의 인간관에 의하면 그 역시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싸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끝내는 자신의 이상과 신념으로 부터 버림받고 생 앞에 무릎을 꿇은 아이라를 보면서 언제가 '세상에 얼마간 거리를 두고 살 작정'이라고 했던 한 정치인이 생각났다. 상처입은 깊은 눈으로 그렇게 말했던 그는 지난 대선에 출마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이고, 세상이며 인간이라고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통해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세상 모든 것과 거리를 두고 혼자 사는 것에 대해 한없이 만족하는 작품 속의 화자이며 작가인 네이선 주커먼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주커먼이 대학시절 만난 교수 리오 글럭스먼에게 푹 빠졌는데, 글럭스먼은 내용상 비중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주커먼을 선동가가 아닌 진정한 예술가로 키워보고 싶어했던 인물로, 어쩌면 그는 역사 앞에 기회주의적이거나 방관자적이지만 그러나 내가 가장 닮고싶은 인물이다.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강의가 매혹적이었다.
잃어버린 대의를 위해 싸우고 싶나? 그렇다면 말을 위해 싸워. 거창한 말이 아니라, 감격적인 말이 아니라, 이걸 찬성하고 저걸 반대하는 말이 아니라, 네가 짓밟히고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선 훌륭하고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걸 존경스러운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광고하는 말이 아니라, 형벌처럼 미국에서 살아가는 교양 있는 소수에게 네가 말의 편이라는 걸 알리는 말을 위해 싸우라고!
예술가의 미덕을 입증하려는 욕망보다 더 사악한 영향을 끼치는 건 없어. 이상주의의 끔찍한 유혹이라고! 넌 너의 이상주의, 너의 미덕을 완전히 정복해야 할 뿐 아니라 너의 사악함도 정복해야 해. 애초에 너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 것, 너의 분노, 너의 정치적 동기, 너의 슬픔, 너의 사랑, 이 모든 걸 미적으로 정복해야 하는 거야! 처음부터 설교하고 자기 입장을 내세우면, 처음부터 우월한 관점을 들이대면 예술가로서 무가치하고 한심한 존재가 되고 말아. 왜 이런 선언문을 쓰지? 주위를 둘러보고 '충격'받아서? 주위를 둘러보고 '감동'을 먹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거짓 느낌을 꾸며내. 무엇이든 즉석에서 느끼고 싶어하는데, 충격과 감동이 가장 느끼기 쉬운 거야. 가장 멍청하기도 하고, 드문 경우가 있긴 하지만 주커먼 군, 충격은 항상 가짜야. -368쪽
내가 주커먼이라면 흔들리지 않고(공산주의자 오데이에게를, 혹은 이상주의자 아이라를 고민하지 않고) 현실주의자인 혹은 그저 단순히 예술가일 뿐인 글럭스먼의 제자가 되었을텐데.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내 삶,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해 고민했을 텐데.
이데올로기는 일정부분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피폐하게 했지만, 분명 세상의 진보에 기여한 바가 있고(그것도 아주 많은 부분에서), 때문에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개인의 삶에 대해 존경과 사의를 표해야 하겠지만, 나라면 나라면 좀 더 나에게 집중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비단 예술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이게는 나를 위해, 단 한번뿐인 내 삶을 위해 그래야 할 것 같다.
출판사 서평을 읽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필립 로스는 한 때 유명 여배우와 결혼생활을 했었다고. 그러나 이혼 후, 여배우가 로스와의 사생활을 폭로한 책을 출판했다고. 그녀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로스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를 출판했다고.
하, 인간과 인간 사이의 배신이라니. 책의 중후반 쯤 아이라는 네이선을 데리고 박제사를 찾아가는데, 로스의 방대한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도대체 이 장면이 왜 필요했는지 내내 궁금했다. 그 궁금증은 책의 말미에 풀렸는데, 아이라를 좋아하고 어느 부분에서는 존경하기도 했던 이 박제사는 아이라가 공산주의자로 폭로되고, 그의 인생이 하락길에 이르자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아이라를 고발하고, 아이라를 좋아했다고 보여지던 그동안에도 내내 아이라를 감시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보다 더 섬뜩한 장면이 있을까.
한 인간을 향한 배신은 곳곳에 잠복해 있다가 그가 내리막길을 들어설 기미가 보이면 서슴치않고 포화를 쏟아내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라도 세상에 약간은 거리를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조금 더 확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