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벌루션 No.3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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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희들 세상을 바꿔보고 싶지 않니?

   "너희들은 공부를 잘 못해서 이 학교에 왔다. 그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인간은 갖고 태어나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 음악을 잘하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유감스럽게도 너희들은 공부하는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 자 그렇다면 너희들은 과연 어떤 재능을 갖고 태어났을까?"
  또 잠잠한 침묵이 교실에 흘렀다. 닥터 몰로가 다시 말했다.
   "공부를 잘하는 놈들과 같은 판에서 싸워봐야 절대로 이길 승산이 없다. 게다가 잘 못하는 것을 억지로 계속할 필요도 없다."
  학급 회장인 이노우에가 반론을 펼쳤다.
   "그래도 세상을 지배하는 건 공부를 잘하는 인간들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 인간들의 지배 하에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너희들이 공부 잘하는 인간들의 세계에서 살려고 하는 한 그렇겠지."
  닥터 몰로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들은 무엇이든 한 가지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을 것이다. 그 재능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서 그 재능의 세계에 살면 공부 잘하는 인간들의 세계는 자연히 소멸될 것이다."
  여전히 교실에는 정적에 가까운 분위기가 맴돌았다. 모두 닥터 몰로가 한 말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애를 쓰고 있었다.
  이노우에가 또 닥터 몰로에게 물었다.
   "만약 자기 재능을 찾아내지 못했을 때는 어쩌죠?"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찾고 찾으면 재능은 반드시 발견할 수 있다."
  닥터 몰로가 대답했다.
  이노우에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래도 찾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죠?"
  닥터 몰로는 난감하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는 공부 잘하는 인간들의 세계와 어떻게든 타협을 하면서 사는 수밖에 없겠지."
  교실 여기저기에서 새어나오는 한숨소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체념의 분위기를 빚었다. 서서히 상황은 닥터 몰로가 교과서를 덮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닥터 몰로는 그런 분위기를 일소하듯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 공부 잘하는 인간들의 세계에 산다손 치더라도 그냥 살아서는 안 된다. 유전자 전략으로 고학력자들이 떼지어 형성하고 있는 답답한 계급사회에 바람구멍을 뚫어야 한다."
  교실 여기저기서, 또 유전자야,란 야유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실의 긴장감은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
   "무슨 뜻이죠?"
  이노우에가 물었다.
   "공부 잘하는 인간끼리의 유전자 결합을 저지하면서 그 한 쪽에 너희들이 끼어 드는 것이다. 우등은 열등과 연을 맺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원래 자연계의 섭리다. 같은 성질의 유전자들끼리 들러붙는 사회는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진다. 피를 한 장소에 고이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교실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닥터 몰로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순신이 침묵을 개고 발언했다.
   "그러니까, 공부 잘하는 여자의 유전자를 획득하라는 말이죠?"
  닥터 몰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공부 잘하는 유전자를 만난 너희들의 유전자는 기뻐 날뛰면서 전혀 새로운 유전자를 창조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난 너희들의 아이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그것을 지켜보면서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요."
  내 왼쪽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가노야가 말했다.
   "우리는 공부 잘하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는걸요."
  닥터 몰로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깊이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것은 어려운 문제다. 그리고 그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오직 한 자기 방법밖에 없다."
  닥터 몰로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놈들은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 닥터 몰로의 말을 기다렸다. 닥터 몰로는 한마디로 답했다.
   "노력이다." 
 

이토록 통쾌하고 유쾌하며 명쾌한 이야기를 들어 본 게 언제였던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치맛바람의 왕국에 이 이야기를 읽어주고 이해시키면 그 바람이 좀 잠잠해지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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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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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의 소설들은 대개 식욕을 자극한다. 적당히 맛있게 튀겨진 바삭바삭한 돈까스 정식이라든가 개운한 된장국, 가볍지만 실한 샌드위치같은 것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아픈 상처를 만났을 때 비록 흔적은 남겠지만 이런 맛있는 음식들로 상처를 기울 수 있다면... [키친]은 왠지 서글픈 파아란 달빛이 비치는 어두운 부엌에서 따뜻한 차 향기와 함께 구멍난 심상을 기우고 있는 소녀처럼 작고 여리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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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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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공포란 이럴 때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두가 하얗게 눈이 먼다면 그런데 단 한 사람은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전자를 택할까 후자를 택하게 될까? 소설 속의 인간들은 너무나 가련하고 놀라우리만큼 잔인할 수 있으며 때론 추악하기까지 하여 나로서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내가 무심코 혹은 의도적으로 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너무나 잔인해서 외면했던 것일까 추악한 자신에 비해 너무나 아름다워 고개를 돌렸던 것일까?

하얗게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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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
프란츠 카프카 지음, 박환덕 옮김 / 범우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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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보이는 카프카는 냉소적이고 여리며 시니컬하고 지적이며 섬세하여 상처받기 쉬운 청년처럼 보인다. 그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과도하게 신뢰하지도 애정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 같다. 모두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그러나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의 비밀에 대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아니 침통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생에서 꾸었던 꿈은 [성], [심판], [변신] 등으로 나타났다. 사후에서 그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도 K처럼 '체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가정'에게서, '직장'에게서, '국가'에게서, 누군가의 '자식'으로서, 누군가의 '부모'로서, 누군가의 '동료'로서, 누군가의 '선배'나 '후배'로서...... '삶'이라는 '재판'에서 도망칠 수 없는 우리는 죽음으로서 벗어나거나, '체포'된 상태를 나름대로 즐기거나, 즐길 수 없다면 망각하거나 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죽음은 정말 '체포'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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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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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하리만큼 사실적인 오래된 미래 1984년.
언어와 역사가 당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성본능조차 당에 충성할 자녀를 생산하는 수단으로 억압되며, 첨단 미디어 매체를 이용한 획일화, 규격화에 숨막힐 듯한 전체주의 사회.
공산주의 국가가 하나 둘 붕괴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허무맹랑한 공상이라 치부하기에 너무나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조지 오웰의 뛰어난 통찰력과 비판 의식 때문일까 아니면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겉포장아래 감추어진 우리의 진짜 모습이기 때문일까? TV속에서 웃고, 감동하며, 분노하고, 눈물 흘리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실제로는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로 인해 조작되고 통제된 것들이라면?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지구촌의 극히 일부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보여지는 것 너머에, 그리고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아니 어느새 우리의 의도가 되어 외면한 그곳에 [1984]년 만큼이나 냉혹한 절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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