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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법
사이다 지음 / 모래알(키다리) / 2023년 3월
평점 :
표지 그림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화산이 분출하는 듯한 역동성을 느꼈다.
종이를 찢고, 겹치고, 오리고, 구멍을 뚫어서 벌리는 등 흥미로운 작업을 거친 그림책은 마치 종이 놀이를 하는 공간으로 독자들을 직접 초대하는 듯한 분위기다.
태어나는 것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수런수런, 들썩들썩 한다.
수많은 생명들의 서로 다른 탄생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보여주는 이 그림책은 그래서 매우 감동적이다.
태어나는 모든 것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싶은 작가의 메시지가 귀하고 가치롭다.
여행하는 식물의 씨앗부터 알을 깨고 나오는 새, 부화되어 바다로 이동하는 거북들, 나무 열매들까지 모두가 새롭게 태어나는 다 같은 존재들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는 넓고 크다.
우주 만물의 탄생과 소멸, 자연의 대순환 속에서 우리 인간의 삶 또한 다른 생물들과 다르지 않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겉모습이 다를 뿐 그 속에 깃든 생명은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그림책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생물학적인 탄생 뿐만 아니라 개인의 내적 깨달음이나 사회적 지위의 변화로 인한 새로운 탄생까지도 다루고 있어서 놀라웠다.
-태어났다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야.-
아뿔싸!
무사히 바다에 도착했지만 아기 거북들을 노리는 상어가 있었으니...
그로부터 자기 새끼를 지키는 아빠 거북의 모습은 멋지고 당당했지만 왠지 울컥하기까지 했던 장면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 엄마도 태어나지.-
무한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첫 아이를 낳고 막막했던 그때의 심정이 덜컥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위로가 되었나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들이 참 많았지만 처음이라 완벽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말해 주는 듯 하였다.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지난 가을 땅 속에 묻어두었던 알뿌리들의 싹이 트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어서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세상에!
언 땅을 뚫고 뾰족하게 올라오는 새싹들의 푸른 생명력은 압도하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마치 땅 속으로부터 솟구치는 푸른 주먹과도 같은...
사실은 그림책의 모든 장면이 다 소중하였다.
작가의 손끝 열정과 마음에 담긴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더 눈길이 가서 한참을 머물렀던 장면이 있어 소개하고 싶다.
-매일매일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앙리 마티스의 <춤>을 딱 연상시키는 그림도 좋았지만, 단호한 듯 부드러운 이 문장에 꽂혀서 몇 번을 되뇌이는 것이었다.
반복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태어나는 법》이라는 제목은 매우 유의미하다.
2023년 새로운 봄을 맞이할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그림책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뒤면지의 작가 프로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밤이 되어 잠이 들면 어제의 나는 죽습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뜰 때 오늘의 내가 태어납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비록 캄캄한 어둠이 찾아오더라도 내일은 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내 안에는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힘이 있음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피워낸 그림책 세상!
절제된 색감과 흰색 종이의 두터운 질감이 신비로운 정서를 자아내면서도 순수하고 고급지다.
함께의 가치, 공존의 철학을 공유하며 독자와 소통하는 사이다 작가님 파이팅!
실존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많아지는 요즘의 나에게 진짜 친구처럼 스승처럼 다가왔다.
그림책을 만나는 순간, 따스한 지지를 받는 것처럼 행복했다.
늘 곁에 두고, 자주 만져보고 싶은 그림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