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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스웨터 ㅣ 알맹이 그림책 62
오이카와 겐지.다케우치 마유코 지음, 김선양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3년 3월
평점 :
"여기, 추위를 잘 타는 게으른 고양이가 있어요."
그 고양이한테 왠지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또한 추위를 잘 타는 게으른 인간이라서 그런가?
나를 닮은 구석이 좀 많은 그 고양이에게 관심이 생겨났다.
고양이가 혼자 살고 있는 집 안은 소박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서랍장 옆에는 우쿨렐레처럼 보이는 악기도 있다.
헉! 나랑 악기 취미까지 똑 같다.
침대가 하나, 의자도 하나...무엇보다도 추위를 잘 타는 고양이에게 몸을 덥힐 난로가 있어서 참 좋았다.
와~이 정도로 감정이입이 될 줄이야!
저 기다란 검정 탁자에 '모자 봉투'가 놓여져 있는데, 저건 무엇에 쓰이는 것일까?
에구머니나!
고양이가 입고 있는 스웨터가 다 늘어나서 너덜너덜하고 커다란 구멍이 두 개나 뚫려 있다.
난감하~네~~!
그나마 고양이에게 일이 있어서 다행이다.
존엄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아무래도 일과 건강일 테니까 말이다.
'모자 봉투'가 놓여진 기다란 작업대 위에서 고양이가 하는 일은 도토리에게 모자를 씌우는 것이다.
맨머리의 도토리들에게 모자를 씌우는 일은 꽤나 유의미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도토리들은 모자를 그리 썩 달가워하지않는 듯 작은 비명을 내지르곤 한다. 고양이는 그럴 때마다 미안하다고 하거나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그래서 세 개쯤 씌워주고 나면 고양이도 금세 싫증을 내고는 일을 그만둔다.
-"아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잖아?"
추위도 잘 타고 게으른 고양이는 참을성까지 없나 봐요.-
텍스트와는 다르게 시계를 쳐다보며 활기를 되찾는 고양이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게 바로 일상의 기쁨일 것이다.
입꼬리는 잔뜩 올라가고 콧잔등은 촉촉하다.
눈썹을 한껏 치켜 올리고 꼬리까지 바짝 세우고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찬 모습이 아닌가!
아침 식사는 식빵 두 장과 홍차 두 잔.
저녁 메뉴는 무엇일까?
고양이는 너무 배가 고픈 탓에 걸어가면서 통조림을 먹고, 우유는 꼬리로 들고 마신다.
매너가 없는 고양이라고?
그러면 안 되나? 누구 눈치라도 보아야 하나?
나도 혼자 있을 땐 자유를 만끽한다.
내 방식대로 먹고, 입고, 자고 한다. 격식이나 매너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도 못한 형편이다.
작업대 위에 있던 도토리들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떼창을 부르며 놀려댄다.
- 구멍이 났네
구멍이 났어
고양이 스웨터
구멍이 났어
"얘들아, 그런 노래는 이제 그만 불러..."
고양이는 너무 부끄럽고 슬퍼서
얼굴이 빨개지도록 울었어요.-
성질도 급하고, 매너도 없고, 부끄러움이 많아 툭 하면 울고, 좀 못난 것 같지만 미워할 수 없이 자꾸만 눈길이 가는 어느 고양이의 이야기
출판사 서평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 그림책은 비주류 성향을 가진 어느 고양이의 하루하루를 그려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하지 않다. 밝고 따스한 색감으로 고양이의 일상을 응원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이었다.
치열하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도전적인 삶 말고,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욕심 부리지 않는 평온한 삶 또한 가치로운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나보다.
덕분에 한결 느긋해진 기분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지만 한동안 고양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추위 잘 타는 고양이에게 따뜻한 털실로 손뜨개 스웨터 한 벌 떠서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밝은 노랑색도 잘 어울리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