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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싶어서 그림책을 펼쳤습니다
김수영 지음 / 책읽는곰 / 2023년 5월
평점 :
그림책과 라캉의 만남!
아동 문학과 라캉을 연구해 온
저자의 안내를 따라 정신분석 이론으로
친숙한 그림책을 다시 읽으며
나의 무의식과 욕망에 귀를 기울여 보고
'우리' 안에서 오롯한 '나'로 살아갈
힌트를 발견하기를...(출판사 서평)
라캉 이론은 잘 몰라도 작가가 주선하는 이 만남에 어쨌든 초대받고 싶었다.
아마도 그것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그림책을 펼치며 울다가... 웃다가...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래서 자꾸만 그림책이 좋아졌다.
그냥 좋았던 그림책 이야기들이 이 책을 통해 고유한 색깔의 옷을 입고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김수영 작가는 프로이트와 라캉으로 다양한 그림책과 동화를 분석하고 강의하며, 동화 창작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명징한 문장들이 커다란 숲을 이루는 듯 하였다.
마음을 파고 드는 문장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채 그림책 독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그림책의 그림에는 작가의 무의식이 직관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글과 그림이 상호 작용하면서 독특한 스토리를 형성합니다. 여기에 우리 삶을 관통하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이 더해지면, 보다 쉽고도 깊이 있게 '나'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림책과 함께 나를 탐구하다 보면 '너'와 '우리'를 이해하게 되는 건 덤이지요. 결국 관계 속의 개인일 수밖에 없는 나는 어느새 그림책에서 얻은 힌트들로 그 관계 속에서 행복해지는 길을 찾고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4개의 챕터로 구성하였는데, 소제목들만 보아도 매력적이다.
1부. 내 맘대로 안 되는 나
2부. 욕망과 관계의 마법
3부. 무의식, 너란 녀석
4부. 트라우마 달래기
게다가 각 챕터마다 한 페이지 분량의 서문을 두고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형식은 매우 참신한 아이디어다.
-1부에서는 라캉이 말하는 자아와 충동과 욕망이 그림책에서 구현되는 방식을 살펴보며 지금 나에게는 어떻게 투영될 수 있을지도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2부 '욕망과 관계의 마법'에서는 그림책을 통해 주체 형성 과정에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를 살피고, 욕망하는 주체로서 승화된 삶은 어떤 것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무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밀접하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행복해지려고 평생 노력했는데 불행의 밑바닥에서 발견되는 무의식의 반전!
3부에서는 무의식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좀 더 깊이 고찰해 보려 한다.-
-4부는 나는 왜 이유 없이 슬퍼지는지 그 근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다음으로 '죽고 싶은' 심정에 대해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은 애도의 조건이다. 그 조건들을 그림책을 통해 살펴보면서 상실로 아픈 모두가 애도의 터널을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고급진 표지 디자인부터 알차고 흥미로운 본문 내용, 군데 군데 심어 놓은 용어 풀이 및 그림책 이미지들까지 유의미한 순서와 체계를 갖추고 있어 우아한 품격이 느껴진다.
모든 챕터가 다 훌륭했지만 특별히 1부와 4부에서 감동이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왜 거울에 비친 나를 사랑할까
나는 왜 배고프지 않아도 끊임없이 먹을까?
나는 왜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을까?
한 순간도 지치지 않고 귀를 쫑긋거리며 들었다.
라캉의 이론에 빗대어서 콕 집어 맛깔나게 읽어주는 그림책의 세계는 무한궤도에 올라탄 나의 작은 우주가 되었다.
김수영 작가의 그림책 해석력도 놀랍지만 그림책 작가들의 정신 세계 또한 경이적이다.
1부에서는 이수지 작가의 《거울 속으로》 《 파도야 놀자》를 비롯하여 12권의 그림책을 읽었다.
이수지 작가는 백희나 작가와 함께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그림책 작가로 손꼽힌다. 세계적인 작가로 그 명성을 떨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작가가 읽어주는 그림책은 통틀어 50권이다.
익히 아는 것도 있고 처음 만나는 것도 있었다.
책을 읽는 중간 중간, 궁금하면 도서 검색창을 두드렸다. 그렇게 해서 새로이 구입한 책이 바로 이거다.
《아주 아주 많은 달》(제임스 서버 글. 루이스 슬로보드킨 그림. 황경주 옮김. 시공주니어 1998)은 우리 삶에서 환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몰랐으면 몰라도 이 글을 읽고 나니, 내 책장으로 꼭 데려오고 싶은 그림책이 되고 말았다.
《책 먹는 여우》(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김경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2001)는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즐겨본 경험이 있는 매우 친근한 책인데, 작가가 알려주는 라캉식 해법 또한 일품이라 다시금 반하였다.
이 책은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 안내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라캉을 잘 몰라도, 라캉의 이론에 접근하기 어려워도 작가가 안내하는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책을 읽고 나면 뭐가 달라지려나 기대하셨나요? 당연하지만, 정신분석 이론으로 그림책을 분석한다고 해서 당장 내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주 약간은 후련하지 않으신가요?"
차분한 어조와 미소 띈 얼굴의 작가를 눈 앞에서 대한 듯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찾는 여정에서 비로소 만나는 충만한 그 곳, 작가의 말처럼 나를 삼킨 언어의 욕조에서 나만의 언어를 건져 올리는 혜안을 얻은 듯 마음이 벅찼다.
타자의 욕망이 아닌, 나의 고유한 욕망을 탐색하고 추구하며 오롯이 나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