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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바위 뒤에서 ㅣ 신나는 새싹 201
엘로디 부에덱 지음, 김주경 옮김 / 씨드북(주) / 2023년 7월
평점 :
계절 중에서 여름을 가장 좋아한다.
비발디의 <사계>도 당연히 '여름'이다.
격정적인 음악이 휘몰아치는 바로 그 악장에 도달하면 어김없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 그림책의 분위기 또한 만만치 않다.
술래잡기 장면도 그렇고, 금지된 곳을 탐험하는 장면도 그렇고...특히 돌연히 나타난 모래성을 방문하는 장면은 매우 그로데스크하다.
독특한 색감의 일러스트도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책 작가가 모래를 그래픽 도구로 사용하는 예술가라고 해서 의문이 풀렸다.
반짝이는 모래의 질감을 그림 위에 얹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판타지 스토리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첫 페이지부터 강렬하다.
단 하나의 컷으로 뜨거운 여름의 이미지를 이토록 인상적으로 구현해 내다니!
영화감독이기도 한 엘로디 부에덱 작가의 감각적인 연출 솜씨에 일순 감탄하였다.
그림책은 가족과 함께 여름 바다를 찾아온 여섯 명의 아이들이 휴양지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아이스크림으로 열기를 식힌 아이들은 술래잡기 놀이를 하기 전에 새 별명을 하나씩 짓는다.
화자인 '나'는 새우다.
새우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워서 그렇게 정했다고 한다.
곰치와 해마, 새우가 한 편이고 다른 편은 소라, 정어리, 고둥이다.
숨을 곳을 찾아서 바위 뒤로 간 곰치와 해마, 새우는 거대한 모래성을 발견하였다.
곰치 언니가 나서서 말을 걸자 웬 물고기가 입구로 나와서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이들은 뜻밖에 모래성 안을 구경하게 된다.
그곳은 문어 여왕이 다스리는 '모래와 짠물 왕국'이었다.
해초로 만든 차와 플랑크톤으로 만든 과자는 맛이 좋았다.
문어 여왕은 왕국의 특별한 수집품들을 보여 주겠다며 전시장에도 데려갔다.
"육지 친구들아, 즐겁게 감상하거라. 이것들은 모두 아주 먼 곳에서 온 보물들이란다."
세상에!
기겁할 만한 장면이 아닌가!
칫솔, 빨대, 병뚜껑, 안경, 면봉, 고무풍선, 어망, 드럼통, 비닐 장갑, 콜라캔...등의 바다 쓰레기들을 보물이라며 귀하게 진열해 놓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다 예술혼까지 불어넣어 조형작품으로 승화시키기도 하였다.
이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바다 생물들을 기만하고 피해를 입히는 인간들의 해악을 어찌하면 좋은가!
미안하고 부끄럽다.
-난 이런 물건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이상했어요. 여왕님은 전시된 물건들이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는 것 같았거든요.-
그림책은 해양 오염의 실태를 역설적으로 꼬집으며 독자들의 경각심을 높인다.
사실은 나 또한 뜨끔하였다.
본의 아니게 바다에 이물질을 투척(?)했다는 아리송한 죄책감 같은 것 때문일 것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그날 그 바닷가, 급작스런 파도가 덮쳐 새로 장만한 내 수영복을 난데없이 빼앗아 가버렸다.
그런데 내 수영복은 지금 어느 바다를 떠돌고 있는 걸까?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생활 쓰레기들은 철저하게 분리수거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생존의 법칙이다.
-해변에 떠밀려온 향유고래 사체 속에서 6kg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왔다고 인도네시아의 생태공원 관계자가 말했다.
또, 죽은 고래의 위 안에선 플라스틱 컵 115개, 플라스틱병 4개, 비닐봉지 25개,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끈을 끼어 신는 플립플롭 샌들 2개 등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유엔은 매해 바다에 약 100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버려지고, 이로 인해 해양 생물들이 회복이 불가할 정도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2018년 11월 21일 : BBC NEWS 코리아)
이 기사가 나간 이후 세상은 어떻게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우리 모두가 안전한 바다를 지키는데 동참해야 할 분명한 이유에 대하여 여러모로 생각하게 되었다.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그림책을 만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