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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에버그린 - 두근두근 첫 심부름
매튜 코델 지음, 이상희 옮김 / 미세기 / 2023년 7월
평점 :
명작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경이로운 작품이다.
6개의 챕터로 구성된 그림책의 형식은 마치 고전의 향기를 입은 듯 예스럽다.
페이지를 넘겨갈 수록 예기치 못한 인물들의 등장에 극적 긴장감이 감돌고, 몰입도 높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작가적 역량에 엄지 척!
주인공은 겁 많은 소녀, 다람쥐 에버그린이다.
-에버그린은 침실 창문을 커튼으로 꼭꼭 가린 채 숨어 지냈어요.
시끄러운 소리가 두려웠고, 낯선 동물하고 마주치는 게 두려웠어요.
높은 곳이 두려웠고, 헤엄치기가 두려웠고, 병균이 두려웠어요. 그리고 폭풍우도요......
에버그린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건 폭풍우였지요!-
글자없는 그림책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로 칼데콧 대상을 수상한 매튜 코델 작가는 동화 버전의 이번 신작을 통하여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문장 하나라도 허투루 쓰이는 법이 없다.
착착 감기는 입말을 살려낸 문장력, 긴밀한 서사 구조,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져 놓은 복선은 몰입과 감탄을 끌어낸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기가 막힌 유머 코드를 기대하시라!
에버그린의 심부름 길 제 2탄이 곧 나올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이들 심부름에 관한 그림책은 의외로 많다.
그만큼 임팩트 있는 소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그림책 또한 '두근두근 첫 심부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의 심부름 길도 두근두근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림책 속 에버그린의 심부름 길에 동행하면서 누구보다도 깊이 공감하였던 것 같다.
긴장감과 스릴 넘치는 에버그린의 모험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가장 스펙타클했던 제 '5부 곰' 이야기는 정녕 압권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림책 세상!
잠시나마 그곳에 머물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미안해, 에버그린. 어쨌든 네가 다녀와야 해. 오크 할머니는 많이 아프시고, 엄마는 여기서 메이플 아주머니의 발진을 가라앉힐 수프를 만들어야 해. 네가 두려워하는 건 알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대화였다.
유난히 겁이 많은 딸 아이에게 위험할지도 모를 심부름을 이토록 태연하게 시킬 수 있는 엄마라니...
과연 보통 엄마가 아니다.
-엄마가 만드는 수프는 쌀쌀맞은 이를 다정하게 만들고,
졸린 이를 번쩍 정신 들게 만들고,
심술쟁이를 상냥하게 만들었어요.
심지어 병든 이를 기운차게 만들었지요.
마을에 사는 모두가 그걸 인정했어요.-
정작 주인공 에버그린보다도 더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재능으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올곧은 신념으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닮고 싶은 캐릭터이다.
그림책 덕분에 어린 시절의 향수에 푹 젖어들었다.
겁나고 두려울 때마다 나는 노래를 불렀다.
어두워진 골목길에서, 처음 만나는 여러 상황들에 부딪칠 때마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는 노래를 불렀다.
노랫말 속에 담긴 서정적인 문장들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용기를 키워 주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씩 그 시절 즐겨 불렀던 동요를 소환하며 유난히 겁이 많았던 어린 나를 보듬어 주기도 한다.
겁쟁이 에버그린의 심부름 길에 기꺼이 동행하면서 좋은 추억 하나를 더 보탠다.
작가의 마음을 담은 헌사도 기억에 남는다.
'집 안팎의 모든 모험을 함께하는
사랑스런 아들 딘에게'
가까이 두고 자주 만나고 싶고, 주변 아이들에게도 재미나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보고 자유롭게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