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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 생각 : 살아간다는 건 뭘까 ㅣ 인생그림책 2
브리타 테켄트럽 지음, 김서정 옮김 / 길벗어린이 / 2020년 5월
평점 :
허튼생각 할 시간에 집중해서 공부를 했다면
저는 아마 하버드 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했을거예요.
선생님이 어차피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거라고,
무조건 오래 앉아있는 놈이 이기는거라고 말씀하셨지만
글쎄요, 저는 앉아서 계속 허튼 생각 했는데요.

어릴 때 허튼 생각을 아주 질리도록 해 둔다면 어른이 되었을 때 덜 하게 될까? 생각한 적도 있다니까요.
그런데 결론은, 전혀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지도 더 뻗어나가고 잎도 더 많아지고!
어른이 되고보니 어렸을 때 했던 허튼 생각들부터 지금 또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허튼 생각까지 머릿속이 아주
꽉꽉 들어차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 생각하다가 머리가 꽉 차서 터진 사람은 없다는 거 보니 사는데에 지장은 없나봐요.
오늘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쉬지않고 생겨나는 <허튼 생각>을 읽어보겠습니다.

브리타 테켄트럽의 콜라주, 판화로 이루어진 독특한 질감의 그림과
짧고 명료하지만 강렬한 질문들로 이루어진 책이랍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책을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읽으면서 천천히 호흡하고
천천히 생각을 시작해 보는 재미가 있어요.

어릴 땐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생각이 되네.
예전과 생각이 많이 달라졌네.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네.
질문 하나하나에 예전 기억들을 곱씹어보다보면 허튼생각으로 가득찼던 어린 시절로 돌다가는 것 같아요.
만일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즉시 말로 다 뱉어야 한다면 어린 아이들은 좀 조용히 하라고 혼날까요?
아뇨, 어른들도 쉬지않고 뱉을걸요. 그러면 모두가 쉬지않고 말할테니 오히려 아무도 안 혼날수도...

소설이나 동화속에서 '장례중에 나비가 날아왔는데 한참을 맴도는 것이 마치 그 사람인 것 같았다'는 표현들이 나오죠.
그럼 나중에 그 나비가 죽으면 나비의 혼은 어떻게 되는건지?
나도 죽어서 나비가 되면 그 때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되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하는데 곤충이나 식물도 영혼이 있을까요?
잘 키우려고 했던 꽃나무나 물고기가 죽으면 걔네들은 죄가 없으니 천국으로 가면서 저를 원망할까요?

저희 학교에 진짜 별난 아이가 있었거든요.
개인의 자유가 단체 생활보다 중요한데 어쩔 수 없이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있는 아이.
저는 그냥 사춘기 애들 중 하나구나 생각했는데 아이들 사이에서는 약을 먹는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정말 아픈 게 아니고 단지 관심받고 싶어서 행동하는거였다면 이 소문은 정말 큰 상처가 될 것 같죠...
하하 넌 정말 재미있는 아이로구나! 라는 반응을 원했는데 어머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구나! 가 되어버리면
그럼 그건 어떻게 돌이키죠?

읽다보니 지금도 허튼생각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오네요.
그런데 확실한 건, 어릴 때 허튼 생각을 하고나면 뒤따라 현타가 오는 이유 중 하나는
물론 현실 적용 불가, 발생 가능성 제로 뭐 이런 것도 있지만
나만, 세상에 나만 혼자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하는 외로움 + 한심함.
근데 여기 작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대요. 여러분도 그런 생각 하시나요?
질문만 하고 대답은 안해주는 불친절한 책이지만
허튼 생각은 원래 답이 없어요. 누가 답 해주지도 않구... 원래 노답인거져.
대신 더 깊고 깊은 질문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어쩌면 질문하는 과정 자체가 답일수도...
오늘은 평일 아니고 주말이니까 하루 종일 <허튼 생각>해 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