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모 엔젤리너스
이명희 지음 / 네오휴먼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아마 요즘만큼 개인기부와 봉사가 보편화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고무적인 일이다. 내가 중, 고생이었을 때만해도 봉사라는 건 학교에서 기본점수를 얻기위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하던 게 다였다. 그나마도 복지관 등에서 하는 일은 드물고, 관공서에서 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인터넷이 발달되면서 자유로운 정보의 교환과 함께 자연스레 봉사와 기부에 대한 문화도 확산될 수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누군가의 좋은 일을 보고 나도 한 번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우연히 읽은 글에서, 우연히 방문한 블로그에서, 우연히 만남 누리꾼에게서 좋은 생각과 좋은 정보는 지금도 교환되고 있다. 그리고 여기, 좀 더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우리도 그들처럼...이라는 생각을 갖고 글을 쓴 이명희 씨가 있다.
호모 엔젤리너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삶 속에서 직업으로 혹은 봉사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님과 연예인 홍서범, 박상민 씨, 그리고 유명인사는 아니지만 삶에서 조용히 나눔을 실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윤진경 씨 등.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의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외계층에 대한 물질기부 뿐만 아니라 재능기부와 문화기부 등 잘 알지 못했던 곳의 다양한 나눔의 방식들을 알려주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예시들은 소외계층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거의 없다. 목소리로 책을 녹음하여 시각장애인들이 문학과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헌혈을 통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어령 교수님 부부의 경우, 사재를 털어 박물관을 만들고, 국내에 천 개의 박물관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자신들이 일구어놓은 분야에서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계신다. 박원순 변호사님은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나눔을 실천하시는 소셜 디자이너시다보니, 인터뷰 내용도 가장 길었고, 느끼는 바도 컸었다. 무엇보다 매일 블로그에 접속해 콩을 하나씩 받는 것을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하는 나로써는 해피빈 사업이 박원순 변호사님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느꼈다. 또한, 현재 진행되는 미소금융사업의 제안도 희망제작소에서 시작된 거라니, 그분의 생각과 나눔에 대한 열정은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사족이 많았다고 해야할까. 처음에 서문이 너무 길어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깊게 듣고 싶었던 마음에 지루함이 들기 시작했다. 서문을 그냥 건너뛸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글쓴이의 생각이 궁금했기에 끝까지 읽었는데, 결국 서문에서 하고자 하던 이야기가 나중에 인터뷰 내용 중에 다 들어있어, 뭔가 김이 빠진 느낌이었다. 두번째는 한정적인 인터뷰이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는지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호모라는 단어가 가진 보편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좀 더 평범한 이들의 나눔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책에 나온 사람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기업의 고위직 임원, 변호사, 교수, 관장 등 이미 사회 고위층이거나 삶 자체가 나눔인 사람들이었다. 이런 분들의 삶을 통해 물론 느끼는 바는 많다 하겠지만, 과연 나도...라는 생각을 숨길 수는 없었다. 책을 읽고 남은 생각은 나는 그분들처럼 똑똑하지 않은데, 한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데, 과연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가장 큰 생각이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인터뷰이로 선택했다면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나의 나눔에 대한 식견을 넓혀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몇 년 전부터 나 역시도 나눔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지면서 각종 봉사와 나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때론 일회성에 그칠 때도 있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는데, 앞으로 다양한 나눔에 대한 다양한 루트를 생각해보고,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질적인 것보다 내가 가진 재능과 시간을 기꺼이 내 줄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 큰 의미의 나눔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