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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
김쿠만 지음 / 허블 / 2025년 3월
평점 :
(출판사 허블 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SF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어서 그런지
김쿠만 작가의 원스어폰어타임인판교(허블 출판)를 읽는 동안. (덮고나서도)제법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것을 SF소설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SF소설이라 함은,
시대는 수백년 수천년이 지난 미래이면서 인간성은 사라지고 적어도 사이보그 또는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사이버틱한 요소들로 가득 채워진 무채색의 장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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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표제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를 비롯한 총 9개의 소설들은 우리네 일상 이야기같다. 지금의 우리와 같은 피부 밑에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무채색이지 않다.
물론 시대는 미래이다.
굴지의 게임회사가 천억을 들여만든 게임이 초등학생들 과제수준밖에 되지 않거나, AI가 소설을 쓴다거나(심지어 등단하는 책 대부분이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는), 바다 위의 배는 로봇이 조종칸을 잡고, 전쟁의 배경은 지구 밖 우주인 그런 등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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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담배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아무런 어시스턴트 장비가 없는 옛날 포드를 몰고, 화장한 스승의 유해를 뿌리기 위해 유언을 따라 수십년 된 인간 선장이 모는 배를 타고, 전쟁에서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위해 이박사의 몽키매직이 흘러나온다. 아 또 디지털 영사기가 아닌 실제 필름을 걸어서 영화를 틀던 지금 우리에게도 구식인 시절의 이야기도 들어있다.
위의 소재들이 SF소설에 걸맞는가?
각각의 제목이 붙여진 독립된 소설들이지만 모든 소설을 관통하는 소재들이 존재한다.
레드애플 이라는 담배 브랜드, (지진으로 수위가 오르고 수온이 상승했거나, 첨단 문명에 적은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첨단 장비없는 신도시가 된)남해 등등.
이런 소재들이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하나의 주제를 던진다.
급격하게 첨단 사회로 변모해가는 와중에도 느리게 나아가는 사람들이 항상 있다고.
유행 또는 대류에 편승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인양,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데도 쳐지지 않기위해 아둥바둥 거리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김쿠만 작가는 이런 사람들을 비판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러하다 저러하다라고 평가하지는 않지만 첨단의 세상이 배경인 글에서 올드팝을 틀어주는 낡은 바 라던지, 자동차가 수백킬로의 속도로 달리는 와중 여전히 30킬로 정도의 속도로 지나가는 기차라던지,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물 양을 많이잡아 싱숭맹숭하게 끓여주는 라면이라던가, 다 똑같이 생긴 무인자동차가 아닌 털털거리며 달려가는 빨간 구식 스포츠카 따위가 나도 모르게 ‘이게 낭만이지’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바쁘게 변화하는 사회 속 지금 모습 그대로, 자기만의 속도로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김쿠만 작가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런 옛것(과거)를 간직하고만 있지말고
외팔 스승에게 스시를 배워 당연하게 한손으로만 초밥을 쥐던 제자가(남해로 스승의 유해를 뿌리러 간 그 제자다)깨끗이 씻어두었던 스승의 유골함을 잃어버리고, 다시 스승의 가게로 돌아와 영업을 시작하며 “이제 그럴때가 된 것 같아서요”라며 양손으로 초밥을 쥐고, 수십년동안 걸려있던 가게 간판을 새카맣게 태워버려야겠다고 말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까지 보여준다.
과거의 것들을 애정하며 간직할 것은 간직하며 그때로 돌아가고싶다, 그 때가 좋았다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자가 아닌 앞으로 각자의 속도로 나아가자라고 말하는 그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신바람 이박사의 Encyclopedia of Pon-Chak처럼, 처음에서부터 듣던, 중간 어디에서부터 듣던 자연스러운것 처럼, 과거와 미래가 잘 “비벼져있다”
김쿠만 작가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는 거북하지않게, 더부룩하지않게 깔끔하게 잘 먹을 수 있는 9가지 반찬이 정성껏 놓여진, 맛깔난 밥상이다
색다른 SF소설을 읽고싶다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판교.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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