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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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어떤 장르에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적어도 반세기, 크게는 백여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내어 현시대인들에게 고전이라 불리고 감상되는 것들은 ‘명작’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고전’이면서 ‘명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은 인종이나 국가를 넘어서 널리 보여져야 하고 그렇게 만들 의무가 현시대인에게는 있다고 생각한다.

#모데란 (#데이비드R번치 저 / #현대문학 출판)이 그런 고전이자 명작인 작품이었다.

니체와 함께 책을 썼을 것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심오하고(어쩌면 난해한) 유토피아가 결국 디스토피아였다는 철학적인 SF소설을 썼던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한 작가들중에서도 아웃사이더였던 괴짜중의 괴짜 데이비드 R. 번치는 일생을 ‘모데란’단편을 애정을 갖고 수십년동안 수십편을 작성하며 모데란의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이미 이 스토리만으로도 전설이라 불릴만하다.
거대한 세계관을 오류없이 수십년 동안 확장 시켜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판타지와 이세계물 같은 거대한 세계관을 지닌 소설들이 흔히 말하는 떡밥회수에 실패해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고 있는가.
자신이 창조한 신금속 인간의 절묘한 신체구조처럼 세세한 설정들이 하나의 어그러짐도 없이 맞물려 돌아간다.

도례하지않는 일들을 상상력으로 쓰면서 또 그 내용들을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것으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을만큼 설정하고 창조해 내야하는 SF장르 특유의 성격 탓일 수도 있지만 작가의 집념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부분임은 분명하다.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대지, 플라스틱 대지에서는 스위치만 올리면 금속 나무와 꽃이 튀어나온다. 인공 하늘에는 증기방어막이 계절에 맞춰 형형색색의 빛이 쉼없이 흐르고, 엔진을 부착한 금속 새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환경이 독으로 변하고 지구상의 생명이 멸종 위기에 처하자 사람들은 모든 생명의 자리를 기계로 대체하고, 자신들의 피와 근육과 살점마저도 금속으로 교체하며 ‘신금속 인간’으로 ‘진화’한다. 그 중애서도 혈육의 금속 교체율이 가장 높은 (오직) 젊은 남성만이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사나이의 목표와 사나이의 관점을 가진 사나이의 나라” 모데란 성채의 주인이 된다.

성채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은 ‘올데란’에 모여 살아가는 가는데, 특히 출산을 연상케하는 아홉 달의 끔찍한 금속 교체 수술을 견딜만큼 강하지 않은 잔소리만 늘어놓는 여성들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하얀 마녀의 계곡’으로 이주 및 감금되어 살아간다.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모데란의 신금속 인간들에게 삶의 목표란 오직 전쟁과 그에 따른 쾌락뿐. 어쩌면 전쟁도 쾌락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전쟁을 벌이지 않는 동안에는 전쟁의 계획을 세우거나 신금속 인형과의 일상의 쾌락을 즐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초월적 존재로 여기면서도 그들은 전쟁이 중단될 때마다 찾아오는 권태와 공포에 몸서리친다.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군인들의 사회 부적응이 이런 것일까.
심지어 신금속인형이 보이는 열정마저도 두려움으로 느낀다.
무엇이 그들을 여전히 의심케 하고 증오하게 하며 두렵게 하는 것일까.
그들이 그렇게까지 자신의 몸을 재련하고 진화시키고 전쟁을 일으키며 얻고다 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것이 스포일러를 배제한 ‘모데란’의 커다란 설정이다.

반세기 전의 그것이라 칭하기에는 너무나 훌륭하고 몰입감 있지 않은가? 너무나 공상같지 않고 SF적 설정을 제외하면 현시대의 우리 사회가 겪고있는 여러가지 모습(문제들)과 거의 대부분 상응하고 있다라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누구나 초등학교때 미래의 세상을 그려라 하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 해외여행가듯이 가볍게 떠나는 우주여행을 수십년동안 그려내도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인간의 공상은 여기에 머물러있다) 그 시대는 오지않았는데, 수십년 전 한사람의 공상은 오늘날의 현실에도 머물러 현실이 되었다.

작품이 어둡고 시적이고 읽는데에 많은 심력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시대적인 세계관설정과 시적 철학적인 지배자의 독백들은 책을 읽지않는 일상 보편의 시간에서 뜬금없이 나도 모르게 곱씹고 사유하게 만든다.
그 사유의 시간이 전혀 불편하지 않다.
사유와 공상 할 거리를 주는 것이 SF소설의 맛이 아닌가.

씹고 뜯고 맛볼거리가 충분한 <모데란> 많이들 잡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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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얼굴 - 얼굴로 본 인간 진화의 기원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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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는 말이 있다.

최근 인기리에 다시 방영되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활동 중인 샘킴 쉐프를 보다가 저 말을 다시한번 상기했다.
10년전 냉부에서는 성자 라고 불릴정도로 유순하고 한없이 따뜻하고 자비로운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얼굴에서 약간의 뾰족함?모남? 이 보인다.
그리고는 MC들도 부쩍 화가 많아졌다고 놀리고 이에 샘킴 쉐프도 제가 그동안 알게모르게 쌓인게 많았었나봐요 라며 농담반(아마 진담반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대답을 한다.

관상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말이 많았는데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이러한 풍문에 대한 흥미와, 저번 기대평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생명공학전공으로 지니고있는 얕은 지식(인중의 비밀 같은?),그리고 인간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고대로 옮겨 보관하는 데스마스크까지 이 모든게 합해져서 #을유문화사 가 출판한 #애덤윌킨스 의 #인간얼굴 을 겁없이 고르게 된 것이었으리라.

총 10개의 장으로 얼굴에 대한 진화학적 인류학적 유전학적 지식을 폭넓게 설명하고 있는 <인간얼굴>은 무/유악 어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 호미닌까지 이르는 수많은 비교와 대조를 통해 인간만의 고유함이라는 진리에 닿아간다.

1장에서 인간 얼굴에 관련된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2장에서는 얼굴 발달의 과정을 배아 상태 부터 이후 얼굴 발달 과정에 대하여 다룸(대학교 시절의 유전학이 생각나서 살짝 PTSD가 올뻔했지만 그래도 나름 좋아했던 과목이라며 긍정회로를 돌렸다)과 동시에 3장과 4장에서는 얼굴을 형성하는 유전적 기반과 유전자에 대하여 논의를 한다. (여기에서 결국 PTSD가 와버렸다. 매주 2번의 레포트를 견뎌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젠장😇)
5장, 6장에서는 얼굴의 역사를 최초의 척추동물에서 최초의 영장류까지, 초기 영장류부터 현대인류까지로 나누어 몸짓과 표정, 얼굴형태를 만드는 식이와 사회성까지 포함해 사회과학적 탐구까지 담는다.

7장은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을 만한 주제다. <인간얼굴>의 클라이막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두뇌와 얼굴의 공진화(인식하기, 읽기, 표정 만들기)에 대하여 뇌과학 분야까지 확장하여 담겨있다. 베르나르베르베르가 소설로 쓰기 굉장히 좋아할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7장이 재미있으니 오늘 먹을 마시맬로를 아껴 두듯이 7장을 위해 앞장을 차곡차곡 정복해 오는 것도 완독에 도움에 될 것이다. 8장은 대체로 7장까지의 전반적인 내용을 복기하며 숨고르기를 해준다. 9장에서는 얼굴의 미래에 대해, 새로운 얼굴 유전학이나, 얼굴로 성격을 예측할 수 있는가와 관련된(앞서 말했던 인상으로 사람의 성향을 알아볼 수 있는가!) 최근의 연구를 다루며 최후의 장, 10장에서 사회선택적 부분들을 논하며 선택 과 기회 거기에서 오는 비용과 같은, 행동과 행태와 관련된 진화학의 고전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까지.

하나의 답을 위해 달려오는 듯 하지만
수많은 학문들과의 연계로 작가 평생에 걸친 연구를 종합하는
그러면서 아직 끝나지 않은 연구에 대한 앞으로의 진행과정까지 성찰해보는 한 과학자의 실험노트였다.

매번 실험을 할때 하기전에 가설설정과 검증방법을 생각하고
실험결과를 고대로 입력하고(수정하고 싶은 욕구를 방지하기 위해 페이지수를 미리 적어두고 결과값도 볼펜으로 기록하여 지우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결과에 따른 가설의 검증 성공, 실패 그리고 그곳에서부터의 성찰, 가설 재설정등의 과정들이 고스란히 담는다.

아주 깊은 생각을 논리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기록이 있어야한다. 아무것도 없이 머리속에서 하는 공상은 창의성을 가져다주긴 하지만 데이터에 입각하여 원인과 결과의 관련성이 적합한 생각은 힘들다.
게다가 손으로 기록하면서 한번에 정리되고 머리에 더 잘 남는다.
지식의 척추라는 말이있다.
머리속에서 떠나니는 정보의 조각들을 필요 할 때마다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꺼내기 좋게 정렬시킨다는 뜻이다.

<인간얼굴>은 한 과학자의 평생의 연구에 대한 실험노트이자
연구를 공동진행하며 새로 익힌 정보들을 자신의 지식으로 만드는 배열과정이자, 연구성과 발표였다.

왕성한 지적호기심이 전공적인 지식이 가득 담겨있는 학술적 글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라는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미흡한 후배 학도로서 감히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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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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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저절로 눈이 뻑뻑해지고 뒷목이 뻐근해져서 책을 덮어야겠다(덮어야만한다)라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 그 욕구를 받아들이고 책을 덮는다.
그러나 #열린책들 에서 출판한. #장바티스트앙드레아 의 #그녀를지키다 는 그러한 몸의 신호를 거부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수도원에서 긴 세월을 살다 죽음의 문턱에 선 천재 석공 미모.
눈을 감으며 그의 일생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돈을 벌기위해 프랑스로 넘어온 이탈리아 부부사이에서 태어난 미모는 석공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받아 어릴 때 부터 석공일을 배웠고, 아버지가 전쟁에 징병되어 시신도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하자 미모의 엄마는 이탈리아에서 석공일을 하고 있는 배다른 형제에게 미모를 맡기며 미모 혼자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탈리아도 파시즘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마냥 아름답고 살기좋은 곳은 아니게 되었고
먹고 살기위해 삼촌뻘인 남자와 오르시니 가문이 있는 피에트라달바로 이주한다.
그곳에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비올라가 살고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오르시니 라는 이름의 철창에 갖혀 살아간다.
하지만 비올라는 굽히지 않고 자기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녀는 자신을 자유로 데려다줄 날개를 펼칠 수 있을까.

미모의 회상과 수도원장 파드레 빈첸초의 현 시점. 이렇게 두개의 시간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전혀 글을 어지럽히지않고 글에 몰두 하게 만든다.
결국 시간의 간극이 줄어들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부터 진정한 이야기의 시작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두 인물 미모와 비올라는 각자 재능이 충만하지만 각각 왜소증으로, 사회적 관습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그녀를 지키다>를 읽으면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

영웅은 아파야만, 그 아픔을 견뎌내야만 탄생하는것이 안타깝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영웅은 비올라이다.
스토리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은 미모이지만 미모보다 더 눈이가고 마음이 간다.

아마 결코 포기하지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서사가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테다.

특히나 자신의 ’정상성‘에 대한 비올라의 생각들이 긴 여운을 주었다. 옛날은 더했고 지금도 여성은 비정상적인 일들을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강요받는다.

주위의 친구들이 아마 엄마로 이른바 ’경단녀‘가 되어 타의반 자의반으로 집에 갖혀있고, 일하랴 살림하랴 어느덧 나이들어버린 그 고왔던 나의 엄마가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

지난달에 있었던 여성의 날에 읽기에도 좋은 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성에 대해서만 적어놓은 글은 아니지만
분명히 여성을 위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나는 교회를 믿어, 그 말이 그 말이긴 하지만.
정권이나 독재자와는 반대로 교회는 사리지지 않아.“
라는 추기경의 말이 <그녀를 지키다>의 주제를,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정말 오랜만에 술술 읽히고
책을 내려놓기 싫은 책이었다.
밥을 먹을때 말고는 손에서 떼지않고 한번에 주욱 읽었다.

석공의 이야기이지만
작가가 실력있는 이야기의 조각가였다.

이것이 페이지터너 이구나
감탄하며 읽었다.

아마 곧 책 좀 읽었다 하시는 분들은
모두 읽어본 책이 되지않을까.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녀를 지키다>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 은밀했던 11년. 살을 저미듯 아렸고 뒤뚱거렸던 우리의 우 정, 야행성의 우정이 마침내 햇볕에 의해 복권되고 그 위로 처 음으로 햇살이 환히 부서졌다.

🏷️ 비올라 오르시니가 없으면 미모 비탈리아니도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필요없이. 비올라 오르시니는 존재한다.

🏷️ 나는 우뚝 선 여자다. 나는 당신들만큼이나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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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이야기들
발터 벤야민 지음, 파울 클레 그림, 김정아 옮김 / 엘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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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인정한다. 나는 #엘리 가 출판한 #발터벤야민 의 #고독의이야기들 을 읽기 전까지 발터 벤야민을 몰랐다.

무식이 용감이라. 어릴 때 부터 부모님의 입에서 나온말이 내 입에서 다시 반복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비평가로 그의 아카데믹한 저서들이 ‘테제’로 남아 많은 후배들이 읽고있다는 것 또한 <고독의 이야기들>을 받아보고 알아보기 전에는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아우라’라는, 그가 그의 논문에 차용한 아는단어를 반겼을 것이다.

이런 사전지식(이라기에도 말하기 부끄럽지만, 사전조사 라고하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을 한장한장 넘기는데에 많은 심력이 소모되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고독한 이야기들>의 첫 작품인 ‘실러와 괴테’부터 혼란스러웠다. 수많은 독일의 철학가 비평가 문학가들의 이름이 주인공의 시점의 이동과 함께 계속 병렬식으로 등장하고 괴테의 대표작 ‘파우스트’의 악마 매피스토펠레스가 기이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들을 이끈다.
무슨 내용이지? 왜지? 라는 생각에 빠지는 순간 페이지는 나가지 못한다. 당연하다 잘 모르는 것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 세계에서 실러를 괴테가 이끌었고(발굴했고) 그래서 동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괴테의 <파우스트>까지 나아가는 그 둘의 실제 여정을 한편의 노벨레(괴테가 주안한 단편소설형식)으로 만들어낸 것이구나 라고 혼자 정의 내렸다.

그리고는 그냥 주석을 읽으며 죽죽나아갔다.
세세한 내용은 책을 열기전에 벤야민을 몰랐던 나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라는것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꿈, 여행을 적은 글들은 굉장히 유쾌하게 읽혔다. 이게 소위 지식인들만의 재미없는 유머인가 라며 (재미없는 이라 적어놓고는 분명 피식거렸)읽었고 수록되어있는 모든 글들을 관통하는 시선을 따라 세세하게 설명해주는 여행지의 모습이나 꿈속 장면을 눈에 그리듯 생생하게 읽었다.

누군가의 꿈내용만큼 그 사람에게 은밀한 것이 또 있을까.
그 꿈이야기까지 나눌 사이라면 분명 가까운 사이이리라.
그렇게 벤야민과 나는 (내맘대로)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맞는지도 모르지만)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장 의외였던 점은 3부. 놀이와 교육론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항상 자기의 연구주제에 몰두되어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아이들을 싫어할 것이라고 믿었다(벤야민도)

하지만 아이들이 공상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놀이와 수수께끼들을 끝없이 생각해내고 ‘실험’했다. 심지어 즐기기까지 하고있다는것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던져주는 단어들을 조합하여 만들어 내는 문장들은 유려했다. 이런 문장들이 그의 생전 저서에 가득했다면 비평가가 아닌 문학가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뒤에 있는 편집자 해제를 읽으면서야 비로소
왜 내가 의아했던 모습이 담겨있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공상과 유희는 그의 교육론에서 빠지지 않았다.
일하느라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기에는 각 잡고 배우고 익히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음먹고 시작하더라도 연속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공상함으로 스스로 참여하게 하고 유희를 느끼하면서 꾸준히 반복되게 하길 바란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아이(어린이) 화.
그가 꿈꾸는 유쾌한 교육이었던 것이다.

이런 천진난만함도, 돈이 별로 없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여행을 떠난 것, 기차안에서 하는 독서의 재미를 말할 때 평소와 다른 열정이 느껴지던 것. <고독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내가 느낀 발터 벤야민 이라는 사람의 인상이다.

하지만 꿈 이야기에서 ‘나치’를 ‘폭도‘로 고치는 등의 병적인 사후수정(유년시절에 꾼 꿈에 대한 기록을 후에 수정하고 다듬어 낸 글들이다)을 보면서, 검열에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한 벤야민의 삶아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파리로, 파리에서 또 다시 떠나는 과정에 실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사정을 알고나서 그의 글에 적혀있는 파리만 보면 마음이 아팠다.

위대한 비평가 라는 발터 벤야민도 여러의미로 꿈 꾸고, 또 꿈꾸는 우리네와 같은 평범한 하나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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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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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인류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2015년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반도로 떠난다. 그곳의 선주민 에벤인들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이다. 자급자족의 삶을 살아가는 에벤인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녀는 암곰이라는 뜻의 마추카로 불린다.

그곳의 일상에서도 적응하며 연구의 진척이 없자 동료들과 험난한 산을 올랐고 그 험난함에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오롯이 혼자있길 바래 잠시 동료들과 떨어져있던 사이 곰을 만난다. 곰이 그녀에게 이빨을 드러냈고 그녀도 몸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나스타샤 마르탱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한, 몸에 곰과 공유하는 채널(곰이 물어뜯은 턱)이 생기고 ‘곰을 만나고 살아 돌아온 자’ 미에드카 가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비밀시설과 고국 프랑스의 외과병원에서 그 채널을 인위적인 인공턱뼈로 막는 수술을 여러번 하며 그녀의 몸은 곰과 자신을 연결하는 채널이 아닌 동서간의 보이지않는 전쟁이 벌어지는 영토가 되었다.

전쟁이 나면 영토는 초토화 되는법. 오염된 인공 턱뼈로 인해 세균감염되어 재수술을 하는 등 또 한번의 고초를 겪는다. 친구들조차 이전의 자기로 보아주지 않는, 자기의 세계가 무너진 나스타샤는 다시한번 캄차카 반도로 떠난다.
몸과 마주쳤던 그곳으로.
문명의 이기가득한 시선을 떠나 자연스로 향한다.

그곳에 도착한 나스타샤는 곰에 물리고 프랑스에서 보냈던 가을과 겨울보다 훨씬 더 안정된 상태였던 듯 하다.

가을 겨울 봄 여름 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글이
‘봄’이 되자 이해하기 쉽게 정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미에드카 라는 존재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곰과 연결에서 그들을 끌어들이는 존재.
마치 볼드모트의 저주마법에 살아남은 반동으로 그와 생각과 시선을 공유했던 해리포터를 의심했던 것처럼.

같이 해리포터가 튀어나와 기시감이 들었겠지만
#나스타샤마르탱 의 #야수를믿다 (#비채 출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의 기시감으로 가득차 있는 에세이이다.

이 책의 장르가 시/에세이 라고 되어있어서 의아했는데 몰아치는 생각들이 정리된 듯 정리되지 않은 듯 몰아치는 듯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는듯 묘한 리듬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시 라는 장르도 포함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일을 겪으면서 여전히 세상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자체를 받아들인양 나스타샤는 2015년까지의 기록을 펼쳐 책을 쓰는 것으로 책은 마무리 된다.

아마 그 책이 <야수를 믿다>일 것이다.

사실 나스타샤는 십대에 아버지와 사별하고 어머니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자연스래 사유의 시간이 많아지고 불안감과 우울함을 유도하는 문명사회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깊은 곳 에 들어가 선주민들의 문화와 함께하는 인류학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다보면 인간이 과연 지구에 그렇게나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경우들이 있었다.

긴 세월 녹지않고 있던 빙하가 녹아내리고, 전쟁을 하고 숲을 태우고, 기술의 발전이라며 만물의 영장이라며 눈가리고 아웅하듯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환경을, 지구를 파괴하고있다. 오만한 점도 있는데 자기가 겪은 일은 자기만이 이해할 수 있고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상당한 것이라 믿더라는 것이다.

나스타샤 처럼 곰에서 살아 돌아온 것도 처음이 아니다.
이미 곰에게서 살아온자 라는 뜻의 미에드카 라는 단어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지않은가.

자기들만이 유일하고 자기들이 아는것이 진리인양 너무나 쉽게 낯 두껍게 믿고 살아간다.

이런 성향의 유일한 종, 인류를 연구하는 인류학이 참 재미있는 학문이겠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 할 정도였다.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
무슨 다른 것을 간구하고, 우리가 진리가 믿어왔던 것을 과감히 버리고 이상하다고, 병든 것이라고, 미개한 것들이라고 외면해 왔던 것에서부터도 무언가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야할 때이다.

대체 무슨 이야기야? 라는 주제에서
남들이 뭐라하든 문뜩 떠오르는 생각들을 무시하지않고
기꺼이 붙잡아 사유하고 기록하고 남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야수를 믿다>를 추천한다.

🏷️ 슬퍼요? 내가 묻고, 그녀가 답한다. 아니, 왜인지 너도 알지, 여기서 사는 것은 귀환을 기다리는 거야, 꽃들, 철을 따라 이동하는 동물들, 중요한 존재들, 너는 그중 하나야,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감동받는다. 이것이 나의 해방이다. 삶이 주는 한 가지 약속. 물확실성.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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