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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 시간
엘렌 식수 지음, 황은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앞에서의 고백처럼, 나의 (성인 이후)첫 고전이었던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부터, 내 마음속 넘버원 소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다빈치코드>,<인페르노>3부작의 로버트 랭던 교수까지, 이토록 충분한 이유로 기호학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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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온갖 지식들을 교묘하게 바꿔 기시감을 갖게하고, 그로인해 숨겨진 의도를 찾아나서게 하는 그 스마트함이 멋졌고 동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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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식수 의 #리스펙토르의시간 (#을유문화사 출판)을 읽으면서 기호학이 떠올랐다. 리스펙토르의 글을, 로버트랭던이 기호학적 사실들을 줄줄 외우고 있을만큼 덕후였구나 느껴질만큼, 엘렌 식수도 ‘덕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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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라는 카테고리의 무언가 하나를 평생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덕질을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 만큼 좋은(행복한)것은 없다고,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딱 그 행복을 가진 사람이었다.
진정한 덕업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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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창안했다는 저자의 이 책에 수록된 첫번째 글 ‘오렌지 살기’에서 아, 이런것이 여성적 글쓰기인가? 랄 만큼의 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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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히 사모 대상에게 보내는 온갖 미사어구를 가져다 붙인, 그러면서도 남성이 쓴 그런 문장과는 확실히 다르다. 힘을 분명히 준 문장인데도 힘을 주지않은 것 같은 문장이다.
‘너를 처음 본 순간 하늘이 어찌저찌했고 내 심장은 이러쿵저러쿵 했으며’하는, 충분히 낯이 뜨거워질 글임에도 전혀 달아오르지 않는다. 절절하게 끓는데도 뜨겁지 않다. 사람사이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절대자를 찬양하는, 찬양하지만 너무나 많이 그분이 행한 기적들에 이미 감화되어 일상이 된 듯한 차분함이 담겨있다.
연애편지보다는 신앙심을 고백하는 성스러움이 담겨있다.
유럽권 언어가 가지는 남성형, 여형성 명사표기를 이용해서(모든 단어들을 여성형 명사로 굳이 다 바꿔놓는다)자기가 고안하고 자기가 가장 자신있는 글쓰기 방식으로 클라리스 리스펙토르를 숭배하고 있다.
심지어 여성형 명사를 넣는 행위 중 하나로 리스펙토르를 이용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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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엘렌식수를 덕질하고, 그 덕질의 일환으로 리스펙토르의 책까지 섭렵하는 찐 덕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엘렌 식수가 리스펙토르를 얼마나 오마주해서 이 글을 썼는지, 여성적 글쓰기가 리스펙토르를 통해 극대화된 것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은 저자와 독자로서 만나 주고받는 기호학이 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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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쪽도 해당되지 않는 삐약이라 그러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머글인 나도 문장이 정말 아름답다(알아듣지 못함의 연속이었으나 그래도 찬란했다)느꼈고, 외국어능력이 있었다면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분명 운율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번역이 되었는데도 산문시같은 운율감이 느껴졌으니.
#황은주 번역가님 정말 대단하시다. 리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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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엘렌식수의 덕질은 세번째 글 <진정한 저자>에서 거의 정점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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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 유작 <별의 시간>을 눈에보이지 않는 원자수준으로 쪼개어 그 하나하나 안을 모두 들여다본다.
<별의 시간>속 호드리구가 쓴 소설 속 마카베아 까지 분석한다. 개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닌, <별의 시간>의 저자와 호드리구, 호드리구와 마카베아 사이에서 펼쳐지는 복잡한 관계성까지 남김없이 탈탈 털어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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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라는 단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처럼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않는 것들을 진리처럼 믿는 것들이 많다라는 글이 나온다.
엘렌식수에게는 리스펙토르의 생각와 글이 세상 제일가는 진리였다. 원자라는 단위가 있다라는 사실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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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그렇게 열렬히 깊이 파고, 체화해서 내가 곧 그가 되는 합일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걸 어느정도 살아가다보니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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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어려운 것이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확실한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글쓰기 외의 엘렌 식수의 삶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글쓰기 인생만큼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 글쓰가 전부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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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말했던, 기호학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의 독서는 성공적이지않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않고, 나도 이 기호학 재미있게 읽어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겼다.
아 글은 클라리스 리스펙토르를 영업하는(?)글이 분명하다.
그런면에서는 난 이 글을 똑바로,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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