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가 필요 없는 사회
윤은주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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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우리나라가 아픈 상처를 봉합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성장통처럼(성장통이라 치부하기엔 그 흉터가 너무나 큰)근현대에 벌어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일이 2024년 말에 다시 한번 벌어졌을 때 모든 사람들이 현실로 받아들이기 쉽지않았다. 퇴근길 막히는 도로에 굴러다니는 탱크가 현실임을 말해주었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일터인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실시간 뉴스를 통해 영화 처럼 보았다.

가장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 잊은 줄 알았던 악몽을 떠올리며, 그 와중에 농담아니라며 무조건 몸사리라고 자신의 경험을 처절한 심정으로 자식에게 전해주는, 그 때 그 날을 겪었던 기성세대들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국가전복시도가 있어 발동했다는 계엄령.
각종 증거들이 있어 발동했다는데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었고 물론 야당이 여당보다 압도적으로 커 대통령의 정치행보를 저지했다는 것은 이해하나 증거하나 꺼내지 못하는 혼자만의 아우성으로 법에 적혀는 있으나 그 날 이후로 없다 생각하고 살아가는 그것을 탁상머리에서 덜컥 결정해버리다니(세밀하게 정해진 메뉴얼따위도 없었다. 그냥 일단 시작하는게 중요했다)민주주의 국가를 수호한다는 대통령이 하는 행동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차라리 누군가 처럼 배후가 있었기를 믿고싶다.

누구나 다 나와 같은 상황이면 이런(악한)선택을 했을 것이다 라며 자기를 합리화하는 나치전범 아이히만을 보며 #한나아렌트 가 떠올린 ’악의 평범성‘이 저절로 떠올랐다.

자신의 행동이 아이히만과, 나치의 그것과 진배없음을 정녕 모르는 것일까?

예전같이 언론을 통제하기도, 한지역을 세상에서 고립시켜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매 초 수천 수만의 정보와 의견이 공유되는 첨단 과학의 시대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다니.

#세창출판사 ​에서 출판한 #한나아렌트가필요없는사회 (#윤은주 지음)은 악의 평범성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고전 철학과 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에 입각해 풀어가고자 한다.

고대 폴리스시절에 모두가 올바른 세상에 대해 바른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생각하고 토론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활동은 노예들이 대신하여 경제활동에 시민들은 참여하지 않았고 눈 뜬 모든 순간을 올바른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 그 결과들이 옳은 것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민이라면 모두가 아고라에 모여 토론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도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제1의 가치를 부의 실현으로 삼으면서)올바른 세상은 우선순위가 한없이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올바른 것에 무관심해지고, 올바른 것에 대한 기준이 먹고 사는 것, 부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가치실현이라는 가치는 정치인들이 눈치껏 주무르면 되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 에서 백윤식배우의 “민중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먹을 것을 던져주면 금방 잊어버립니다”의 대사가 괜히 나온게 아닐 것이다.

그럼 어찌해야할까? 전쟁과 경제위기로 점점 더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데 일은 하지않을 수는 없지않나?

각종 이론과 역사적 사건들이 책에 적혀있지만 결국 하고자 하는말은 그날의 그 순간을 잊지말자라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 모두가 들고 일어나 헌법과 민주주의 수호라는 가치앞에 한목소리를 내어 온 세계가 주목할 만한 진정한 가치실현을 보여준 그날의 그마음을 잊지않는다면 또 다시 이런 선택을 할 일도 없겠거니와 (이제 정치인들의 단어에서 계엄 = 탄핵 이 되었을 것이다) 함부로 국민들이 무지몽매하다고 생각하며 간을 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서도 수많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속 개념들에서도 결국 필요한 건 골똘히 생각해보는 것과, 적극적인 참여, 여러사람과의 대화, 결속이었다.

의식을 가지고 사회라는 공론장에서 생각들을 의견들을 주고받으며 관심을 유지하고 증폭시키는 것.

그것이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자, 우리 사회를 활기차고 생기있게, 그로인해 좀 더 살기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필요없는 사회라 했지만 그녀의 사상들이 상기할 필요로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스며들어 있는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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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칼렛과 알버트 1 - 위험한 무법자
조나단 스트라우드 지음, 정은 옮김 / 달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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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글을 읽은 우리가 있난 현재보다 더 미래에, 런던은 대홍수로 물 속에 잠기고 그 여파로 영국은 7개의 나라로 나뉘어진다. 대 재앙 이후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린 영국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요새화된 안전지대에서 살아가고, 신체적 또는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은 마을에 받아들이지 않으며 철저히 문을 걸어잠근다.

시작부터 우리가 생각하는(우리가 살아왔던)십대 후반의 여자와는 정반대로(반대가 맞는가, 상상하지못한)사람 넷을 죽이고 등장하는 스칼렛. 안전지대 밖 야생지대에서 살아가며 가도매트를 깔아 명상을 하면서도 총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그 생계유지활동에는 안전지대 내 은행을 터는 일도 포함되어있고, 계획대로 은행털이에 성공해 한 몫 단단히 챙겨 달아나는 와중에 야생지대에 전복되어있는 버스안에서 유일한 생존자 알버트를 만나게(엎어키우게? 뭐든)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밤이면 야생지대에 있는 돌연변이 식인종들을 피해 추격을 멈추던 경비대들이 이번에는 유난히 끈질지게 그리고 강력하게 추격해온다.

결국 경비대와 마주쳐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이게된 스칼렛.
그 경비대와의 혈전 속 대화에서 이 경비대들은 자기를 쫓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쫓는 대상은 뾰족히 솟아오른 머리에 비쩍마른 할 줄 아는건 쉬지않고 말을 뱉어내고 야생지대의 자연환경을 감탄하는 것 뿐인 알버트였던 것.

알고보니 알버트에게는 2만파운드의 현상금이 걸려있었던 것. 과연 알버트의 비밀은 무엇일까?

<록우드 심령회사>시리즈의 작가 #조나단스트라우드 가 집필한 #스칼렛과알버트 #위험한무법자 (#현암사 출판)의 내용이다. 이 책의 소개에도 나와있는 만큼의 내용소개라 스포는 되지않을 것이다. 조금 더 적은 것이 있다면 알버트에게 현상금이 걸려있다는 정도?
위급한 와중에도 배고프다고만 외치고, 험악한 자연환경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색깔별로 크기별로 나뭇잎들을 쫓기는 와중에도 모으는 뭔가 미묘하게 신경을 긁는 알버트가 거액의 현상수배자라니. 디스토피아의 루피(고무고무!)일까?

긴박한 이야기전개와 알버트의 과거와 스칼렛과 함께하는 현실의 촘촘한 구성이 책을 페이지터너로 만들어낸다.

그러면서도 나는 스칼렛이 안타까웠다.

분명 스칼렛도 십대후반 정도인 보호가 필요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을 소지하고 소지하는 것 그 이상의 일을 눈하나 깜빡이지 않게 해내는(?)모습이 분명 카리스마있고 멋지지만 너무 빨리 어른이, 아니 일반적인 어른도 하지 못할 일들을 해내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게 너무나 마음아팠다.

안전지대라는 이름의 마을에 대재앙 이후의 시대라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가정들도 부모의 사랑을 받는 아이들도 있는데 왜 스칼렛은 그곳에 있지않고 위험이 득실거리는 마을 밖에 터전을 잡고 있을까.

또 살아가기위해 험한 일들을 하지만 그럼에도 남들이 보면 낡고 보잘것없는 기도매트를 보물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꼭 그위에서 기도(명상)을 하는 최소한보다는 많아보이는 양심을 가지고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친절하고, 사람은 총으로 쏘면서 욕할때마다 저금하는 저금통을 가지고 다니고, 쫓기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아무리 잘 쳐줘도 걸림돌인 알버트를 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데리고 가는 것이겠지.

디스토피아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허락된 구원을 허락받지 못한 십대. 살아남기위해 해선 안될 일을 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성 양심.(그러기에 그녀는 더 괴로울 뿐이다)그리고 보호가 필요한 존재임에도 자기보다 더 약한 누군가를 보호해야하는 잔혹감까지.

<스칼렛과 알버트1 위험한 무법자>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이지만 대재앙 이후 무너진 런던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주인공 스칼렛 그녀 자체가 살아숨쉬고 괴로워하는 디스토피아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그래서 더 짠하고 그래서 더 응원하고 그래서 더 뭐든 용서가 된다.

그래서 더 몰입되는 소설이다.

작가의 이전작품 <록우드 심령회사>도 넷플릭스 시리즈로 재미있게 봤었는데 흥행에 성공함에도 시즌2의 제작이 실패되었다. 아쉬웠어도 원작소설을 찾아보지 않았었는데, 이 책은 브리저튼의 다프네가 주인공으로 영화화 되지만 흥행하지않아도, 결말까지 나오지 않아도 소설을 다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스토피아 그 자체에 희망을 주고싶고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몰입감이 AR뺨치는 페이지터너 <스칼렛과 알버트>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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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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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처음엔 집사로서 참을 수 없는 고양이의 유혹에 홀라당 넘어갔지만 다 읽고 나니 이 고양이가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도, 표지에 있는 다섯마리 고양이가(앞장에 3, 뒷장에 2)모두 같은 세계에 있는 것인지도 혼란스럽다.
높은 확률로 ‘슈뢰딩거의 고양이’일테니 말이다.
이놈의 파동함수 붕괴같으니😇

일반인들은 몰랐겠지만(아셨을수도) 1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있는(그래도 아주 따끈따끈한 물리학에서는 최최최신의 분야다)양자역학은 읽으면 읽을수록 개념이 또렷해지는 듯 하다가도 다시 희미해진다.

마치 잡힐 것 같은데 잡히지않는 파랑새 같달까.

#이게다양자역학때문이야 (#제레미해리스 지음 #문학수첩 출판)은 지금까지 발견 또는 개발해 낸 이론 중 가장높은 정확도를 자랑하는 하지만 존 폰 노이만 같은 희대의 물리천재조차도 명확하게 그래서 그것이 뭔데?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명쾌하면서도 불명확한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하다.

양자역학의 공식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양자역학 이라는 이론이 생기게 된 계기부터 증명 해낼 수 없는 양자역학 논리의 빈틈들을 매우기 위해 고군분투한 물리학자들을 소개하며 양자역학 그자체에 집중한다.

빛을 두개의 슬릿에 넓게 비추었더니 스크린에 두개의 길쭉한 빛이 생기는게 아닌 이상한(?)무늬가 보이더라는 실험의 원인을 찾다가 하나의 빛 입자가 두개의 슬릿에 동시에 통과한다라는 결론을 도출해서 양자역학이 출발한다.
그러다보니 전자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회전하게 되고 그로인해 감지가 켜지거나 작동하지않고 그로인해 총이 발사되거나 발사되지않고 고양이는 총에 맞지 않거나 맞아 죽는다.

하지만 이 좀비고양이를 우리는 실제로 본적이 없다.
그래서 천재물리학자들이 천재적 두뇌로 제안한 것이 관측 당하는 순간 둘 중 하나(살았거나 죽었거나)만 남고 나머지 가능성은 사라진다는 ‘붕괴’이다.

여기서 또, 관측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냐 플랑크톤이 보아도 관측이냐, 관측하는 주체도 입자들의 모임일텐데 왜 관측하는 주체는 붕괴되지 않느냐(그래서 그 유명한, 닥터 스트레인지도 식겁하는(?) 다중우주, 멀티버스가 탄생한다) 관측하는 시간은 얼마나 해야되냐 길어야 되냐 짧아야되냐 등 구멍난 냄비를 떼우다가 발견한 또다른 구멍을 떼우듯 100여년동안 양자역학을 떼워왔다.

이 떼우는 과정에 물리=수학 이라는 이미지에 정반대되는, ’의식‘이 양자역학에 중요한 요소로 등장해 또다른 국면이 맞이한다. 그러다 빡쳐(?) 아무 이유없이 붕괴는 ’그냥‘일어난다고 생각하기로 해버리기도 한다.

무슨말인지 당황스러운거 다 안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심지어 책을 읽은 지금도 당황스럽다

괜히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의 개념을 완성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고 하는게 아니다.
왜때문인지 실제 실험값과 거의 일치하는 결과값이 양자역학으로 도출되는 상황이라 10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지지부진한 것을 하느니 데이터값을 하나라도 더 뽑는게 이 세상에게(자신의 연구실에게)훨씬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가 물리학을 전공하다 실리콘밸리로 가서 사업가가 되었기에, 현재는 물리학자가 아니기때문에 한발자국 떨어져서 데이터를 뽑아내야한다는 현실적인 압박감없이 양자역학 그 자체에 집중해서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책이 나오게 된 이유는 양자역학이 그만큼 중요하고 효과적인, 우리 인류의 문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할) 학문이기 때문일테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나 뉴스에서 높은 확률로 등장할 양자역학이라는 단어를 나와는 관계없는 것, 몰라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말고 어렵고 복잡하고 재미없기만한 뉴스에서 ‘어! 내가 아는거 나왔다!’라고 반길 수 있는 무언가가 되기를 작가는 바란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가끔 난해하고 진지해질 때(100년동안 그랬듯 책속에서도 꾸준히 난해하다) 이 사람 독일사람인가 라고 궁금증이 드는 농담을 꾸.준.히. 던진다.

양자역학이라는 것의 특징과, 작가의 농담 때문에 카이스트에서 이론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30년 동안 교수직을 역임한 #박병철 번역가가 번역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번역가님도 이렇게 웃어보긴 처음이시라니.
전문가가 인증한 양자역학에 대한 확실한 이론과 유머가 담겨있다. 양자역학과 친해지려는 욕망이 있는 예비 물리학자들에게 유쾌한 가이드북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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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 - 세상에 실망할 때 나를 붙잡아 줄 선한 질문들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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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눈앞에 놓여진 노력과 스트레스받기를 강요하는 힘든 일들과 보이지않아 불안한 미래, 그 때 그거 좀 해둘걸 밀려오는 후회로 점철된 삶인데도 우리들은 왜 그토록 열심히 살아갈까.

죽지못해 산다고 연신 말하는 사람들도 지켜할 무언가(돈, 명예, 가족 등)를 떠올리며 이 악물고 버틴다.
이런 삶을 잘못되었다 할 수 있을까?

물론 ‘내사람’이라는 바운더리안에 있는 이들을 위해 바운더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있는 선택을 해야할 때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괜찮지않을까?
이러한 선택을 처음할 때는 괜찮을까 싶은 생각에 고민도 해보지만 나중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않고 당연하다는듯 본능처럼 이같은 선택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 나에게, 나아가 사회에 문제가 된다.

과장된 것 같지만, 히틀러 밑에서 수십만의 학살이 일어날때 내가 속한 사회가 바라는(시킨)일이라며 양심이나 죄의식 같은 질문들은 저멀리 던져버리고 무죄라 주장하던 아이히만이, 사회가 살기 나빠지는 이유는 생각없이 부분별하게, 일상보편적으로 책상머리에서 일어나는 ‘나쁜 선택’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라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위에서 말했던 우리네 보통의 삶의 선택과 같은 맥락이다.

시대가 전쟁상황이 아닐뿐.
저런 시대에 우리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철학이깊을수록삶은단순하다 (#갈매나무 출판)에서 저자 #레베카라인하르트 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묵직한 존재를 ‘선의 평범성’이라는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의 평범성’이란 JUST DO IT. 그저 실천하는 것이다.

첨단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우리는 점점 살기 좋아지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괴로워할까.
저자는 우리가 무한경쟁사회에서 끝없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몰아붙여져서,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는 한없이 부족해서 지금도 허덕이지만 더 허덕여야한다고 사회화 되어왔다고, 그 여유없음에서 모든 나쁜 것들이 기원된다고한다.

그래서 진정 ‘더 좋아‘지려는 욕망이 본인 스스로의 욕망인지 살피고, 더 좋아지지않아도 지금 당장의 내가 행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내가 행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바로 휴지줍기, 밝은 미소로 인사하기와 같은 작은 ’선함‘을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어린 선함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승진,연봉인상 같은 커리어적 성공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러면 행복은(저자는 빠른 행복이라 이름붙였다)차가 막히고, 클라이언트와의 말다툼으로 바로 잊혀져버린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작은 선함의 실천으로 느끼는 행복(느린행복이라 저자는 말한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쉽게 만족도가 사라지지않는다.
그리고 빠른행복은 내가 죽으면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느린행복은 이 세상에 남아 세상이 조금씩 선해지고 살기좋은 곳으로 바뀌게 해준다.

저자는 이 느린행복을 목표로 삶고 행하는 것이 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선함을 실천하라는 저자의 권유가 실천의 윤리학을 강조한 스토아학파의 그것과 닮아있다.

실제로 책 안에서 저자는 종교만큼(어쩌면 종교보다도 더 오래된)힌두교와 불교에서 출발해 디오게네스가 실천한 ‘자발적 무욕’, 스토아학파가 추구한 ‘아레테’, 에리히 프롬이 제안한 ‘존재의 기술’로 그 영적인 가르침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이름붙인 ‘선의 평범성’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보편적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학문이라고 평가절하되는 철학, 예술은 동시에 인류의 역사가 끝날때까지 남아있을 최후의 학문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만큼 인류의 본성과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고 (메타노이아) 모든일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중용, 메소테스), 스타일과 태도를 생각해보고(스프레차투라)같은 ‘선의 평범성‘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인용된 것들이 철학에서부터 왔으나 그만큼 인위적이 아닌 본능에가까운 것들이라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흡하지만 필사도 하며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옳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휴지줍기와 같은 사소한 것들을 지금당장 실천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않으니 일단 해봐야겠다. (물론 이전에도 했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해보면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부디 이것이 올바른 이해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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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쓰는 시간 - 한 줄의 기록이 삶을 바꾼다
장예원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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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업성공, 명문대 졸업, 꿈의직장, 고시합격, 모두가 부러워하는 연봉, 수입, 좋은 자동차, 명품. 인스타그램을 하면 자괴감들게 하는 저런 것들이 성공일까?

나도 한때 저런 부와 명예가 성공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룬것들과 이룬것들에 대한 보상까지. 나도 만족하고 보는 사람들도 만족하는, 성공은 ’얼마나 만족했으냐‘인 것 같다.

저런 부와 명예를 가져보지는 못했지만 몇몇 책들을 읽어보니 저런 것들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잠시일뿐이고 또 다른 먹음직스럽고 더 커다란 무언가를 향해 달려나가게 만든다.

차가 막힌다라는 단순한 상황에서조차 변색되어버리는 ‘빠른행복’인 것이다. 모두가 한눈에 바로 좋아보인다 성공했구나라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본인에게 인생이 바뀌었다고, 바뀐 지점이었구나라고 느끼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나중에라도 아 저것이 옳았구나 멋진 것이구나 라고 깨닫는것. 그런 것들이 나는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내 눈에 좋아보이고 닮고싶은 성공의 모습은 ‘기록’하는 삶이다. 책을 읽은 것들도, 문득 생각이 나는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하루의 시작점에서 오늘 하고픈일을 적는 것도, 감사했던 것들을 적는 것, 해빗트래커 등등 수많은 기록들이 쌓이고 쌓여 그렇게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그래서 부족하게나마 필사단에 참여하면서 책 속 문장을 받아적고, 다 읽은뒤의 소감을 괴발개발 적어냈다. 매일은 아니지만🤣하루의 시작에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짧은 일기도 적었다. 그러던 와중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티비에서 만나 내적친밀감이 손에 꼽히는 아나운서였던 #장예원 아나운서가 쓴 #나를쓰는시간 (#북로망스 출판)을 만났다.

매분 매초 숨가쁘게 돌아가는 방송국에서 방송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순간집중력으로 애드립처럼 뱉어내야하는 속보전달을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글을 쓴 사람인데도 ’기록‘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즉, 내가 성공이라 생각하는 닮고싶어했고, 쓰고싶고, 장예원 아나운서를 비롯한 수많은 기록가들의 기록은 ’자기자신을 기록‘하는 기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것을 깨달아도 빈 노트앞에 앉아 펜을 들어도 막상 무엇을 써야할지, 너무나 평범하도 쓸거리가 없는 내 자신과 마주하게되어 당황하기도 좌절하기도 했다.

<나를 쓰는 시간>은 나 같은 이런 사람들을 친절히 돕는다.
(장예원 아나운서 특유의 따뜻한 웃음이 생각나는 책이다)

작가가 흔들리때마다 중심을 잡기위해 되뇌이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더 나은 내가 되기위해 탐구했던 질문 100개가 담겨있다. 글 소재가 100개나 되는 것이다.
삶, 관계, 내면, 어른, 꿈, 스스로를 믿는 것, 6개의 큰 주제에서 100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하루 하나의 소재를 골라(순서 상관없이 그날 그 순간의 느낌가는대로)빈 공간에 끄적이면 된다.

처음에는 비워져있는 공간이 너무나 커보이지만 쓰다보면 줄이 적어서 그 아래를 빼곡히 적어가는(그래서 난 다른 노트에 적었다 하하 적어도 많아도 채워야한다는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 쓴 것들을 넘기다가 유난히 길게 적은 소재가 있다면 그것이 내가 관심있는 부분이라는 반증이니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계기도 된다.

내가 애정하는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팬이 되어버린 김영하작가가 한 말이 있다. 감정은 형태가 없다고 £₩$(%)?같은 무형태의 것인데 이것을 글로 남기면 글에는 문법적 요소가 있기에 자동으로 가다듬게 되고 형태를 갖추게 되어 의미가 생긴다고. 그 순간의 기분이나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중요하지않다고 감정은 드러내는 것이아니라고 배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순간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감정과 기분은 글로 적어 체화시키지 못한 진정하고 솔직한, 나도 모르는 내 자신이다.
인생은 계속해서 나도 몰랐던 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세계지도를 벽에다 걸어놓고 다녀온 곳은 색을 칠하듯, ‘나’라는 지도의 빈칸을 색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
<나를 쓰는 시간>이 ‘나’로 나를 이끌어주는 나침반이었다.

나를 찾고싶어하는 모든 길 잃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고장나지않고 정확하게 목적지를 가리키는 나침반, <나를 쓰는 시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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