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번 역은 서울역입니다
근하 지음 / 여섯번째봄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평생을 살던 곳을 가족과 떨어져 혼자 향하게 되는 순간들이 제법 있다. 특수목적의 고등학교 진학, 대학 진학(인서울!), 취업, 결혼 등등. 부푼 꿈을 안고 걱정반 기대반으로 낯선 곳으로 떠나왔지만 처음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녹록지 않다.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곳도 없고, 출퇴근으로만 하루에 두세시간씩 써가며 ‘집’(home이 아닌 house)에서 잠만 자고 또 다시 먼 출근길을 나서야만 하는(심지어 집값이 비싸 내 몸하나 누이면 끝이다)온통 잿빛인 낯선 곳.
그런 곳에서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이번 역은 서울역입니다(#여섯번째봄 #근하 지음)은 나와 동향인 대구 토박이 작가가 친구 영지의 생생한 증언에 여러가지들을 더한, 서울에서 퍽퍽한 삶을 살아가는 시영의 이야기이다.
시영이 고3때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오빠에게만 모든 지원을 몰아주는 부모때문에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한다(실질적 부모였던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시영은 장학금을 받으며 여고 기숙사에 산다) 하지만 단 하나. 동성의 친구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 친구 곁에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그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있음을 봐버리고는 넋이 나간다.
그래도 수능을 무사히 버텨내고 서울까지 뭐하러 가냐며, 학비싸니까 지방 국립대 가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서울로 진학라며 첫 서울생활이 시작된다.
그 이후로는 군대 간 사이 오빠의 기숙사, 겨우 취업해서는 고시촌을 전전하며 잿빛 서울에서 잿빛으로 살아간다.
그래도 시영에게 딱하나 남은 것이있다면 대학 졸업반 때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주운. (이 친구도 동성연애를 한다.) 시영 뒷담화하는 동기들에게 나 시영이친구인데 왜 그런말을 하냐며 멋짐 뿜뿜하던 친구이다(이때는 친구는 아니었다 통성명 한번 정도?) 시영에게 먼저 만나자 해주고, 여자친구 소개시켜주고, 집들이 오라고 귀찮게 굴고, 마지막에 시영이 첫 자기만의 집을 갖게되었을 때 계약까지 도와주는, 시영이 서울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되어주었다.
살던 곳과 거리가 얼마가 떨어져있는지, 집값이 얼마인지 내 월급이 얼마인지는 솔직히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적을 비롯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목을 잡긴 하지만 정말로 그곳이 좋고 살아가고자 할 마음이 있으면 조금 열악하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더라.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서울로 대변되는 낯선 장소에 얼마나 정을 붙일 수 있는가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일 수도 있고, 취미를 가지는 것일 수도 있고, 방법은 다양하다.
내까짓게 뭘, 현생이 바쁘니 내일 생각하자 와 같은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룬다면 그것은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고향에 살더라도 외롭고 힘들 것이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결국 정을 붙인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정을 붙이는 것이다.
내가 나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나에 대해 알아가고 깨달아가야,그 깨달음을 이용해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보듬어주고 아껴주고 위해주어야 어디에서든 ‘이게 사람사는거지’라고 생각이 들만큼의 빛나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낯선 곳, 나혼자 똑 떨어져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 곳은 다른의미가 아니다. 내가 알던,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리적 장소는 아무런 의미가 아니다.
내가 낯선 상황인 것이다.
나를 잃어버린 곳은 물리적으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낯선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헬조선이라고 불리우는 이 나라에서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낯선 곳을 정처없이 헤매이는 방랑자이다.
<이번 역은 서울역입니다>의 근하작가는, 세상이라는 타지에서 바다위를 부유하는 빙하의 일각같은 모든 방랑자들을 위한 위로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세계가 우리를 맞이해 주길 바랬던 책 속 시영처럼, 우리 모두가 꼭꼭 숨겨져있던(숨겨놓았을 수도, 찾아볼 생각도 하지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오롯한 ‘나’를 찾아 방랑자의 삶을 끝내고 여기서 살면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집을 찾아 마음 붙여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