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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되는 순간들 - 이제야 산문집
이제야 지음 / 샘터사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산문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대로 적어나가는, 사진과 비슷하고, 시는 한 걸음 뒤에서 대상을 바라보며, 한 번 투과된 후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거울과 닮았다고 #시가되는모든순간 (#샘터 출판)에서 #이제야 시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시가 되는 모든 순간>은 시일까 산문일까.
책 표지에 적혀있는 ‘이제야 산문집’이 아니었다면 나는 산문시라고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야 산문집’이라는 단어를 보면서도 시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 성인, 아니 인생의 첫 시집인 #진심의바깥 으로 이제야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 사람들이 이래서 시를 읽는건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클래식이나 예술 오페라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 딱 오해받기좋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시는 어려웠다. 오페라보다도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나 스스로에게는 느껴졌다. 몇번을 다시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로 쓰여진 시는 나에게 호기심이 동하자도 않을만큼 난해했었다.
하지만 이제야 시인의 시는 달랐다.
단단한 내면으로 중심을 잡고 덤덤하게 말해주는 이제야 시인의 시들은 원래는 어떤 의미로 시인이 썼을지는 모르겠지만 짧지않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지도 못할만큼 새카맣게 잊어버린 기억들을 소환시키며 나를 이해시키고 감화시켰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는지 너무나 신기했다.
그런 시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시가 되는 순간>은 등단 이전부터 시인 본인의 이야기가 간략하게 실려있음은 물론, 시인이 생각하는 ‘시’가 설명되어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 나는 이제야 시인이 덤덤하고 정갈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좌절시키고 낙담시키고, 쉽게 잊혀지지 않았던 스스로를 언제꺼질지모를 불로 뒤감았던 것들을 꺼내어 쓴 것들이라는 것이 참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몇번이나 내면에서 그것들과 대면해왔었기 때문에 표현이 그렇게 깎여나갔을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내 안의 수많은 나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달래기도, 때리기도 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보편적인 것들을 꺼내어서 시가 되기를 ‘기다린다’라고 말한다.
내가 바깥으로 ‘시’라는 형식으로 꺼내놓은 문장들은 전해져 닿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개인적인 것으로 번역되었을 때 비로소 ‘시’가 되는 미완의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아! 내가 겪었던 것이 바로 시가 되는 순간이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랜 시간이 걸려 처음으로, 시가 되는 순간을 직접 목도한 것이다. 위의 내용처럼 이 책에는 시인이 겪은 보통의, 보통이라고 하기엔 셀 수 없을 만큼 곱씹으며 눈물 흘리고 좌절했던 인생의 순간들이 시가 되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이런 시를 써내는 시인은 어떤 생각으로, 어떤 단어들을 선택해 시를 만들어 내는지가 참 궁금했는데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 24시간 전화 상담사에게 평생에 다시없을 정도로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작가는, 좋은 일 보다는 무덤덤한 일상이 더 많은, 그로인해 부정적인 것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무채색의 세상을 굳이 끄집어 내어 스스로를 아프게 하나 왜 괴롭히나 했는데 그 성찰의 시간으로 무채색의 것들에게 다양한 색을 입혀 따뜻하고 포근하고 다정한 무언가로 바꾸어 나간다.
그렇게 스스로의 환부를 다시 들추는 용기를 몇번이고 시행하는데도 어떤 것들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프다.
그럼에도 이러한 양극을 모두 가지고 있는게 시라며, 그래서 시를 쓰는게 아닐까라고 말하는 시인의 말을 들으며, 미완의 글을 써서 날려보내는 시인과,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콕하고 날아와 박혀 나만의 색을 칠하는 내가 만나 비로소 완전한 시가 되는 거라면, 따뜻하고 포근하고 다정한 색감의 것들로만 칠해서 시인의 고통을 나눠지고 싶다는 오만한 생각을 해보았다.
꼭지마다 옷소매 단추처럼 달려있는 짧은 시와, 모두에게 제각각의 모두 다른 사진으로 보이는 또다른 언어로 된 시, 흑백사진이 걸려있다.
무채색의 시에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않고 맘껏 나만의 색을 칠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 시를 읽는다는 것임을 깨닫게 된, 즐겁게 기꺼이 색을 칠한 또다른 형식의 시집이었다.
나에게 <시가 되는 순간들>은.
계속 꺼내읽어 다양한 색들을 덫칠하고픈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