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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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아이의 장례식은 옳지 못하다. 아이의 죽음은 부당하다. 아이는 죽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 살아야 한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어야 한다.

이 한 단락으로 #아이들의집 (#열림원 출판)을 쓴 #정보라 작가의 의도는 다 설명되는 것 같다.

<너의 유토피아>로 대한민국 SF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고, 우리나라에서도 SF소설의 붐을 일으켰던 정보라 작가의 신작, <아이들의 집>은 역시나 SF적 요소가 담겨있다. 앨리스라는 이름이 있지만 깡통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로봇이 아이들의 양육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나라의 국가 양육시설 ‘아이들의 집’에서 아이들의 전반적인 케어를 담당한다. 사이비 집단의 침입에 박살이 났다가 약간은 삐걱거리는 상태로 수리되어 다시 아이들을 돌본다. “로-봇은 일-관성 있습-니다. 사람-만 변덕-입니다.”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며.

작가이기 이전에 스스로를 데모꾼이라 자처하는 작가인지라 그의 작품에는 현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꼬집음이 있다.
이러한 사회의 부조리함이 SF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디스토피아적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SF소설은 디스토피아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세상을 기반으로 상상하는데 더 좋은 세상은 없을 것만 같은 현실이니까.

하지만 <아이들의 집>은 유토피아적 요소가 담겨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의 불장난으로 부모도 준비가 필요하다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태어나 버림받거나(버림 받으면 주로 백인들의 나라로 입양된다) 방치, 폭력 등의 학대를 겪으며 법이 보장하는 친권의 강력함아래 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처벌뿐인 현실을 아득히 넘어선 미래를 보여준다.

온 나라가 돌봄과 양육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으며 아이에게 부모가 있는지, 아니면 다른 가족이 있는지조차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집도, 교육도 필요하다면 국가가 지원한다. 모든 국민들이 한달에 한번 돌봄 의무를 이행하며, 의무를 이행하는 국민들도 높은 확률로 양육시설 ’아이들의 집‘에서 성장해왔다(부모와 가족이 있음에도 아이를 맡길 수도 있고, 아이가 직접 찾아올 수도 있으며, 언제든 집으로 돌아가도 좋고, 머물러도 좋다) 우리의 사회에서의 보육원과는 사회적 위치도, 인식도 천지차이이다.

모든 사람들이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보호, 관심을 제공하는 것이 대기중 질소처럼 당연하고 팽배한 것으로 여기는, 모두가 육아앞에서 평등한 세상. 끔찍한 어른들이 작품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책 속의 사회는 현실보다 더 이상적이다.

뉴스에서 양부모가 아이를 학대하는 주먹을 부르는 소식이 많이 들려오지만 아동학대의 80퍼센트가 친부모에 의해 자행된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아동학대 정황이 있다고 신고를 해도 아동학대를 자행한 친권자가 아니라고 하면 돌려보낼 수 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에도 너무나 큰 실망을 하였다. 친권이라는 권한이 그렇게 강하다면, 그에따른 책임이나 처벌도 그만큼 강력해야 하지않나.

아이들은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된 것이 거의 없는 상태로 사회화된다. 그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첫번째 장소이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이 바로 ’가정‘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가정'이 세상의 전부이다. 그렇다면 학대와 그에따른 고통으로 가득차 있는 세상이 전부인 아이들은 그것이 학대인 것을 알까?

그런데 어떻게 아이들의 증언만이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대부분의 법적 분쟁에서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소의 제기로 인해 이득이 있는 자가 적극적으로 하게 되어있다. 그럼 학대에서 벗어나는 소에서는 아이에게 이득이 있다고 여기는 것인가. 정녕 그렇게 생각하는가?

육아뿐만 아니라 현 사회가 직면한 것들이 나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책이었다.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이 가루, 사각형, 색종이 등 사람이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책을 덮고 글을 쓰고 나니, 문득 애기들 태명 지을 때 개똥이 같은 사람같지않은? 이름을 지어주지않나? 그 이유가 귀신들이 사람이라 알아채지 못하게, 그래서 해코치 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출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알고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어야 한다.”라던 문장과 맞물리는 것 같아 더 마음이 아프다.

유토피아적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유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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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세계를 감각하는 법 -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를까?
케일럽 에버렛 지음, 노승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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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윤선생영어라고 아시는지😁 매일 아침 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하며 영어교재를 공부했는지 체크받으며 우리말이 아닌 다른 언어를 처음으로 배웠더랬다. 나중에는 교재를 읽으며 녹음해야 하는 것이 공부가 아닌 숙제로 느껴져 그만두게 되었지만 영어에 대한 그리고 언어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고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게 된 평생의 계기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언어에 대한 호기심을 제법 충족시켰다.
고등학교 때에는 이과는 일본어 독어 중에서 선택하게 했고 말이 선택이지 거의 일본어를 선택하는 것을 종용당했다.

(덕분에 일본어의 기본을 배우기도 했고 부모님 인증 외국어로 잠꼬대를 한 최초의, 어쩌면 마지막일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괜시리 독어를 배우는 몇몇의 소수들이 부러웠던 기억 때문인지 문과에게만 열렸던 독어수업이 부러웠었는지 이제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스페인어 중국어 등 교양수업에서 고등학교 때 보다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서 매 학기 하나씩 무조건 초급수업을 신청해서 들었었다(전공자는 교양수업에서 배제시키는 멋진 시절이었기에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배울 수 있었다)

얕고 넓은? 언어 공부의 경험을 하고나서(대부분 다 까먹어서 효율성은 제외하고)좋았던 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그때에는 시선이 넓어졌다는 것은 이런나라가 있구나, 이 언어에는 남성명사와 여성명사가 나눠져있구나, 우리나라처럼 존댓말이 있구나 같은 것들을 배우며 세상으로 나가서 살아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넓어짐이었다.

하지만 #언어가세계를감각하는법 (#케일럽에버렛 지음 #위즈덤하우스 출판)을 읽고 나서 왜 시선이 넓어졌다고 느꼈는지를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당연히 과거 현재 미래로, 이 순서대로 나열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언어도 존재하였고, 좌,우 같은 나를 기준으로 상대적방향감을 가리키는 단어가 존재하지않고 동과 서 처럼 객관적 위치로만 표시하는 언어 등 다양한 전문적이고 표지의 디자인보다는 훨씬 학술적인 내용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언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필요성에 인한 것이 시작일테이고, 그 시작에 기여하는 것은 사람을 둘러싸고있는 환경이다. 그 환경을 다른사람과 공유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언어가 만들어지고 각자가 처해있는 환경(지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요소도)이 언어에 고스란히 녹여들 수 밖에 없다.

정글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와 북극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가 각자의 생존 환경에 최적화되어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실제 그 문화와 인식을 가진 생활권에서 직접 저자가 함께 생활하며 깨달은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지 그렇지 않고 그냥 카더라식으로 전해들었다면 분명 믿지않고 외면 했을 것이다.

괜시리 시베리아 반도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연구하던 인류학자가 겪었던 끔찍한 실화를 고백한 책이 떠올랐다.

그녀는 곰에 물려 광대뼈와 턱관절의 대부분을 잃어 인공턱을 이식받는 수술을 받으며 동물원 우리 안 동물처럼 구경당하는 것에 인류애를 상실하며 괴로워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절반을 잃은 시베리아로 다시 돌아가 두려움과 마주하는 저자의 실화가 처절하게 담겨있다.

이 책이 생각났던 이유는 이 원주민들의 언어에 반은 인간, 반은 곰을 뜻하는 단어 ‘미에드카’가 존재했다는 것 때문이다.
대체 어느나라의 말에 이런 뜻을 가진 단어가 또 존재하겠는가. 이 원주민만의 환경 덕분에 만들어진 표현, 세상의 인식인 것이다.

그래서 문화와 환경이 다양한 만큼 언어도 다양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어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가 사라지거나 여러요인으로 인해 언어가 합쳐지고 비슷해진다면 그만큼 이전에 있었던 문화와 환경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많게는 수천조각의 피스가 맞물려 하나의 작품이 되는 레고에서 몇개의 조각만 빠져도 연결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환경이 언어를 만들게 했고 언어가 사람의 사고를 만들어내는 이 순환고리가 느슨해지면 사람의 사고도 유연하지 못하고 녹이슬어버릴 것이다. 세상을 인식하는 범위가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우리의 세상은 온전함을 잃어버릴 것이다.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고 이해를 넘어 당연히 다를 것이다 인정하고 그 다름이 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그래야 이 다양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촌으로 표현되는 다양함의 유대가 잘 유지되고 그로인해 더 오롯이 존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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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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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진화라는 개념은 수백년간 생물학에서 뜨거운 감자로 남아있다.우리가 알다시피 우리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은 서로를 구별짓는 뚜렷한 특징들, 발현형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발현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가 생물학에서는 당연히 근간이 되고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생물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진화해서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기위해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이 형태의 이유에서 첫번째, 진화론이다.
이것말고 또 있냐고? 당연하다. 바로 신이 완전무결하게 만들어주셨다라는 창조론이다. 아니 이건 예전에 교황의 권력이 한 국가의 왕의 그것을 넘어섰을 때 주장한 것이 아니야 라고 하겠지만 놀랍게도 사회과학이 아닌 자연과학에서,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는 아직까지 창조론이 등장한다.

양자역학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지도 않고 좀비같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 처럼 말이다.

그럼 이러한 진화론을 일반인들에게 널리 인식되게 한 사람은 누구일까? 종의 기원으로 진화라는 개념을 착안해낸 찰스 다윈이 제일 먼저 떠오를테지만, 종의 기원을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찾아보기 쉽지않다. 그러면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 중 가장 성공하고 널리 읽혀진 것이 있을 것이다.

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다.
물론 진화론의 입장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진보적 성향이 있는 학자이지만 (생명체를 유전자를 전달해 주는 ‘탈 것’에 불과하다는 유전자 만능주의를 신봉하는 것을 넘어 당연한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그럼에도 자연의 생존에 의해 선택된 유전자들만이 살아남아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는 자연선택설을 가장 잘 , 그리고 널리 알린 학자임은 분명하다.

#리처드도킨스 의 신작 #불멸의유전자 (#을유문화사 출판)은 작가의 신념은 더 굳건해졌으나 조금 더 유순해 졌다 해야할까. ‘탈 것’이라는 단어와 견해가 다른 학자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작가는 온데간데없고 수도원에서 필사를 하며 수련한 수도승처럼 뾰족하지도 않고 흥분하지도 않고 차분히 정돈된 자신의 생각을 읊는다.

불멸의 유전자. genetic book of the dead. 사자의 유전서 로 생물체를 여기면서 ‘탈 것’으로 폄하했던 생물의 가치를 스스로 끌어올렸다. 유전자를 전달해 줄뿐만 아니라, 계주 육상 선수가 어떻게 해서든 다음 주자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바통처럼, 과거의 존재들의 환경이 생물체의 온몸에 고스란히 새겨져있다고 그래서 이전 세대의 환경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과거를 유추하는 것을 과거 비싼 양피지를 아껴쓰는 방식으로 여러번 겹쳐쓰기를 뜻하는 ‘팰림프세스트‘에 비유한다. 물론 눈으로는 잘 보이지않아 첨단 과학장비들을 동원해야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한 노력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바로 과거의 것들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의 입장에서는 진화라는 과정은 어떤 특정세대에서 갑자기 일어나기보다는 매 세대 거의 일정한 정도로 일어난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매우 혁신적이기 보다는 보수적으로.
그래서 과거의 진화 양상을 알아내면 높은 정확성으로 미래를 예측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킨스의 논리를 지금보다 미래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과학자도 이용가능한 유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가상의 미래과학자 Scientist Of the Future, SOF를 등장시킨다.

이 소프에게는 지금 우리의 현재 생물체의 모습이 ‘사자의 유전서’가 되는 것이다.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누군가에게 과거도, 미래도 될 수 있는 현실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해 전해줄 것들을 내가 아닌 타인(후손)을 위해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으며 공동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렴진화나, 학습의 진화 가능성까지. 진화론자의 끝없는 진화에 대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여러 시간대가 켜켜이 쌓여있는 퇴적층에 뿌리내린 한그루의 식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썪어 토양이되어 다음세대를 키워낸 과거를 잊지말고 발판삼아 내가 맺은 열매와 후에 썪어문들어질 몸체도 또 하나의 시간대를 의미하는 퇴적층이 되어 다음세대를 살릴테니 말이다.

나의 현재가 더없이 귀하고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전해질 나의 이야기를 소중히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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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
소위(김하진) 지음 / 채륜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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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어쩌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책을 덮는 순간 떠올랐다.

#부사가없는삶은없다 (#채륜 출판)을 쓴 #소위 작가는 폭력적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병에 걸린 엄마가 작가의 손을 잡고 도망쳐나오는 순간부터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국어교사, 출판 편집자, 수녀가 되려했다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꾸준히, 기어이 나아간다.

외면 하고 들춰내지 않음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나씩 오롯이 받아들여 자기만의 언어로 그것도 신중히 선택해 여유롭게, 덜아프게 다시 만들어내며 그렇게 과거의 자신을 떠나보내는 작가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우리는 삶을 살아오면서 발표를 하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하는 순간이 오면 ‘간단하게 해야할말만, 요약해서’를 최고의 미덕으로 배우고 행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곧 돈인 사회에서, 이 상황뿐만 아니라 신경써야할 일들이 넘쳐나는 바쁘디바쁜 사회에서 쌀이 도정되어 생쌀이 가지고 있던 독특한 풍미가 사라져가듯, 비슷하게 느껴질 수는 있으나 절대로 같을 수 없는 개인의 이야기들을 하나의 카테고리속에 비슷한 케이스로 분류해버린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 권한 행사인가.
그 속에 담겨져있는 한 사람의 진짜 인생이 무차별하게 깎여나간다. 자기만의 특별함이 무시당하고 다른 것들과 하등 차이없는 것으로 비하당해버리면 무슨 의미로, 의지로 행복이 빛날 만큼 힘듦과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간단말인가.

소위 작가는 깎여나가버린, 어쩌면 스스로부터 특별하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하지만 고통스러웠던 삶을 부사하나에 하나의 이야기를 대입하여 마주보고 특별한 것으로 만들었다.

나의 하나의 사건이 특별해지면 하루가, 일주일이, 한달이, 일년이, 평생이 특별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에 하나의 부사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부사가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

용언 또는 다른 말 앞에 놓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품사.
우리 국어에서 부사의 의미이다.
뜻을 분명하게. 우리의 삶에 부사가 쓰이는 순간, 우리의 삶의 의미가 분명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를 비롯한 50만명의 독자들이 이 글을 읽으며 위안과 감동을 받은 것도 작가의 인생에 담겼던 부사가 우리의 삶에도, 태양의 빛을 반사해 빛을 내는 달처럼, 분명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 느낌은 ‘위안‘이다.

위로하여 마음을 편하게 함. 또는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
위안의 사전적 뜻이다.
스스로 위안을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하여 주는 대상’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쉽게 매순간 특별하고 명징해 질 것이다.

쳇바퀴 구르듯 구르는 인생이라는 표현을 아무 거리낌 없이 쓰며 살아왔다. 내 스스로가 내 인생을, 내 삶을 전혀 특별하고 분명하고 의미있게 여기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스스로의 삶이 특별하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삶이 ‘특별해지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우리의 현재 삶은 특별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비슷하다는 인식을 우리도 모르는 새에 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인생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그만큼 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되짚어 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는 빡빡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은 하나의 계기만 있으면 꽃이 피듯 활짝 피어나 이전과는 전혀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또 사람의 특징이다. 그러니 수만년을 넘는 아득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오지 않았겠는가.

우리는 모두 특별하고 귀한 존재이다.
부사를 통해 너무 아프지 않기를, 외면했던 무언가를 다정하게 보듬어 줄 수 있기를.

작가의 말대로, 부사가 없는 삶은 없으니까.

이 책을 만나 마침내, 우린 각자의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유난히 밝은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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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해방일지
김명주 지음 / 아빠토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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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인구 오천만의 시대. 수도이자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향해야한다는 이미지가 강한 서울에는 천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있으며, 수도권까지 확장하면 전체인구의 절반수준인 2500만명정도가 살아가고있다.

과연 날때부터 서울 및 수도권에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가 문득 궁금해졌다. 원래도 비쌌던 집값이 코로나시대를 지나오면서 몇배나 한번에 올라 말그대로 정말 그림의 떡이 되었는데도 사람들은 서울로 향한다.
서울은 무엇이 그렇게 특별할까?

나도 광역시이지만 지방에서 태어나 학업으로 서울로 올라가서 몇년을 지내다 고향도 서울도 아닌 지역에 터를 잡고 몇년 동안 살아오고 있다.

어쩌다보니 성향과 맞지않게 경상도 서울 전라도를 아우르는 인간 화개장터가 되어보니 어디 한 곳이 특별나게 뛰어난 곳은 없었다. 다들 저마다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완벽한 곳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서울로 향하는 것일까?

#서울해방일지(#아빠토끼 출판)을 쓴 #김명주 작가는 직장인시절 출강하는 직업 특성상 매달 본사가 있는 서울을 왔다갔다하면서 대전에서 출퇴근 했던 경험과 퇴사하고 디지털노마드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굳이 서울에 머무를 이유가 없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예전에는 서울에 대기업들이 몰려있고, 좋은 학교도 인서울이라 불리며 소위 성공이라 불리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서울에 있어서 사람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었으나, 코로나 및 통신의 발달로 서울에 집약되어 있던 메리트들이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닌 세상이 왔다고, 세상이 변화했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기꺼이 그 변화에 올라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남들 다하니까, 혼자 도태되는 것 같아서, 부모님이 원하셔서 같은 수동적이며 아무생각없는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서울로 향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않는다고, 다만 자기에게 진정으로 옳은 일인지, 이득이 되는 일인지 잘 따져보고 결정하라고 말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기꺼이 하루에 많게는 4시간을 출퇴근길에 투자할 수 있는지 같은 요소들을 요목조목 따져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방에 살아도 아무문제없음을 경험으로 이야기하며 오히려 지방에 살았을때의 이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같은 금액으로 좀 더 신축의 더 넓은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릴수도 있고, 상대적으로 서울보다 낮은 인구밀도와 소음으로 더 고요하게 스트레스 받지않고 오롯이 나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여 진정한 자기계발을 이룰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요즘은 물가와 집값의 상향평준화로 돈이 오직 지방에 살아야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하지만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력 등의 이유로 청년들이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유리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단순히 정착지원금같은 제도만 운영하는 정부기관들의 수동적 태도를 비판하기도 한다.

정착했을 때, 지원금이 아니라 앞으로 주욱 정착해서 발전해서 살아갈 수 있는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서울 해방일지>는 지방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변화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식의 환기를 시도함과 동시에 지방소멸에 반응하는 정부기관의 이상적 모습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치적 제도적 이야기와 자기계발까지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회사의 구성원으로도, 디지털 노마드로 1인 가구 세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겪고 가르치고 배운 작가의 사상과, 책을 펴낼정도로 끊임없이 글을 써오면서, 같은 무언가를 두고도 나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더라는 고백까지 담아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며 책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방소멸에 대해 자신의 관점까지 내세운다.
두권의 책으로 만들었어도 분량걱정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가의 활동성과 의지, 열정이 읽는사람에게도 전달될 만큼 꽉꽉 눌러담아져있다.

다른 것들을 다 차치하고 나는 이 작가처럼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 열정을 다 바치고 자기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게 살아왔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는 독서였다.

세대가 변하듯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남들의 시선과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에서 벗어나는 ‘나의 해방’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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