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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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면서 느꼈던 답답함과 마음아픔은 여전히 생생하다.

절반의 분량정도인 280페이지를 이틀에 걸쳐 반씩 나눠 읽었다.

평소에 읽는 속도가 느린편이 아니고
제법 집중해서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130페이지정도를 읽는데 3시간여가 걸렸다.

그만큼 #위즈덤하우스 가 출판한 #나의작은무법자 속 이 작은 무법자, 더치스의 인생이
(비록 책에서는 일년여의 시기뿐이지만)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리라.

초반 분량에서는 작가의 표현력을 인덱스로 표사했다면 뒷부분 절반에서는 더치스의 심리묘사를 한 부분을 표시했다.

공포영화에서 제일 먼저 뛰쳐나가는 사람이 먼저 죽는다는 뻔한 클리셰마냥, 이제 정말 한줄기 빛이 비치는건가 싶은 상황이오면 어김없이 곤두박질쳐진다.

물론 더치스가 동생 로빈을 위해 한번만, 이번 한번만 무법자기질을 참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기도 아이이면서 동생을 부모대신 챙기느라 한번도 아이이질 못했던 더치스가 한두번 자기의 솔직한 기분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짓인가 싶다.

날때부터 아버지라는 존재는 본적도 없고
하나뿐인 엄마는 어릴적 동생의 사망으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두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의 모진 시선을 견디며 십대중반의 나이에 세상 모르는 왕자님 동생과 아름답기만한 엄마까지 챙기며 살아가는 더치스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그래서 누구보다 더치스가 끝에는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랬다.

할아버지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아 마음을 열어
미래를 그려나가던 찰나의 더치스가 영원하길 바랬다.

이 책 끝을 덮으면 머릿속에는 물음표만이 남는다. 이것은 해피엔딩인가?

과연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저울질 해야하는 엔딩이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범죄소설로 분류되어 사건의 진범을 알아가는 과정이 담겨있고 반전의 반전이 담겨있지만
(진범이 궁금하다면 정말 끝까지 읽어야한다)

나는 이 책에서
진정한 사랑은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지를 다시한번 깨닫게되었다.
직장을 구해서, 생활이 안정되서, 나이가 차서 같은 이유로 결혼하고 게임의 다음 스테이지를 넘어가듯 으레 부모로 나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실히 절감했다.

아이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는지.

이게 얼마나 교육시키고 풍족하게 키울 수 있는지만큼(보다)중요하다.

난 그래서 오히려 부모가 되려는 사람에게,
부모인 사람들에게
#위즈덤하우스 의 #나의작은무법자 를 권하고 싶다.

더치스.
너가 살아온 날들을
‘이 정도 일들은 무법자라면 누구라도 겪는 흔한일이죠’라고 진심으로 스스로 되뇌일 수 있을만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행복과
모든 형태의 사랑이 오롯이 너를 비추길
누구보다 바란다

안녕. 나의 공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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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사람들 - 위대한 예술가들의 사랑, 우정, 스캔들에 관하여
최연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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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예술품들을 좋아하다보면 자연스레 그 예술품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에 대해 궁금해진다. 대체 어떤 삶을, 어떤 아름다운 것들을보며 사는 삶이었길래 이런 찬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는지.
작품을 넘어 화가 그 자체에 대한 경의로 넘어가게 하는 이와같은 마음은 화가들의 삶을 작품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울 것이라 멋대로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겠지만 화가들의 삶은 대부분 그렇게 밝지못했다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당황스럽게 한다.

삶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의 귀를 잘라버린 화가, 어쩌면 화가의 모든 것일지도 모를 캔버스와 스케치북을 태워 난방을 했던 화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느꼈던 당혹스러움과 함께 뜻하지않은 거부감이 올라와도 이상하지 않을텐데 그럼에도 그 화가의 팬이 됨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러한 경험이 몇 번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로였다.

그러다 고갱을 모티프로 쓴 서머싯 몸의 <달과6펜스>를 읽으면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한 내 감정의 변화로 어렴풋하게나마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와 아이 둘을 단번에 버려버리고 떠난 시점부터 죄의식 하나없이 떳떳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그를 보면서 화가 치밀고 그를 이해할리는 절대 없겠다 했었는데 타히티에 도착하여 그가 불멸의 화가로 나아가는 처절한 과정은 읽는 동안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나를 감화 시켰다.
그리고 인간 스트릭랜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화가 스트릭랜드는 끝내 나에게 받아들여졌다.

그 처절함과 고통을 고스란히 품어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나에게는 숭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화가 혼자 있었다면 그런 작품들은 남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내를 버리고 나왔지만 주인공의 놀림을 받으면서도 지극정성이었던 친구의 아내를 뺐어 누드화를 그리고 그를 한단계 위로 이끌었으나 그에게 버림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블란치, 타히티에서 아무말 않고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던 어린신부 아타까지. 그 모든 만남에서 그의 그림은 나아갔고 결국 완성 된 것이다.

#화가의사람들 (#최연욱 지음 #온더페이지 출판)도 이러한 화가를 오롯이 화가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던 강렬한 인연들을 소개한다.
누가 그렸냐만큼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려나갔느냐라는 것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는 전문화가인 저자의 다정하면서도 차분한 일화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아름다운 사랑과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랑이었던 것들과 친구이자 라이벌, 그리고 화가에게 중요한 후원자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차분하게, 하지만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쉽고 간결한 문체가 화가들의 아름다운 작품들과 함께 수록되어있다.

후원자들의 관계는 지금까지 화가들의 작품이 전해지는데에 큰 역할을 하는 부분이라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이 많았다(내가 알고있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히려 숭고한 사랑과 스캔들로 표현하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부도덕한, 그래도 사랑이었던 그런 이야기들에 관심이 더 많이 갔다.
아내가 죽어가는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시시각각변하는 아내의 얼굴색을 관찰하는 스스로를 혐오하면서도 그 순간 아내의 초상을 그려내 자신만의 애도를 나타낸 모네,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상상으로 하녀와의 스캔들, 그림의 가치를 모르고 물질적인 것에만 집착하게 그려진 볼네스가 실은 베르메르와 평생을 찐사랑하며 지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래도 볼네스는 자기 이미지가 나빠져도 베르메르의 그림이 네덜란드의 국보취급을 받게된 것을 보고 웃고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이 참으로 듣기좋았다.

서로를 마음에 품었으나 정치적, 상황적(타이밍이라고 일컫는 그것들)로 결국 함께 하지못한 인상주의 화가 드가와 카사트를 읽을 때는 참 이들도 예술혼을 빼면 우리와 다름 없는 좋아하는 사람앞에서는 삐걱거리는 평범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런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 바로 다른 사람과의 교류였고, 그 교류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고 느낌 감정의 기록이 바로 불멸의 작품으로 남겨진다는 것을 흥미롭게 몰입하여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문득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고맙다는 인사와, 잘지내는 안부를 묻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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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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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페스트 (#알베르카뮈 #새움 출판)를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휩쓸기 전에 읽었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책을 덮으면서 들었다.

유럽에 흑사병이 돌아 1/3의 인구가 숨지기는 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겪은 세대는 존재하지 않으니 막연한 디스토피아 소설로 읽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로 <페스트>속 등장인물들과 같은 시간을 함께한 우리세대는 분명 이 책이 다르게 읽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라기 보다, 저 시간을 견뎌낸 누군가의 처절한 기록같았다. 마음이 불편했다.

언론을 통제해 사실을 축소할 뿐 원활한 대응을 하지못하는 정부, 불안과 공포속에서 어쩔 수 없이 팔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없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맘껏 욕할 수 없었고, 그렇게 화가 나지도 않았다. 모두가 이런 재난같은 상황은 처음이었고, 정부이든 일반 시민이든 모두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다른 이름일뿐.
각자의 사정, 위치, 지위에 따라 할 수 밖에 없는 선택들이었다. 어차피 끝이 보이지않는 장기간동안 그 모든 사람들을 통제할 수 없다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겪지 않았나.

그래서 그런지 어느덧 잊혀진 작은 영웅들이 유난히 찬란히 빛났던 것 같다. 리외, 그랑, 타루. 모두 자기의 위치에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다.

이런 보통의 선함들이 세상에 남겨져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것이다. 문득 레베카 라인하르트의 ‘선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거창한 선함을 행하기 위해 아무 행동을 하지않는 것 보다 휴지를 줍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등의 누구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선함을 행하면, 그 선함은 이 세상에 사라지지않고 남아 쌓이고 쌓여 좋은 세상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라는 말이었는데 이 보통의 영웅들을 보니 선의 평범성이란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말하겠구나 싶었다.

저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선함으로 이 세상이 바뀌어 나간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이 세상이 참 올바르게 돌아가고 있구나 싶었다.

나라를 지켜 부상을 입어 몸과 마음에 후유증이 남은 참전용사와 매국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세상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참전용사들을 위한 집짓기 봉사와 같은 당장 나가서 망치를 두드리고 먼지를 뒤집어 쓰기만 하면 누군가의 삶이 직접적으로 바뀌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는 것도 보통의 선함에 해당하는 일 인 것 같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해줄 슈퍼맨, 어벤저스와 같은 인물들이 나타나기를 꿈꾼다. 히어로물이 인기가 많음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다라는 것의 방증일 것이다.
<페스트>속의 사회에도,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시간에도 슈퍼맨은 없었다. 하지만 보통의 그랑, 리외, 타루(심지어 우리의 시간선에는 이런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들이 이 세상을 지켜냈다. 아직까지 완벽히 아물지 못한 상처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으로의 복귀를 이뤄냈다라는 것만 해도 너무나 큰 업적이다.

그리고 #이정서 번역가의 번역으로 전염병, 역병, 돌림병으로 페스트로 통일되어 번역되던 것들이 카뮈가 구분했던 원문 그대로 나뉘어 번역이 되면서, <페스트>의 소재인 질병으로의 역병만이 아닌 우리 개개인의 인간이 가슴속에 지니고 있는 악의도 ‘역병’으로 읽혀졌다.

“우리가 더 이상 역병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을 해야한다는 것과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평화를 기대할 수 있고, 또는 좋은 죽음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걸 알고 있소."의 문장 속에서의 ‘역병’을 단순히 ‘페스트’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역병’이라고 받아들였을때의 의미와 전혀 다르다.

내가 읽기에는 스스로를 위해 기꺼이 타인을 져버리는 것, 해야만하는 필요한 일을 하지않은 것 이 ‘역병’의 의미라고 읽힌다. 카뮈도 이런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 아예 가능성이 삭제된 것 보다는 카뮈의 원래 글에 더 가깝지 않을까.

세상을 위해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그리고 그만큼 번역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독서였다.

어쩌면 번역가도 이 글을 통해 해야만 하는 일을 용기있게 함으로써 ‘역병’을 이겨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갓 입문한 고전들이 더 좋아지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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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소원 - SPRING's WISH
양버터.루미칠리 지음 / 이음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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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봄비치고 비가 제법 많이 오네, 꽃 다 떨어지겠다 꽃구경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런 대화를 한 것이 어제같은데 어느덧 유월도 끝나 초여름을 지나 본격적인 장마와 태풍들이 한반도를 방문하는 본격 여름이 시작되었다.

봄을 제대로 누렸던가? 속절없이 흘러버린, 이런저런 일들로 모두가 올해는 유난히 시간히 빨리가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니, 이번 봄이 더 아쉬운 마음이다.

그래서 여기 봄이 다시 왔다.
#이음서가 가 펴낸 #봄의소원 (#양버터 지음 #루미칠리 그림)은 평화로운 듯 보이나 낮에도 밤에도 무수한 탄생과 변화가 발생하는 변화무쌍한 봄을 떠올리면 드는 안타까움, 따뜻함, 그리움, 그리고 약간의 서늘함을 다섯개의 이야기로 소복하게 담아냈다.
마치 꽃이란 꽃이 다 핀 소담한 정원같다.
아무리 창조주라도 홀로 다 만들었다기엔 너무나 다양한 생명체들이 자기들끼리 맞물려 영향을 주고받으며 정원이라는 하나의 세상을 만들 듯이 다섯편의 이야기도 그렇게 <봄의 소원>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보통, 평범이다.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슬퍼하는 것 대신, 오늘 하루 나쁜 일 없이 무탈했음을 보통의 어느날과 다름없음애 감사할 수 있는 비슷하게 생긴 날들이 많은 그것 중 하루.

그것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얻고 복에겨워 지루해한다.
어떠한 사건이 생기면 순식간에 동요되고 휩쓸리면서 말이다.

좋은 사건, 나쁜 사건 상관없이.

흔한 살인에서는 폭력성, 봄의 소원에서는 누군가에 대한 마음, 다섯용사에서는 외로움, 그리움x2에서는 같은 하늘아래 숨을 쉬고 있다라는 것이 주는 안도감, 내셔널 스탠다드 메리지 에서는 결혼을 담아내서 평온한 우리의 삶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 파문은 어떤 모양으로 어디로 어느만큼의 속도로 나아가야하는지 강력하게 어필하지 않는다. 평온한 일상과 같은 양버터 작가의 잔잔한 글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가려놓았다.
그래서 우리가 작가의 진의를 찾아내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에 따라 같은 글을 읽지만 저마다의 파문으로 기억할 것이다.

간혹 그래도 글이 너무 드문드문 비어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 때 루미칠리 작가의 아기자기한 그림이 글과 글사이에 흘러 들어가 이 책을 온전하게 만든다.

선물받은 마스킹테이프에 삽화와 글의 연장선과 같은 컬러감이 인상적인데, 모든 글들과 그림이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엄연히 다르지만 자세히 보면 결을 함께하고 있는 마스킹테이프의 디자인으로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봄의 소원>은 우리 개인 하나하나와 굉장히 닮아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개인에게는 물리적 몸이 하나밖에 없지만 그 안에는 수십년 동안 여러 일들을 겪으며 웃고 울고 했던 수많은 ‘나’가 있다. 나이가 들면서 지금의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순간에는 스무살적의 나, 이때는 고등학교 시절의 나, 어떨 때는 초딩의 나, 사라진 줄 알았던 여러 모습의 ‘내‘가 문뜩문뜩 피어오른다.

우리의 삶은 그런 다양한 나를 모두 유기적으로 묶어 다양성을 가진 나로 묶어내는 과정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는 누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아야한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는 외부로만 눈을 돌릴뿐 우리 내면은 들여다보지않는다. 그래서 삭막하고 힘들고, 외롭고, 화가 가득한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피하지 않고 마주쳐 말로, 글로, 깊은 사유로 어렵고도 몰랐던 다양한 감정들과 조용한 대면을 하게하는 <봄의 소원>은 우리 스스로가 알게 모르게 흘려보내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붙잡게 하는 힘이 있는 책이다.

작가가 저의를 숨기면서도 글에 빼곡하게 감정을 담은 것 처럼, 왜때문이지 모르게 책을 덮으면 올라오는 여운 사이사이에 우리만의 감정도 빼곡하게 들이붓게 한다.

그렇게 나도 몰랐던 감정들이 작가의 단어와 글을 빌려 피어나고, 우리는 좀 더 우리다운 우리가 된다.

모두가 똑같아 보였던 휑한 나무들이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면 제각각의 꽃을 피워 자기만의 존재감을 내뿜듯이, 외면했던 감정들과 솔직하게 마주해 다양한 봄꽃처럼, 자기만의 고유한 색과 향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안에 무수히 소용돌이치고있는 나 스스로를 붙잡아 마주하고픈 사람들에게 <봄의 소원>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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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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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여름이 돌아왔구나를 언제 강하게 느끼는가?
뜨거운 태양, 연두를 넘어 초록이 짙어지는 풍경, 장미, 능소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나는 공포, 스릴러, 미스테리 장르의 영화나 책이 서점과 영화관을 장악하는 것을 보면서 강하게 느낀다.

어릴적 화면을 보는 시간보다 눈을 감거나 이불을 뒤집어 쓴(심지어 소리도 듣기싫어 귀도 막은)전설의 고향같은 납량특집의 여파 때문일까. 아마 링과 같은 공포물 소설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닭살이 소름이 오소소소 올라오는 그런 이야기들. 링을 지나 가장 유명한 일본 공포 작품으로는 아마 13계단 과 제노사이드가 아닌가 싶다. 미스터리의 오싹함과 기이함, 한동안 일상생활이 불편한 강력한 여운까지, 그럼에도 신간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이 수많은 팬들을 양성하기에 부족함이 전혀없다. 오히려 과할 정도이다.

그런 작가가 단편집 #죽은자에게입이있다 ( #다카노가즈아키 지음 #황금가지 출판)을 경력 20년만의 첫 단편소설집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미스터리에서 공포와 SF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작가의 넘치는 상상력과 정확한 기획력을 부족함없이 선보이고 있으며 여섯 편의 수록작 중 네 편은 일본을 포함해 어디에서도 공개된 적이 없는 미발표작이란다.

초자연적 소재는 인간의 역사가 쌓이고, 문명의 기술력이 발달할수록,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어지듯이 그렇게 존재감이 더 해지고 있다.

아마 발전한 문명에서도 뭔가 속시원히 있다 없다가 증명되지 않아서이지않을까(과학에서는 증거를 찾지못해 없다고 말하지만 미스테리한 일을 겪은 사람은 꾸준히 나와서 그런걸지도)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작품에서는 초자연적인 것들로 주로 죽은자의 혼, 유령이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유령의 존재는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속고 속이는 지지부진한 모습들에 긴장감과 변화를 주는 변곡점의 역할을 수행한다. 원래 인간들끼리 존쟁을 벌였다면 결정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이상 진척도 일어나지 않고, 결국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악의 승리가 당연하게 일어났을텐데 유령의 존재로 문제가 해결되어 진실이 드러나는 상황을 기대할 수 있게 되고, 실제로 해결되기까지 한다. 유령이 어디있어 라고 믿는 우리의 세상과 대부분의 모습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시감을 느낄 수 없을만큼 평행우주론 속 또다른 가능성의 어디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작가특유의 섬세한 묘사가 현실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딱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유령이라는 존재도 섬세한 묘사로 응당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라는 것이다.
점점 커지는 발소리, 눈에 보이는 영혼, 교수의 집념, 낯선남자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의문의 존재들이 장르에 걸맞는공포감과 으스스함을 선사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이 세상에 버젓이 살아 활보하고 다니는 악인들을 징벌하고, 그와 동시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연민까지 생각하게 하는 겉모습과는 다른 우리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일 수 있도록 필수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이것은 필수적인 무언가가 결여된 채 끔찍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러한 악인들이 교묘히 법위에 잠을자고, 반성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이 세상이 올바른 모습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장르물이긴 하지만 상상력과 소재가 장르를 탈 뿐, 그 안에 섬세한 관찰력과 눈부신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흡사하다.
결국 해결되는 책 속의 세상처럼, 우리의 세상도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래본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이 고장난 사람, 유령이라는 존재를 잊고 있었던 사람, 냉방비가 아까운 사람, 더워서 집에서 시원하게 있고 싶은 사람들에게 <죽은자에게 입이 있다>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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