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 - 연쇄살인범의 딸이 써 내려간 잔혹한 진실
에이프릴 발라시오 지음, 최윤영 옮김 / 반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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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가족을 잔혹함과 폭력으로 다스렸지만, 한 여자아이의 전부였던 아버지가 실은 미치광이 연쇄 살인마였다면? 심지어 그 사실을 아버지가 전부였던 딸이 알아챘다면?
과연 그 딸은 아버지를 신고해야할까 가족이니까 애써 묻어야할까? 굉장한 소설이지 않은가? 듣기만 해도 주인공일 딸의 심정이 짐작도 가지 않는다.

#기억은눈을감지않는다 (#에이프릴발라시오 지음 #오팬하우스 반타 출판)의 내용이다. 그란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 책 소설이 아니다. 픽션이다.

30년이 넘게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사건의 범인, 2번의 탈옥, 4번의 방화, 5건의 살인으로 FBI 10대 지명수배자로 유명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에드워드웨인에드워즈 의 딸인 작가 에이프릴 발라시오가 그렇게나 자주 야반도주하듯 이사를 해야했던 과거를 돌아보다 우연이라기엔 자기 주변에서 너무나 자주 발생한 사건들을 떠올리며 진실에 다가가는 고백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양으로 4살정도의 기억부터 생생하게 닮겨져이있다.
작가의 생생한 기억력에 놀라기 보다는 읽는내내 마음이 아팠다. 한 여자아이의 모든 것이었던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위해서 사랑과 관심을 받기위해서, 착한 딸이 되기위해서, 아버지의 발작적인 폭력을 피하기위해서 한시도 아버지에게 눈을 떼지못한 에이프릴이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춘기무렵이 되어 다른 가정의 진정한 ‘사랑’을 받는 딸들을 보면서 아버지에게 이상한 점들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에이프릴의 세상은 처참히 무너졌다.

범죄에 대한 기록, 고백이라기 보다는, 한 사람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안타까웠던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마주하는, 그것으로 인해 자기자신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 멈춰있고 도태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에이프릴 작가의 의지로 <기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는 다가왔다.

언제가 처음 아버지의 모습인지는 긴가민가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의 정장을 입어도 아버지가 입었을 때보다 더 많은 여백이 있었을 정도로 아버지라는 존재는 크고 든든하고, 무엇이든 척척해내는 정말 수퍼맨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가정을 지켜내는 모습과 내리사랑을 배울 수 있는 온기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관계가 아버지라고 생각한다. 비록 경상도 아버지들은 제법 무뚝뚝했고(그래도 그중에서는 서윗한 아버지셨다)그 시대의 아버지들 처럼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하셨다.
맞을 때는 무섭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지만 나의 잘못이었고 지나고나면 싫었지만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사랑과 진심이 담겨있음이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으니 서툴렀으리라. (하지만 우리아버지는 태권도 선출이시다 음 아부지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셨거나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신건 아닌지😂)

하지만 에이프릴이 받은 체벌은 그렇게 잘되길 바라는 사랑이 담겨있지 않았다.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었으며, 자기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의지의 표명일 뿐이었다. 누가 자기 자식을, 그것도 딸을 기절할만큼 체벌하는가.
어떤 빌어먹을 아버지가 딸의 목에 키스마크를 남기는가.

온전한 사랑과 가정 교육을 받지못한 에이프릴은 그래도 자신의 가족들을 아프게 하면서도 사회에 옳은 일을 했다.
모든 가족이 자신들을 생각할 때 에이프릴만은 피해자의 가족을 생각했다. 진정한 어른이고, 진정한 부모가 될 소양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자식들의 앞 길을 지키고 제시하고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침과 동시에 사회인으로서 참고 해야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솔선수범하여 알려줘야하는 존재, 부모.

부모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에이프릴에게만이 아니라 부모는 아이의 세상 전부이다.
정말 많은 준비와 인내가 필요한 숭고한 일임을.

그리고 에이프릴이 이 책을 본인이 쓴 것이 다른 가족들에게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차피 밝혀질 일이었으며(나쁜 일은 결국 드러난다 그것이 정의이다)이왕 밝혀질 일 본인의 입으로 세상에 드러내면 천륜을 저버렸다같은 그런 욕은 자신에게 쏠릴테니 말이다.
다른 가족들은 피해자가 되어 동정과 이해를 받을테니.

괴물에게서 이토록 큰 사람이 태어날 수 있다니.
에이프릴에게 존경과 경외심이 마구 샘솟는 독서였다.

혹시나 자신의 환경을 탓하며 불행하다 생각하고 자포자기 해버린 사람이 있다면, <기억은 눈을 감지 않는다>를 읽어보길 바란다. 등짝을 맞은 것처럼 찌릿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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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무지개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용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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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화창한 날 피어오른 기대치 않은 무지개를 보았을 때의 그 행복함을 기억하는가? 단순한 빛의 난반사 현상일 뿐인데 그 기억이 강렬히 남아있다. 그래서 물줄기를 뿌리다가 인위적으로 생긴 무지개를 봐도 그렇게 반갑고 기쁠 것이다.

무지개가 하나가 아닌 여러개가 뜨는 과잉 무지개는 어떨까.
행복함이 몇 곱절을 커져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과잉’이라는 어감이 어쩐지 불길하다. 많다는 의미를 가진 어휘 중 긍정적인 뉘앙스는 아니다.

#과잉무지개 (#김용재 지음 #자음과모음 출판)의 주인공 준재는 어김없이 그런 부정적인 상황으로 글을 읽는 우리를 맞이한다. 몇 년 간격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부모님의 사망보험금 까지 사기로 날려먹은 준재는 삶의 끈을 놓으려 한다.
그렇게 한 사이트에 접속을 하게되었고 접속만 하였을 뿐인데 사찰이라도 당한듯 개인번호로 연락이 온다. 삶을 마무리하고 싶으면 적어주는 곳으로 오라며.

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대로 살아숨쉬는 것이 더 두려웠던 준재는 그 초대에 응하고 그러면서 3개월의 여명을 부여받는다. 그 기간 동안 괴한들의 요구에 응하며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시설과 유기견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자신을 아껴주고 기꺼이 기억해 줄 사람과 강아지를 만나며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주던 것들이 삶에 미련을 가져다주기 시작한다.

준재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살기 힘든 세상이다.
갖가지 실패를 경험하며 이리저리 깎여 나가다 보면 어릴 적 작은 일에도 까르르 넘어가며 웃어제끼던 나는 거짓말처럼 남아있지 않다.

거기에 세상이 모두 나에게 등을 돌려도 기꺼이 내 편이 되어줄 부모님의 부재까지 겹쳐지면 이 세상이 멈춘 것 같다.
부모님 중 한 분만 남아도 감사하면서도 부양해야한다는 책임감이 삶을 옥죄기도한다.

그만큼 모든 것들이 삶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던 것들이 물론 가슴아픈 일이지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님을 의외로 흔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이제 안다.
(이왕 겪은 것 나만 겪고 내 주위사람들은 겪지않았으면 싶어진다 살아가다보면)

결국 모든 것은 우리가 스스로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힘들다고 불러냈을 때 상대방이 들려주는 조언같은 답답함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밖에 답이 없으니까.

누가 모르는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그 답을 <과잉 무지개>가 주고있다.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보라는 것.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고 집 청소를 하고 건강한 과일로 아침을 챙겨먹고 독서를 하고 나가서 일을 하고 보통의 일상에서 행복을 누리라고 말한다.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기다리고 염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야할 태도이다.
주변사람들의 웃는 모습에 감화되어 자신도 미소지어야하며, 나 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온정도 있어야한다.

그런 모든 사소한 일상들에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담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 봤을 때 행복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의 태도가 아닐까.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나서 남겨진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혼자 남겨져서 내 편이 없다고 생각이 들텐데 이것도 그 사람의 몫까지 내가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지 않은가싶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부담이겠지만, 잘 다스려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내가 이루어온 것들을 지켜내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전 이키가이 生きがい 라는 말을 알게 되었다.
삶의 보람, 삶의 의미 정도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우리 스스로가 왜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말 정신없이 살다보니 스스로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럴때일수록 나 스스로에대해, 삶에 대해, 내가 왜 이렇게 힘든데도 계속 아둥바둥 최선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 답이 바로 이키가이,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남겨진 입장에서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인생의 목적과 태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소설이었다.
35살까지 글을 쓰고 안되면 포기하려 하셨다는데, 아픈 개인사와 맞물려 직접 멋진 삶의 태도를 보여준 이제 계속 글을 쓸 결심을 한 34살 작가님을 앞으로도 응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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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여성들
케이트 제르니케 지음, 정미진 옮김 / 북스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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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뉴스에 보도될 때 마다 입안을 쓰게 만드는 각종 성범죄들을 여성이 얼마나 약한 입장에 쳐해져있는지를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여성을 보호할 강력한 대책을 만들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보편적으로 은연중에 만연히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직장 내 차별이다.
입사년차가 빠르고 고과도 더 좋고 그럼에도 승진에서 밀리고, 근평에서도 더 낮게 책정이 되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요직이라고 일컬어지는 누구나 욕심내는 일쪽에는 철저히 배제당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대체 ‘여자’가 어떻길래?

#숨겨진여성들 ( #케이트제르니케 지음 #북스힐 출판)에서는 지구에서 최고 지성의 모임을 일컬을 때 항상 빠지지 않는 MIT내에서의 이런 성차별을 담고 있다.

당시 학문적으로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발견되는 등 혁신과 가까운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여성의 대우는 나아지고 있지않았다.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 중 한명은 제임스 왓슨교수의 제자로 학문을 시작했던 분자생물학자 낸시 홉킨스(그와 같이 나선구조를 밝혀낸 크릭의 성추행 파문도 있더라)는 MIT유일의 여자 종신 여교수로 재직할 때 까지 수십년을 그 사회에 몸담고있었지만 느끼지 못했던, 철저히 능력위주일 것이라 믿었던 자신의 분야에서 알게모르게 은근한 차별이 있다라는 것을 뒤늦게 인지했다.

아래 직급의 남교수보다 더 작은 연구실, 동급 남교수에 비해 낮은 봉급, 여자교수였던 자신만 몰랐던 규정 등 여러가지의 차별이 있었지만 낸시 홉킨스가 문제를 인지하게 된 큰 사건을 자신이 만든 수업을 남교수에게 빼앗겼을 때였다.

한 명의 과학자로 수십년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이런 황당무개한 일들을 겪고 있음을 깨달으면 얼마나 충격적이고 허무할까. 탈력감에 숨어들지 않고, 다른 여성 과학자들과 의기투합하여 과학자답게, 데이터를 수집하여 여성차별이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연구’는 4년여 동안 계속 되었고, 매체에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왔다. 결국 MIT총장이 여성 차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적극적 개선을 약속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낸시 홉킨스는 여성 과학자의 대변인으로 여전히 활발히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녀의 이러한 노력은 여성들을 가장 남성우월주의가 심한 하버드를 비롯한 여러 아이비리그에서 여성총장이 배출되는데 까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숨겨진 여성들>을 읽으면서 대학 때 배웠던 DNA이중나선구조 발견과 같은 과학적 내용들이 더해져 흥미로웠지만 이런 부분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한없이 이해가 되지않아서 그 생각으로만 머리에 꽉 차 있었다.
제일 당혹스러웠던 것은 여성을 뽑지않고 여성에게 일을 맡기지 않는 이유였다. ‘여자는 결혼하면 일을 하지 못한다‘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결혼은 여자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와 한쌍으로 진행되는 것인데 왜 여자는 결혼하면 일을 못하는가?
은연중에 여자는 결혼하면 애 낳고 육아하고 가정을 돌보고 남자가 사회생활로 돈을 벌어온다라는 구시대적 착오가 남아있는 것이다.

왜 자기들이 합의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유전자도 반반씩인데 일방적인 여성의 희생이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인지.
이것이 세대를 건너뛰어 위세대가 하는 것을 숨쉬듯 받아들여 차별인지 모르고 행해지는 인종차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분명 사랑해서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해서 결혼함에도 이런 차별이 발생하는데 직장에서 어찌 생기지 않을 수 있겠나.

의식을 바꿔야하고, 누군가 목이 터져라 외쳐야 조금이라도 변화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DNA가 복제될 때 개시자, 프로모터promotor처럼 변화의 시작점에 몹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배웠다. 이 세상에서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러웠다. 그런분들 덕에 우리 사회에 나빠지지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여성뿐만이 아니라 응당 우리사회가 가져야 하는 바른 모습에 대해 관심과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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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가 쏘아올린 공 -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김지명 지음 / 비엠케이(BMK)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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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음악을 하는 최정상에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몇살 때 연주를 시작했냐라고 물으면 보통 다섯살정도에 악기를 시작했다고 말할 정도로 일찍 시작해서 그것에 몰입하는 시간이 긴 것이 성공의 정론이라고 일컬어진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라는 격언도 뒤늦은 경로조절은 위험한 것이라고 무모한 것이라고 그러니 하지마라라고 말하는 세상의 의견과 합치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과과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내가 하고픈 일, 하면 행복할 것 같은 일을 찾는데에 썩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좋은 대학 좋은 전공에 가서 누구나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에게 강요한다. 그래서 그 길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은 인간실격같은 대우와 감정을 겪는다.

하지만 긴 인생의 중반정도까지 그렇게 어영부영 살아보다 보면 누구나 이게맞나? 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이 일을 평생을 하며 살 수 있을지 고민을 넘어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 나이에는 도전이 아닌 안정을 생각해야한다며 이제와서 무슨 도전이냐며 정신차리라고 말한다.
그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면 #앙리루소가쏘아올린공 (#김지영 지음 #비엠케이 출판)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을 쓴 김지영 작가는 사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대학원에 진학하여 예술학 박사가 되었다.
그렇게 진정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된 경험을 이 책에 녹이고 있고, 저자에게 앙리 루소가 특별한 이유는 그녀가 미술의 길을 선택하게 하는데 큰 관여를 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뉴욕을 방문하였을 때 미술관에서 본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그림을 만나 하염없이 그림을 바라보며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때는 앙리 루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고.
그림의 매력에 빠져 뭔가에 홀린 듯 앙리 루소에 대해 찾아봤고 그도 40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라는 것을 보고 깊은 영감을 얻어 작가도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앙리 루소는 제대로된 그림 교육도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여기에 고흐, 샤갈 도 제대로 된 그림 교육을 받지 않아다는 것도 알게되어 몹시 놀랐다.

그리고 나서 앙리 루소의 일대기를 들려주는데, 그는 약간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자신이 당대의 위대한 화가인 피카소에 전혀 뒤지지않는 위대한 화가라는 자기확신이 강했고, 모든 이들에게 조건 따지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었다.
이미 우리는 화가가 불멸의 예술가로 기억되려면 혼자만의 실력으로는 절대 될 수 없다라는 것을 안다.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교류를 해서 감정을 공유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앙리 루소의 호방함과 이타성은 그의 그림 실력을 짓궂게 놀려댔던 고갱마저 결국 그의 독특한 검은색은 그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인정을 하게만들며 그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아군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앙리 루소는 기꺼이 실천하는 용기, 해보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는 도전, 일상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하는 독특한 창조력, 대중의 혹평과 조롱에도 그림을 즐겼던 긍정, 위대한 화가가 될 것이라 끝까지 자신의 길을 고수한 신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인 자기애, 두아내와의 사별의 고통에서 태어난 예술적 순수성으로 불멸의 화가가 되었다. 심지어 1800년대 그때의 40대면 지금과 다르다. 노년에 접어드려 하는 나이였음에도 기꺼이 모험을 건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의 수명에서 40에 진로를 바꾼다는 것이 쉽다는 말이 아니다.
그만큼 한번의 선택이 나머지 수십년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러니 아까 글의 첫부분에 말했던 것 처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여생 모두를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지가 중요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 행복할까?
돈을 많이 버는 것? 승진 했을때? 물론 그것도 정답이지만 그런 행복은 출근시간에 차만 막혀도 바로 잊혀질 정도로 단순한 행복이다. 진정한 행복은 자아의 만족이다.
자아의 만족이란, 무언가를 하면서 다른 어떤 문제들이 발생해도 변하지 않는 고차원의 것이다.
어떤 사소한 일상의 자극에도 흔들리지않는다.
고로 평화롭고 행복하다.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작가처럼, 앙리 루소처럼, 진정한 행복을 위해 스스럼없이 용기를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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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사랑한 철학자들 - 예술은 어떻게 과학과 철학의 힘이 되는가
김종성 지음 / 비제이퍼블릭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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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전시회를 가장 잘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로는 도슨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혼자 둘러보다 괜히 눈에 밟히는 그림앞에 멍하니 오랜시간을 두는 것고 훌륭한 방법이나, 그런 경험들이 쌓이고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면 더 자세히 전문적으로 알고싶을 때가 생기는데 그럴 때 도슨트를 이용하면 참으로 좋다.
글로 읽는 것 보다, 전문가가 생생하게 그림을 보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더 생생히 와닿고 기억에도 오래남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도슨트라도 작품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잘 없다. 전시회에서의 모든 그림을 설명하기도 시간이 부족해 몇 작품을 선정해서 대표작들을 설명해야하기도 하고, 하나의 그림만 설명하고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한점의 그림만 전시해 두는 전시회가 없으니 하나의 그림만을 위한 도슨트도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라파엘로가사랑한철학자들 (#김종성 지음 #비제이퍼블릭 출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그림만을 논하는 도슨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파엘로의 유명한 작품 <아테네 학당>에 대한 도슨트인데 어떤 구도적, 회화적 가치를 지니는지, 숨어있는 알레고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익히 들어본 것들을 넘어 그림 속에 그려져 있는 학자 중 여섯명의 사상과 철학, 업적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독특한 도슨트 해설이다.

하나의 그림으로 한권짜리 도슨트라니.
이런 사치가 없을 것이고, 저자도 그만한 애정과 넓은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기획이다.
진정한 덕후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원래 덕후가 하나에 몰두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그 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낱낱이 알기 위해서는 거기에 포함된 수많은 분야들을 독파해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이 반드시 수반되는 법이다. 그 모든 번거로움을 순수한 열정과 애정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덕후이다.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없나? 분명 들었😂)
아마 김종성 작가는 과학을 사랑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의 사상이 담긴 모든 것(과목의 철학이 아니라 아는 것을 사랑하는 'philosophy'로의 철학)의 덕후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60여명의 철학자들이 그러져 있는데 작가는 그 중 여섯명에 주목했다.
왜 60명 중 이 6명에 주목한 것일까?
플라톤은 서양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철학을 대표하는 대학자이자 그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면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려질만큼 신이 만든 우주에 대한 목적론적 고찰의 결과인 이데아론대표로 가운데에 놓고, 제자이면서 정반대로 경험과 관찰로 확인할 수 있는 개별적 본질을 우선시 하는 행보를 보이며(그가 바티칸의 벽화에 그려져있는 것이 이미 철학이다)손바닥으로 땅을 가리키며 인간에 집중한 아리스토텔레스로 철학의 큰 틀을 중심에서 소개를 하고있다.

그래서 나는 라파엘로가 <아테네 학당>을 그린 이유가 철학의 다양한 면모를 하나의 그림에 그려넣어서 철학의 다양성을 나타냄은 물론 그것을 통하여 철학의 진정한 모습을 알리려고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머지 학자 네명을 저자가 선택한 이유도 생각해보았다. 플라톤과 함께 그려진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에 적혀진 현시대와 동떨어진 우주론을 프톨레마이오스의 관측 중시의 현대의 우주론과 시각을 함께하는 천문학적 사유를 보여주며 철학의 상호 보완의 가능성을, 교과서에 실릴정도로 그의 이름을 딴 수학법칙이 널리알려졌음에도 수학 뿐만아니라 숫자로 과학과 예술에 까지 미치는 피타고라스 철학으로 대변되는 국한되지않는 무한성과 가용성, 논리적 철학이 하나의 의견을 넘어 세상이라는 시스템에 새로윤 규칙들을 규정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컴퍼스의 신, 아니 기하학의 대가 유클리드, 남성위주의 수천년 속에서도 자신을 구속하는 신앙에 대한 사유로 한명의 오롯한 철학자였던 아베로에스까지.
변화무쌍하면서도 오랜시간 인류의 중심에 위치하며 다양한 변화에 큰 역할을 했던 철학을, 애정어린 라파엘로의 시선이 가득 담긴 그림을 통해 살펴보며 철학은 우리 인간의 본성과 가장닮은, 인간이 이룩한 모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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