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종말
신주희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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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흉흉하면 기다리기라도 한듯(정말 기다렸겠지)득세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신흥종교라 일컬어지는 사이비다.
특히나 종말이 도래했다는 종말론을 전도하는 사이비들이 득달같이 불어나는데, 심취하여 재산을 남김없이 탕진하는 사람들이 제법 나오는 것을 보니 불안으로 인해 벌어진 불안의 틈은 그만큼 취약한가보다.

하지만 종말의 순간에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종말, 삶이 끝나는 것 자체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친애하는나의종말 (#신주희 지음 #북다 출판)의 주인공인 주하나, 구영진은 자세한 이유는 다르지만 지리멸렬함의 끝이오길, 소설을 써도 이렇게까지는 쓰지않을 것 같은 막장 인생에서 벗어나고픈 이들에게는 이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종말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인 것이다.

혹시나 마냥 기다리다가 종말이 오지않을까 두려워 적극적으로(?)종말을 바라는 자기주도적 종말을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이니셜만을 적어둔 오늘의 유서를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교내신문에 실는다.

그들이 쓰는 유서는 생의 마무리의 순간을 정리하는 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간절히 바라며 무너질 것 같은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려고 애쓴 분투가 담겨있다.

이 분투를, 고통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주인공들 간의 유대인데 그것마저 오해로 인해 균열이 일어나서 이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트린다.

이들은 과연 그들이 바라는 대로 고통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인 종말을 맞이 하게 될까? 그래서 그들은 마침내 평안을 얻었을까? <친애하는 나의 종말>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참으로 열심히 능동적으로 살아간다라는 아이러니함이었다.

고통과 무료함뿐인 삶에서는 대부분 무기력해지기 마련인데 이들은 주저앉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종말을 얻기위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행동으로 옮김에 주저함이 없다.

누가 인생의 마지막을 바라면서 이렇게 한다는 말인가.
이들 스스로도 종말을 기다리는 것 보다 끝이자 시작인 종말을 스스로 결정지으려 애쓰는 자기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거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갓생아닌가?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을 이룰 것이라는 강력한 자기암시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시작하는 추진력과 결단력,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필수소양이다. 이 책 속의 인물들도 이런 모습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성공의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그 어떤 구루들못지않게.

그들은 자신이 바라는 삶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을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라는 삶이 종말이라는 모순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나는 <친애하는 나의 종말>을 읽으면서, 예전에 티비에서 보았던 심리치료 방식으로 유서를 작성하고 실제 사용되는 좁은 나무관에 몸을 뉘어(심지어 관뚜껑도 닫아보는)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끝을 생생히 체험한 그들은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 시간이 굉장히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자신의 끝에 다다랐을 때 후회없는 삶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책 밖에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종말이라는 것은 핵전쟁이 발생하거나 공룡시대처럼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는 정도의 극적인 사건이 요구된다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니 책 속의 인물들이 바라는 종말이라 불리어질 엔딩은 높은 확률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면 종말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던 이들은 실패하고 주저앉을까? 아마 일시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탈력감이 밀려 올 것이지만, 이들은 종말보다 새로운 삶에 더 필요한 것을 이미 얻었다.
바로 끈기와 실행력, 그리고 열정이다. 이미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모든 것을 불태운 ‘경험’은 도저히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열쇠이다.

한번 최선을 다했던 경험이 있다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인지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있다.

이들은 이미, 마냥 종말만을 기다리던 어둡던 인생과 찬란하게 결별하며 종말을 고했다.
이제 종말은 사라지고 찬란함만 남았다.
그들의 앞에 찬란한 인생과 친애하는 끝이 함께 하기를.

좋은 기회로 #청맥살롱 에서 작가님의 서명이 들어간 도서를 제공받아 읽게 되었다.
작가님이 적어주신것처럼 유한한 존재라 특별하고, 그래서 사라지지않는 의지, 마음이 더 중요함을 모두 이 책을 읽고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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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유혹
윤한샘 지음 / 아빠토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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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나에게 맥주는 특별한 술이다.
첫 술이 맥주여서 그럴까.
고등학교 선배들이 이제 술먹을 수 있는 나이냐며 저녁밥을 사주다 목이 맥혔는지(이제는 너무나 이해되는🤣)쭈뼛쭈볏 술을 시켰던게 바로 호가든 생맥이었다.

3000cc짜리로 크게 시켰던 것 같은데 처음에 마셨던 순간이 잊혀지지않는다. 첫 술이라고는 하지만 아버지가 가끔 한모금씩 주었던 하이트 병맥의 맛, 그 뭔가 쌉싸름하면서도 뒷맛이 시다고 해야할까 그 맛을 생각하고 기대도 없이 마셨다가 완전 감동. 시지도않고 부드럽고 빵을 먹는듯한 고소한 풍미가 넘쳐흘렀다. 거기에 약간의 꽃향기 까지!
이거 맥주맞냐고 뭔데 이렇게 맛있냐니까 비싼거라 그렇다며 깔깔거리며 3000cc 두 통을 더 사주던 선배들.

예전만큼 자주는 못보지만 그래도 끊기지 않고 잘 보고 있는 귀한 인연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술을 맛보는 것을 즐기는 여자친구를 만나서야 호가든이 밀로 만든 밀맥주이고, 꽃향기는 오렌지 제스트와 고수씨앗이 들어가서 그런 향이 난다는 것, 그리고 에일이라는 맥주종류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이후로 세계맥주코너에서 안먹어 본 종류로 하나씩 맛보는 재미를 어머니랑, 여자친구랑 맘껏 누렸다. 살도 맘껏 쪘었지😁

그러다가 결국 캬! 하는 그 한모금 때문에 탄산이 강하고 해외 맥주보다 비교적 가벼운 우리나라 맥주들을 주로 마시게 되었고(괜시리 소주를 조금 태우고 싶🙈)맥주에 대한 공부는 거기서 끝나버렸지만 그래도 치킨 피자를 먹을 때, 예능이나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여름에 퇴근하고 샤워하고 나왔을 때, 러닝하고 들어왔을 때, 괜시리 속이 답답할 때 등 모든 순간에 제일 먼저 부담없이 손이 가는 술이 맥주인 것이다.

아마 한국사람 전체에게는 소주 다음으로 소울알콜?이 아닐까? 테슬라, 태진아로 대표되는 소맥 사랑은 해외에서도 유명할 정도니! 그래도 청량감은 맥주만 냉동실에 얼듯말듯 보관했다가 탈칵! 뜯어서 마시는 첫모금 만한게 없다.

#맥주의유혹 (#아빠토끼 출판)을 쓴 #윤한샘 저자는 정동 독립맥주공장 대표를 맡고있는 브루어이다.
책을 들고 방문하면 맥주를 한잔 주는 이벤트를 열었었는데 지방러는 슬펐다(술펐다) 액체 중에서 맥주를 가장 사랑한다는 저자는 <맥주의 유혹>을 통해 맥주의 기원과 역사, 한국으로의 맥주 유입(감사합니다), 맥주의 종류, 제조과정 등 브루어가 아니라면 절대 말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영역부터 신화, 역사, 종교, 정치, 문화까지 맥주가 관련되어있는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다.

맥주가 시작된 수메르 인들의 기록도 담겨져 있으니 말 다했지😁저자의 맥주사랑이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게 만든다.

개인적 이슈로 술을 입에 대지않은지 한달 반 정도가 되었는데 이 책을 받아들고 책 표지에서 반짝이는 잔에 담긴 맥주의 영롱함(정말🤣 제목이 따로 없었어도 표지 이미지만으로도 제목이 유추가능할 지경)이 나에게 한잔의 맥주를 허용하기에 이르렀다.

밤에 편의점까지 걸어가면서 어떤 맥주를 사야할지 너무나 많은 고민이 되었다. 나에게 첫 맥주마시는 이유를 알려준 호가든을 할 것이냐, 여자친구와 즐겁게 마시는 파울라너, 블랑을 마실 것이냐, 매너는 남자를 만든다는 기네스를 할 것이냐 고민을 엄청하다가 기네스로 골랐는데 띠로리. 기네스가 없🤣

내가 겨우 고른 하나의 맥주는 1인당 맥주소비량 1위의 나라 체코의 국민맥주, 부드바르의 흑맥주이다.
부드바르, 부드와이스, 버드와이저.. 미국 버드와이저의 원조인 맥주로 잘 알려져있어 맥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있는 약간의 지식도 글에 포함시키고 싶었달까?

이 맥주의 맛을 디자인한 두명의 서명과 지문이 멋들어지게 찍혀있어 자부심이 느껴져서 참 마음에 들었다.
자기일로 맥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느껴진다.
분명 맛있을 수 밖에 없는 맥주이다.

안주없이 즐길 수 있는게 흑맥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오늘같이 맥주가 주인공인 날에 아주 제격인 것 같다.

승자의 역사에 따라 저속한 민족의 술이라 오해받기도 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술은 아니지만, 이 사람의 취향에 맞게 맥주도 고르면, 나도 상대방도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며, 적당한 도수와 청량한 목넘김으로 대화의 분위기도 끌어올려준다.

주인공이 되기엔 조금 아쉽게 느껴졌던 맥주로 하나의 인문교양서적을 만들어낸 출판사와 저자가 참 대단하다.
문득 궁금하다. 이분들은 무슨 맥주를 좋아할까?
맥주가, 사람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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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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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그 장르(소설, 교양, 인문 등) 속해져 있는 책들의 양을 보면 그 장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정도를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인기의 척도라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예전에 책을 보던 코흘리개 시절에 비해 작가도, 책의 수도 눈에 보이게 증가한 장르는 에세이가 아닌가 싶다. 자기만의 생각이나 경험을 가상의 인물들과 각종 플롯으로 촘촘하게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보다 잔잔하게 꾸밈없이 적어내려감으로 조용한 감동을 주고, 실화라는 걸 알고 읽으니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구나 라는 위안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새로운 물결이 일고있다.
바로 에세이의 소설화라고 할까? 실화를 소설처럼 극적으로 편집해 글을 쓰는 것인데 실화라는 것에서 주는 울림과 소설이 주는 책을 덮었을 때 몰려오는 깊은 감동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한권으로 에세이와 소설 두권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에세이의 소설화에서 가장 선두에 서있는 작가가 바로 미국의 #조앤비어드 이다. 현대 미국 에세이의 경로를 바꿔놓은 작가, 슬픔과 사랑의 경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을 끌어내는 작가, 고통을 품고 빛을 말하는 작가, 경계를 허무는 이야기꾼, 문장의 결을 다루는 세밀화가라는 수식어를 모두 수용해 버리는 조 앤 비어드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첫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대표작인 #축제의날들 (#클레이하우스 출판)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가 되었는데, 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과는 다르게 죽음과 병, 화재, 관계의 상실, 반려동물과의 이별 등 쉽게 그 아픔을 예측할 수도 없는 슬픈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대체 왜 이 슬픈날이 축제의 날이란 말인가. 책에 실려있는 아홉편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공통된 태도에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슬픈 사건들을 슬픈 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지도 않는다. 묵묵하게 그 슬픔의 고통의 한 가운데에 몸을 깊게 담그고 슬픔과 오랫동안 마주한다. 그로인해 조개가 진주를 만들듯, 진흙속에 뿌리내려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슬픔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흔적이 피어나는 것을 목도한다.

어두운 밤 모닥불을 크게 피워놓고 그 주위를 크게 둘러 춤을 추는, 그래서 흙이나 동굴 벽면에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그런 축제가 생각난다.

이러한 축제에서는 잃어버렸던, 그리고 놓쳐버렸던 무언가들이 발견된다. 하나의 경건한 의식처럼.

그 어둠을 살라먹고 인간의 가치에서 소중한 사랑과, 자기애를 넘어 인간대 인간의 사랑, 유대, 연대로 나아가는 인류애적 가치까지 담겨겨있어 책 속의 글들이 책 밖으로 흘러나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을 휘감는다.

장르를 파괴하는 실험적인 작품이나 그 실험의 결과값은 상당했다. 수없이 탈고라는 실험노트를 포기하지않고 빽빽하게, 꾸준하게 적어 내려간 인고의 결과가 이렇기 달콤쌉사름하다니.

전혀다른 두개의 과일은 접붙이기하여 맛좋은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 농부의 마음이 이럴까.

에세이가 가지는 기억을 기록함으로 생기는 진실함과,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무한한 상상력이 합쳐서 진실이 머리 안 생생한 상상처럼 살아움직이는 마법같은 글이다.

내용적으로 우리의 삶과 죽음, 고통, 사랑과 우정에 대해 생각해보고, 글 형식적으로는 장르를 허무는 형식이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글쓰기까지, 이야기거리가 풍성한 책이다.

글속의 주인공을 따라 어둠속을 깊게 탐험하다 한줄기 희망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의 축제같은 대화로 더 큰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게 한다.

<축제의 날들>은 하나의 책을 넘어 잊은게 아니지만 뜸했던, 누군가일수도, 무엇일수도 있는 그것과의 연결을 견고하게 해주는만남의 장이 되어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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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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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지원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모스크바의 신사>와 <우아한 여인>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작가 #에이모토올스 가 신작 #테이블포투 (#현대문학 출판)을 발표했다.

단편으로 글쓰기 수련을 많이 했다는 에이모 토올스는 이번 작품 <테이블 포 투>에 10년동안 쓴 단편6 중편1 를 수록했다.

에이오 토올스의 이름은 워낙 많이 들어봤는데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어서 프리뷰북 이벤트에 신청해서 수록 된 단편 소설 중 하나 ‘밀조업자’를 받아 읽었다.

읽는동안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글에 빠져들 수 있다니. 오히려 단편이라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일단 내가 동경하는 클래식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메카, 카네기홀에 얽힌 이야기가 시작부터 가산점을 줄 수 밖에 없었다. 삼십대 중반, 아이비리그 출신 골드만삭스 역사 상 가장 젋은 상무이사 토니는 두아이의 육아로 집에만 있던 아내 메리를 위해 아이들이 통잠을 자기 시작하다 토요일 외출계획을 계획한다. 키신의 공연을 예약하기위해 카네기홀에 후원금도 내며 철두철미하게 조사하여서 결국 4주동안의 ‘거장의 공연’을 통으로 예약한다. 메리의 취향은 아니지만 사랑하니까 라며 따라나선다. 자유로운 영혼인 메리는 취향은 아니었지만(감상하고 느끼는 것을 보니 취향임이 분명했지만)연주에 집중해서 듣는 반면 남들 시선에 몹시도 의식하는(그래서 고급정장과 좋은 레스토랑, 와인으로 식사를 하고 카네기홀에서 좋은 자리에 앉아 연주자의 악기생산연도를 줄줄외고있다)토니의 눈에 옆에 앉은 노인 파인의 레인코트 옷섬으로 빠져나온 마이크를 발견하고 기겁한다. 쳐다도 보고 혀도 차보고, 외면도 해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4주간의 공연 중 두번째 공연에서 결국 일이 터진다.

참지못한 토니가 공연 중 관계자를 찾아가 신고한 것.
경찰까지 데려와 의기양양 한 토니. 하지만 파인 씨는 녹음한 적이 없다 말하고 일단락 되는 듯 한 것을 보고 직접 몸을 날려 차인 씨 옷 속에서 녹음기를 발견한다.

하지만 십수년동안 아내와 공연을 보러왔었는데 아내가 몸이 아파 올 수 없어 아내에게 들려주려 녹음을 했다는 그의 사연에 토니는 할 말을 잃고, 모두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토니는 파인씨를 기다리겠단다. 사과를 하겠다고(하는 김에 녹음 행위가 얼마나 신경쓰이는지에 대해 설명도 하겠단다)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나쁜 인상을 갖고 있지 않길 바라는 토니의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참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파인 씨는 만날 수 없었고 그 다음 공연에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않는 가엾은 토니. 홀의 경비원과의 대화를 통해 파인 씨가 근처에 도보로 이동가능한 거리에 산다는 것을 파악 75군데의 거주건물을 뒤져 결국 찾아낸다. 여기에서 파인 씨가 혼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토니는 분노하지만 아내가 죽어서 혼자산다는 것을 알게되고는 또 멘붕에 빠진다.(제발 토니 그 입좀..🤣)그렇게 파인씨 집에 초대되어 티타임을 가지던 중 파인 씨의 딸을 만나 호되게 저주를 받았다. 평생 카네기홀에 다녀서 공연을 들었으면 좋겠다며 첼로연주를 들을 때 마다 오늘을 잊지말고 스스로가 개자식임을 잊지말라고.

저주를 당한 토니는 카네기홀 근처를 지나갈때, 고등학생이든 누구든 연주하는 첼로소리만 들으면 인상이 찌푸려진다.

저주가 통한 것이다.
카네기홀은 가지 않는 것 같지만.

예전 금주령의 역사에서 몰래 술을 만들어 판매하던 ‘밀조업자’들의 역사가 남아있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음악‘밀조업자’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음악을 팔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떠난지 1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내를 그리워하며 녹음을 계속하던 파인 씨의 단란했던 가족이야기도 감동스러웠고, 토니와의 일을 계기로 카네기홀 입장금지를 당했지만 덕분에 아내를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며 불법녹음본을 치웠노라며 이야기하던 파인 씨의 어른스러움이 참 좋았다.

하나의 일대기소설을 보는 것 같았다.
죽으면서 끝나는데 죽음의 슬픔을 극복하고 다시 한걸음을 내딛으려라는 일대기인 것 같아 더 마음에 들었다.

바흐의 첼로 무반주 모음곡1번을 듣는 메리의 ‘승천하는 음악을 따라 나도 승천했다’라는 감상평이 내가 이 단편을 읽는 감상평이었다. 단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던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나머지 다른 이야기들도 너무나 궁금하다.
나를 어디까지 상승시키고 또 추락시켜 내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임을 일깨어 줄 것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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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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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글이지만 리뷰 대회 참여합니다:)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짐을 뜻하는 단어로, 원래는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뜻한다고 한다.

#벌집과꿀 (#폴윤 지음 #엘리 출판)에서는 이 단어 앞에 한국계를 붙여 ‘한국계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주제로 삼아 7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각각의 사정과 사연으로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하여 살아가는자들. 한국인 디아스포라.

막 출소해 미국 낯선 동네에 정착하려는 한국계 청년, 탈북한 뒤 흘러흘러 스페인에서 청소 일을 하는 나이 든 여성, 조선인 고아 소년의 고국 송환 길을 호위하는 에도시대 사무라이, 탈북 한국인 2세로 런던 외곽 한인타운에서 살아가는 한 부부, 러시아 극동 지방의 척박한 고려인 이주지에 배정받은 러시아인 초임 장교, 사할린섬에 있는 교도소에서 일하는 고려인 아버지를 찾으려 나선 십 대 소년,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를 간직하고 외진 산골 고향으로 내려온 남자.

어린 나이에 고국이 아닌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뿌리가 뽑히고, 낯선 땅에서 마음붙일 이유를 만들기위해 치열하게 집을 짓고, 부모가 탈북해 자연스레 런던에서 태어난 교포2세,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섬으로 끌려온 할아버지이후로 3대 째 타국에서 살면서 한국인이 아닌 고려인으로 불리는 사람. 등등 분명 한국과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한국에는 이들을 그리워 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가지고 있을 때 보다 가지지 못했을 때가 더 아름다워 보이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시리다 했던가.
자기의 의지도 아님에도 이런 시린 마음을 지고, 고국에서도 타국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당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무슨 낙으로 고된 삶을 살아가는지 궁금하다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스스로에 놀랐다.
국내에 살고 해외에 살고의 차이 밖에 없는데 왜 무슨 낙으로 사는지를 걱정할까. 나도 낙없이 사는건😂똑같지 않나?

가만히 돌이켜 보니 이들은 상실 과 결여를 나보다 하나씩은 더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국일수도, 심지어 고국을 고국이라 말할 수도 없는 경우도 있다.

자기가 원해서 된 결핍이 아니라 더욱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큰 맘 먹고 떠날 수 있는 이유는 돌아올 ‘집’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행지가 좋고 여기서 살고 싶다 하더라도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아 그래도 역시 집이 최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언제든 안심하고 떠날 수 있는 것이다.

<벌집과 꿀>의 인물들도 물론 home 과 house의 관점에서 봤을 때 모두 house는 가지고 있다. 어떤 형식으로든.

하지만 아직 모두가 제대로 house가 있는 곳에 뿌리를 깊숙하게 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집에 있어도 단단히 뿌리내리지 못해 ‘여행하는 와중’인 것이다. 심지어 돌아갈 마음의 ‘집’도 없다.
그러니 삶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들이 쉽게 흔들리고 뽑히듯.

하지만 이 책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곁은 내어주는 이들이 한번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 신기하도록 아무렇지 않게 곁을 내주고 마음을 써주는 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나눈 따뜻함은 그것만으로 삶을 구원할 만큼은 아니지만, 한 번의, 한순간의 유대가 이들에게 ‘집’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조그마한 집을 마음에 담고 또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주위를 둘러보면 고향을 떠나 여러가지 이유로 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나처럼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취업을 위해 대부분 상경하는 세상이니. 인생의 전부를 살아온 곳을 떠나 어딘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참으로 쉽지않다.
아는 사람도 없고, 혼자 불켜고 불끄는 온기없는 단칸방도 휴식에 도움이 되지않는다. 그렇게 원동력을 잃어간다.
그럴 때 누군가가 전해준 사소한 마음하나가 보일러 못지않은 뜨거운 온정으로 다가온다. 우리모두 겪어봤을 것이다.
이방인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법이다. 보이지 않을 수 없다. 하고자하는 마음만 있으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방인은 자취를 감출 수 있다.

내몸을 누일 곳에 마음붙일 수 있는 살아갈 이유, 기꺼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달콤한 꿀을 서로서로 챙겨줄 수 있는 그런 달콤한 세상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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