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필로그는 다정하게 씁니다 - 나의 안녕에 무심했던 날들에 보내는 첫 다정
김영숙 지음 / 브로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자신의 현재모습과 상태를 자각하며 끝없는 의문을 가지며 살아가는사람이 얼마나 될까?
심지어 아이둘을 키우며 방송작가라는 칼퇴근이라는 것을 실현하기 어려운 능력이 너무나 중시되는 직장에서 25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내면서 말이다.
너무 지치고 힘들고, 말도 안되는 스트레스로 뇌의 전원을 내리고 그냥 좀비마냥 으어으어 하며 오늘이 날짜가 어떻게 되는지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살아갔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 대부분 그렇게 살고있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체 살다 갑자기 마를리없다는 듯이 흐르는 눈물과 우울감이 찾아오면 내가 왜이러지라며 당황스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에필로그는다정하게씁니다 ( #브로북스 출판)의 저자 #김영숙 작가는 그 지난한 세월을 처절하게 살아냄과 동시에 너무 늦기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살았고, 살아왔고, 살아오고 있다. <에필로그는 다정하게 씁니다>는 그런 작가의 하나의 일기장같은 책이었다.
이십년 동안의 일기장을 넘겨보는 것처럼,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시절부터 무엇이 잘 못되었다를 인지하는 시기, 그리고 고쳐나가고 깨달은 지금까지, 작가는 이래라 저래라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을 내리지 않고 그냥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내는 소리처럼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귓바퀴에 부딪혀 들었으면 다행이고~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청자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작가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아마 작가는 이 책을 쓰면서도 끊임없이 자기가 대화하며 격려하고 치하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김영숙 작가의 삶에 감정이입을 했을 워킹맘들이 아주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메인작가이라는 일반적일수고 특별할 수 도 있는 커리어가 다를뿐, 일하고 애키우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다 같았을 것이다. 늦게 퇴근해 가슴이 아플만큼 젖이 부풀어오른 부분을 읽을때는 우리 어머니도 떠오르고(나는 분유먹고 컸댄다 tmi)사회에서 만난 워킹맘들이 생각났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자식들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하나라도 더 해주고 하려고 하는, 그럼에도 겨우 몇시간 나는 그 짬을 자기자신을 위해 독서와 같은 취미로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분들을 독서모임에서 알게되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 참 대단하고 멋지고 존경스러운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이를 키우지않으니 감히 안다고 말을 못하지만,
김영숙 작가가 ‘자연인’들을 보며 자기를 성찰했듯이, 독서, 필사, 운동, 러닝, 사진, 미술전시관람과 같은 자기 자신과 조용하게 대화할 수 있는 어떤 외부의 자극을 수용하는 시간을 갖고있다라는 것이 참 멋졌다.
정말 어른을 보는 느낌이랄까?
회사에서 라떼는 말이야~ , 회사에 애정이 없어~ 라며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는 ‘윗분’이라는 이름의 어른들과는 차원이 다른 어른이었달까. 덕분에 스스로에게는 무뚝뚝한 나 스스로도 나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K맞이로써 응당해야하는 부분이 있고, 사회에서도 나에게 요구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 부분들을 모두 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에게는 다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르고 달래기 위해 쉬거나, 미루거나 하면 마음은 잠시 나아졌지만 꼭 무언가 문제가 벌어지곤 했다.
물론 나의 그 ‘셀프 어르고달램’때문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다른 원인은 떠오르지않았고 떠올릴틈도 없었다. 그러니 나를 다시 옥죌 수 밖에.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왔던 자연인들도 잘나가던 영광과 가정을 버리고 자연을 선택한 이유가 남들의 목소리를 듣기만 바빴던 지난날을 후회하기 때문이라 한다.
거기에 특별히 ‘자연’에 감화된 것은 위에 잠시 나왔던 ‘충조평판’을 하지않고 그냥 묵묵히 옆에 있어주는 것에 큰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었고.
나 스스로도 위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럴때 아무리 친한 누군가를 만나도 나를 위해서 할수 있는 말은 충조평판 뿐이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그런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혼자만의 대화가 중요하다.
혼자만의 대화는 자연의 그것처럼 조용하고 묵직하다.
그냥 가만히 관조하고 옆에 ‘내’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꼭 산 속에서만 살아야 자연인인가, 그렇게 묵묵하게 자연스래 나 스스로의 곁에 자연스레 자리를 지켜주면 그것도 자연인 아닐까?
글로, 내 귀에 눈에 코에 피부에 묵묵하게 와닿은 자연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