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캔버스
김영호 지음 / 군자출판사(교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한 길만을 보고 평생을 달려가야 얻을까말까 싶을정도로,
모두가 할 수 있으면 하고싶어하는 일들이 세상에 많이있다.
보통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전문직들이 높은 경쟁률과 높은 학업 성취도를 요구한다.
돈이 제일의 가치인 것 같아 안타깝다는 시선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값과 물가가 폭등하는 요즘을 보면 어떤 위기가 와도 경제적으로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경제적 안정을 위하는 것이 나쁘다고만은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너무 어릴적부터 평생을 학업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 사치일 정도로 앞만 달려와 하던 것 이외의 것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평생의 노력으로 겨우 얻은 것에 필요한 것들이 겪어보지 못한 사회에도 있는데 말이다.
전형적인 예로 의예과, 의대가 있다.
압도적인 학업성취를 요구하기에 공통교육과정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교육으로 준비하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알고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의사라는 숭고한 직업이 되면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환자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과 의사도 환자와 같은 사람이다라는 그런 인류애적 마인드도 필요하다.
그리고 관찰력은 물론, 어마어마한 직업적 스트레스를 잘 관리래줘야하는 것도 의사 스스로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래서 #김영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비인후과 교수는 의예과, 의대에 ‘세계 예술 속 의학의 이해’ ‘예술 작품 속 인간 : 질병과 치유에 대하여‘강좌를 개설하여 의사가 가졌으면 좋겠다 싶은 필수 덕목들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 경험들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치유의캔버스 (#군자출판사 @ 출판)이 되었고, 이 책에서 저자는 의료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을 감상하는 힘을 기르고 그것을 체화해야하는 이유3가지를 들었는데 첫째는 자신과 같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대해야 하는 필수직업이기 때문이며, 나도 환자도 결국 같은 존엄한 존재임을 인식해야하는 것이 둘째, 마지막으로 작품 감상 교육을 통해 인간사에 대한 간접경험의 기회를 많이 가져야 기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소견을 요구하는 직업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의대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미리 알아두면 좋은 내용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존엄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다양한 간접경험의
필요성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이라 우리같은 일반 사람들도 읽기 좋은 책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다만 그림에서 어떤 것을 의학과 결부지을 수 있을까가 궁금했다. 그래도 나름 유명한 작품들은 제법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의학적인 배경이 담겨있다고 알고있는 그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흐의 별 헤는 밤의 곡선으로 굽이치는 화풍이 말년에 고생한 정신질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라는 썰 정도랄까?

아주 유명한 그림인 티치아노의 <바쿠스와 아리아드네>에서 모두 바쿠스와 아리아드네에 주목하지만 그 뒤 작게 축 쳐져서 술에 취해 잠든 것으로 보이는 실레노스에 주목하며 그의 몸으로 BMI지수를 측정하여 어쩌면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한 극심한 수면장애를 겪고있으며, 그로인한 주간기면증을 보이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병리적해석, 르 쉬외르의 <알렉산더와 그의 의사>에서 알렉산더의 야윈 몸을 그린 해부학적 지식, 독살의 의심을 주변 신하들이 일컬을때 그의 신하이자 의사인 필립이 준 약을 마시면서 보여준 신뢰, 신뢰에 감동하여 지극정성으로 돌본 결과 회복한 알렉산더를 보여주며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와 의무, 권리를 배운다.

이 외에도 성인의 순교장면과 흑사병예방과의 관계, 그뢰즈의 <깨진 거울>로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 밀레이의 <눈먼소녀>로욕망이 단순한 이기심인지 정신심리적 이상행동인지 의학적 시각뿐만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다르게 표현한 그림들을 비교하며 인문학적 심미학적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어있어 의사로 필요한 관찰력과 공감능력, 그리고 인간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향유할 수 있는 도움까지 담겨있다.

<치유의 캔버스>는 의사만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독자는 환자와 보호자로 의사들을 만난다.
의사라는 직업을 좀 더 이해하고 먼저 신뢰를 보여준다면 의사 또한 자신의 의무를 분명 다 할 것이다.
삭막한 진단서에도 존댓말로 적어 환자가 사망한 뒤 보호자가 보기에 덜 시리도록 하는 의사들도 있다.
양방향의 존중과 연민이 기적의 씨앗이 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윤혜정의 예술 3부작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나름 전시회를 보러다니고 예술서 몇권을 읽으면서 예술을 좋아한다고 제법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은가봐 라는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현대미술이다. 이차원적인 전형적인 예술을 벗어나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로 대변되는 현대미술은 신진작가전시같은 미술계가 가장 주목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보러가도 퍽 당황스럽다.

자세한 설명도 없고 전시의 큰 목표나 메시지만 전하는 경우가 많아 이해하기 쉽지않았다. 뭐 모든 분야를 좋아하고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그림 전시회를 가도 쓱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작품, 꼭 봐야만 하는 중요작품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구경한다)그래도 현대미술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쟁의 역사로 흐름이 끊기도 급변해서 지금 시대의 예술이라 이름 붙여진 것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이해하고 싶었다.
그럴땐 전문가의 친절한 설명이 해답이 될 것이다.
그 전문가가 우리나라의 내노라하는 갤러리 ‘국제’의 이사, 매니징 디렉터 #윤혜정 이라면?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되듯, 위의 상상도 #어떤예술은사라지지않는다 ( #을유문화사 출판)로 현실이 되었다.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에서는 윤혜정 저자의 평생에 이루어진 세계각지에서의 예술 경험이 담겨져있다.

예술이라는 것이 지속되는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까지 상상하며 감상하는 것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우리가 되게 해준다. 그리고 그때 전시는, 예술은 하나의 시공간에서 또 다른 삶으로 전이되고 합쳐진다고.

그렇게 누군가의 또 다른 삶으로 합쳐진 ‘어떤 예술’은 ‘사라지지 않’고 그 예술의 진의에 좀 더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남아가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실제 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겪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모든 그림을 찰칵 소리 한번으로 언제 다시 열어볼지 모르는 사진첨 속 한장의 그림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술 작품이 놓여있는 고유한 풍경과 함께 어우러졌을 때 제대로된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우리는 사진으로 구경하게 되지만 전문가이자 베테랑인 저자의 전하고자하는 의도가 담겨있는 사진과 설명으로 자신의 일터뿐만 아니라 한국의 유수 미술관과 도서관,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아르헨티나, 덴마크, 일본 등 세계 곳곳의 물리적 공간과 함께한 예술들을 볼 수 있다.
이차원이지만 삼차원적이고 나에게 와닿아 공명하면 사차원의 고차원의 것으로 나아간다.

혼자라면 알지도, 그로인해 가보지도 못했을 전 세계 방방곡곡을 저자를 따라 여행을 하다보면 무엇이든 나타내고 담을 수 있는 현대미술인듯 하지만 딱 하나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라며 시선을 끈다. 무엇인고 하니 바로 ‘하지 않는 것’이란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의 고통에 몇날 며칠을 창작활동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라며, 삶이 나에게 부여한 숭고한 미션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사라지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이 ‘하지않는 것’, ‘사라지는 것’을 기꺼이 해낸 것으로 책의 마지막에 담아있는 예술이 바로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 입니다>였다.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남아있지 않았고 사라지는 것을 기꺼이 행동으로 옮겼으며 자기 자신을 전혀 다른 인생으로 또 다른 현실로 기꺼이 옮겨놓았다.

예술은 결국 그 예술을 만들어낸 사람의 인생의 한꼭지이지 않나. 담아내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통해 인생자체를 바꿔버리다니. 그 어떤 현대예술보다 심오하고 예술적인듯하다.

저자를 따라가며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미술들을 겪다보니 나 스스로도 하나의 예술이 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그림이든, 조각이든, 설치미술이든간에 멈추지않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하다 하지않고, 사라져야 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도, 내 인생이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롯이 기억되어 사라지지 않는 예술이 되는 것.
그만한 성공적인 삶이 있을까?

수많은 예술들을 마주하며 마지막 페이지에서 든 생각은
나 스스로를 예술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로소 현대미술을 조금 알 것 같기도하다.
아무리 난해해도 인생보다 난해하겠나.
누군가의 인생 한꼭지가 담겨있는 것인데말이다.
결국 인생이라 그렇게 난해했구나 싶기도 하다.
삶이 복잡해졌듯 예술도 복잡해진것이겠지.
내가 남길 예술은 복잡하지 않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를 사는 사람 샘 올트먼 - AI 시대를 설계한 가장 논쟁적인 CEO의 통찰과 전력
키치 헤이기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놀라운 과학의 진보 중 지금 가장 대세이며 그 영향력이 뜨거운 감자인 분야는 AI 인공지능일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바둑, 체스기사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바둑에서는 인간의 1승이 기록되어있다)수많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AI에 대해 두무리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현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시작으로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날이 온다면 인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AI를 공평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요소들(비싼가격 등)로 빈부격차가 더욱 더 극심해 질것이라는 비관론자들과, AI가 우리 인간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해줄 것이라 믿는 낙관론자로 말이다.

얼마전에 읽은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모두를 위한 자유>가 생각났다. 이 책은 ‘일의 미래’라는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저자가 그리는 미래는 AI가 할 수 있는 직업들은 이미 AI로 대체가 된 세상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을 비관적으로 보지않고, AI가 인간대신하는 노동으로 생기는 수익을 인류에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해 제공하고 인간은 좀 더 자신의 꿈과 행복실현을 위해 수입에 구애받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을 통한 진정한 삶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백프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했지만 AI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기정 사실화이고(이미 그러한 세상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니 AI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만 하는 필요성이 생겨났다. AI를 모르면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낙오현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미래를사는사람샘올트먼 (#키치헤이기 지음 #열린책들 출판)은 AI 낙관론자이며 지구 누구보다 AI분야에 깊게 관련된 사람이다. 샘올트먼은 GPT-4를 만들어낸 openAI의 CEO이다.
물론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지않지만 직접 AI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을 감화시켜 하나로 뭉쳐 성과를 만들어내는 구심점이다.

그의 회사 open AI의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그는 AI에 따라오는 모든 비관적 요소들을 없애기(줄이기)위해 AI를 차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저렴한 가격으로)제공하겠다는 방법으로 AI가 가져올 미래를 장미빛으로 그려가고있다.

openAI는 그 유명한 테슬라, 일론 머스크가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직접 회사 이름까지 지어운 것으로 유명한데, 이러한 샘 올트먼의 경영기조가 마음에 들었던 듯 하다.
처음 openAI는 비영리단체였다. 하지만 영리단체로 바뀌게
되고 일론 머스크가 분노해 투자를 끊고, 어쩔 수 없이 더 영리목적 활동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첨단 사업인 AI에는 보이는 글자 두글자에는 담겨있으리라 생각할 수도 없을만큼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비용이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의 영리활동은 이해가 되지않는 것은 아니다.
현재 비싼가 싶긴 하지만 부담하지 못할 가격으로 gpt서비스를 하고있는 것도 아니고 무료로도 충분히 사용 가능한 것으로 보아서 그가 비영리시절의 목적을 상실해서 영리단체로 바꾼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든 것에는 과정아 따른다.
융통성없이 하나만 고집하다가는 부러져 사라질 수도있다.
십대 때부터 말하는 컴퓨터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그것이 자신이 이세상에서 부여받은 임무라 생각했던 샘 올트먼에게는 지금당장 먹여살려야하는 700명의 직원이 있으며, AI의 미래를 어떻게 해서든 이루어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운좋게도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 살고있다.
물론 우리가 어렸을적 상상하던 바다 속 유리돔이 감싸는 도시에서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웠던 첨단 기술이 상상하지 못할 속도로 빠르게 성장하고있다. 지금의 비관 낙관은 성장 단계에서 겪는 성장통일 뿐이다. 어찌되었든 AI의 시대는 온다.
그렇다면 비관만 하고있을게 아니라 AI를 이해해보려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우리는 유구한 세월동안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아왔다. AI의 시대에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적응할 수 있도록 무지의 상태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 먼저다.

모두가 샘 올트먼처럼 역사에 남을 선구자는 되지 못한다.
하지만 샘 올트먼의 생각의 과정과, 찬반이 교대로 함께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그리고 AI에 대한 이해로 앞으로의 우리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니 우리가 주체가 되어 미래를 선택해야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포 제인 오스틴 - 최초의 문학이 된 여자들
홍수민 지음 / 들녘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독서를 나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여성작가, 여성문학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들만이 할 수 있는 생각과 표현, 감정들이 담겨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무지로 부터 야기된 충격이었다.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 같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작가 최고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여류작가들이 실상은 굉장히 차별적이고 무시당해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여성은 직업을 가질 수 없고, 남자 노예보다 못한 부분도 존재했으며, 글쓰기를 인정받지 못하고 잘써서 널리 읽히다가도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불매에 출판도 되지않는 그런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당연히 경제적이나 가정적 어려움은 대부분 예술가들의 안타까운 공통된 특성이라 그정도일 것이라 생각했지 여성이라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여성 참정권 등 개선이 현대에 들어와서야 조금씩 바뀌었다라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었을텐데.

그래서 호기심과 미안함,송구스러움으로 작가들의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또 충격적인 책이 하나 나왔다.
#비포제인오스틴 (#홍수민 지음 #들녘 출판)이 그것인데 부제가 ‘최초의 문학이 된 여자들’이다.

난 또 위에서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실수를 한 것이다.
당연히 제인오스틴이 여성문학의 시초라 생각했던 것이다.
왜 의심하고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는 심지어 근대소설 태동기에는 남성 소설가는 30명 여성소설가는 백명 이상이었다고 말한다. 근대 소설의 아버지라며 몇명을 뽑아내는 이런 남성위주의 기술이 후대의 눈과 귀를 가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봐도 여성들이 근대소설에 영향을 미친게 더 많지 않았겠나.

역사는 역사가에 의한 주관적인 기록물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술하려고 해도 그 객관성이라는 성질 자체도 시대에 따라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다른 주관적인 무언가일 수도 있지만, 기존과 다른 ‘이러한 것도 있다’라는 것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알아야 생각할 수 있고 비평을 할 수 있고 또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서 후대에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포 제인 오스틴>은 내가 몰랐던 또다른 역사를 들려준다. 여성 문학의 기원이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것이 서양이 아닌 동양, 일본에서 기원되는 것이 놀라웠다. 그시대의 여성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심지어 문밖을 나가는 일도 거의 없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얼굴을 직접 마주보지 않으며 발을 쳤어야만 했던 시대다.
그럴 때 글을 적어 남기다니, 우리나라에 여성문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 한글이라는 어렵고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한자의 대체제가 있었다는 것인데 일본의 ‘가나’도 그런 역할을 한 것이 한 몫하였고, 오히려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붓을 쥐어 적는 글쓰기에 진심일 수 박에 없었던 것이다. 일기형식의 글이었지만, 모노가타리에서 나오는 것과 실제는 다름을 알리기위함이라는 글의 목적까지 남기는 ‘서문’이 존재했다라는 것이 문학이라 인정할 만하다.
일본의 헤이안을 필두로 수필의 시초라 여겨지는 세이쇼나곤의 ‘베갯머리 서책’, 사후에 출간되는 서간집(편지)로 인해 작가로 널리 인정받는 셰비녜등을 포함한 중세, 르네상스 시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여성들의 문학을 소개하는 이 책을 따라가다보니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오늘날 처럼 당연하게 되는데에는 수많은 세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전해지는 고통의 과정이 필요했구나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했다.

지금보다 더 이전에도 여성이 있었고, 그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외쳤으며, 이 세상의 근간을 자신만의 글로 탐닉했다.

두껍지 않은 책에 켜켜이 쌓인 역사 속 여성들의 투지, 울분, 인내 등으로 표출되는 강렬한 생명력이 가득 담겨있다.

우리가 몰랐던 역사에 담긴 우리 시대 이전의 사람들의 강렬한 생명력을 느끼고 내 안에도 있을 열정을 다시 꿈틀거리게 하고픈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출판계를 씹어먹었던 #클레어키건 이 신작 #너무늦은시간 (#다산북스 출판)을 발표했다.

클레이 키건이 쓴 단편 3개가 수록되어 있는데 각 작품마다 10년 정도의 시간차가 존재한단다.
세 편, 총 20년의 세월이 쌓여있음에도 글에서 스타일이 변하지 않았고 다른 작가가 쓴 것 같은 느낌도 없었다.
중간 중간 새로운 단편이 시작될 때 제목이 적혀있지 않았다면 옴니버스식 구성의 장편 하나로 생각했을 정로도 세 편이 하고자 하는 말이 비슷했다.
표제작인 ‘너무 늦은 시간’은 평범한 남자 공무원이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이야기가 나와 살림을 합치기 까지의 순간들을 키건 특유의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보여주는데, 너무나 인색한 모습을 보여준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여성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설거지가 많이 나온다며 싫어하고, 음식 재료값도 여성이 다 내다가 딱 한번 체리 6유로 결제한걸로 생색을 내고, 제일 대박인 것은 프로포즈링(골동품, 중고이다 이건 여성이 골랐다)의 사이즈 변경 비용이 아깝다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돈의 인색함으로 대표되는 평범한 남자의 여성에 대한 무시가 글을 진행하는 와중에 계속 등장한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반성의 타이밍이 있었으나 결국 여성을 폄하하는 욕을 뱉어버리며 개선되지 못함을 보여줬다. 그 대가는 외로움이었지만 말이다(여자는 정말 잘 떠나갔다. 그게 이 글의 유일한 유쾌한 부분이다)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에서는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노벨 문화상을 받았던 작가의 집을 수리한 ‘뵐 하우스‘에 머무를 기회를 얻은 한 여성에게 한 남자가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싫음에도 기꺼이 그를 위해 직접만든 케이크를 준비했건만, 남자는 처음보는 그녀에게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이곳에 들어와서는 글도 쓰지않고 케이크나 만들고 낮에도 잠옷을 입고 빈둥거린다며 불평불만을 뿜어낸다. 케이크는 개걸스럽게 먹어놓고 말이다. 그래도 이 글의 여자 주인공은 ’글을 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나름의 복수를 실천한다.
그로인해 남은 감정은 ’별 미친놈 다본다’뿐.

마지막 세번째 작품 ‘남극’은 평범한 가정의 한 주부가 문득 다른 지역에서 다른 남자와 잔다면 어떨까라는 막연한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이 계획을 실현시켜 아이처럼 보살핌을 받는 그러면서 소중히 사랑받는듯한 느낌을 주는 한 남자를 만나 불장난같은 하루를 보내지만 돌아가기전, 그의 집에 손발이 수갑에 묶인채 감금당한다.

세가지 이야기를 모두 읽으면 남성들의 여성혐오, 또는 동등하게 대우받지못하고 약자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로 여성들이 그려지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밖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을 대하는 태도는 한없이 어그러져있다. 욕을 하거나, 처음봤지만 대뜸 찾아와 화를 내거나, 집에 가둬버리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스스럼없이 행한다.

클레어 키건 답게 이러한 이야기들을 보여주기만 할뿐, 자신의 입장은 밝히지 않는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오직 독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글을 쓴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같은 것을 떠올릴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예측이 드는 이유는 작가의 의도가 정확히 담기도록 애쓴 사실적시에 기반한 글쓰기 일 것이다.

어떤 부분이 사실적시인가는 책 뒤에 옮긴이의 말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로 묶어 발표하기 전 바꾼 문장들이 몇개 있는데 그 문장들을 보면 클레이 키건이 대단하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보통 현실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마주하면 외면해버린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도피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클레이 키건은 여성문제라는 논란이 될 수 도 있는 것을 외면하자 않고 작가로서의 커리어가 정점에 달한 순간에 글로 적어 세상에 내보냈다.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용기를 얻어 또 목소리를 내고 그렇게 목소리가 모여 세상이 바뀐다.
누군가가 작가는 세상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쓰는 작가가 참으로 멋지고 대단했다.

자신의 커리어를 건 <너무 늦은 시간>을 보고
나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