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증언 -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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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군국주의에 억압받고 스스로가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천재지변 앞에 무기력한 존재임을, 스스로에 자신을 잃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분노로 야기된 폭력성은 어디로 향할까.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 지방에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강력한 여진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통에 건물이 무너져내리고 여기저기에 불이 붙어 말그대로 아비규환인 상황이었다.
그때 조센징, 불량선인들이 뭉쳐서 돌아다니며 각 집 우물에 독을 풀고있다, 물을 마시지마라. 불이 나는 것은 이것들이 불을 지르고 다녀서 그렇다같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일본인들은 조선인, 조센징(심지어 아침‘조’자를 빼서 센징이라고 부른다. 좋아보이는건 다 가져간다)을 보면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한다. 자경단의 활동이라며 조선인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가두고 죽여나갔다.
아이러니한 것은 조선인으로 구분 짓는 방법이 특정 일본어의 발음 또는 칙령이나 천황의 연대를 외우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는데 다른 지방 사투리가 있거나 안타깝게도 외우지 못한 내국민(일본인)들도 잡아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명백한 기준도 없는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이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러한 학살은 한달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그나마 한달이 지나서야 보도가 되고 학살이 멈출 수 있었던 것은 외국에 알려지면서 부터이니 반성의 기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없다. ’독립신문‘에서 추정한 간토대지진, 아니 간토대진재(천재지변이 아닌 혐오와 국가폭력이 만든 인재라는 뜻을 담은 표현)의 희생자는 자그마치 6000여명에 육박한다.
실종자도 포함한 수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독립신문이 희생자를 집계하기전까진 어디에서도 집계하지 않았다.
그 다음에 총독부 등 여기저기에서 집계했지만 그 수는 현저히 줄어들어 집계되었다. 어느누구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오히려 국가가 나서면 문제가 되니 자경단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도구를 지원하고 뒤에 숨었던 9월1일을 경각심을 가지자는 취자로 기리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조선인 학살은 한글자도 한마디도 뱉지않는다.

아마 가장 먼 나라이지 않을까 일본이.
매년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반대로 우리 한국을 방문하기는 하지만 근100년의 원수같은 역사로 인해 둘만의 경쟁은 무조건 이겨야한다. 그래서 각종 스포츠 경기의 한일전은 무조건 이겨야하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일본에게 졌다면 죄인처럼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백년동안의증언 (#김응교 씀 #책읽는고양이 출판)은 100년전에 일어난 끔찍한 대학살의 흔적들을 저자가 틈틈히 현장을 찾아가 조사하고 연구한 것들을 토대로 있었던 일을 있었던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세상에 나온 책이다.

이것은 옛 것을 들추어내서 또다시 분쟁을 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몸에 남은 흉터가 지워지면 가장 좋겠지만 세월이 지나도 남아있다면 그 이유는 그 흉터를 보고 그때를 잊지않고 떠올려 다시는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타산지석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간토대진재도 그렇게 백년의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큰 흉터이다. 우리의 아픔이 더 크겠지만(아픔은 비교하면 안되지만 희생자의 수가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조선인들과 함께 묶여 탄압받았던 사회주의자들과 애매한 기준으로 조선인으로 오해(?)받아 죽은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일을 했던 선조들, 그런 일을 가능하게 용인하고 그런 시대를 만들었던 국가까지 모두가 지금까지도 지니고 있는 흉터인 것이다.
비록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잊혀졌지만 눈에 보이지않을 뿐 그 흉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 흉터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인정하고 양심과 정의를 좇아 사과하고 해야할 행동을 해야만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과받고 응어리를 풀어야 멀지 않은 진짜 이웃이 될 수 있다. 매듭이 단단히 묶여 풀 수 없다면 그 시작점을 찾아 찬찬히 풀어나가야 한다.
다행히도 일본 내에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고 군인 위안부 문제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시정하려는 일본 시민 단체들이 있다. 이들과 적극 협력하고 왜곡을 진실처럼 외치는 정치인들을 묵시하지말고 비판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여야한다.

이런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들’이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옛 유적에서 발견된 700년 전의 연꽃 씨앗을 각고의 노력끝에 ‘아라홍련‘으로 우리에게 전해졌듯, 이 책이 그때와 지금의 ’우리‘를 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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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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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겨 독립된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누군가의 속국으로 살아가야하는 삶을 살아야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온갖 부정이 판치고 살기 퍽퍽하다 하더라도 내 나라의 일이었지만 어느순간 내 나라가 아닌 어떤 나라의 식민지인(2등국민)으로, 더이상 술안주삼아 욕할 나라가 없음을 느꼈던 사람들은 참으로 허탈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울분을 잊지않고 기억하고 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을 것이다. 이 목숨을 거는 사람들도 사람인지라 응당 포기하고싶은 순간이 있었을 것인데 그때마다 눈에 밟히는 존재들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아이들이다.
나라가 없는 세상에 태어나 나면서부터 차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심지어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조차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바로잡겠다는 마음을 포기하지않고 다잡을 수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직접 느낀, 그 시대가 고스란히 담긴 글들이 #제국의어린이들 (#이영은 씀 #을유문화사 출판)에 담겨 세상에 나왔다. 1938년에 열린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의 수상작들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은 군국주의 체제의 국가에서 자라난 식민지인 어린이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교육받는 일본인 어린이의 글까지 볼 수 있다.

같은 땅위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신분, 재력의 차이가 여실히 담겨있는 글들이 참 안타까웠다. 누군가는 수업료를 빌리기 위해 20킬로미터 넘게 떨어져있는 친척집까지 하루종일 걸어갔고 누군가는 아버지의 새차를 타고 경성 나들이를 나간다.
누군가는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기위해 닭, 돼지를 키우지만 누군가는 귀여운 고양이를 동생처럼 아끼며 살들이 돌본다.

이런 생활의 차이도 흥미로운 반면 안타까웠지만 일본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는 것 마냥 어른들의 가르침을 흡수한다. 심지어 어릴적 ‘왜?’라는 질문이 필요없을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들은 앞으로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배워나가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군국주의, 전쟁이 제 1의 가치였던 시절에, 나라에서 자라다보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빼앗고 힘의 논리가 은연중에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는다. 우리 때도 있었던 부모님 직업을 소개하는 시간에 최고로 인기있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직업이 군인이라니 말 다 하지 않았나. 저 시절의 일본군인, 특히나 육군이면 한반도에서는 무법자나 다름없었다.
그런 시절에 그런 부모밑에서 ‘조센징’이라는 것을 밥먹듯 숨쉬듯 들어오면 옳고 그름은 파악할 필요도 없는 스스로의 인격에서 기준이 되는 무의식속에 각인되어버린다.
그 무의식을 가지고 평생동안 알게되고 배우게 되는 것을 판단하게 되는데 참 무서운 일이다.

결국 패망하게 되지만 권선징악으로 여긴 그시절 일본 어린이는 몇명이나 있을까. 원자폭탄를 투하한 미국에 대한 원망만, 패망하기전 모든 것이 행복했던 그 순간을 그리워하는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자명한 일이다.

해맑은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어른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하얀 도화지에 기본이 되는 데셍을 그려놓는 것은 부모를 포함한 어른이다. 그 데셍과 비슷하게 앞으로 자신이 직접 그려나가야할 빈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 그 밑그림과 다르면 내 그림이 잘 못되었다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의 그림의 흠부터 찾으려한다. 나는 평생을 이렇게 알았으니 상대방 것이 잘못되었다 생각할 것이고 그 생각을 고치기는 매우 어렵다. 워낙 어릴때부터 진리처럼 알고있던 것인데 바꾸는 것이 쉽겠나.

그래서 어릴때 무언가를 배우느냐가 참으로 주요하다.
이 그림도 저 그림도 다양하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항상 ‘왜?’ ‘이게 맞나?’ ‘왜 나는 지금 기분이 나쁘지(좋지)?’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토론하고 다양한 것들을 골고루 받아들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줘야한다.
그래야 그 아이의 평생을 가장 본인답게, 아무런 편견없이 자기만의 기준으로 명징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독립을 위해 피흘려가며 싸운 어른들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애국심이 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무한경쟁의 새대를 보고자란 우리들은 애국심과 거리가 멀어졌다. 올림픽도 나와는 관계없다며 응원도 하지않을 정도라니.

어느덧 어른이 되어버린 나 스스로에게 책임감 있는 행동과 말을 하라고. 그렇게 새싹들에게 본보기가 되어라고 꾸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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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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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는 계절은 어떤 계절일까?
나는 여름이 아주 취약한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이다.
땀이 많고 더위에 약하고 어릴 적 피부가 검어서 놀림받았던 기억때문에 피부가 타는 것도 싫어한다.
몸도 마음도 뜨거운 태양에 녹아 에어컨 밑에서 널부러져 있기만했다. 나의 여름은 ‘가뭄’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내 안을 살펴보며 달리고, 해보고싶다 생각이 드는 것들을 해보면서 올해 나의 ‘여름’은 달라졌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을 들려주면서 어떤 계절일 것 같은지 물어보면 높은 확률로 여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약간 과장해 을씨년스럽기까지만 긴박한 음들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이 연상된단다. 하지만 살짝 다른 여름의 태풍 과 폭풍우를 음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봄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싹을 틔운 새싹들이 이 혹독한 비바람을 견뎌내면 더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더 크고 무성한 잎을 낸다. 꽃봉오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라는 결실을 맺기위한 큰 가능성을, 큰 에너지를 온 몸 가득 받아들이고 있는 계절인 것이다. 그래 올해 여름은 가능성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절이었다.

나에게 십수년동안 똑같던 여름이 올 한해 바뀌었듯이, #이디스워튼 의 #여름 (#민음사 출판)속 주인공 ‘채리티’에게도 열여덟의 여름은 남달았다.

이십킬로미터 넘게 떨어져있지만 너의 뿌리를 잊지말라는 듯 우뚝 솟아있는 ‘산’에서 태어나 노스도머에서 살아가고 있는 채리티는 그 작은 동네에서의 일상이 마냥 지겹고 따분하고 화가난다. 큰 도시로 나가서 살고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 그녀와 노스도머에 새로운 바람처럼 등장한 미청년 하니. 그는 건축에 푹 빠져있지만 그럼에도 채리티와 하니 사이엔 묘한 기류가 흐른다.

어린나이에, 둘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않는 한계에 대한 저항감까지 더해져 그들의 사랑은 세차게 내리는 폭우에도 꺼지지 않고 여름내내 활활타오른다.
그 사랑은 새 생명이라는 결과값까지 도달하고, 자신이 처해진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오냈노라며 노스도머를 떠나간 하니는 돌아올 기미가 없다. 하지만 채리티는 많이 슬프지 않다. 그와의 불같은 사랑을 할 때 하니와 평생을 함께하는 미래는 그린 적 없기때문에. 하지만 새 생명은 지켜야했기에 평생동안 최선을 다해 외면했던, 자신의 엄마와 ‘식구’들이 있는 ‘산’을 향했지만 마침 그날 한번도 본 적 없던 채리티의 엄마는 죽어 언땅에 묻히고, 산사람들의 열악한 환경을 아이에게 줄 수 없다는 심정으로 뛰쳐나오다 그녀를 데리러 온 로열 변호사와 마주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찾아온 ‘산’에서 채리티를 데려와 평생 채리티의 보호자였던 로열 변호사(로변)는 지금 채리티에게 가장 필요한 따뜻한 쉴 곳과 음식을 주며 앞으로도 이러겠노라며 자신과 결혼하자고 한다.

결혼식에서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결혼식을 마치고 그들의 집은 붉은집으로 돌아가며 이야기는 끝난다.
계절도, 채리티의 삶도 무수한 생명체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시기인 여름에 시작한 이야기.

누군가는 채리티의 여름이 한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는 실패라 여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않다.
채리티는 자신도 어린와중에 일생일대의 사건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진다. 자신만큼(어쩌면 자신보다 더)작은 생명을 위했다.
그렇게 한단계 성숙해진 채리티가 되었기에 그녀의 여름은 실패가 아닌 성장이었다. 성장이 원동력이 슬픔인 것은 안타깝긴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은 안타깝게도 부의 감정에서 주로(또는 크게)성장하더라. 그래도 채리티가 여름내내 행복하기를 바라기는 했다. 지금보니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간절히 바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독서의 효과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렇게 채리티의 여름이 지나감과 동시에 나의 여름도 지났다.
같은 시기적 배경을 살아왔어서 그런지 유난히 채리티의 삶에 몰입해서 봤던 책인 것 같다. 이디스 워튼 특유의 자연 배경과 계절감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섬세하게 묘사가 되어있었는데 이러한 생생한 묘사가 채리티의 주변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어서 나도 노스도머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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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 간 로버 이야기
재스민 왈가 지음, 김래경 옮김 / 양철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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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재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인류 미래의 지구로 기대받고 있는 화성.
그 화성의 환경에 대한 데이터를 획득하기 위해 NASA에서 만든 화성 탐사 로버 ‘리질리언스’.
화성의 지질을 탐사하여 생명의 흔적을 발견함과 동시에, 통신이 두절된 커리지호의 데이터 복구의 임무까지 부여받는다.

이런 로버들은 무사히 화성에 도착해 지구로 데이터 전송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 첫 순간에만 뉴스에 나올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신호가 끊기거나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에는 그냥(물리적 거리로 인해 어쩔 수 없지만)‘버려진다’

아마 이렇게 버려지는 로버를 안타까워 하는 사람은 로버를 만든 사람들과 우주 덕후들 정도가 끝 아닐까.
하나의 소모품으로 인식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 로버 리질리언스, ‘리지’는 프로그래밍중에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사람의 언어를 나태낼 수는 없지만 좋고 싫고 고마운 감정을 느끼는 리지는 본인과 똑같이 생긴 로봇 저니, 화성 탐사의 짝꿍이 될 드론 로봇 플라이, 화성에서 통신하는 인공위성 가디언과 함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화성으로 향한다.

화성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리지.
하지만 리지는 야심이 있다. 지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만큼 ‘가치 있는’로버가 되겠다는 꿈.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특별한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렇게 화성의 영화(소설이 원작인)‘마션’으로 유명해진 모래폭풍을 헤치고 특이한 현상이 관측되는 장소로 나아가던도중, 통신이 끊겨버리고 그 상태로 17년 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리지는 괜찮을까? 무사할까? 무사하다면 다시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자신의 바램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재스민왈가 가 쓴 #화성으로간로버이야기 (#양철북 출판)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어지간히 먹은 상황이라 예전 영화 로빈 윌리엄스(그곳에서 잘 계신가요)주연의 ‘바이센터니얼 맨’이 생각났다.
가사일을 돕는 가전제품 가사로봇 ‘앤드류’의 회로에 마요네즈 한방울이 떨어져서 앤드류에게 감정이 생기는 영화인데(찾아보니 2000년 영화네🙈)감정이 없는 로봇에 감정이 생겨 무얼가를 원하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우리와 똑같이(어쩌면 더 낫게)삶을 ‘살아가는’이야기는 언제나 취향저격이다.

이런 취향저격의 작품을 본 뒤에 나는 어떤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들었다.
어느순간 그냥 눈뜨면 씻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씻고 잠들고의 일상이 아무런 생각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드는 생각이라고는 아 빨리 주말 왔으면 좋겠다(자매품으로 아 벌써 월요일이라니)정도.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을 그냥저냥 살아내기만 한 것이다.

누구는 저 먼 화성까지 가서 샘플수집하고 소실된 데이터를 살려내는 인류 역사에 남을 업적을 달성하고도 4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인해 지구로 돌아오지 못해서 40억 달러 이상의 값어치를 하려고 난리인데 나는 리지의 기본 미션만큼 의미있는 것도 하지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언가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추구하는 어떤 가치, 가치관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행복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내가 추구하는, 목표로 하는 것들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을 매일매일 성공하는 것이다.
물론 목표를 설정하는 것에 많은 생각을 해야하겠지만(돈을 쫓는 그런 빠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무의식에서 부터 행복한 느린 행복을 추구하는)매일매일 성취해내는 것에서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고 나 스스로의 가치도 더해질 것이다.

누구보다 멋지고 가치있는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같은 사람이 아닌 로버, 리지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오히려 원래부터 가지지 못했던 인격이 부여되면서 좀 더 ‘인간다움’에 대해 강렬히 고민하고 사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유의미한 삶, 가치있는 삶, 인간다움에 대해 혹독하지만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먼 우주 속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건들 속에서 누구보다 인간다운 로버, 리지에게 생생하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가르쳐주는 것의 최고는 직접 보여주는 것이라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리지’는 <화성으로 간 로버 이야기>는 최고의 스승, 최고의 교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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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오브 킹스 - 세상에 온 가장 위대한 왕, 그분의 생애가 시작된다
찰스 디킨스 지음, 김성진 편역 / 린(LINN)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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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도서제공으로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막연히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꿈꾸던 시절.
가족영화에서 보았던 것 처럼 아이에게 자기 전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그렸었다. 거기다가 직접 내가 쓰고 그린 이야기 책까지 추가한 아주 원대한 상상을.
실제로 이뤄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문득 저런 공상(?)을 하던 때가 있었지라며 떠올릴때마다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위대한 작가인 #찰스디킨스 는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직접 나의 상상을 실행에 옮겼다(아빠가 이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꿈😂)
아이가 흥미를 가질법한 신비로운 이야기와, 세상을 살아가면서 옳은 태도와 생각을 강압적이지않고 부드럽게 제시하고, 그러면서도 평생을 두려움없이 겁먹지 않고 단단하게 두발을 땅에 붙이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신앙심까지 자연스럽게 심어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바로 왕 중의 왕, 예수의 일대기를 다룬 #킹오브킹스 (#린 출판)이다.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시대부터, 사악한 뱀의 혀 사탄, 악의 꾀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베어먹은 이브, 그로 인해 벌을 받으면서도 벌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안배(너의 후손이 뱀을 처단할 것이다)까지 챙겨주는 신의 모습부터, 크리스마스때만 되면 교회에서 극으로 올려지는 예수의 탄생,온갖 기적과 올바름을 보임에도 간악한 인간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는 예수와 마리아, 그의 사도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삽화들과 함께 수록되어있다.

아이들이 수태고지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흔들림없고 흥분하지않는 맑은 눈의 고요한 예수를 따라가다보면 이 이야기를 듣는 아이도 예수처럼 고요하고 심지가 궂은 아이로 자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찰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직접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고 전해지며 원래의 제목은 #우리주님의생애 란다.

책의 시작에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았으면 좋겠구나. 모든 사람이 그분에 대해 알아야하기 때문이야. 이 세상에 그분처럼 선하고, 친절하고, 온유하며, 잘못하거나 아프거나 비참한 모든 사람들을 그분만큼이나 안타깝게 여긴 사람은 없었단다.”라고 적어 둔 것만 보더라도 찰스 디킨스가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떤 마음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 아이들에게 선물했는지 알 것만 같다.
하루 한편씩 짧은 글을 아이 머리맡에 앉아 들려주는 찰스 디킨스와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진다.

성경에 적혀있는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성경은 특유의 번역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읽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게다가 교회에 가서 성경공부라는 명목으로 처음 예수를 접하게 되면 성경도, 예스도 너무나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된다. 신실한 아버지가 자식들도 신앙심 가득한 생을 살길 바라며 예수를 너무 어려워하지 않길, 친근하게 받아들여 평생을 가까이 하길 바라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 바로 <우리 주님의 생애>,<킹 오브 킹스>인 것이다.

그런 따뜻함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이렇게 자상한 투로 예수의 이야기를 본 것이 처음이라서일까 나에게도 예수의 일생이 근엄하다기 보다는 숭고하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다가왔다.

예수가 자기의 존재와 사명에 대한 확신으로 흔들림없는 맑은 눈빛을 잃지않는 모습과, 요한을 직접 찾아가 세례를 받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게 행하며, 재물과 멀리하고 항상 일반 시민들의 곁에 가장 낮은 곳에서 머무는 모습들이 성경에서 보았을 때 보다 더 생생하고 깊게 마음에 박혔다.

겸손함, 자비로움, 애민의 마음, 자기확신, 흔들리지않는 차분함, 고요함 배우고 본 받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성경에서 예수는 너무나 거룩해 닮고싶다라는 생각조차 못하는 존재였다는이 책에서는 나도 저러고 싶다라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는 한명의 이상적인 인간의 표본으로 느껴져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신앙심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만약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을 없애고, 예수의 일대기를 성경보다 쉽게 익힐 수 있고, 선한 인간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훌륭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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