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말했다.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시절 최선을 다했기에 더 이상 후회가 없는 삶이라고. 정말 그렇다. 돌아보니 내 20대는 안간힘의 시기였고, 다시 그렇게 하라 해도 못할만큼 24시간을 36시간처럼 쪼개며 살았드랬다.20대가 안간힘이었다면 30대의 절반은 무기력이었다. 한번을 크게 앓고 나니 모든 것이 부질없다 싶고 무력감이 찾아왔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동동거렸을까? 내 자신이 너무 안쓰럽고 아까워 미칠 것 같은 나날이었다. 뭐라도 하고 싶은데 손가락 끝 하나 움직이는 것도 괴로울 만큼 아팠다. 예전처럼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데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으니 화가 났다. 그때 내가 이 책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받아들고, 길 잃고 헤매다 비로소 믿을 만한 어른을 만난 어린애처럼 자꾸만 눈물이 났다. 책을 열어 목차부터 찬찬히 살펴본다. 그래도 괜찮아 / 너무 애쓰지 마라 / 지금도 좋아 / 천천히 가자...소제목 하나 하나가 너무 따뜻해서 손가락으로 글자를 괜히 한 번 쓸어본다. 착각이겠지만 어쩐지 따스함이 묻어나는 느낌이다. 시인의 시에는 저마다 투박한 듯 소박한 듯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책 제목과 같은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도 좋았고, <그 아이>라는 시는 너무 좋아 열 번도 넘게 읽고 따로 적어 벽에 붙여두기까지 했다.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울컥하면서 읽었다. '통통통 뛰어가는 작은 새 발걸음, 그렇게 가볍게 살아가주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처럼 나 역시 너무 잘 하려는 강박은 내려놓고 가볍게, 그러나 시인처럼 사람을 보는 시선만은 따스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