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 한국교회 성령운동, 무엇이 문제인가
박영돈 지음 / IVP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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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서 일고 있는 성령의 운동에 대해서 크게 우려를 표하면서 이 책을 대하게 되었다. 

이런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누가 나서서 확실하게 평형을 잡아 주지 않는 한

제대로  균형잡힌 성경적 관점을 갖기가  쉽지 않다. 교회에서 매년 부흥회를 하지만 오히려 평상시의 예배보다

더 성경적이지 않은 집회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하고 있다. 오히려 일선에서 평범하게 목회를 하시는 분들

보다도 부흥회를 인도하시는 분들에게서 이런 그릇된 성령의 얼굴을 많이 보게 된다.

 

저자는 보수적인 신학자이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목회일선에 계시는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자이면서

현장의 시각으로, 성령에 대해서 펜으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일반 성도들의 마음도 충분히

헤아리면서 또한 목회자들의 마음까지도 일일히 꿰뚫며 무엇이 그릇된 가르침이고 어떤 것이 바른 성령관인지를

철저하게 성경적인 관점에서 낱낱히 해부하고 있다. 물론 저자의 견해를 모두  받아 들일 수는 없지만 그가 충분히

바른 시각으로 성경말씀의 바탕위에서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몇년전에 방언 열풍이 한국교회에 일었었다. 김우현 감독이 쓴 방언에 관한 책과 그에 뒤이어 이에 반대하는

옥성호씨의 책이 나왔는데  두 책은 방언에 대해서  서로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에 성도들은 오히려

혼란에 휩싸였다. 이에 김동수 교수의 책이 방언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고수한  김우현 감독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나왔다. 이 책은 그 뒤를 잇는 책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방언에 대해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며 설명하고 있다.

성령의 음성과 성령의 체험,신유-치유의 문제, 방언, 불세례등의 단락으로 나눠서 각각에 대해서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이 부분에서 방언과 치유는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치유는 부분적인 치유를

 인정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2년간 발로 뛰면 자료를 직접 수집했고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찾아간 기도원의 사례가

나오는데 실제 현장을 방문해서 현재 한국의 기도원에서 어떤 그릇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리고 치유집회를

방문해서는 어떤 치유의 역사가 그릇된 것인지를 성경적인 검증을 통해서 확인하며 시비를 가리고 있다.

평신도가 읽기에도 전혀 부담없이 읽힐 수 있는 책이면서도 성경적인 잣대에서 벗어남이 없는 명쾌한 해답을 이어 나가고

있어서 성경이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 우리에게 원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어떤 것인지를 시원하게 알 수 있다.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어떤 기적이나 표적도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치유든 방언이든

그것을 통해 치유받았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방언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그것으로 인해서 열등한 신앙이라는 자책에 사로 잡힐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월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령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에게 주신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므로

주셔서 성령이 함께 하시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깊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고 또 어느 누구는 그것이 없어도 충분히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내적인 기쁨을 누리며 살아 갈 수 있기에 주시지 않기도 하신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특별히 일반 성도들 보다도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이 더 성령을 사모하고 갈급하게 되지만 더 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에 많은 공감을 했다. 일반 성도들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성령의 내주로 인해서

기쁨과 감사 를 누리게 되지만 목회자는 성령을 받아서 자신의 명예와 교회의 외적 성장등의 개인적인 이유가 더 크기 때문에

그런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에서는 성령을 받기가 어렵다고 말을 한다.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성령의 불세례를 또 받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이미 주님을 믿은 신자들에게는 믿음의 고백과 죄사함과 성령의 세례가 동일선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다시 불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오순절 계통이나 부흥회에서는 강사들이 다시금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라고 강요하고

있는데 오순절 이후에는 사도들과 같은 그런 세례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을 한다.

 

대개 부흥사들은 다혈질의 성격인 사람이 많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다혈질인 사람일수록 빠르고 급한 성과를 원하기

때문에 사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를 바로 눈 앞에서 빠르게 보기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조급증과 성취지향적인 성향이 맞물리면서 성령의 바른 원칙 보다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제어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종하기를 원하는 유혹에 사로 잡히게 된다. 오래 참음과 기다림의 성령의 방법을 떠나서 육신의 성급함에 이끌릴 때 미혹의 영이

역사하게 된다. 이렇게 강제로 믿게 하는 것은 일종의 영적인 폭력이 된다. 주님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은 성령을 이용하지

않고  십자가를 전제한 복음의 바탕위에서 온유함으로 전하는 것이다.  바울처럼 겸손과 눈물과 오래참음으로 일하는 것이

성령의 방법을 따르는 것이다.

 

특별히 성령사역을 하는 사람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거룩한 수줍음'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자신이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며 자신의 능력이 과시되지 않도록 사려깊은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은 조금만 불려 다녀도

 복음 속에 감춰진 자기기만의 모습을 위장하면서 성령의 모습은 볼 수 없고 자신의 능력만 부각시키는 것을 보게 된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끌어 당겨서 자신의 성공과 명예를 위한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많다. 그렇기에 수많은 집회가

열리지만 꼭 있어야 할 성령의 열매와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왜 성령체험을 받기를 원하는지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한다. 방언이나 에언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것 보다도 더 본질적인 것은

삼위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다.성령을 체험하면 삼위하나님과 너와 나를 체험하는 것이다.이것이 천국공동체를 체험하는

성령체험의 삼박자다. 성령과의 교제만를 원하는 일위도 그릇된 것이고 하나님이 빠진 이위의 교리도 그릇된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누리는 비결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는 것인데  현대 성령 운동의 문제는 이 죽음의 관문을 거치지 않고

영광과 능력만을 갈구하는 데 있다. 현대 은사 운동이 초자연적인 은사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혼란을 야기한다면 보수교회는

초자연적인 은사를 깡그리 무시해 버림으로 성령을 소멸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우리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은사중지론'이라는 틀에 묶여서 성경을 재단해 버리는 오류도 없어야 하고 '경험의 틀'이라는 것에

꿰맞추기 식으로 성경을 조작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학적인 전통이나 경험이라는 전제에 의해 휘들리지 말고

성경자체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들으려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성령충만은 영적으로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을 절감하고

인정하는 교회와 개인만이 받을 수 있는 은혜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를 향해서 던지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한국교회는 성령이 사용하시기에는

너무 비대해졌다. 만약 하나님이 이 땅에 큰 부흥을 일으키기 원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 가도록 충분히

작고 연약하고 가련한 자들을 통해서일 것이다. 만약 한국교회가 외형적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숫자와 조직과 재정의

위력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충만하게 하시기에  충분히 작고 가난하고 애통해하는 교회로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다시 부흥케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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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사용설명서
두위 지음, 하진이 옮김 / 문화발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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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중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수업시간 중에 간혹 선생님이 중국에 대한 문화나

시사 이야기를 꺼내서 설명을 할 때가 있는데 경제관련 분야는 그나마 알아 듣는데 다른 문화적인 것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알고 싶었다.

중국이란 나라가 이렇게 많은 다민족 국가라는 걸 책의 지도분포를 보면서 알게 되었고 그들이 우리나라의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기호와 식성이 다르듯이 그들도 그런 이질적인 문화와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뒷면에 보면 이 책은 '중국인 특성을 초정밀 분석한 최초의 책'이란 타이틀이 붙어있다.

이제 앞으로 경제대국이 될 중국을  바르게 알고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졌고 이 책은

그런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중국 각 지역 사람들의 6가지 인격적 특징을 골자로 하여 그 차이를

소개하고 있다.  체질과 성격이 형성된 역사지리적 환경을 파헤치고 인격적 특징과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책이다. 속내를 잘 알 수 없는 중국인을 공부하는 인격여행기인 셈이다.

 

중국은 거대한 대륙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구 13억2천8백만명, 땅덩이 959만 제곱킬로미터,4개직할시

23개의 성, 5개자치구, 2개 특별행정구, 한족과 56개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인간 박물관이다.

그러니 중국인이라고 해도 다 같은 중국인이 아니고 우리가 제주도 방언과 전라도 방언 충청도 경상도

방언을 잘 알아듣지 못하듯이 이 사람들도 같은 민족이 아니면 도저히 그네들과 다른 민족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적인 차이를 수용하지 못할 것이다.

 

책에는 중국인의 인격적 특성과 차이를 각각 6개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고 이어서 각 지역별 중국인의

인격적 특성을 세분화 해서 26가지 민족으로 나눠서 설명을 하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같은

중국인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의아해진다.

 

중국인은 일반적으로 외지인이나 외래문화를 폭넓게 수용하는 편이다.그 중에서도 특히 난징 사람들은

포용의 폭이 매우 넓고 개방적이다. 그리고 저쟝 지역 사람들이나 쓰촨 지역 사람들도 역시 개방적이다.

광둥 지역은 지리적으로 바다와 맞닿아 있어 개방적이고 개척정신이 강하며 장사수완이 뛰어나고

융통성이 있으며 또한 진취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다. 산둥 지역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자부심과

 애향심이 강해서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똘똘 뭉치는 경향이 있다.

샹하이 사람들은 중국 최대의 도시이자 경제가 가장 발달한 지역에 살고 있는 1등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외지인들을 업신여기기 일쑤이며 심지어 옷차림이누추하거나 억양이 다르기만 해도

곧잘 무시하고 홀대하곤 한다. 이렇게 지나친 우월감으로 상하이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중국의 3대도시는 베이징과 상하이와 광저우인데 이들도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베이징은 정치의 중심지로 질서정연한 문화를 중시하는데 이는 제멋대로 설계된 남방도시와 선명한

대좋를 이루고 있다. 상하이의 문화는 베이징만큼 질서정연한 문화를 추구하지는  않지만 광저우의

영남 문화보다는 규율이 엄격한 편이고 도덕적으로 금기시하는 것들이 매우 많다. 광저우의 영남 문화는

가장 자유분방하면 모험과 자유를 추구한다. 광저우 사람들은 대체로 자립심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그래서 광저우는 사회구성원의 자유를 존중하는 편이다.

 

베이징 사람들은 감수성이 풍부해서 예술적 감각 또한 뛰어나다. 상하이 사람들은 다소 투박하고 거친 편이다.

상하이 사람들은 현실적이고 항상 효율성을 따진다. 직설적이며 재력이 그들의 가치관의 척도이기 때문에

'이익'을 중시한다.베이징에서는 친분관게가 없으면 일을 제대로 처리하기가 어렵다. 상하이는 국제도시인

까닭에 사람들이 '계산'에  밝고 믈질적 이익을 중시하며 상업적 두뇌가 발달되어 있다. 광저우는 유난히

먹을거리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광저우 사람들은 똑똑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홍콩과 상하이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상하이는 예로부터 교육을 중시해서 자식을 인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어던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하이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옷차림과 언행이 세련됐으며 소시민적인 우아함이

배어있다.반면에 베이징 사람들은 우아하기 보다는 고상하며 위엄있고 점잖다.이들의 대범하고 위풍당당한

 패기 속에는 '제왕의 풍모와 평민의 질박함'이 함께 깃들어 있다.

 

책일 읽다보니 저자가 중국인에  대해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연구와 조사로 이런 방대한 자료가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에 대한 풍부한 자료와 인격적인 특성을 속속들이 파헤친 것에 감탄을 했다.

지금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나 중국인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 그밖에 중국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많은 자료들로 인해서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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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목사의 구원 설교 모음집 한경직 목사의 명품 설교 3
한경직 지음 / 두란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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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낮은자, 섬기는자, 그래서 그가 더 그립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추앙 받을만한 인격으로, 청렴했고 낮은자 섬기는자의 모습으로 말씀과 행동으로 본을

보인 한경직 목사의 구원설교를 담은 책이다.

한경직 목사의 설교를 읽으면서 그 분이 살다가신 삶의 한 단면을 설교를 통해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삶과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면서 사시는 분들은 유창한 설교를 하지 않아도  삶이 그대로 설교로 전해지기

 때문에 말로 애를 쓰거나 자신의 설교를 자랑하려 들지 않는다.

 

1992년 종교 분야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템플턴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는 20세기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목회자라는 평을 들었으며, 소천한 후 지금까지도 한국 교회의 큰 어른이요 섬기는 자, 낮은 자의 모습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한 인격과 덕망이 회자되며, 온유와 겸손, 경건과 사랑의 모범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목사님이 집 한 채 통장 하나 갖지 않았던 청렴결백했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말만 유창하게 외친다고 모두 설교가 아닌 것은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거나 모으는 것은 웅변이나 화술로

 배워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말을 유창하게 하거나 감동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설교자의 인격과 삶이 조화롭게 일치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서 바른 삶과 바른 인격으로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서도 얼마든지 설교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영적인 지도자의 바른 모습은 아닌 것이다. 설교를 하는 강단이 때로는 자신의 말, 설교를 뽐내려고

올라서는 단이 되어서도 안되고 설교를 평가 받으려고 서는 곳이 되어서도 안된다

"설교는 그 형식과 음성이 전부가 아니다. 설교를 하는 설교자의 신앙 체험과 신앙 형성이 중요하다"

 

설교가 그리 유창하지 않아도 교회가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들이 있는데 그 교회를 섬기시는 담임 목사님을

보면 그 해답이 나오게 된다.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아도 설교자 스스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것 보다도 양들의 아픔을 우선하고 겸손하고 청렴한 분들의 교회인 것을

 알 수 있다. 설교로 성도들의 마을을 움직이는 것은 오직 성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고 설교자는 단지

 위탁된 도구에 불과함을 깨달아야 하는데 종종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한경직 목사님의 설교집 중에서 이 책은 3번재 책인 구원을 담은 설교집이다. 오늘날 교회가 구원과 회개의

죄사함을 외치기 보다는 일순간적인 축복만을 외치는 경향이 있고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은혜 보다는 일상생활의

복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적지 않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축복된 삶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시류를 쫓아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던져 주기 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강단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주변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우리 주님만을 바라 보게 하는 간결하고 명료한

 메시지를 통해, 죄와 유혹이 횡행하는 삶 가운데서 부딪히는 온갖 시련과 환난, 핍박과 질곡에서 좌절하고

낙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살도록 일깨워 주는 설교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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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기도하라 - 조지뮬러의 5가지 기도원리
조지 뮬러 지음, 유재덕 옮김 / 강같은평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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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고아원 사역을 하면서 사람에게 구하지 않고 오직 하님께만 구할 것을 구했던 조지뮬러의

 기도의 삶을 돌아 보는 책이다. 오래전에 뮬러의 일기를 읽으면서 평생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그 분을 구했던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뮬러는 하나님만이 인간의 마음을 주관하시고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놀라운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뮬러가 기도의 사람이어서 그가 기도에만 올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책을 보니 그가 말씀과 기도를 병행하는 삶을 살면서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균형된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평생에 걸쳐 5만번 이상의 기도응답을 받았으니 어쩌면

그에게는 기도응답이 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이것 또한 편견에 불과했다.

그 역시도 평생 몇십년을 기도하면서도 응답이 되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오늘도 기도응답이 되지

않아서 기도에 대해 좌절하는 사람들에겐 위로의 메세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도에 대한 짧은 단상들로 이루어진 책인데 책의 말미에는 찰스 파슨스가 조지뮬러와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고 뮬러의 삶과 사상을 다룬 짧은 글이 파이퍼의 이름으로 실려 있다. 조지 뮬러가 29년동안이나

응답 받지 못한 기도제목을 놓고 여전히 기도했다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 기도의 사람이면서

 믿음의 사람이면서도 그들이 기도에서나 믿음에서 늘 승리하며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완전한 것을

바라는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글이다. 불완전한 가운데 더 완전한 것을 바라며 기도하는  자세가

하나님 앞에 선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시실 기도응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때로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도응답은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일이고 뮬러처럼 그의 사후에 기도응답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응답의 경우는

'yes'나 'no'나 혹은 '기다려라'는 이 3가지 경우만이 응답에 대한 어떤 결과를 설명하는 말이 될 수 있다.

 

책에서 뮬러가 강조하는 내용은 기도응답을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이다. 그가 수만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말은  또한 얼마나 많은 인내의 시간을 감수하며 기다렸는가를 입증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가 응답을 받는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어떤 문제에 관해서는 시험을 당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응답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그가 기도응답을 받았던  비결이다. 그가 하나님의 한없는 복을 누린 비결은

삶의 일정한 규칙을 지켰기 때문인데 하루에 두 세번씩 반복해서 기도하고 기도에 대한 응답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돕는 손길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우리의 믿음은 최대한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기도의 자리를 떠나면 그 믿음도 최하로 떨어지게

된다. 믿음이 시작되는 곳에서 불안은 끝이 나고 불안이 시작되는 곳에서 믿음은 끝이 난다.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 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면 평안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음은 어수선해지게 된다.

그러므로 다윗이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은 것처럼 우리의 눈 앞이 캄캄해지는 바로 그 순간에도 믿음이 일하기

시작하므로 우리도 더 용기를 내서 기도의 자리에 들어서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죠지뮬러의 일기를 먼저 읽어보면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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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좋은 날
김지윤 지음 / 포이에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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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이라는 명목아래 데이트 한번 하지 못하고 교회 안의 온갖 모임에 시간과 자신을 바치며 피부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데이트다운 데이트 한번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올드미스로 남은 그녀들이 있다.

 결국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남은 교회안의 많은 싱글 여성들.

이들에 대한 문제는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남게

되었다. 충성과 헌신이라는 이름은 좋은 구실이 될 수 있고 그들을 교회안에만 머물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그들이 결혼 적령기를 보내고 허탈해졌을 때 과연 누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인가? 좋았던 젊은 시절을 다 보낸 그녀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나이먹은 올드미스라는 타이틀만

따라 다닐 뿐이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이 책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충성스러운 여종이자 한 알의 밀알로 썩어가는 자매들에게

또 인생의 꽃같은 시기를 주님께 다발로 드리고 있는 올드 미스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한 없는 긍정과 끄덕임과 위로를 얻었다.

저자가 간사생활을 오랜기간 동안 하면서 올드미스를 거쳤기에 누구보다도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는 것이 공감이 되었고 모든 글들이 실제적으로 마음으로 부딪쳐 오는 이야기들이라 마치 내 얘기를 듣듯이

속에 있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하게 뚤리는 기분이 들었다. 소설을 전공했던 저자의 특유의

글 솜씨로 인해서 막힘없이 재치있고 통쾌하게 글을 풀어 나가는 솜씨에 매료 되어서 매우 흥미있게 그러면서도

 아주 유익하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일러스트도 마음을 끌어 당기며 그림을 보면서도

마음이 마냥 즐거울 수 있었다.  별 다섯개 이상을 주고 싶은 책이다.

 

바로 얼마 전에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쓰여진 이성교제와 결혼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은 한 마디로 너무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기독교적인 이성교제라 할지라도 데이트를 할  때는 그냥 한명의

인간적인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간과한 듯 해서였다. 말씀 중심으로 설명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론적인

설명은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적인 면에서 어떤 것이 가려운 부분인지를 잘 찾아서 긁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실전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그것도 저자 자신의 체험이 구석까지 배어나와 상황이

 옴 몸으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특징이 있다. 이론적인 따분한 설명이 있는 책이 아니라 그동안의 수 많은

강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든 책으로 남녀의 테이트시 벌어질 수 있는 실전과 상황을 잘 분석하고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사랑에 대해서 다윗과 요나단 같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을 언급하며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를

꿈꿔왔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사랑보다 우정 위에  세워지는 남녀의 사랑은 정말 든든한 반석과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속내를 다 드러내고 함께 왕자와 장군으로서의 자존심도 버리고 서로의 아픔을 두려움 없이 표현하면서

그 마음을 받아 들이고 가슴 아픈 상황에서는 서로 껴안고 펑펑 울 줄 아는 이런 남자를 만난다면 정말

복된 일일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이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오류에 빠지는데 그게 진실은

 아니다. 스타일 좋은 남자와 사는 것보다 성품이 좋은 남자와 사는 것이 우리를 진정한 만족과 기쁨으로

 이끌어 준다 성품은 영적인 성숙도 보다도 육체의 매력보다도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말은 미스들이 젊음을 다 바쳐 충성했다고 해도 그 보상이 반드시 좋은 남자로

자신에게 답을 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청년부가 충성스런 헌신녀들의 섬김이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말은 그녀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반영해 주는 말이다. 그녀들이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겼어도

결혼에 관한 문제는 결국 개인의 어려운 과제로 남았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에 저자가 그런

헌신녀들에게 충실한 조언으로  앞으로  어떻게 자신을 꾸며 나가야 할지를, 내적인 아름다움을 어떻게  채워 가야

 할지를 적절한 해결책으로 제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들을 읽다 보면 교회에 오랫동안 헌신했던 

헌신녀들은 박수를 치면서 맞아 맞아 라며  수긍하고 공감할 내용들이 많이 나오게 된다.

 

바라기는 아직 교회에서 올드미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좋은 남자, 자기 짝을 만나지 못한 그녀들은 이 책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입에 딱 맞는 음식처럼 팔딱 팔딱 살아 움직이는 언어와 맛깔나는 글과 함께  상황에

딱 들어맞는 갖가지 실천 내용들이 실려 있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온 내용을 잘 실천하기만 한다면 앞날에 자신을

위해 예비해 둔 좋은 남자를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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