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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 일기 ㅣ 헨리 나우웬 영성 모던 클래식 3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10년 11월
평점 :
<제네시 일기> 가 출간 되었을 때 예고편을 보고 참 깊은 울림을 받았었다. 맑고 투명한, 가식이 없는
한 인간의 숨은 고뇌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읽었던 부분을 다시 되뇌어가며, 한 템포 쉬어가면서 그 상황에서 과연 나의 감정은
어땠을까?를 연관시켜 보기도 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이 책이 에초에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어서 헨리 나우웬의 생각과 감정이 가감없이 그대로 노출 되었다는데 있다.
아마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면 이토록 절실하고 솔직한 글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제네시 일기>는 헨리 나우웬이
제네시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베네딕트 수도원에 들어가서 7개월간을 그곳의 수도사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며 스스로 육체노동을 하면서 수도원 체험을 한 7개월간의 일기이다.
육체노동과 영적인 독서,그리고 예배의식 이 3가지를 본질적인 요소들로 삼고 있는 그 곳에서
서원을 하고 들어간 것이 아닌 나우웬의 영적,심적인 부대낌은 얼마나 컸을까를 짐작해 본다.
무거운 돌을 나르거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입에서 나오려는 험한 말들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며 분노감,적대감,자기연민,질투심을 그대로 표현하는 일기는 그래서 더 인간적이고 연약한
인간의 본성을 거침없이 들여다 보게 한다.
수도원 안에서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있는것은
수도원에 들어갔다고 해서, 그리고 그곳에서 7개월간을 지냈고 해서 없어지는 욕구들은 아니다.
그걸 고스란히 껴 안은 채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더 마땅한 일임을 나우웬은 고백한다.
한 인간이 성직자가 되고 수도원에서 수도를 한다고 해도 인간의 결점들이 잠시는 감춰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근원 뿌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악의 근원임을 보게 된다.
나우웬이 거침없이 쏟아내는 이런 감정들을 보면서 내 삶에도 속속들이 배어서 어느 때 튀어 나올지
알 수 없는 감정을 파악하는데 생각을 집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에는 항상 두가지 면이 공존하고 있어서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싸움을
벌이고있지 않은가? 내면에는 이런 불안정한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우웬이 노동을 마치고
나서 독서를 하거나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서 자신을 다듬어 가는 모습은 우리의 영적훈련의 과정과도
흡사한 부분이 있음을 보게 한다.
나우웬이 수도원에 들어간 이유를 '당위성은 있으나 목적은 모른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당위성은 있지만 때로는 어려운 고난 앞에서 그 목적을 상실해 가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수도원이고 우리 각자 자신이 나우웬이라고 한다면 이 복잡미묘한 설명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이미 설명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닌 것이다.
나우웬이 내면의 충돌로 인해서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듯이 우리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솔직한 자기 내면과 마주칠 기회가 우리에겐 얼마나 자주 있는가? 이런 부딪침의
기회가 잦을수록 자신은 더 견고히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든든한 자아가 만들어 진다.
"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을 때 스스로 서야 한다"는 말은 가슴 뭉클함으로 내게 다가왔다.
어누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찾아 올 수 있고 매일 매 순간이 이런 순간인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어떤 곳에 기대려 하지 말고 '스스로 서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나의 구주임을
강하게 부딪치며 인식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홀로 있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홀로 되면 고독감을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우리들, 그 중심에 내가
있다. 그 마음의 빈 자리에 하나님을 받아 들이는 특권을 누리는 것 또한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매일 이런 감정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단 한뼘'이라도 드릴 수 없다는 데 억울한 분노가 치미는 것은 아직도
내가 나 중심적이라는데 있다. 내 마음 속 방들 하나 하나는 아직도 무엇이 그득 차 있는지.
나우웬이 자신이 느끼는 불편한 감정들을 콘트롤하며 영성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아직은 내가
많이 미숙하지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그 분의 빛이 나의 내면을 조명해 주시면 그
빛 때문에 내가 조금은 밝아질 수 있을것 같다.
일기에 수록된 나우웬의 영적인 깨달음이 나의 형편없는 내면을 들여다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와 다를바 없는 깨어진 한 영혼을 숨김없이 들여다 보았기
때문이다.
나우엔이 묵상하며 쓴 글들은 자신을 철저하게 해부하며 그 노폐물을 끄집어 낸 작업이다.
그 작업의 결과물인 이 글들이 앞으로 영적훈련에 귀한 지침이 되어서 내 영혼의 성장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줄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한없이 기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