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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ㅣ 어른이 읽는 동화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7편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실린 정호승님의 '의자'는 동화라는 형식을 빌려서
사랑이 실종된 이 시대에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무생물이나 짐승,생물들을 저자의 눈으로 자세히 살피고 들여다봄으로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것들로 부터 사랑이라는 형식을 건져 올린 셈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섬세한 관찰력을 지녀야 얻어 낼 수있는 무생물들과의 소통은
그가 시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감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솝우화를 통해서 우리가 교훈을 얻듯이 이 책 <의자>를 통해서 그는 어른들에게 따끔한
사랑의 일침을 가하고 싶어서 이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일관된 주제는 거의 '사랑'으로 일맥상통하고 있다.
어떤 사물을 보든지 그는 모든것을 '사랑'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한번 더 걸러내어
사고하고 조합해서 동화로 탄생시켰다.
책 중간 중간 나오는 여인의 그림이 흥미롭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어떤 여인이었을까? 그는 저자와 어떤 관계일까? 라는 쓸데없는 관심들.
때론 사람의 머리위에 조그마한 돛단배가 얹어져 있기도 하고 한마리 작은새나
노랑나비가 머리위에 올라와 있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새와 여인이 함께
무표정한 얼굴모습을 하고 쓸쓸하게 그려져 있다. 아마 인간세상에서
사랑의 부재를 느끼며 인간과 애절하게 소통하고 싶어하는 생물들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눈보라 치는 겨울날 둘이 꼭 껴안고 얼어죽은 '제비와 제비꽃'이야기는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이다. 어떤것도 절절한 사랑을 막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도
둘의 마음이 합일점을 찾아야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변질되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무엇이든 변하게 되어있는
이 세상에서 유독 변하지 않을거라 굳게 믿었던 사랑도 언젠가는 변하게 된다.
그러나 그 변함을 막는것이 바로 서로의 사랑이다. 사랑이 사랑을 더 사랑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명태' 이야기에서는 부드러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세상엔 부드러움만이 강함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먼저 부드러워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바다가 명태에게 들려준다.
오랜세월을 파도에 부딪치면서 고통을 참고 인내해 온 바다가 터득한 진리가 바로
부드러움이다. 누구나 강해져야 살아 남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현실에서 바다는
그 반대의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가장 강한 자는 바로 가장 부드러운자이다.
'주춧돌'에서는 우리에게 '존재의 기쁨'을 이야기 한다. 아무 쓸모없을 것 같은 존재라도
그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로 하는 그 어떤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존재의 기쁨이 무엇인가? 자신이 하찮은 작은일에도 쓰임 받을 때 존재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데 '작은 돌멩'이-사람들의 발에 아무렇게나 이리 저리 치이는 그런 존재라도
어느곳엔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어린 대나무'에서는 대나무의 매듭을 통해서 고통을 참고 견디는 일이 자신을 한뼘 더 자라게
하는 일임을 시사해 준다. 누구나 고통이나 노력없이 빠른 성공이나 행복을 꿈꾸고 있지만
이런 가벼운 성공이나 행복은 금새 사라지고 만다. 대나무의 매듭이 있음으로 해서
대나무는 그 어떤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강인한 대나무로 다시 태어나게 되듯이
사람에게도 이런 인고의 세월이 필요할 터이다.
27편의 가슴 따뜻한 동화를 통해서 삶의 본질,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사람은 누구나 더 많이 갖고 싶어하고 더 많이 채우고 싶어하는데 이 동화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처럼 그저 마음을 비우고 살라는 소리로 들렸다.
이 가을, 낙엽이 자신을 비우고 떨어져야 풍요로운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것처럼 꼿꼿한
강인함만으로 살지 말고 때로는 비우고 낮추고 겸허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음을
이 동화는 말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