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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ㅣ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5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9년 12월
평점 :
너무 예쁘고 고운 책을 만났다.
이렇게 마음에 쏙 들고 내용까지 나를 감동하게 만든 책을 만난것은
올 한해를 지나면서 내게 준 선물이라고 해야할것 같다.
책을 받자마자 느낀것은 책을 사랑하게 될것 같은 예감에 고맙다는 것.
첫 느낌에 반한다는 것이 이런것일까?
편집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겉표지 왼쪽 부분을 자주색 헝겊으로 처리해서 만질 때 느껴지는 감촉은
책을 만지는 느낌이 아니라 애장품을 만지듯 애착이 느껴졌다.
겉표지 흰색 배경에 이철수님이 그린 삽화 한점 있어 무언가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에게 채우지 말고 가벼워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겉장을 열어 헤치면 또 하나의 선물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예쁜 글씨체가 눈에 들어온다.
매 페이지마다 내용과 조화를 잘 이룬 이철수님의 그림 한점이 정성을 더해 주고
거기에 글씨체까지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어 시화전을 감상하는 느낌을 준다.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 는 이철수님이 보고 듣고 느낀 그 모든것들을 망라한 것이라
생각한다.
시골의 모든 자연풍광은 인간에게 지혜이고 스승이다.
도시에 살면 매일의 일상이 늘 그렇고 반복되는 일상 뿐이라 무엇하나 신선할것 까지 없고
무엇하나 깨우칠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철수님이 사는 그곳,시골의 풍경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글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깊이와 생각거리들을 던져주고 있었다.
자연이 있어서 그래서, 더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자연이 없다면 우리에겐 노래할 이유도 배울 이유도 깨우칠 이유도 없다.
사람에게 무엇하나 배울것이 있으련만 그래도 사람다운 사람이 있다면 그건 예외이다.
산야를 자연의 시선으로 노래하고 시골의 땀냄새 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다 다시
세상으로 눈을 돌려서 세상에 대해 작은 칼자루 하나 쥐기도 한다. 그러다 힘이 들면 다
시 고향같은 시골집으로 돌아가서 자연에게 기대며 위안 한줌 얻는다.
명상집 같은 그의 글들은 참 명료하고 간단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아마 그것은 자연에서 배운 이치 때문일까?
자연은 군더더기가 없다. 치장이 필요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점이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을 닮았다. 마음까지 시원하게 비워주는 오솔바람처럼.
판화작업을 하는 사람이라 낫을 들고 사정없이 잡초를 배어내듯 투박한 글을 쓸 줄
알았는데 섬세하고 여린 들풀처럼 사물을 보다듬고 있었다.
여린 새색시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덮혀진 흙을 거둬 내며 조근 조근 귓속말로 세상의
이치와 삶의 노래를 말하고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생각할 거리들을 얹어서.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의 말에 귀를 세워 들을 수 밖에 없다.
그의 글의 견인력이 바로 이것이다.
밤이 새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풀어주고 있지만
때론 상처난 이야기도 뽀족한 피뢰침 같은 이야기도 외면하지 않는다.
이것이 삶에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상처가 희망을 낳고 희망은 또 다른 희망을 낳기 때문이다.
그의 기쁨이 때론 우리에게 슬픔이 될수도 있고, 그의 슬픔이 때론 우리의
기쁨이 될 수도 있겠다.
그의 기쁨을 우리가 향유할 수 없어서이고 그의 슬픔을 우리가 감지하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향해 풀어내는 고민은 우리 모두의 매듭이기에
실타래 풀어 나가듯 함께 풀어 나갔으면 한다.
그가 던진 이야기는 내 가슴에 파장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하나의 물맷돌이었다.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며 그 자리에 깊이 머물고 있었다.
삶과 여유와 자족과 상처와 어루만짐과 독백의 노래까지 모두다.
짧은 한마디 한마디가 분열해서 또 다른 길을 만들어 내며 사고의 집을 짓고 있었다.
사고의 집에서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되는 만남을 이뤘다.
그림을 삶으로 풀어내고, 삶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그는 판화작가이자 문학가였다.
그림엽서같은 아름다운 글들이 황량한 이 마음에서 저 마음으로 전해져서
추운 겨울날 솜이불 같은 따스함으로 덮혀지길 바란다.
올 한해가 가기전에 솜이불같이 포근하고 정겨운 이불 한장 만난것이
너무 기쁘다.
이 겨울이 다가도록 이 이불 속에서 오래도록 삶을 속삭여야겠다.
마음 한켠 헛헛한 사람이 있다면 이 이불 속으로 들어와 함께 마음을 덮였으면 좋겠다.
겨울 들판에 문득 날아 오르는 세떼들
작은것들,마음도 모으고, 몸도 모아서 함께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테지!
흩어지라고, 혼자서 있으라고 하지. 세상의 큰 목소리는.
작은 새들은 놀라 허공으로 날아 오르는 순간에도 흩어지지 않는다. 결코 !
얼음과 서릿발과 눈보라의 계절
시린 겨울의 짧은 한낮을 밝히는, 햇볕이 이야기 합니다.
겨울도 간다고. 봄을 이긴 겨울은 없다고.
봄볕에 가랑잎 먼저 더워질 거라고 .
이 계절은 누구에게나 힘겹다고.
그러니 외로움에 지지 말라고.
세상에 이름없는 것들, 하나같이 아름다운 별들입니다.
제 밝음, 제 아름다움 잃지 않는다면 오래 오래 그렇게 조용히 빛날 겁니다.
아름답지 않은 별 없듯 소중하지 않은 생명 없습니다.
존재의 존엄을 살필 겨를도 없고, 초라해 보이는 내게
스스로 실망하기 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두 내 탓만은 아닙니다.
좌절 먼저 하시지는 마세요.
늘 그렇듯 풍경에는 눈이 쌓이지 않는다.
풍경은 옛일 기억하지 않는다.
늘 이 순간을 살지.
거친 바람 마다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