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의미 없이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 하고, 특별한 의미가 담긴 시간을 '카이로스'라 했습니다. 깨어 있음으로 현재에 충실한 삶을 카이로스가 무엇인지 아는 삶입니다.


고지대에 빼곡히 자라는 나무들은 바이올린 제작자에게 가히 은총입니다. ... 인생은 선택의 정글을 헤쳐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할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봅니다. 가문비나무는 어둠 속에 놓인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굽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죽은 것을 떨쳐 낸 자리에서 울림의 진수가 생겨납니다! 나이테가 촘촘하고, 잔가지가 없고, 섬유가 긴 나무, 그것은 언젠가 바이올린이 되어 아름답게 울릴 질 좋은 목재입니다.


노래하는 나무는 자기 생명에 해로운 것을 버립니다. 희생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죄짓지 않는 쪽을 택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지을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버릴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도 다 해 봤어. 그런데 별 소득 없더라. 그러니 헛수고 하지 말고 여기 앉아 노닥거려.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하라고!" 소위 '뭘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종종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충고'를 합니다. 그런데 충고 뒤에는 '체념'이 숨어 있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체념의 경험이 많은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의 충고는 오히려 희망의 싹을 죽이고 실망과 체념을 퍼뜨립니다. 마음속에 은밀히 체념을 키워 온 사람들의 충고를 조심하십시오. ... 그들의 말을 믿으면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헤세는 "나무는 내게 언제나 사무치는 설교자였다. 나무와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 나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경험한다. 나무는 교훈이나 비결을 설교하지 않는다. 삶의 가장 근원적인 법칙을 노래할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다름을 관용하는 동시에 의식적으로 서로를 위해 살기.


자기를 존중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모든 악기가 자기만의 공명을 지니듯이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공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를 존중해야 합니다. 당신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는 있지만,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지면 삶을 훨씬 애정 어리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놀라거나 방해받을 용기 또는 좌절할 용기가 없을 때, 우리는 좁은 가능성의 범주 안에서 바둥거립니다. 그럴 때 커다란 지혜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의 가장 큰 실수는 네가 아무것도 그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네가 시도한 일이 너무 적었다는 뜻이리라."


좋다고 여기는 것, 칭찬할 만하다고 여기는 것을 자꾸 입 밖으로 말하십시오. 그것에 익숙해지면 내적인 힘을 경험할 것입니다. 바로 그 힘이 우리를 변하게 합니다. 말은 정보를 전달하지요. 동시에 창조적인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대 뇌과학에 의하면 두뇌의 언어 중추가 다른 부분에도 강한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말에 주의하십시오.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관한 말에 주의하십시오.


소프라노 친구가 말했습니다. "난 무대에 서면 일단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 생각이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지. 하지만 이제 현재의 미완성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어.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완성을 향해 성장해 가야 한다는 걸 알았거든."


완벽주의자는 그가 손대는 일마다 생명을 앗아갑니다. 뭔가가 성숙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 화가 훈데르트바서는 언젠가 "직선에는 하느님이 없다"고 했습니다. 직선이란 무엇일까요? 우회를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 다른 사람을 살필 줄 모르고 앞만 향해 달려가는 마음이 아닐까요?


겸손은 자기를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 우리는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장자는 "외적인 것에 비중을 두는 사람은 내적으로 무력해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사랑의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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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 못을 박다 - 류시화


어렸을 때 나는

별들이 누군가 못을 박았던

흔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별들이 못구멍이라면

그건 누군가

아픔을 걸었던

자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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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지 못하는 동물이다. 망각에는 특별한 노력 따위는 필요도 없는 것이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일들 따윈, 거의 모두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잊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게 보통이다.


잊을 수 없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매일매일 이 거리의 푸르고 투명한 하늘처럼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아오이와의 사랑을 회복하고 싶지도 않다. 아오이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실제로 만난다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억의 심술이다. ... 나는 어딘지 모르게 과거에 흔들리는 나 자신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때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사별 같은 것... 아오이와 나는 과거에 그런 이별을 했다. 나는 이미 그녀가 죽어버렸다고 믿으려 했다. 


이탈리아어로 르네상스를 'Rinascimento'라 한다. 원래는 '재생'이라는 뜻이지만, 15~16세기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운동을 가르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피렌체는 그 리나시멘토의 발상지이다. 여기서 근대적인 빌딩을 찾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16세가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거리, 거리 전체가 미술관이다. 겨울은 난방이 안되어 얼어붙을 듯이 춥고, 여름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 찌는 듯이 덥다. 그것을 사랑할 수 없으면 결코 여기서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거리에서 나 자신을 재생시킬수 있을까. 내 안에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을까.


정말 필요한 게 있는 걸까.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 과연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이 우아한 피렌체 거리에서, 지금 당장 해야만 할 일 따위는 없다.


사람이란 살아온 날들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 


미래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 늘 우리를 초조하게 해. 그렇지만 초조해하면 안돼. 미래는 보이지 않지만, 과거와 달리 반드시 찾아오는 거니까.


"안젤로, 난 한꺼번에 여러 가지 감정을 끌어안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야. 난 지금 애인 하나만으로도 힘들어."


후회없는 인생이 있을까. 나는 후회만 계속해왔다. 평생, 후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갑자기 다리가 무거워진다.


누구에게도,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살아가는 과정에 어두운 그림자 한둘은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사람분의 쾌활함을 가지고 있는 메미의 가슴에 깃들인 그 어두운 그림자가 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나 자신의 인생과도 겹치는 회색 그림자이기도 했다.


나는 자신의 미래를 너무 한정시키려 했다. 조금 더 유연하게 세계와 대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미의 요구로 그녀를 품에 안아도, 마음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남자라는 동물이란 이렇게도 허망하다. 마음에도 없는 여자를 안을 수도 있기에. 그것은 반쯤은 동정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메미를 모욕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관계를 마칠 때마다 후회하지만, 오늘이라는 날을 어떻게든 지내고 보자는 게으르고 자포자기적인 성격 탓에 나는 일순의 쾌락에 몸을 맡겨버리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번잡하다. 마음이라는 부분이 육체의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탓도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어깨나 발목의 아픔과는 달리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나는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아픔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흘러가는 시간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과거를 잊게 해주리라 기원하면서...


나는 그녀를 안으면서도 때로 착각에 빠진다. 내 가슴 아래 안겨 있는 이 여자가 메미가 아니라 아오이인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왜 눈을 감고 있었어?" 메미는 관계가 끝난 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든 나를 향해 물었다.


솔직히 말해, 메미와 헤어진 다음 십년 후에, 그녀를 아오이처럼 생각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하늘은 늘 변한다. 구름은 늘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어간다.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것은 마음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 여러가지 하늘이 있듯이, 여러가지 인간이 있다. 그렇다.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아오이는 미국인 애인의 사랑을 받고 이렇게 아름다워진 것이다.


남자란 과거를 질질 끌며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의 스위치를 전환하는 데는 여자보다 훨씬 서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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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꽃을 나는 꺾었다 - 류시화


세상의 정원으로 나는 걸어들어갔다

정원 한가운데 둥근

화원이 있고 그 중심에는

꽃 하나가 피어 있었다


그 꽃은 마치 빛과 같아서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셨다

나는 둘레에 핀 꽃들을 지나

중심에 있는

그 꽃을 향해 나아갔다


한낮이었다. 그 길이 무척 멀게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야만 했다

누구의 화원인지는 모르지만

그 순간 그것은

나를 향해 저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듯했다


밝음의 한가운데로 나는 걸어갔다

그리고 빛에 눈부셔 하며

신비의 꽃을 꺾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갑자기

화원 전체가 빛을 잃고

폐허로 변하는 것을


둘레의 꽃들은 생기를 잃은 채 쓰러지고

내 손에 들려진 신비의 꽃은

아주 평범한

시든 꽃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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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석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는 여자의 생활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석을 사는 여자의 생활과 보석을 선물받는 여자의 생활을


우리는 둘 다 열아홉 살이었고,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야만적인 사랑을 했다. 야만적인, 자신의 전 존재로 서로에게 부딪치는, 과거도 미래도 미련없이 내던지는. 쥰세이는 내가 처음으로 섹스를 한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런 식의 표현이 허용된다면, 진심으로 몸을 허락한-모든 것을 허락한-첫 남자다. 처음이고 그리고 유일한. 어디를 가든 함께였다. 따로 떨어져 있어도 함께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의 나쁜 점은, 기억이 뒤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꼼짝않고 있으면 기억도 꼼짝않는다.


사람이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있는 장소에, 인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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