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여 - 서정윤
바람이고 싶어라
그저 지나가버리는,
이름을 정하지도 않고
슬픈 뒷모습도 없이
휙하니 지나가버리는 바람.
아무나 만나면
그냥 손잡아 반갑고
잠시 같은 길을 가다가도
갈림길에서
눈짓으로 헤어질 수 있는
바람처럼 살고 싶어라.
목숨을 거두는 어느 날
내 가진 어떤 거도 나의 것이 아니고
육체마저 벗어두고 떠날 때
허허로운 내 슬픔 의식의 끝에서
두 손 다 펴보이며 지나갈 수 있는
바람으로 살고 싶어라.
너와 나의 삶이 향한 곳
눈에 보이지 않아도
슬픈 추억들 가슴에서 지우며
누구에게도 흔적 남기지 않는
그냥 지나는 바람이어라
바람이어라.
<홀로서기3> 서정윤
다시 홀로서며2 - 서정윤
가야 한다면 가고
아직 고통스럽다면
오래 방황해야 한다.
그저 바람 지나는 들풀처럼
온 몸으로 맞으며 흔들리고
흔들리면서도,
그 들판의 삶을 사랑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지.
사랑한다는 말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없다.
여행과 생활 - 박준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당신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앞으로의 먼 시간은
당신에게 여행 같은 것으로 남고
나에게는 생활 같은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해 협재 - 박준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래 침묵했고
과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그해 여수 - 박준
그해 밤 별빛은
우리가 있던 자리를 밝힐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눈으로 들어와 빛나기에는 충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