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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슬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끊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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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청탁에 연연해 하지 않고 끊임없이 쓰고 또 썼던, 그 시절이 아니면 발산할 수 없는 파워가 그때의 내게 있었습니다. 청탁도 받지 않는 일에 죽어라고 매달리는 20대만큼 숭고한 시기는 없습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유명작가라도 '저 사람은 신인인가?'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20대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 사람의 20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 무시당하는 20대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만이 이윽고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는 대학 4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밤 그렇게 원고와 씨름을 했습니다. ... 나는 밤을 새우고 또 새워 아무도 봐주지 않는 원고를 쓴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인간은 누구나 아름답게 됩니다.


사랑이란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입니다.


세상에 눈을 뜨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누구나 스승입니다.


인간은 하루에 얼마만큼의 말을 해야 한다는, 일정량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부족하면 혼잣말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혼잣말이 그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것은 내면에 있는 자신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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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가이며 정신의학자인 프랭클 박사는 크고 작은 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자기의 환자들에게 가끔, "어째서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묻는다. ... 프랭클 박사는 이러한 대답에서 심리요법에 관한 지침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이 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의미와 책임의 확고한 유형으로 짜 만드는 것이 프랭클 박사가 스스로 창안한 현대의 '실존적 분석'과 '로고데라피'의 목적이요 추구하는 바다. ... 프랭클은 즐겨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태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서문, 고든 W. 앨포트


만약 지금 그 누가 있어서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에 대한 평범한 정의의 진실성을 우리에게 물어 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적응했는가는 묻지 말아 달라."


절망이 자살을 보류시킨다. 


레싱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이 세상에는 이성을 반드시 잃게 하는 일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일들도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 비정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정상적인 행위이다. 심지어 우리 정신과 의사들도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의 반응을 기대한다. 


죄수는 참담한 광경에도 이제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다. 이제 그의 감정은 무디어졌고, 그래서 냉담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나는 그를 깨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몸을 흔들어 깨우려고 손을 뻗쳤으나 내가 하려던 짓에 오히려 내가 놀라 갑자기 손을 거두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절실하게 의식했다. 그 사실은 아무리 무서운 꿈이라도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수용소의 현실보다 더 고약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들자 나는 뻗쳤던 손을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로고데라피는 보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면 환자가 장래에 실천(혹은 충족)되어야 할 임무와 의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람이 이미 성취한 것과 앞으로 달성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혹은 현재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과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의 사이에서 차이에서 오는 긴장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긴장은 인간이 타고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 안정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과잉된 의욕, 또는 내가 부르고자 하는 '과다한 의욕'은 특히 성적 신경증에서 관찰될 수 있다. 남자가 자기의 성적 능력을 과시하려고 하면 할수록, 또 여자가 오르가슴을 체험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들의 성공률은 반대로 적어지게 마련이다. 쾌락은 그저 부수적인 결과나 부산물이어야 하며, 또 반드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쾌락 그 자체에 목적을 두게 되면 그 정도에 따라 망쳐지게 되고 결단나게 될 것이다.


그는 땀을 많이 흘리는 데 대한 공포때문에 나와 상담하러 온 것이었다. 그가 발한증이 터지리라고 예상하기만 하면 어김없이 발한작용을 촉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순환형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나는 다음과 같이 환자에게 충고했다. 땀이 다시 나려고 할 경우에 그가 얼마나 흘릴 수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여유있게 보여주기 위해 작정하라고. 한 주일이 지난 후 그는 보고하러 다시 나를 찾아왔다. ... "지난 번 나는 한 쿼터밖에 땀을 흘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적어도 열 쿼터는 흘려야지." 그 결과 그는 이미 땀 공포증으로 4년이나 고통을 겪었는데 지금은 단 한번의 치료로 일주일도 안되어 영원히 그 공포에서 벗어났다. 


역설적인 의도는 불면증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데 대한 공포는 잠을 자야겠다는 과잉된 의도와는 반대로 환자가 잠을 잘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잠을 자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나는 종종 환자에게 충고한다. 다시 말하면 잠을 자야겠다는 과잉 의도는 잠을 이룰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 불안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잠들지 않으려는 역설적인 의도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과 희망, 그리고 사랑은 '의지(will)'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지휘로서 성립될 수 없다. 나는 믿으려고 '의지'할 수 없고, 희망하려고 '의지'할 수 없으며, 사랑하려고 '의지'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절대로 의지하려고 '의지'할 수 없는 것이다.


라 로슈푸코는 이별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언급한 적이 있다. 그 말을 의역한다면, 큰 불꽃이 강풍에 더욱 거세어지는 반면 조그만 불꽃은 그로 인해 꺼져버리는 것처럼 강한 신앙은 곤경과 재난에 의해 더욱 굳건해지는 반면 연약한 믿음은 그로 인해 약화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빈이란 땅에서 부각된 심리요법 학파에 각기 한 가지씩의 미덕을 할당해 주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용기라는 미덕은 아들러 학파에게 적합하다. ... 또 하나의 미덕은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 즉 그 객관성에 맞는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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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아

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일생을 살자.

인간의 집이 있었던 산 위에 올라

새벽별을 바라보며

삶이라는 직업에 대하며 생각하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놓치고

새벽 거리의 가랑잎으로 흩어질지라도 

어머니 무덤가에 사라졌다 빛나는

새벽별을 바라보며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노래하며 살아가자.

오늘밤 사람들이 숨어 떨던 어둠속에는

고향으로 가는 별이 스치운다.

별 속에는 가없이 꿈이 흐른다.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아

꿈을 받으라.

고향으로 흐르는 별을 찾아서

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일생을 살자.



새벽 눈길

...

그대 눈 속에 한 인간의 일생을 머물게 하라.

...



...

사랑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슬픔을 만든 산에 가보아라.

서로 사랑한다는 말만 쌓이어

흰 산새 등 위에 슬픔은 엎드린다.

...



첫눈

...

사랑한 죄는 무죄가 아니더냐

기다린 죄도 무죄가 아니더냐



... 서정주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 한창 참여시의 선봉으로 젊은 시인들을 열광시켰던 김수영시대에, 서정주의 시를 충분히 헤아리지도 못하고 그의 시가 무엇을 노래하는지조차 모른 채 마구잡이로 그를 시의 이단자로 몰아붙인 단순성에 기인한 어리석음이 아니고 또 무엇이었겠는가. ... 서정주를 올바르게 꿰뚫어보고 속속들이 자신의 시의 비밀을 털어놓는 호승이가 마침내 어느 술자리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시의 운율을 배운 것은 서정주한테서였다"라고.  - 박해석,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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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알던 세계상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두 가지 물리학 이론이 등장했다. 바로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이다. 이 이론들이 혁명적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당시 지배적이던 물리학 법칙들을 깨뜨렸다는 점, 또 하나는 자연을 서술하는 이 이론들의 방식이 인간의 상식과 일상 경험에 완전히 모순된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이 제법 많은 물리학자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서 탄생되었던 반면, 상대성 이론에는 단 한 사람의 창조자가 있었으니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중요한 의미를 깨달았던 최초의 인물은 막스 플랑크였다. "그 대담성을 따져 볼 때 사변적 자연 탐구뿐만 아니라, 철학적 인식론 분야에서 지금껏 인간이 달성한 모든 업적"을 확실하게 뛰어넘은 것이라고 판단한 플랑크는 상대성 이론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부를 정도였다. 


베른에 도착한 뒤 아인슈타인은 곧바로 '올림피아 아카데미'라는 일종의 토론 클럽을 만들어, 매일 저녁 당시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과 대학생이었던 모리스 소로빈과 베른에서 수학을 전공했던 콘라트 하비히트와 모임을 가졌다. 


아인슈타인의 삶을 살펴보면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에 8시간, 일주일에 6일을 심사대에 서서 특허 출원을 감정하던 3급 기술 심사관이 나머지 시간을 활용해 물리학의 심오한 문제들을 숙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 놀라운 해는 1905년이었다. 무려 6편의 논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중 한 논문은 훗날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계기가 되었고, 또 다른 하나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다룬 논문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불변의 속도로 운동하는 계를 관성계라고 부르며, 이 관성계에서 모든 물리 법칙은 동일한 형식을 가진다.


3급 기술 심사관 아인슈타인이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 역학에 대하여>라는 30쪽자리 논문을 <물리학 연감>에 제출하기까지는 5시간이 더 걸렸다. 몇 년 뒤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사상과 완전히 작별을 했다. 새로운 이론은 본질적으로 2개의 전제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첫 번째 전제는 역학과 전기 역학의 법칙들은 등속 운동계에서 그대로 통용된다는 것이고, 빛의 속도는 이 빛의 관측자가 처한 운동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늘 일정하다는 것이 두 번째 전제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등속으로 운동하는 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이었는데, 가속되는 계에도 상대성 원칙이 확대 적용될 수 있는지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아인슈타인은 공간의 개념 또한 뒤바꿔 놓게 되었다. 뉴턴에 의하면 공간은 절대적이고 외적인 대상과 관련을 맺지 않은 채 언제나 동질적이고 '고정적인' 데 비해, 아인슈타인 이론에 따르면 공간은 역동적 '형상'이었다. ... 1919년 개기 일식을 통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 중 하나가('중력장에 의한 빛의 휘어짐') 증명됨으로써 한때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관리였던 아인슈타인은 드디어 세계사의 위대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태양 둘레를 돌고 있다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괴상망측하다고 여겼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 하지만 갈릴레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지구가 아무리 엄청난 속도로 운동한다 하더라도, 일정한 등속 운동이므로 우리는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구에 있는 우리가 우주선에 탄 비행사를 관측하면 그 행동 하나하나가 느린 화면처럼 보일 것이다. 반면 우주 비행사가 고성능 망원경으로 지구를 관찰한다면 반대로 우리의 움직임이 그에게 느리게 비칠 것이다. 상대성 이론은 정지계와 운동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비추어 본다면 아주 당연한 일이다. 닐은 빠르게 움직이는 좌표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머물던 기내의 시계는 지구에 있던 쌍둥이 동생의 시계보다 시간이 느리게 갔던 것이다. 광속의 98퍼센트일 때 시간 지연 계수는 5를 나타낸다. 즉 우주선에서는 지구보다 시간이 다섯 배나 더 느리게 갔다는 얘기다. 


시간 지연과 길이 수축은 광속도의 불변이라는 가정에서 도출된 현상이다. 광속도의 불변성은 갈릴레이가 말한 속도의 덧셈 법칙이 틀렸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오랜 이론이야말로 고전 물리학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였는데, 전기 역학의 법칙은 상대적으로 정지한 계에서 관찰할 때와 그에 대해 운동하는 계에서 관찰할 때 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 아인슈타인의 변환 공식을 통해 맥스웰의 법칙을 계에서 계로 옮길 경우에도 그 법칙을 불변한다. 이로써 역학과 전기 역학이 사이좋게 공존할 길이 생긴 셈이다. 


카우프만의 실험은 전하가 자기장 속으로 발사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전자가 이탈하는 정도가 작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숱한 과학자들이 이 결과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는데, 결국에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자 질량이 늘어난다는 이론이 지지를 받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곧 물체의 '에너지 함량'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석 달 뒤 그는 <물리학 연감>에 3쪽밖에 되지 않는 논문 하나를 제출했다. 제목은 '물체의 관성은 그 물체의 에너지 함량에 따라 달라지는가?'였다. 그 논문의 결론은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공식이었다. 바로 E=mc^2 였다. 


원자 폭탄의 무시무시한 폭발력은 물질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에 기초하고 있다. 폭발과 함께 원자핵이 분열되고 이때 핵물질의 1000분의 1이 에너지로 바뀐다. 그 물질에 얼마나 큰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는지 1945년 투하된 원자 폭탄이 생생히 증언해 주고 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각각 1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원자 폭탄에서는 약 1그램의 우라늄 및 플루토늄이 폭발 에너지로 변환되었다. 


한 물리학자가 완전히 폐쇄된 상자 속에 들어가 손에 돌 하나를 들고 있다고 가정하자. 돌은 손에서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질 텐데,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그 상자가 지표에 있다면 돌은 중력 때문에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자가 우주선에 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는 돌의 낙하 방향과 반대로 일정한 가속이 이루어진다. 밖을 내다보지 않는 한 물리학자는 그 두 경우를 구분할 도리가 없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 하나만을 갖고 세 가지 놀라운 현상을 유도해 낸 셈이었다. 즉 중력이 셀수록 시간은 느리게 가고, 중력의 영향 아래 빛은 더 붉어지고 직선 경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휘어진 광선이라는 개념은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광선이 특정한 너비를 갖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휘어진 광선의 안쪽은 바깥쪽보다 더 짧은 거리를 지나게 된다. ... 결국 빛이 관측자에게 동시에 도착하는 경우 빛은 바깥 궤도보다 안쪽 궤도에서 더 느리게 퍼져 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가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 그에 따르면 빛의 속도는 어느 계나 같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순은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시킨 4년 뒤에야 해결될 수 있었다. 


공식 E=mc^2이 우리 삶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면, 상대성 이론의 나머지 효과들은 너무 미미하여 일상에서 느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의 중요성이 커짐에 다라 상대성 이론의 중요성도 점점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위성 항법 장치인 미국의 GPS 그리고 이와 유사한 러시아의 글로나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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