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알던 세계상에 혁명을 불러일으킨 두 가지 물리학 이론이 등장했다. 바로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이다. 이 이론들이 혁명적인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당시 지배적이던 물리학 법칙들을 깨뜨렸다는 점, 또 하나는 자연을 서술하는 이 이론들의 방식이 인간의 상식과 일상 경험에 완전히 모순된다는 점이다. 


양자역학이 제법 많은 물리학자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서 탄생되었던 반면, 상대성 이론에는 단 한 사람의 창조자가 있었으니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중요한 의미를 깨달았던 최초의 인물은 막스 플랑크였다. "그 대담성을 따져 볼 때 사변적 자연 탐구뿐만 아니라, 철학적 인식론 분야에서 지금껏 인간이 달성한 모든 업적"을 확실하게 뛰어넘은 것이라고 판단한 플랑크는 상대성 이론을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부를 정도였다. 


베른에 도착한 뒤 아인슈타인은 곧바로 '올림피아 아카데미'라는 일종의 토론 클럽을 만들어, 매일 저녁 당시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과 대학생이었던 모리스 소로빈과 베른에서 수학을 전공했던 콘라트 하비히트와 모임을 가졌다. 


아인슈타인의 삶을 살펴보면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에 8시간, 일주일에 6일을 심사대에 서서 특허 출원을 감정하던 3급 기술 심사관이 나머지 시간을 활용해 물리학의 심오한 문제들을 숙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 놀라운 해는 1905년이었다. 무려 6편의 논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중 한 논문은 훗날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계기가 되었고, 또 다른 하나는 특수 상대성 이론을 다룬 논문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불변의 속도로 운동하는 계를 관성계라고 부르며, 이 관성계에서 모든 물리 법칙은 동일한 형식을 가진다.


3급 기술 심사관 아인슈타인이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 역학에 대하여>라는 30쪽자리 논문을 <물리학 연감>에 제출하기까지는 5시간이 더 걸렸다. 몇 년 뒤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 논문에서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사상과 완전히 작별을 했다. 새로운 이론은 본질적으로 2개의 전제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첫 번째 전제는 역학과 전기 역학의 법칙들은 등속 운동계에서 그대로 통용된다는 것이고, 빛의 속도는 이 빛의 관측자가 처한 운동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늘 일정하다는 것이 두 번째 전제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등속으로 운동하는 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이었는데, 가속되는 계에도 상대성 원칙이 확대 적용될 수 있는지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아인슈타인은 공간의 개념 또한 뒤바꿔 놓게 되었다. 뉴턴에 의하면 공간은 절대적이고 외적인 대상과 관련을 맺지 않은 채 언제나 동질적이고 '고정적인' 데 비해, 아인슈타인 이론에 따르면 공간은 역동적 '형상'이었다. ... 1919년 개기 일식을 통해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 중 하나가('중력장에 의한 빛의 휘어짐') 증명됨으로써 한때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관리였던 아인슈타인은 드디어 세계사의 위대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태양 둘레를 돌고 있다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괴상망측하다고 여겼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 속도를 느끼지 못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 하지만 갈릴레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지구가 아무리 엄청난 속도로 운동한다 하더라도, 일정한 등속 운동이므로 우리는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구에 있는 우리가 우주선에 탄 비행사를 관측하면 그 행동 하나하나가 느린 화면처럼 보일 것이다. 반면 우주 비행사가 고성능 망원경으로 지구를 관찰한다면 반대로 우리의 움직임이 그에게 느리게 비칠 것이다. 상대성 이론은 정지계와 운동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 비추어 본다면 아주 당연한 일이다. 닐은 빠르게 움직이는 좌표계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머물던 기내의 시계는 지구에 있던 쌍둥이 동생의 시계보다 시간이 느리게 갔던 것이다. 광속의 98퍼센트일 때 시간 지연 계수는 5를 나타낸다. 즉 우주선에서는 지구보다 시간이 다섯 배나 더 느리게 갔다는 얘기다. 


시간 지연과 길이 수축은 광속도의 불변이라는 가정에서 도출된 현상이다. 광속도의 불변성은 갈릴레이가 말한 속도의 덧셈 법칙이 틀렸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오랜 이론이야말로 고전 물리학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였는데, 전기 역학의 법칙은 상대적으로 정지한 계에서 관찰할 때와 그에 대해 운동하는 계에서 관찰할 때 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다. ... 아인슈타인의 변환 공식을 통해 맥스웰의 법칙을 계에서 계로 옮길 경우에도 그 법칙을 불변한다. 이로써 역학과 전기 역학이 사이좋게 공존할 길이 생긴 셈이다. 


카우프만의 실험은 전하가 자기장 속으로 발사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전자가 이탈하는 정도가 작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숱한 과학자들이 이 결과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는데, 결국에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전자 질량이 늘어난다는 이론이 지지를 받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곧 물체의 '에너지 함량'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석 달 뒤 그는 <물리학 연감>에 3쪽밖에 되지 않는 논문 하나를 제출했다. 제목은 '물체의 관성은 그 물체의 에너지 함량에 따라 달라지는가?'였다. 그 논문의 결론은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공식이었다. 바로 E=mc^2 였다. 


원자 폭탄의 무시무시한 폭발력은 물질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에 기초하고 있다. 폭발과 함께 원자핵이 분열되고 이때 핵물질의 1000분의 1이 에너지로 바뀐다. 그 물질에 얼마나 큰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는지 1945년 투하된 원자 폭탄이 생생히 증언해 주고 있다.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각각 1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원자 폭탄에서는 약 1그램의 우라늄 및 플루토늄이 폭발 에너지로 변환되었다. 


한 물리학자가 완전히 폐쇄된 상자 속에 들어가 손에 돌 하나를 들고 있다고 가정하자. 돌은 손에서 놓으면 바닥으로 떨어질 텐데,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그 상자가 지표에 있다면 돌은 중력 때문에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자가 우주선에 있을 수도 있는데, 이때는 돌의 낙하 방향과 반대로 일정한 가속이 이루어진다. 밖을 내다보지 않는 한 물리학자는 그 두 경우를 구분할 도리가 없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등가 원리 하나만을 갖고 세 가지 놀라운 현상을 유도해 낸 셈이었다. 즉 중력이 셀수록 시간은 느리게 가고, 중력의 영향 아래 빛은 더 붉어지고 직선 경로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휘어진 광선이라는 개념은 한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광선이 특정한 너비를 갖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휘어진 광선의 안쪽은 바깥쪽보다 더 짧은 거리를 지나게 된다. ... 결국 빛이 관측자에게 동시에 도착하는 경우 빛은 바깥 궤도보다 안쪽 궤도에서 더 느리게 퍼져 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가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 그에 따르면 빛의 속도는 어느 계나 같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순은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완성시킨 4년 뒤에야 해결될 수 있었다. 


공식 E=mc^2이 우리 삶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켰다면, 상대성 이론의 나머지 효과들은 너무 미미하여 일상에서 느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구를 도는 인공위성의 중요성이 커짐에 다라 상대성 이론의 중요성도 점점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위성 항법 장치인 미국의 GPS 그리고 이와 유사한 러시아의 글로나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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