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라인 꼬마비 만화 전집 2
꼬마비 지음 / 글의온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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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까발려 뒤집어진 세상은 사람 사는 세상 아니라디? - 214p


 어느 날 갑자기 머리 위로 빨간 선이 생겨난다. 자신과 성관계한 사람하고 이어주는 'S라인'은 건물도 통과하고 숨길 수도 없으며 상대가 죽어야 비로소 사라진다. 이로 인해 혼전순결을 미덕이라 생각했던 부부들의 믿음은 깨지고 종교계는 한바탕, 아니 몇 바탕 뒤집어지고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계는 비상이 걸리는 반면 출판계와 인터넷은 호황을 이룬다.

 내가 이 작품을 네이버 웹툰에서 접했을 당시엔 아직 미성년자였다. 지금 이렇게 삼십대가 넘고 다시 읽으니 작중 세계관의 혼란이 더더욱 와 닿았다. 가령 자기 머리 위에 생긴 S라인의 개수를 의식하다 못해 아예 풀페이스 헬멧을 착용하고 외출하며 익명성에 기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럴싸했다.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나 역시 내 성관계 횟수가 버젓이 드러나는 S라인을 껄끄러워할 것이므로 처음 연재 당시에 읽을 때처럼 이들의 모습이 유난을 떠는 것처럼 읽히진 않았다.


 작가의 엄청난 염세주의를 엿볼 수 있는 작풍과 그와 대비되는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압권인 작품이다. 그림체나 연출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고 특히 색깔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그를 활용한 연출은 인상적이다 못해 세련되기까지 했다. 단순한 그림체와 4컷 만화 형식, 거기다 흑백만화 특유의 단순한 색감을 유지하면서도 군데군데 중요한 부분은 형식을 파괴한 그림과 연출을 선보이는데 이건 직접 봐야 안다. 어쩌면 이런 부분 때문에 작가의 염세주의가 불쾌한 동시에 부드럽게 읽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과거 성관계 상대를 죽이려는 작중 인물들의 행태나 자신이 어렸을 적 성폭행을 당한 사실이 드러나버린 에피소드도, S라인이 비단 이성끼리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정도 눈길을 끌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S라인이 너무 많아도 아예 없어도 조롱하는 분위기였다. S라인이 아예 없으면 비웃고 너무 많으면 걸레라 수군거리고... 소름 끼칠 만큼 현실적인 묘사라 픽션이라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S라인이 생김으로써 빛을 본 사람이 있는 반면 오히려 큰 피해를 보고 종국엔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을 통해 S라인은 역시 재해이고, 인간에게 사생활이란 지켜져야 함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적어도 인간에겐 '그깟 사생활'은 없는 것이다.


 작중엔 S라인이 가시화되기 이전부터 홀로 S라인을 볼 수 있던 능력자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은 선택 받은 능력자이며 그렇기에 자신에겐 남과는 다른 통찰력이 있다고 자부하던데 독자들은 그가 통찰력의 소유자이긴커녕 편협한 시선의 소유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S라인은 단지 성관계 여부와 횟수만을 보여줄 뿐 그것이 자의인지 타의에 의한 결과인지, 그 사람의 배경이나 인격을 온전히 나타내진 못한다. 작품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S라인따윈 하등 중요치 않다고.

 애당초 S라인을 볼 수 있다는 것으로 통찰력 운운하는 것부터가 오히려 통찰력이 떨어진다는 반증이기도 한데 문제는 우리라고 그 능력자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나 보이는 것이 워낙에 강렬하면 시선이 자연스레 닫히게 되니까. 나는 어떤 사람이려나... 실제로 없는 선인데도 자기 반성이란 걸 해보게 되는 걸 봐선 설정 하나는 인정해줘야 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아마 내년 초에 방영 예정이라는데 왜 이렇게 걱정만 될까? 개인적으로 스토리는 걱정만 되는데 작품의 비주얼은 궁금하다. S라인으로 뒤덮힌 도심의 풍경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현됐을지 보고 싶다. 물론 스토리도 좋으면 더할 나위 없고.

 하지만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성상 작가의 염세주의는 상당 부분 덜어질 테지. 그런 점에서 영화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 뭐, 지금 예측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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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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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스포일러 한가득


 '악마가 소설을 쓴다면 분명 이러할 것이다!'

 출판사의 이 문구를 보고서 너무 유난을 떠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추리소설은 살인사건으로 인한 비극을 다루는 작품들이 대부분인 만큼 추리소설가들에겐 비극을 펼쳐내는 악마적 심성이 크든 작든 내제돼 있다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거두절미하고 정말 악마의 경지에 달한 소설이었다.

 기시 유스케의 <악의 교전>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시라이 도모유키가 그 작품에다 평행세계라는 설정을 넣고 본인만의 잔혹한 센스로 버무려 악마적 심성으로나 오락 소설적인 측면으로나 대단한 경지를 이룩했다. 이렇게 잔인하고 정이 가지 않는 주인공이 무려 네다섯 갈래로 분열함에도 질리지 않고 끝까지 다 읽은 건 순수하게 트릭의 전말과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해서였다. 이미 주인공이 저지른 짓이 너무도 극악무도해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인과응보가 이뤄질 것 같지도 않고, 어떤 교훈도 반면교사도 얻을 수 없는 근래 보기 드문 순도 100%의 오락 중심의 이야기였는데... 도덕성을 비롯해 오만가지 요소를 포기한 성과는 거둔 작품이라고 본다.


 평행세계, 요새 유행하는 멀티버스 소재가 어찌 보면 정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일 만큼 한계도 없고 성의도 없는 소재로 비춰지기 십상이지만 특수 설정을 접목한 추리소설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답게 맹점과 논리와 복선을 칼같이 지켜가며 다뤄서 안정감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결말에서 도망자가 처한 딜레마도 마찬가지였다. 전술했듯 주인공이 저지른 짓이 너무도 극악무도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인과응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원한 분열을 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는 일반인인 내가 가늠하기엔 지독하게 끔찍한 형벌이라 인과응보의 마지노선은 지키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주인공 하는 짓이 너무 잔혹할 뿐더러 어느 순간부턴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느낌까지 받아 독서하는 내내 해소되지 못한 분노가 깔끔하게 가라앉혀진 것은 아니다. 가족을 위해서, 정확히는 평온한 일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타인을 죽이고 희생양 삼는 것은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종국엔 불안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칼끝을 가족에게 돌리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가족을 자기 손으로 죽일 때도 망설이거나 뉘우치는 기색도 없고...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종자라 넘기려 해도 한 번 정도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주인공의 직장이 정신병동임을 알았던 순간에 범상찮은 작품이리라 각오는 했지만 내 각오를 적어도 백 배 이상 상회해버리는 광기와 잔혹함에 놀랐다. 또 작년에 작가가 <명탐정의 제물>에 이어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로 2년 연속 선정된 것도 납득이 가는 완성도여서 직전에 <명탐정의 창자>를 읽고 느낀 실망감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

 이 작품 속 미스터리는 과연 이걸 순수하게 추리해서 풀어낼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추리가 그에 상응하게 정교해 추리소설의 정체성을 지킨 것도 좋았다. 자극에만 함몰되지 않고 짜임새에 소홀하지 않은 걸 보고 다시금 작가의 수준을 확인했으며 이쯤 되니 다음 작품이 기대되면서도 걱정됐다. <엘리펀트 헤드>보다 충격적일 수 있을까?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작가의 뇌 용량이 정말로 코끼리에 버금가길 바랄 수밖에.

피부에 새겨진 것에는 반드시 큰 의미가 있어요. - 1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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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창자 명탐정 시리즈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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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스포일러 없음


 작년에 읽은 소설 중 단연 최고였던 <명탐정의 제물>의 30년 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기에 제목이 그리 끌리지 않음에도 읽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작가 특유의 엽기적이고 피가 낭자하면서 창의적인 소재와 전개가 압권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작가의 다른 작품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와 마찬가지로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 작품과 더불어 <명탐정의 창자> 속 잔인한 묘사 역시 이유 있는 잔인함이 아닌 그저 잔인함을 위한 잔인함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작품들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피가 낭자했다. 소설이니까 감당하는 것이지 영화였다면 중도 포기하고도 남았을 작품들이다. 그렇지만 작가의 작품 중 단연 최고라 생각하는 <명탐정의 제물>과 데뷔작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의 경우 잔인한 묘사는 모두 필요한 묘사였다. 불쾌하지만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고, 범인의 가학성을 강조해 독자로 하여금 분개함을 유발하는 시도가 잘 먹혔다. 잔인하단 이유로 추리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 잔인하지 않은 추리소설도 많지만 그 얘기를 하다 보면 삼천포로 빠질 테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겠다. - 그런 의도의 잔인한 묘사라면 단순히 취향과 맞지 않다고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고 본다.


 반면 <명탐정의 창자>는 다소 거북했고 불가사의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설정도 흥미로웠고 초반에 예상치 못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도 좋았지만 작품의 중후반부를 이루는 디테일과 마지막 연출이 너무 싱거웠다. 잔인한 장면에 끝없이 노출돼 스케일이 커지든 뭘 하든 그저 식상하게 읽힐 뿐이었고 결말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게 최선이었나 싶다.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에 얽힌 언어유희도 마찬가지다. 유머라기엔 재미없고 작품 전체를 꿰뚫는다기엔 기발하지 않다.

 내가 기대했던 <명탐정의 제물>과의 연관성도 미흡해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이 먼저 나왔고 <명탐정의 제물>이 프리퀄 느낌의 후속작이기에 연관성이 두드러지긴 힘들었을 것이다. 작가도 애당초 시리즈물을 기획한 게 아닌 모양이고. 그래도 작가는 '명탐정' 시리즈 3편을 출간할 예정이라는데... 솔직히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다.


 이 작품을 읽고 탄력을 받은 김에 작가의 최신작인 <엘리펀트 헤드>도 연달아 읽었다. 바로 다음 포스팅으로 그 작품에 대해 얘기할 텐데, 일단 이렇게만 얘기하겠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명탐정의 제물>에 이어 작가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었으며 '명탐정'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명탐정의 창자>의 아쉬운 완성도 때문에 걱정이지만 그래도 시라이 도모유키는 아직은 믿을 만한 작가다.



P.S 우라노 큐, 아쉽다. <명탐정의 제물>에서의 약속이 기대됐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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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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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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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약 10년 전에 읽은 <아내와 결혼했다>를 다시 포스팅으로 남기려니 감회가 새롭다. 이전보다 나는 축구에 대한 상식이 늘었고 주인공 덕훈과 비슷한 나이대가 됐으며 관계에 치인 경험이 없잖다 보니 덕훈의 아내 인아에 대한 반감이 곱절은 늘었다. 전에 읽었을 땐 그런 사람도 있지 라며 전형적으로 소설 속 캐릭터를 대하듯 감상을 남겼다면 이번엔 PTSD를 유발하는 그녀의 이기적인 모습에 제대로 질렸다. 덕훈도 전에 없이 불쌍했다. 일처다부제를 기어코 실현하려는 인아의 논리에 심적으론 납득하지 못함에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조금씩 순응하게 되는 모습은 강한 연민을 자아냈다. 이 소설이 이렇게 슬픈 작품임을 잊고 있었다니.

 그렇기에 덕훈이 언급하는 여러 축구 썰도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어쩔 땐 끼어맞추는 것도 있었는데 대체로 유머러스하고 유익했으며 인아를 향한 애증이 더없이 잘 드러나 소설 본문보다 훨씬 탄력적으로 읽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설의 집필 시기가 독일 월드컵 전이라 아직 메시와 호날두가 신예 선수 정도로 언급되는 등 어쩔 수 없이 최신화가 덜 됐다는 것 정도다. 요즘 버전으로 다시 쓰여진다면 엘 클라시코도 유로컵에 대한 썰도 보다 풍성하게 나왔을 텐데 하는 소소한 아쉬움이 남았다.


 지단이라는 멋진 선수에 반해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 된 덕훈과 FC바르셀로나라는 팀의 역사와 정신에 끌렸다는 인아의 첫 만남은 천생연분인 듯하면서도 두 캐릭터의 가치관이 정반대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축구를 축구이기에 좋아하는 덕훈과 축구의 외적인 요소까지 좋아하는 인아, 어느 쪽도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으나 작품의 화자가 덕훈인 만큼 아무래도 덕훈의 사고방식에 좀 더 끌릴 수밖에 없었다. 인아가 비단 축구뿐 아니라 결혼 제도를 비롯해 온갖 가치관에 자신만의 철학을 그럴싸하게 늘어놓지만 그 논리와 철학 속엔 남편 덕훈에 대한 배려가 없지 않았는가. 그에 비해 조금 답답하더라도 자신의 본능과 감정을 앞세우는 덕훈의 사고방식이 훨씬 근원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새삼 논리란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인아와 덕훈의 설전을 통해 느꼈다.

 나는 인아의 일처다부제 논리에 대해 반박할 생각은 없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고 자기 뜻대로 살아감에 있어 상처 받는 이가 없다면 얼마든지 남 눈치 볼 것 없이 그렇게 살아야 마땅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상처 받는 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인아에겐 이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칼자루를 남편에게 쥐여 줌으로써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니 참으로 역겨웠다. 물론 알면서도 당하는 덕훈도 문제다. 결국 이혼 서류를 무효로 만들고 재경이라는 두 번째 남편의 존재를 까발리지 않음으로써 인아의 버릇만 나빠지게 하는 데 한몫했는데... 말이 쉽지, 이미 인아에게 사로잡힐 대로 사로잡힌 덕훈에게 잘못을 탓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인 것 같다. 잘못을 탓해야 한다면 남편에게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인아뿐이다.


 일처다부제에 대한 아주 흥미롭고 유쾌하게 질문을 제기하는 작품이지만, 인아의 자기중심적이고 영악한 면모 때문에 오히려 단호하게 질문을 제껴버리게 되는 맹점이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충분한 대화와 논의와 배려를 해봤는데도,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이혼을 하든가 했어야지 대뜸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하고 청첩장을 덕훈에게 보내고... 이쯤 되면 사람 놀리는 것인지, 이럴 거면 두 집 살림을 차리는 의미가 있나 싶을 만큼 덕훈을 홀대하니까 말이다. 어느 정도는 첫 번째 남편에 걸맞는 대우를 하는 듯하지만 참 이래저래 골때리는 여자다.

 만약 제대로 질문을 제기하려고 했다면 소설이 덕훈의 1인칭 시점이 아닌 인아나 재경의 시점도 부분적으로 넣었어야 했다고 본다. 이래서야 덕훈에게 유리한 관점이 형성돼 천편일률적인 감상을 낳는 역효과가 발생하진 않을까? 오늘날에 읽어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재여서 시점의 다각화처럼 균형 있는 연출이 부분적으로 더해졌더라면 보다 흥미로운 작품으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싶다. 주인공의 처지에 과몰입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이미 훌륭한 소설이지만 다시 읽으니 이런 구조적 아쉬움에 눈길이 갔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결혼했다> 이후로 작품 활동이 뜸했던 박찬욱 작가의 신작이 아주 최근에 출간됐다. 제목이 <원할 때는 가질 수 없고 가지고 나면 원하지 않아>인데... 제법 의미심장한 제목이라 기대된다. 내심 고대했던 작가의 신작인 지라 늦어도 1년 안에 구입해 읽을 예정이다. 과연 <아내가 결혼했다>를 뛰어넘을 만한 작품일까? 그러길 바란다.

축구는 잠시나마 새로운 갈등 구조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기존의 갈등을 잊게 만들 따름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색을 거세해도 축구는 여전히 재미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진짜 축구다. - 38p

잡힌 물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상대방이 잡힌 물고기임을 믿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신뢰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식어 빠진 사랑을 에둘러 표현할 때 신뢰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조금 이상한 얘기지만 아내가 믿을 수 없는 여자일수록 나는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 110~111p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줄어든다 해서 갑자기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 342p

축구공이란 바로 행복이다.
자본가들이 선수들을 축구 노동자로 만들어 축구라는 상품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더라도, 정치가들이 축구 열기를 이용해서 표를 훔쳐 가고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축구공 속에 깃든 행복만은 그들이 독점할 수도, 팔아먹을 수도, 훔쳐 갈 수도 없다. - 3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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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 - 며느리의, 며느리에 의한, 며느리를 위한
수신지 지음 / 귤프레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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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아마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도서 중 접근성이나 세련됨이란 측면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아기자기한 그림체와 대비되는 서늘하고 섬뜩한 묘사가 은근히 압박감이 넘쳐서, 며느리의 부당한 처지를 깨닫는 사린의 심정을 독자들도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성 독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남편이나 자식들, 시어머니들도 느끼는 바가 상당하리라 본다. 시아버지들은 글쎄.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만약 우리나라에서 펼쳐졌고 그때 꼭 하나의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가정을 해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제사 문화를 희생양으로 내놓을 것이다. 성함이나 나와의 관계도 모르겠는 조상을 위해, 없을 것이 확실한 사후 세계를 향해 모처럼 쉬는 명절에 음식을 해야 하는 것도 부당하거니와 그걸 여자들을 비롯한 아랫사람이 도맡아야 하는 것도 이상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의도 자체는 괜찮은데 그 행사를 이뤄나가는 기성 세대의 방식이 지나치게 무지성적이고 철저하게 남성 위주로 설계됐다는 것이 문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인지 되짚기도 까마득할 만큼 뿌리 깊은 문제인 터라 없던 두통도 생길 지경이다.


 물론 작중에선 명절만 주요한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린이 해외로 장기간 출장을 간다니까 남편 두고 출장 가는 새색시가 어딨냐며 자기 아들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취급하는 시어머니나 그런 시어머니한테 '회사 생활 한 번도 못해본 티 내지 말라' 며 꼽주는 시아버지나 결국엔 아내가 출장을 간 동안에만 잠시 친가에서 출퇴근하며 밥을 먹겠다는 철없는 남편 등;;;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암을 유발한다.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무색할 정도로 현실적인 작풍이 실로 압권이었다.

 주인공 사린이도 시가 사람들 못지않게 답답했다. 허나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며느리는 서열상 최하층에 속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사린이 마치 입에 재갈이 물린 것처럼 구는 모습이 씁쓸하지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사린도 나중에 혼자 있을 때나 남편 구영한테 자신의 답답한 처지에 대해 한탄을 쏟는데, 나는 치졸한 변명이나 해대는 구영과 달리 사린에게 당신의 잘못이 아니란 걸 먼저 강조하며 그녀를 달랬을 것이다. 며느리를 답답하게 만드는 가부장적 분위기가 문제라고 말이다.


 어제 메가박스에 영화를 보러 갔더니 벽 한편에 '관객들한테 답을 던지는 영화는 극장을 나서는 순간 끝나지만 관객들한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극장을 나서는 순간 시작된다'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난 <며느라기>도 독자들한테 질문을 던지는 측면에서 무척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내세운 작품들이 대체로 명확하고 사이다에 치중한 결말을 내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열린 결말로 연출해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줬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며느라기'는 사린의 상사에 의해 새로이 정의된다. 단순히 며느리+아기의 뜻이 아닌 착한 며느리로 지내고 싶어하는 시기를 뜻할 수도 있으며, 1년 안에 그 시기를 벗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그 시기에 못 벗어나는 사람도 있더라는 사린의 직장 상사가 한 말은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위의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면서 관점에 따라선 소름 끼쳤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어떤 며느리가 되고 어떻게 결혼 생활을 영위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렸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말인즉슨 각자도생이라 이건가.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연대해서 대항하기엔 이 사회의 가부장적 분위기는 너무 만연하고 미묘해 쉽지 않단 것을 작가가 통찰한 듯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감탄이 다 나온다.

 가령 자신에게 대리 효도를 부탁하는 듯한 구영의 태도는 문제투성이지만 사람 자체는 마냥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덮어놓고 이혼하잔 얘기를 못 꺼내는 사린처럼 - 작품의 후속작이라 부를 수 있는 <노땡큐>에서 둘은 아직도 이혼하지 않았고 구영은 여전히 답답하다;; - 실제로 현실에선 심리적 장벽이 많고 또 두껍다. 이런 장벽 때문에 우리 사회의 며느리에 대한 부당한 인식이 구조적으로 개선될 여지는 무척 적어 보인다. 누구나 사린의 동서 혜린처럼 똑부러지면 좋겠지만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정말 생각이 많아지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추석을 보내다가 생각이 난 김에 오랜만에 펼쳐든 작품인데 다시 읽어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고 5년 전보다 세상이 딱히 바뀐 게 없어 보여 씁쓸하기도 했다. 우리 집도 명절 때마다 난리가 나서... 명절이면 가정이 화목해지긴커녕 화만 발생하는 것만큼 아이러니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 이유를 깨달아야 할 텐데, 그 '누군가'에 속한 몇몇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못 깨달을 수도, 아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할 듯해 그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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