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탓이야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1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7.2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네 탓이야>는 하무라 아키라가 단독으로 활약하는 탐정물이 아닌 두 명의 주인공이 번갈아 등장하는 추리소설 단편집이었다. 하무라 아키라와 고바야시 경위 두 인물이 주역으로 등장하는데 고바야시 경위라는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기억에 없었다. 후속작에 등장한 기억도 전혀 없는데... 아무튼 나름대로 개성이 있는 양반이지만 그래봤자 하무라 아키라의 개성에는 미치지 못해서 이 작품을 끝으로 그만 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얼빵한 척하다가 범인의 급소를 찔러 수갑을 채우는 형사 캐릭터가 일본 추리소설엔 정말 많은 것 같다. 당장 최근에 읽은 <거짓의 봄>에도 이런 형사가 나왔으니까. 

 반면 하무라 아키라는 탐정 캐릭터로 사뭇 독특한 면모를 갖고 있다. 단순히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프리터이자 하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봤으며 그럼에도 탐정 사무소에선 놀라울 정도의 소질을 보이며 1년 이상, 종국에는 거의 반평생을 탐정업에 종사하기에 이른다. <네 탓이야>에서는 하무라 아키라가 아직 탐정이 되기 전에 알바처에서 겪은 일과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전자는 이 시리즈 특유의 서늘함을, 후자는 하무라 아키라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의 대망의 첫 시작을 장식할 정도의 강렬함을 자랑한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범인들의 종류는 크게 두 부류인 듯하다. 누구도 예상 못할 악의를 갖고 완전 범죄를 달성하는 부류와 마찬가지로 악의로 똘똘 뭉쳤으나 실행력이나 생각이 짧아 허술한 부류. 뭐, 짜증을 유발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내가 이 책에 대해 얘기하는 내내 각 단편의 스토리나 트릭보단 캐릭터들에 대해서만 살펴보는 데에는 아무래도 단편들의 완성도가 그리 고르지 못하고 인상적인 단편이 현저히 적음이 기인했을 것이다. 와카타케 나나미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의 지대한 팬이 아닌 이상 추천하기 어려운데, 오늘날의 시리즈 위상이 꽤 높아진 걸 떠올리면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사실상 냉소적인 분위기를 제외하면 다른 탐정물과 차별화할 요소나 손에 꼽게 완성도 있는 단편은 없기에 후속작이나 드라마를 먼저 보는 걸 추천한다. 작가의 대표작인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에 비해서도 단편 추리소설다운 묘미가 떨어지므로 - 끝마무리가 모호해 왜 벌써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 다시 읽는 지금도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 번 읽으면 새로운 감상이 남을까 했더니, 과한 기대였던 것 같다. 시리즈 신작인 <녹슨 도르래>를 읽을 걸 그랬다. 

세상에는 자기가 멍청해서 저지른 짓거리의 책임을 아무 의심 없이 통째로 남에게 전가할 수 있는 행복한 인종이 존재한다. (중략)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이 싫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 성가시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할 때도 있다. - 143p



행운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지금까지 무심했던 것을 사과하기로 했다, 같은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나중에 배분될 예정인 불행을 미리 변명해 두기 위해 인심 쓰는 것이다. - 2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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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봄 가노 라이타 시리즈 1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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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서정적인 제목과 더불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 수상작이라는 소개 문구가 강렬했던 이 소문난 신간은 내게 기대보다 뛰어난 재미를 선사하진 못했다. 자백 전문가 가노의 매력이 덜 드러난 탓도 있을 테고, 그 이전에 범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도서 추리 스타일로만 채워진 단편집의 경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범인을 찾는다는 통상적인 추리소설의 전제를 뒤집고 범인(주인공)이 탐정(형사)에게 어떻게 뒷덜미를 어떻게 잡히는가, 바로 그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 바로 도서 추리물의 백미일 텐데 이 작품에선 그 백미가 덜 부각된 편이다. 다섯 편 연속으로 접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노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덜 부각돼서도 아니라, 그냥 다섯 명의 범인 중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너무 멍청한 나머지 '이걸 못 잡으면 경찰이 아니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범인들의 격이 떨어지니 그들을 잡는 형사가 대단해 보일 리가 없잖은가. 


 한마디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는 명성과는 달리, 반대로 아이러니하게도 대개 그 상을 받은 작품들이 그랬듯 이 작품 역시 추리소설적인 면모보단 문체나 다른 요소에 더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의 경우엔 단연 문체가 빛이 났는데, 특히 범인이나 숨겨진 인물의 어두운 내면을 묘사하는 데엔 남다른 흡입력을 과시해 수록작들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하나같이 모골이 송연해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유약한 인간들이 그 내면을 접하고서 타락하는 전개가 가히 이해가 가고도 남을 만한 문체였다. 

 개인적으로 첫 번째 수록작 '봉인된 빨강'과 마지막 수록작 '살로메의 유언'이 괜찮았고 중간에 세 작품은 그저 그랬다. 표제작이자 수상작이기도 한 '거짓의 봄'은 주인공의 직업(?)이 신선한 것에 비해 그 매력이나 깊이가 덜 살아난 것 같고 '이름 없는 장미'도 소재는 신선했지만 캐릭터들의 내면이 다소 피상적으로 그려진 감이 있고, '낯선 친구'의 경우엔 주인공의 어둡고 찌질한 심리, 일명 열등감이 작품 전체를 실감나게 지배한 것이 공감을 유발하기까지 해 나쁘지 않았지만 사건의 흐름이나 진범의 정체, 열등감의 대상인 주인공의 친구의 변명이 뜬금없거나 설득력이 떨어져 뒷맛이 별로 좋지 못했다. 


 '봉인된 빨강'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추리소설 중에서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멍청한 범인이 등장해 - '이런 놈을 못 잡으면 경찰이 왜 있냐'는 말을 유발한 장본인이 바로 얘다. - 도서 추리물의 백미는 떨어졌으나 작품의 결말은 무척 강렬했다. '당신은 반드시 다섯 번 속게 된다!'는 출판사의 문구가 정말 딱 들어맞는 예상 외의 결말이 마련돼 그야말로 첫 번째로 수록되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었는데, 뒤의 수록작들이 분위기나, 사건의 긴장감, 반전 등이 이 작품에 미치지 못해서 '봉인된 빨강'이 더욱 돋보였다. 하긴 범인의 죄질도 가장 저질이었으니 다른 건 몰라도 몰입도 하나는 가장 뛰어날 수밖에. 

 '살로메의 유언'은 내가 예전에 구상한 추리소설의 반전과 닮아서 개인적으로 읽는 중에 질투가 났던 작품이다. 주인공의 목적과 개연성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던 것, 가해자 유족의 남모를 고충과 좌절에 주목한 것이 좋았고, 마지막 수록작이 돼서야 가노 라이타라는 캐릭터의 윤곽이 드러나 간신히 시리즈물의 정체성을 확립시켰다는 느낌이 든 것도 눈길이 갔다. 이 작가들이 - 후루타 덴은 두 명의 작가가 콤비를 이룬 팀 이름이다. - 가노 라이타가 등장하는 장편을 집필 중이라는데 '살로메의 유언'에서도 가노가 짧게 등장했더라면 그 후속작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양심은 있지만 할 말은 하고 평소엔 실실 웃지만 알게 모르게 상대를 궁지로 모는 이 캐릭터의 진면모가 장편에서는 보다 잘 드러나길 바란다. 설마 장편도 도서 추리물인 건 아니겠지? 


 여담이지만 두 작가의 콤비라는 점 때문에 '일본 추리소설계의 차세대 엘러리 퀸'이라는 오해를 할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일본 추리소설계에서 엘러리 퀸에 비견될 만한 작가는 노리즈키 린타로와 아리스가와 아리스일 텐데 그 두 작가의 논리 구축과 비교하면 <거짓의 봄>은 그런 돌직구 스타일의 추리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체밖에 없는 어중이떠중이 추리소설은 아니고 나름대로 갖출 건 다 갖춘 형사물, 도서 추리물이지만... 판단은 직접 읽고 나서 해보시길 바란다. 

경찰이 돕는 건 약자가 아니라 옳은 사람이다. 옳지 못한 약자의 필사적인 몸부림은 저열한 범죄로만 인식한다. - 136p



아무리 노력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을 거머쥐어도 나는 만족할 수 없다,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이 그런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절망스럽고 허무한 지 당신들이 압니까? - 3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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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패턴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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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일본 문화에 관한 가장 뛰어난 안내서라는 명성이 자자한 고전으로 '이후에 나온 일본 문화 책들은 다 이 책의 주석에 불과하다' 라는 평까지 있을 정도며 이 책의 대상인 일본인들에게도 인정받았다고 한다. 옛날부터 제목은 많이 들었지만 연식이 좀 된 책이기도 하고 번역 버전이 무수히 많아 뭘 읽어야 할는지 몰라 손이 잘 안 갔는데 내 나름대로 면밀히 검토한 결과 연암서가에서 펴낸 이 책이 가장 가독성이 높아 보여 큰 마음 먹고 읽게 됐다. 

 혹여나 책의 명성이 무색하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건방진 걱정을 해봤으나 -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이 너무 허다했기에... - 다행히 기우에 그쳤다. 물론 책이 집필된 배경이 50년대인 만큼 만약 이 책이 10년 뒤, 20년 뒤인 일본을, 고도 성장을 이룩한 일본을 분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 작가가 서두에서 밝히듯 이 책은 문화 인류학 서적치고 굉장히 불리한 조건을 안고 집필됐는데, 전쟁 중인 만큼 일본에 대한 연구가 절실했지만 전쟁 중이었기에 정작 일본 땅을 밟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미국에 이민 온 일본인 이민자나 그 2세들을 대상으로 한 발자국 떨어진 지점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제약이 일본의 이질적인 부분을 객관적이고 예리하게 포착해낼 수 있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된 것 같아 어딘지 모르게 흥미진진했다. 때론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정확할 때도 있는 법이라고 하더니,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아까 말했듯 10년 뒤, 20년 뒤, 아니면 지금 일본을 보고서 루스 베네딕트가 다시 <국화와 칼>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일본의 이질성을 묘하게 과장되거나 부정적인 뉘앙스로 기술하는 부분이 거슬리긴 했지만, 저자는 일본이 패전의 잿더미 속에서 이전의 군국주의적 마인드를 버리고 나라를 재건하길 기원하며 글을 마쳤다. 그런데 그런 저자의 눈에 나라를 성공적으로 재건했으나 군구주의적 마인드는 실로 교묘하게 숨기면서 그 어떤 반성이나 성장도 없이 과거 모습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보면 환멸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일본인의 '온', '기리', '기무' 등 여러 개념을 논리적이고 풍부한 예시를 들어가며 접근한 동시에 그 안의 아름다운 원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자세마저 느껴졌기에 국화와 칼을 동시에 숭배하는 이중성이 극심해진 일본의 현재 모습에 저자로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참 가까우면서 또 무척이나 다르기에 서양인이 바라보는 일본의 이질성이 어떤 것인지 읽기 전부터 궁금했었다. 개인적으로 '온', 보은에 대한 일본인의 철저한 마인드보다도 그 일본인들의 마인드를 신기하게 여기는 저자의 논조가 내게는 더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래도 나름대로 같은 동북아 문화권이라 그런가, 아니면 내가 일본 문화에 익숙해서 그런 걸까. 날 때부터 삶에, 특히 천황한테 빚을 졌다는 일본인의 마인드엔 동조하기 힘들었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기 꺼리는 심리만큼은 나도 동의할 수 있어서 반대로 그 심리를 신기하게 여기는 저자의, 나아가서는 미국인들의 심리도 만만찮게 불가사의하게 느껴졌다. 저자의 의도와 달리 이 글은 일본의 어떤 점을 이질적으로 느끼는지 기술함에 따라 미국이란 나라의 실상도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했다. 삶 속에는 자신의 역할과 행복을 정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이 있다고 믿는 미국이지만 의외로 성에 대한 관념은 일본과 비할 수 없이 보수적인 점 등 - 얼마 전에 접한 <시녀 이야기>가 떠올라 이 대목이 묘하게 헛웃음을 유발했다. - 알게 모르게 일본 못지않게 미국의 단면도 부각됐다. 원래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일본 말고 다른 문화에 대해 쓴 저자의 책도 적잖이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다른 버전은 접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2019년에 출간된 이 <국화와 칼>을 고른 건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가독성이야 말할 것도 없고, 책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저자에 대한 공부도 철저히 한 번역가의 노력과 그 노력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옮긴이의 말도 여러모로 이 책의 신뢰감을 높여 아직 본문을 읽지 않은 상태임에도 이 책을 완독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부풀었다. 

 비록 책의 집필 시기가 너무 옛날이란 것과 내용 자체도 일본 땅을 밟지 못한 상태에서 집필됐다는 한계 때문에 불충분하거나 너무 옛스럽거나 나쁜 말로 뇌피셜에 불과한 듯한 부분도 있어 - 더불어 번역가의 안내가 없었으면 한없이 지루했을 파트까지 - 뒤로 갈수록 만족도가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 책이 고전에 등극한 이유나 상징성은 전해져 역시 읽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별개의 문화권의 나라를 이해하고자 했고 성과도 톡톡히 거둬낸 작가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전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내게 도전이나 다름없었는데, 정말 간만에 그 도전이 가치 있게 마무리돼 뿌듯한 채로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인생의 진지한 분야에 대한 행동과 관련하여 어떤 일본인을 가리켜 예측 불가능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심한 욕설이 되며, 그보다 더 심한 욕은 ‘바보‘ 이외에는 없다. - 3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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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땡큐 : 며느라기 코멘터리
수신지 글.그림 / 귤프레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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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다소 열린 결말로 끝난 <며느라기>의 외전, 비하인드 스토리, 작가가 자신의 남편, 시어머니, 엄마와의 대화 등이 실린 책이다. 본편에 비해 분량이 너무 짧은 건 아쉬웠지만 구성이며 내용이 모두 알차 읽은 보람이 있었다. <며느라기>의 전신이 되는 단편 만화도 수록됐는데, 그 작품을 토대로 <며느라기>를 그린 수신지 작가의 능력이나 의지가 대단했다. 사실 그 단편 하나로 놓고 보면 교훈이나 주제의식도 흐릿한, 흔히 말하는 '네이트판' 수준에 그쳤기에 이렇게 장편으로 발전시킨 게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작가도 이 책에서 밝히듯 <며느라기>가 단순히 불행을 전시하는 것에 머물지 않기를 바랐는데, 내가 봤을 땐 <노땡큐>가 나옴으로써 비로소 불행 전시라는 오해는 벗어던지지 않았나 싶다. 

 저번에 <며느라기>를 읽고 포스팅을 쓸 땐 그래도 사린과 구영 부부가 아직 완전히 감정이 떠나지 않았고 특히 구영이 자신의 잘못을 강하게 뉘우치는 장면이 있었기에 다음 명절 때는 발전이 있겠거니 하고 희망적인 감상을 적었는데 <노땡큐>를 읽고 나니 나도 참 감상에 젖었구나 하고 쥐구멍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닌데. 특히 이 책에서의 구영의 모습을 보노라면 애당초 사린이 저런 의지박약에다가 우유부단하고 줏대도 없는 구영하고 결혼한 것 자체가 설정 오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의 말미에는 <프로불편러 일기>의 위근우 작가와 <괜찮지 않습니다>의 최지은 작가의 칼럼도 수록됐는데 여기서 위근우 작가가 쓴 칼럼의 제목이 내가 <노땡큐>를 읽고 난 감상과 똑같아 격하게 고갤 끄덕거렸다. 결국 문제는 무구영이다. 정말 읽다 보면 '구영아, 너 아직도 정신 안 차렸니?' 하고 따지고 싶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구영은 겉으로는 모자람 없고 친절한 남성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답이 없는, 이른바 평범한 남성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수신지 작가는 작품 본편으로부터 1년이 지났음에도 발전이 없는 구영을 통해 상당히 현실적이고 비관적인 전망을 드러내지 않았나 싶다. 뭐든 천천히 변화해야 반발이 적다지만, 작가는 오히려 사린의 입을 통해 천천히 천천히 운운하다가 그냥 그대로 익숙해져버리는 건 아닌지 씁쓸하게 중얼거린다. 나는 이 중얼거림을 보고 어째서 구영이 아직도 이혼을 당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빠른 변화가 두려워 하는 사회는 구영처럼 의지박약에다가 우유부단하고 줏대도 없는 남자에게 너무나 너그러운 세상이었던 것이다. 사린을 제외하고 완전히 이 시대 모든 구영에게만 너그러운 세상 말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작가가 인터뷰한 대상 중 시어머니가 오히려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작가의 엄마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다 예전엔 며느리의 희생이 옳고 자시고도 없이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가 점점 그게 아님을 깨닫고, <며느라기>를 향한 여성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처음엔 의문을 표하다가 지금은 이해하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마 내 생각엔 작가의 시어머니는 어쩌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진보적인 발언을 하신 게 아닐까 싶고 작가의 엄마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좀 더 솔직하게 말했을 뿐, 아마 두 사람 다 속마음은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세대인 데다 비슷한 시기에 시집살이를 보낸 사람들이 며느리나 딸을 향한 감정에 어느 정도 동정과 보상 심리가 섞였을 것이며, 나는 두 인물에게 차이가 있다면 두 심리의 비율의 차이만 있진 않은지 의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성차별은 아주 오랫동안 남성과 여성을 가리지 않고 대물림된 것이라 아예 윗세대를 철저히 배제하지 않은 이상 당장에 빠르게 변화를 추구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나 또한 특정 사람들을 배제하고서 냅다 변화만 추구하는 건 장기적으로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변화의 속도엔 합의 내지는 조율이 필요하다고 본다. 작가도 이 부분에 대해 적잖이 고민을 했는지 <며느라기>는 불행 전시 소리나 들을 만큼 실질적으로 진행된 게 없는 정체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반면 정작 외전인 <노땡큐>에서는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해서 활발히 논의한다. 이러한 아이러니함 어떻게 보면 작가 본인이 예상했던 이 작품의 한계이자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처럼 과하지 않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하게끔 유발하는 작풍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가장 적절한 변화의 속도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됐다. 그렇기에 어떻게 보면 사족일 수 있을 <노땡큐>란 책이 반대로 <며느라기>를 완성시키는 참으로 이상적인 후속작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여담이지만 작가의 <곤gone>을 1권도 읽었는데 2권 역시 마저 읽으려고 한다. 그 작품에서도 페미니즘을 날카롭고 서늘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재능이 유감 없이 발휘돼서 - 흡사 <시녀 이야기>의 프리퀄 같다. - 완결작이라는 2권을 얼른 읽고 싶다. 그 작품이 고작 2권으로 끝날 내용인가 싶지만 한편으로 페미니즘이란 키워드로 여러 작품을 그리는 게 독자 입장에서 더한 행복이겠다 싶어 아무튼 사뭇 기대가 된다. 

자신의 일인데 자기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유는?

1. 본인의 문제라고 인지 못 함.

2. 남이 해결해주기를 바람.

- 1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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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와 신과 마주보는 작가 下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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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3 







 토오코와 류우토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글을 쓰는 것에 트라우마를 가진 유리 멘탈 코노하의 성장이 담긴 시리즈 마지막 권... 인 줄 알았으나 이 이후에 단편과 외전이 많이 출간돼서 이걸 과연 마지막이라 봐야 할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본편의 이야기는 끝났고 나도 더 이상 볼 생각이 없으므로 이 이야길 마지막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10년 전에 재밌게 읽었다는 이유로 억지로 다시 읽으니 하나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다. 10년 전이든 20년 전이든 옛날에 재밌게 읽었다고 꾸역꾸역 읽지 말자고. 과거에 재밌게 읽었으나 시간이 흐르면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나는 왜 외면하고 읽었던 걸까? 

 마지막 에피소드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막장 스토리가 나올 줄 알았지만, 분량을 많이 할애한 덕분인지 코노하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나 코노하와 토오코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는 결말이나 토오코가 당면한 문제를 코노하가 해결하는 전개 등이 과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지드의 <좁은 문>을 아직도 못 읽어서 - 10년 전에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그 사이에 한 번을 읽지 않았다... - 작중 등장인물들이 그 작품을 언급하거나 인용하는 게 약간 와 닿지 않았지만 등장인물들끼리는 알아서 납득하고 서로의 해묵은 감정을 해소해서... 전과 다르지 않게 속도감 있게 읽어나갈 수는 있었다. 


 이번 에피소드에선 작가란 홀로 고독한 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제 살을 깎아나가는 존재로 여기는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그만한 희생이나 고행 없이는 작품을 쓸 수 없으며 때문에 코노하는 가뜩이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옆에서 작가가 되라고 부추기거나 협박하거나 아예 저만한 각오 없이는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아서 코노하로서는 작가가 되려는 마음을 먹고 싶어도 먹기가 힘든 대환장 사태가 연이어 발생한다. 애당초 코노하는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해 쓴 글이 덜컥 당선돼 베스트셀러로 등극할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으나 그놈의 유리 멘탈 때문에 그 모양 그 꼴이 난 건데... 결과적으로 코노하가 스스로를 잘 추슬러서 작가가 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최악의 결과만 나고 풍비박산이 났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강하게 키워야 된다는 말은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발언인 것 같다. 그 말의 성공 사례만 보니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겠지? 대체 몇 명의 사람이 실패 사례까지 면밀히 분석하고서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일까? 난 단언컨대 아예 한 명도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코노하의 재능이 어지간히 뛰어났는지 시리즈 초반부터 평생 절필을 선언했음에도 결말에서 작가로서 활동하게 된 걸 보고 재능의 세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최근 연달아 낙선을 경험한 터라 이 작품의 소재나 '작가관', 코노하의 미래가 예사롭지 않게 읽혔다. 읽는 내내, 내가 내 꿈을 너무 가볍게 여겨서 성과를 못 내는 건가 자문하기도 했고 멘토나 롤모델이 딱히 없어서 제자리걸음은 아닌지 스스로를 추궁하기도 했다. 아까 코노하 보고 유리 멘탈 어쩌구 했지만 지금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은 실정이라...... 이 시리즈 대망의 마지막 이야기가 실로 개인적인 의미에서 막막하게 다가왔다. 이 작품을 처음 읽었던 10년 전엔 내가 다시 읽을 때 이런 감상을 적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어쩌면 이것만으로 이 시리즈를 다시 읽은 보람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토오코와 류우토의 출생의 비밀은 웬만한 막장 스토리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얽히고설킨 인과 관계가 일품이었는데 마지막 에피소드라 그런지 작가가 힘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 전해졌다. 후반에 코노하가 사건 해결의 주역이 될 만큼 성장한 것이나 그런 코노하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단호하게 벌인 행각 내지는 선택이 의외인 것도 꽤 흥미로운 - 고토부키 지못미 - 지점이었다. 허나 온갖 호들갑을 떤 것치고 막상 무엇 하나 시원스럽게 해결된 느낌은 안 들었는데, 애당초 사건의 규모 자체가 코노하와 토오코 둘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 소규모의 에피소드였으므로 위와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이지... 예전과 비하면 유혈이 낭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덜 자극적인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까지 옅어졌다는 뜻은 아니지만. 

 마침내 다 읽은 '문학소녀' 시리즈였으나 '늑대와 향신료' 시리즈만큼 감개무량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내 감성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이제 라이트노벨이 전처럼 재밌게 읽히지 않는다는 걸 제대로 깨달았다. 예전엔 두 번 세 번 읽어도 재밌을 것 같았는데... 뭔가 씁쓸하지만 한편으론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실감해 그야말로 30대를 목전에 둔 내가 앞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할는지, 그리고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해봤다. 물론 30대가 됐다고 해서 바로 스물아홉이랑 하늘과 땅처럼 달라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사람은 결국 변한다는 걸 몸소 실감한 만큼 앞으로 나와 내 주변은 어떻게 변화할 것이고 나는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진심으로 염려하게 됐다. 과연 10년 뒤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10년 전엔 이 질문이 막연하다 생각했다면 지금은 설레는 한편으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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