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룩스 맥주 산책 - 트라피스트를 찾아 떠나는 유럽여행
이현수 지음 / 메이드마인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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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선 벨기에 맥주를 최상등급으로 쳐준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맥주순수령'이 있을 정도로 맥주 만들기가 까다로운 독일과는 달리 벨기에에선 제약이 없어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던 덕분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독일 맥주가 품질은 좋아도 다양성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는 평을 듣던데, 두 나라의 맥주를 비교하며 마셔본 적은 없으나 이런 상반된 평가를 살펴보면 과연 '순수'니 '제약'이느니 하는 것들이 얼마만큼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가 반문해보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은 맥주이고 실제로 여행 때 맥주 양조장을 적잖이 가봤다. 그래봤자 삿포로, 아사히, 산토리 그리고 제주에일이 전부지만... 아무튼 코로나만 아니었더라면 더 다양한 맥주 양조장을 방문했을 것이다. 기린, 오리온, 칭따오, 기네스, 하이네켄, 칼스버스, 필스너 우르켈 등등. 무료로 생맥주를 시음하면 대박이고 무료가 아니더라도 참 특별하고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맥주의 특성상 마셔봤자 그리 과하게 취하지 않고 갈증을 달래기에 좋다는 측면에서 고된 여행 일정 중에도 반드시 보람을 선사했다. 때론 양조장이 너무 외진 곳에 있어 시간이나 체력을 소모한 적도 있었지만 다 적어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게 다 맥주를 좋아하기에 나올 수 있는 감상이겠지만. 


 그런 내게 있어 이 책은 컨셉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부러움을 유발했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의 맥주를 섭렵하는 여행이라니. 그 여정도 여정이지만 아내와 함께 다니는 주인공의 모습도 참 부러웠다. 친구랑 같이 가는 것도 좋지만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맥주 기행을 다닐 만한 이성과 만날 수 있을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베네룩스는 결코 일반적인 여행지가 아니다. 동행할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보통은 런던이나 파리처럼 대도시에 가는 걸 선호할 테니까. 

 국내에 출간된 유럽 여행 서적에서 이 책은 컨셉이나 여행지부터 독보적이기 이를 데 없는데 내용도 거의 맥주의 종류와 맛, 양조장과 펍의 위치에 대한 서술이라 맥주에 대한 정말로 지대한 관심이 없다면 책의 예쁜 만듦새나 사진의 배치가 무색하게 지루하게 읽힐 것이다. 단순히 문장의 흡입력만 따지면 저자가 전문 작가까지는 아니다 보니 맥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도 지루했던 구간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워낙에 다루는 내용이 갓 나온 맥주 거품보다 신선해 책을 덮고 난 다음의 만족도는 상당했다. 언제 베네룩스 3국을 방문해볼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 책을 꼭 들고 가리라. 아까 지루한 구간이 있다고 했는데, 그 구간이란 바로 디테일하게 가게를 소개하는 부분이었다. 이런 디테일은 실제로 그 도시를 걷지 않은 이상 흡입력 있게 읽기 힘든 법. 그러니 꼭 현지에서 읽어볼 테다. 그런데 과연 그때 나는 혼자일까, 다른 사람과 함께일까? 꼭 다른 사람과 함께이길. 아무리 맥주가 좋아도 혼자 펍에 가긴 쉽지 않다. 맥주는 은근히 혼술이 어려우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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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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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최근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를 읽고 청부살인업자가 등장하는 소설이 읽고 싶어져 이 작품을 다시 펼치게 됐다. 3년 전에 읽을 때는 시리즈 전편을 안 읽어서 큰 감흥이 일지 않았는데,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을 접하고 읽으니 이 작품의 내용이 좀 더 무겁게 다가왔다. <청부살인~>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전형적으로 킬러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혐오스러워하며 종국엔 은퇴를 결심하는 킬러가 등장한다. <청부살인~>의 킬러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에 지나치게 관심이 없는 쿨함을 보여 당혹스러웠다면 후자의 킬러 '풍뎅이'는 어떻게 보면 인간으로서는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죄책감을 지속적으로 어필하는 게 때때로 위선적으로 비쳐져 그의 은퇴를 응원하는 한편으로 거리를 두게 됐다. 그래, 범죄자에게 섣부른 동정은 금물이니까. 

 풍뎅이도, 또 작가도 위선이란 걸 알고 있는지 작품은 마냥 동정적인 시선으로 풍뎅이의 여정을 쫓지 않는다. 그의 가족과 함께 펼쳐지는 휴먼 드라마와 그 이면에 도사리는 킬러 업계의 냉혹한 원리가 균형이 잡힐 듯 잡혀지지 않으며 중구난방으로 묘사되는데, 그 탓에 전편에 비해 이야기의 몰입도는 떨어질는지 몰라도 풍뎅이에 대한 심정을 독자로서 객관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 의외로 절묘한 전개였다는 생각이 든다. 풍뎅이를 압박하는 불안감과 죄책감, 가족과의 유쾌하고도 진땀 나는 에피소드가 불규칙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풍뎅이라는 캐릭터가 다소 기계적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시리즈 역사상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가장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풍뎅이인 만큼 이렇게 소소하면서도 심적으로 고통 받는 전개가 나온 것이 옳았다고 본다. 


 뭐, 이사카 코타로의 필력 덕분에 가독성엔 문제가 없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인공이 최강의 킬러인 것이 무색하게 <악스>의 수록작들의 내용은 심심하거나 식상한 구석이 있었다. 첫 번째 수록작 'AX'는 당랑지부라는 사자성어를 강조하거나 이야기의 첫 수록작치고 내용이나 결말이 허무한 감이 있었고 'BEE'는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는 풍뎅이의 모습이나 그 계기는 멋졌으나 이야기 자체는 가장 시시했고 그 다음 수록작 'Crayon'은 공처가이자 고독한 사나이 속성을 가진 풍뎅이의 캐릭터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역할로만 기능하고 있어 인상에 강하게 남지 않았다. 

 업계의 다른 킬러와의 대결과 은퇴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수난을 다룬 'EXIT'와 'FINE'은 이사카 코타로의 감성이 묻어 나오는 비장함, 시리즈 특유의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킬러의 세계는 돋보였지만 의외로 허술한 풍뎅이의 은퇴 계획 때문에 2% 부족한 수록작이 아닐 수 없었다. 결말은 어느 정도 여운이 있었고, 풍뎅이나 의사나 인과응보를 치른 게 꽤나 합당하다 여겨졌지만 거의 예상 가능한 전개였기에 대단히 쾌감이 있거나 감동적이진 않았다. 글쎄, 이번 작품의 경우엔 신선함보다 진정성, 특히 풍뎅이의 부성애에 초점을 맞췄고 그에 관해선 엄청난 성과를 거뒀음은 인정하겠으나 이사카 코타로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작가의 팬이나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팬에게 이 작품을 열 손가락 안으로 꼽으며 추천할 것 같진 않다. 


 반면 아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전편 <그래스호퍼>와 <마리아비틀>을 인상 깊게 읽은 독자에게라면 이 작품은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물론 전편에서 내용이 이어지진 않고 간간이 전작의 캐릭터들이나 사건이 언급되는 것, 같은 킬러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을 제외하면 세 작품은 같은 시리즈로 묶일 만한 접점이 부족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사카 코타로라는 작가가 킬러라는 직업군(?)의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면 <악스>를 읽는 것은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아내 눈치를 보는 풍뎅이의 면모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세심함이나 당랑지부라는 말을 마지막 수록작에서 회수하는 솜씨를 보노라면 경이롭진 않더라도 경지에 달한 안정적인 필력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킬러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 식상한 것 같으면서도 다 다른 느낌이라니, 소재에 대한 이 작가의 애정 내지는 통찰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시리즈의 후속작이 과연 나올까? 특별히 이 작품으로 완전히 끝이라는 느낌은 못 받았으니 별 일 없으면 네 번째 작품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마 시간이 좀 걸릴 테지만 나는 그만한 기다림이 가치가 있는 시리즈라 생각한다. 과연 그 작품에서는 얼마나 비정하고 또 얼마나 동정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 무척 기대된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도 누군가를 옹호할 때도 공정하자고 생각하라고. - 48p



부모라는 사람들은 늘 아차, 하고 생각하는 법이야. - 94p



"튀는 일이라는 게 뭔가요. 어둡다는 건 그저 조용히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에요." 밝은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인간이 걸핏하면 다른 이를 끌어들이지 않고는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를 풍뎅이는 알고 있었다. - 177p



온갖 무기나 흉기를 사용하고 또 상대해 온 풍뎅이 입장에서 보자면, 최종적으로 싸움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건 ‘신뢰‘라고 생각한다. - 19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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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학교 1 - 이슬람의 탄생, 이슬람교 그리고 여성 이슬람 학교 1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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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아마 여성 저자가 썼으면 이 책의 톤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저자라 내용도 풍부하고 이야기하는 방식도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서 - 그렇다고 다루는 내용 자체가 쉽다는 뜻은 아니다. - 익숙지 않은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술술 읽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몇몇 독자가 이슬람교의 매력을 마주하고 무슬림이 됐으면 좋겠다는 문장엔 헛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 딴에는 이슬람교가 매우 믿어봄직한 종교라고 생각해서 한 발언일 테지만 나에겐 다소 섣부른 망언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이 책의 내용만으론 이슬람교가 그렇게 믿어봄직한 종교라고 설득되지 않았고 오히려 여느 종교와 마찬가지로 가지지 않을 수 있다면 가지지 않는 것이 상책이란 확신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서두에서부터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 '이슬람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버리자'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10몇 억 이상의 인구가 믿는 종교이며 그만한 인구의 사람들이 다 바보라서 이슬람교에 세뇌당한 게 아니라 다 그럴 만한 이유, 즉 이슬람교에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와는 다른 매력과 찬란한 문화적 깊이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란 전제를 깔고 이슬람의 역사, 교리, 오해 등을 낱낱이 파헤친다. 나는 이 서두를 읽는 동안 10억 명 이상이 믿는 종교가 부정적인 요소만 있을 리가 없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단순히 10억 명 이상이 믿는다는 걸 근거로 이슬람교에 문제가 없으리란 건 다분히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의문과는 무관하게 저자가 풀어내는 이슬람 이야기는 대체로 흥미로웠고 특히 이슬람교의 유명한 계율, 머리카락을 보이면 안 되고 돼지를 먹으면 안 되고 일부다처제 등이 생긴 배경과 알라의 일대기는 전부터 관심이 있던 부분이라 재밌게 읽었다. 알라가 선택 받은 지도자가 아닌 현명하면서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이란 것에 사람들이 매료됐다는 대목은 기독교나 불교와는 달라 신선했고 그런 평범함이 도리어 사람들로 하여금 맹목성을 자아낸다는 부분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었다. 의외로 인간은 자신과 별 차이가 없는 존재에 더욱 빠져든다는 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아, 그래서 이슬람교에서 우상화가 금지인 건가? 100% 와 닿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 논리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계율의 배경에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었다 한들 현재의 감각과 계율의 내용이 영 동떨어진 구석이 있다면 그 계율을 유연하게 바꿔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히잡이나 할랄 음식, 일부다처제 등은 전세계에서 이슬람이 대놓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요소들일 텐데, 금방 말했듯 최초엔 좋은 의도가 있었다는 건 인정하겠으나 그 의도를 후대의 사람들이 자기 입맛대로 해석해 - <시녀 이야기>가 떠오른다. - 강요 및 세뇌에 이르렀다는 건 착잡한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내 기억이 맞는 한 저자가 두 권에 달하는 책의 분량에서 그 착잡한 아이러니함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은 것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최근 도쿄 올림픽 이집트 베드민턴 국가대표팀의 여성 선수가 다른 선수들은 다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는 것과 달리 혼자서 머리와 팔다리 모두 싸맨 걸 보고서 그 착잡함이 더욱 배가됐다. 이집트의 더위가 너무 살인적이라 굳이 이슬람교의 계율이 아니더라도 히잡과 긴 옷이 필수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왜 습도 높은 도쿄에서도 중무장해야 된단 말인가. 지나친 반응일 수 있지만 이 정도면 우스울 지경이었다. 물론 저자 말마따나 모든 무슬림이 이런 모순에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변화의 기미가 덜 보인다는 게...... 


 이슬람교의 비판이 미흡하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책의 전문성과 이슬람 문화가 왜 이렇게까지 몰락했는지를 단순히 종교의 엄격함 때문이 아닌 이슬람 문화에 무지한 서양 국가들의 횡포와 - 주로 미국과 영국. 정말 깡패들이 따로 없다. - 그 횡포에 맞춰 이슬람교가 계율 면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 요지경,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을 되짚어볼 때 유대인들이 핍박받는 역사까지 살펴보는 등 전문적이고 유익한 내용은 차고 넘쳤다.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나 인구 수가 워낙 많아 겨우 두 권 분량으로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작가는 핵심적인 부분을 잘 간추려 가려운 부분은 대부분 잘 긁었다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 팔이 안으로 굽는 듯한 문체를 감안하고 읽는다면 이슬람 문화 입문서로 적당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문화가 궁금했는데 그 책들은 따로 찾아봐야겠다. 그나마 소프트하다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의 이슬람교는 어떤 양상일지 이 책에선 다뤄지지 않아 - 아무래도 우리가 갖고 있는 이슬람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동남아 쪽은 살짝 마이너하다 보니까. - 그 부분에 관해선 추가적인 독서가 필요해 보인다. 그래, 이런 생각을 품게 만들었다는 것에서 이 책의 취지는 꽤 성공을 거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히려 입문서(첫술)로 배부를 생각은 금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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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 2022-09-1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지나가다 적습니다. 동남아의 이슬람이라고 다르진 않습니다. 브루나이나 몰디브같은 나라는 오히려 샤리아법이 시행되는 국가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세속적일수록 이슬람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세속적이기에 바뀔수 있고 바뀌기때문에 더 극단적으로 치닿기도 하니까요.
괜히 KMF에서는 원리주의 이슬람을 받아들이는게 아닙니다.
이슬람이 퍼져나가면서 사우디에서 멀어질수록 약간씩 차이를 보이면서 변화하는데 그게 꼭 좋은변화만을 가져오지않고 그렇게 변화의 바람이불다가 결국 뭐하나 잘못되면 그게 다 변질되서 그런거라고 더 극단적으로 바뀝니다.
그러니 그냥 원리주의가 가장 나은듯 합니다.
이집트 여성이 긴팔을 입은게 좀 그렇다 하는데 그건 타문화 타인 타종교의 시선이고 무슬림으로써는 바람직한 복장인거죠.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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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9.3 




 


 시작은 괜찮지만 항상 끝에 가서 그놈의 무리수 때문에 아쉬움을 자아냈던 이시모치 아사미였으나 이번 작품은 무리수가 없던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첫 번째 수록작과 마지막 수록작이 흡입력 있던 것치고 결말이 기대 이하였던 것을 제외하면 - 그래도 이전이었으면 이상한 무리수를 넣었을 법한데 안 넣었다. - 책의 수록작들의 전반적인 퀄리티는 고른 편인데,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살인청부업을 프로패셔널하게 처리하는 주인공의 '쿨함'이 끝까지 일관됐던 게 인상에 남았다. 

 살인청부업자에게 '쿨함'이란 단어를 쓴다는 게 망설여지긴 하지만, 그간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에선 주인공의 고뇌가 주로 다뤄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잠시도 고뇌라든지 신세 한탄을 하지 않아 이 일그러진 도덕성이 도리어 쿨하게 비쳐지기도 했다. 때문에 일그러진 도덕성이 거북할 분들에게 아무래도 이 책을 추천하긴 힘들 듯하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의 추리소설로써의 묘미는 저마다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주인공의 타겟들이 왜 그런 행동을 보이며, 왜 그들은 살해당해야만 하는가를 주인공이 추리하는 것에 있다. 추리 끝엔 재밌는 결론이 나올 때도 있고 때론 타겟들이 안쓰러워지는 내막도 드러나지만 경우를 막론하고 주인공이 자신의 살인을 반성하거나 재고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이유야 어떻든 자신은 의뢰를 받았으니 예외 없이 죽인다면서 철저히 일로써 타겟을 죽인다. 꽤 날카로운 추리력과 더불어 그럼에도 일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살인청부업을 행사하는 것에 조금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주인공 나름대로의 철학이 이 작품의 핵심 요소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의 철학은 그야말로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기에 가질 만한 철학이기에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오해해선 안 되는 것이 그 철학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살인 행위를 옹호한다는 뜻은 아니다. 주인공의 철학은 이렇다. 이 세상에 정말로 죽어야 할 이유로 죽는 사람은 없다. 다들 황당하거나 하찮거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원한을 사고 살해당하거나 청부살인업자에게 제거당할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온 살인 의뢰에 왈가왈부하거나 사견을 넣어 결과를 바꾸는 것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위에 적은 주인공의 철학은 작중에 나온 주인공의 발언 중 핵심을 내가 자체적으로 짜깁기하거나 상상해서 풀어낸 것으로 실질적으로 작가가 설정한 주인공의 내면과는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매 청부살인마다 자신의 입장을 꺼내지 않으며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면 이 인간에게 애당초 죽어 마땅한 인간이나 반대로 죽어선 안 되는 사람의 기준 따윈 없어 보인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지는 철학이 아닐 수 없는데 - 심지어 주인공은 이러한 철학을 대개 자신의 의뢰 중개인과 맥주를 곁들이는 가벼운 분위기에서 말한다.;; - 한편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잘 지적한 것 같아서 묘하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살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까지 이해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추리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실로 드라마틱한 살인 동기들을 우회적으로 조롱하는 것도 같아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긴,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 죽어야 되는 이유로 죽었겠는가. 

 철학을 빙자한 궤변으로 무장한 채 사뭇 유쾌하고 프로패셔널한 자세로 살인청부업과 추리도 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엔 전에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어 후속작이 나오면 고민 없이 챙겨볼 것 같다. 주인공과 의뢰 중개인과의 캐미, 여자친구와의 캐미 등 후속작에서 발전시킬 요소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단편도 좋지만 다음엔 장편이면 어떨까? 완성도가 약간 들쑥날쑥했던 단편들과 달리 작정하고 장편을 써내면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뭐가 됐든 부디 이번 한 권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죽기 전에 죽임을 당할 이유가 있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 없다고 했겠지. - 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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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입니까 산하세계문학 14
리사 울림 셰블룸 지음, 이유진 옮김 / 산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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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히가시노 게이고의 <옛날에 내가 죽은 집>에서는 자신의 뿌리를 궁금해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투성이인 어렸을 적 기억의 이면을 추적하는 이 추리소설은 반전의 내용만큼이나 기억상실증 내지는 입양된 사람이 겪을 만한 정체성 혼란을 그린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나는 입양아가 아니기에 - 내가 아는 한 - 한 번도 뿌리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없어서 이처럼 뿌리를 찾으려는 심리가 완벽하게 와 닿지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데에서 오는 절박함은 확실히 전달됐다. 

 스웨덴의 만화가이자 한국인 입양아인 리사 울림 셰블룸이 실제로 겪은 일을 다룬 <나는 누구입니까>는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로 확장되는 상당히 이상적인 작품이었다. 기억의 첫 페이지 무렵부터 스웨덴인 부모로부터 스웨덴어와 문화를 체득하며 스웨덴인으로서 살아가지만 겉모습은 영락없이 한국인이기에 - 자신의 기억 속에선 방문해본 적도 없음에도 - 주변 스웨덴인들로부터 차별과 멸시까지 당하는 고충들이 초반부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내 출산을 하면서 대체 자신은 무슨 연유로 고아가 돼 입양에 이르렀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며 부모를 찾으려는 전개도 개연성 있게 다가왔다. 이 1부까지는 적어도 희망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부모를 찾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세계 최대 아동 수출국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도 제대로 못 찾아주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 부모를 찾으려는 주인공을 귀찮아 하는 기색이나 대충 대충 일을 하는 모습은 분통 터지게 만들었다. 당사자인 주인공은 그런 공무원의 태도에도 의지해야 하지만 제3자인 내가 봤을 때는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안 찾고 만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어렵게 찾은 부모도 - 막판에 가면 과연 진짜 부모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 통역을 비롯한 여러 여건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 감동적인 순간이 연출되지 않는다. 사연이 어떻든 간에 부모 자식의 만남은 감동적이어야 할 것 같지만 작품 속의 묘사는 감동적인 척을 하는 것에 훨씬 가까웠고 그마저도 흐지부지되거나 이쯤 했으니 됐다며 서로 갈 길 가자고 부모가 먼저 말하기까지 한다. 

 이 책은 자의든 타의든 자기 아이를 버리는 부모들이나 그 아이를 타국에 입양시키는 국가를 대놓고 비판하지 않는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누구 한 명을 제대로 탓하기 힘들 만큼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것이 있으니까. 이 작품에서의 주요 비판 대상은 여차저차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요청을 대하는 국가의 자세다.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어쨌든 입양을 보냈으니 더 이상 우리나라 사람도 아니라는 건가. 입양된 사람들 입장에선 부모를 궁금해 하고 찾는 것은 충분히 가져봄직한 이야기기에 100% 공감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말이 좋아 입양을 보내는 것이지, 사실상 부모를 잃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타국에 떠넘겼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판국에 이 무슨 적반하장의 태도인지... 주인공의 씁쓸함이 실감나게 전해져 독자인 나까지 참담할 지경이었다. 이건 뭐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도 아니고. 


 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오기 한참 전에, 88 서울 올림픽 경기를 TV로 시청하며 저자와 저자의 같은 한국계 스웨덴인 아이들이 모여 자신이 태어난 나라 한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작품 초반부의 장면은 참 만감이 교차하게 되는 장면이다. 스웨덴인 사이에서의 부적응을 한국, 자신들을 버린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달래려는 듯한 일종의 정체성 혼란은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내는 것이 과연 할 짓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모든 고아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특정 인종을 입양하기 원하는 부모들의 요구에 맞춰 해당 인종이 있는 국가에서 아이를 유괴하는 브로커도 있는 판국이란 대목을 읽었을 땐 이 세상엔 아이를 사람이 아닌 물건으로 여기는 어른들이 적잖구나 하는 인상까지 받았다. 최근에 본 영화 <블랙 위도우>도 고아를 킬러 집단으로 만드는 무지막지한 비밀 조직이 등장하는데 현실 세계도 그에 못지않게 무지막지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가 아이들을 물건으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내용의 무거움과 달리 아기자기한 그림은 오히려 내용을 더욱 심각하게 돋보이게 해준 것 같고, 반대로 대놓고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듯 나레이션으로 점철된 전개 방식은 가독성을 떨어뜨려 아쉬움을 자아냈다. 추측이지만 이런 가독성의 아쉬움이 2017년 스웨덴만화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만화상' 후보작에 그친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런데 만약 이 작품이 '올해의만화상'을 수상했다고 한들 과연 그것이 기뻐할 만한, 그러니까 한국인으로서 기뻐할 만한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간혹 국적을 막론하고 한국계 외국인이 유명인으로 자라면 '국위선양'이라고 호들갑 떠는 경우가 있는데, 솔직히 이는 전혀 국위선양이 아니잖은가. 국위선양이란 말이야말로 정말이지 그분들을 두 번 죽이는 말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말하자면 역시 이 작품이 '올해의만화상'을 탔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할 것 같다. 자랑스럽고 어쩌고 이전에, 그만큼 새겨 들을 만한 내용의 작품이니까 말이다. 

한국은 우리가 돌아올 거라고 믿지 않았다. 한국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기도 전에 우리를 버렸다. 우리가 가족과 뿌리를 그리워하다가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입양 아동이 어른이 되어서 돌아오는 일에 대해 어떤 준비도 하고 있지 않았다. - 3부 ‘나에겐 나를 알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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