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톡 어때? 무화과 여행 만화 1
무화과 지음 / 일구구일(1991)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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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0 






 제목에 있는 블라디보스톡과 더불어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까지 섭렵한 여행 만화. 하지만 여행 만화라고 해서 정보가 아주 꼼꼼하거나 체계적인 것은 아니다. 출판사에서 분량에 제약을 걸었던 것일까? 여행 일정이 무려 13일에 달하는 것치곤 실제로 화폭에 옮긴 내용은 극히 일부고 그마저도 소소한 감상 위주라 실질적으로 여행에 대비하기 위한 책으로는 미흡한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유용한 정보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참고로 나는 5년 전에 블라디보스톡을 가봤는데, 당시엔 이런 만화가 출간되리라 생각도 못할 정도로 매우 미지의 여행지였기에 여행을 다녀온 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런 책이 퍽 반가웠다. 언제가 될는지 몰라도 블라디보스톡을 다시 가긴 갈 텐데 이 책에 소개된 여행지나 동선을, 그리고 어떤 기념품을 사면 좋은지 적잖이 참고해볼 생각이다. 이 작가처럼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타보고 카페도 가보고... 지난 번에 못한 걸 유감 없이 해봐야지. 


 당장 여행 내용보다도 오히려 난 한국으로 돌아갈 때 작가가 느낀 심정이 더욱 인상적으로 읽혔다. 반쯤 충동적으로 퇴사하고 친구랑 간 블라디보스톡 여행, 2주 간의 여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은 참으로 무겁기 그지없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며 앞으로 이처럼 긴 여행을 떠날 날이 올 것인지에 대한 우울함을 나 역시 적잖이 겪었다. 이 만화의 좋은 점은 이러한 감정을 너무 청승맞게 그리는 게 아니라 적절한 횟수에 적절한 깊이로 들여다보며 여운 있게 여행기를 마무리한다는 점이었다. 여행의 순간 순간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시도 않는 것도 좋았고 정말 여행기처럼 특별한 경험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내 자연스레 몰입됐다. 이와 같은 호들갑 떨지 않는 여행관이 내 평소 여행관과 닮은 데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무릇 감상에 젖어 인생에 관해 대단한 결심을 하기 마련인데 실제로 지난 날을 돌이켜 보니 그 결심이 온전히 지켜진 적이 없는 것 같다. 지켜져도 작심삼일에 그쳤거나. 그럴 때마다 난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떠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자책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꼬박꼬박 잘 다녀온다. 한때는 이조차도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으면 일상의 스트레스나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 정리했을까 싶어 역시 될 수 있는 한 다녀왔던 게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특히 지금 같은 시국엔 더더욱. 


 국내 여행마저 눈치가 보이는 지금 시국에 이런 여행 만화나 과거의 여행 기억은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힐링과 더불어 현재에 대한 착잡함을 배가시킨다. 굳이 시국 때문이 아니더라도 여행의 기억이란 건 다녀온 지 시간이 지날수록, 또 현실이 팍팍할수록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행을 괜히 갔다는 생각은 어지간해선 들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어지간해선 여행은 충동적이건 뭐건 내가 좋아서 가는 것이니까. 때문에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인생이 대단히 변하지 않고 그 여행이 딱히 인생의 전환점이 되지 못하더라도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 애당초 여행으로 하여금 뭔가 대단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내용이 적어서 그렇지 화풍이나 이야길 전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아직 많이 출간된 책이 많이 없더라. 작가가 어찌나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일지 상상이 가 나 역시 고군분투하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됐다. 암, 마음을 다잡아야지. 

우리에겐 낯설고 신기한 여행지이지만, 이곳의 사람들에겐 익숙한 일상의 공간.

낯선 언어, 낯선 음식, 낯선 풍경, 그리고 낯선 사람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풍경 속에서 가장 낯선 것이 우리이겠지. - Day 9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하기 싫은 일을 해도 인생이 이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다.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법을. - Day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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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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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내가 추리소설을 읽은 지 십 년이 넘어가니 어느샌가 추리소설이, 특히 일본 추리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와 충격엔 한계가 있다고 알게 모르게 단정 지었던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충격의 데뷔작',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란 수식어가 붙은 소설을 읽어도 큰 감흥이 없었다. 어디선가 접한 클리셰고 다만 그 클리셰를 어떻게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느냐, 내가 추리소설에 기댈 수 있는 부분은 딱 거기까지라고 여겼다. 

 이 충격적인 제목의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시놉시스를 읽을 때도 설마 이 정도로 모든 면에서 현혹시키는 작품이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뒤를 궁금해 하며 페이지를 넘겼고 작가의 트릭에 보기 좋게 넘어갔으며 그렇기에 좌절감도 들었다. 이렇게 잘 써도 호불호가 갈리면 뜨기 힘들구나. 소재나 세계관을 비롯해 누명을 쓰는 게 쌤통이라 여겨질 정도로 비호감인 주인공, 그 주인공 못지않은 여러 골때리는 캐릭터들 때문에 이 소설은 다른 사람에게 덮어놓고 권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식인 장면은 없으나 그 장면을 연상케 하고 또 클론 인간을 철저히 가축, 식재료 취급하는 묘사 때문에라도 추천하기에 망설여진다. 단적으로 말해 매우 역겨웠으니까. 


 추리소설과 SF가 결합됐을 때 두 장르의 매력이 공존하는 수작은 생각보다 드문 편이다. SF 세계관의 법칙이나 주제의식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추리소설 트릭의 놀라움이나 공정함은 결여되는 것 같다. 특수 설정은 이야기에 개성을 부여할 순 있어도 공정한 게임을 진행하기엔 독이 되는 그야말로 양날의 칼 같은 요소다. 이 작품도 엄밀히 말해 '작가가 스스로 설정한 세계관에 취해 설명이 불충분한 무리수를 던지는' 경우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반전을 연출한 작가의 '큰 그림'에 대한 감상을 먼저 꺼내야 할 것 같다. 

 왜 하필 이 작품의 첫 시작이 바이러스 창궐이나 플라나리아 센터에서의 충격적인 출근 내용이 아닌 매춘부와의 만남이었던 걸까? 이 첫 장면에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와 흡사한 내용과 더불어 흡사한 역할도 있었음을 모른 채 나는 석연찮은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이후엔 멘탈이 불안정한 주인공의 밥맛 떨어지는 모습들 - 어찌나 밥맛 떨어지는지 누명을 썼음에도 일말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다. - 주인공의 누명을 둘러싼 속도감 있고 논리적으로 오가는 인물들의 추리에 몰입해가며 첫 장면과 더불어 사소한 의문이 들었던 모든 장면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게 됐다. 그 모든 것이 작가의 고도의 노림수라는 걸 모른 채로... 


 난 지금도 이 작품의 후반부의 반전이나 전개가 다소 설명적이고 주입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은 그 설명들이 무리수이되 말이 된다는 점과 그 반전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게끔 유도한 치밀하고도 교묘한 복선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그전까지는 밥맛 떨어지는 주인공이 SF 세계 속에서 겪는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로만 읽혔는데 반전을 기점으로 작품에 대한 인상이나 만족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간혹 소재의 독특함이나 주제의식의 깊이에 열중하다 보면 추리소설 특유의 장르적 재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는 장르적 재미마저 철저하게 디자인돼 그것만으로도 경탄스러웠던 작품이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는 어떻게 보면 인간의 육식 행위의 이중성을 잘 꼬집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로 대다수의 동물이 멸종됐음에도 배 터지게 육식을 하고 싶은 인간은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 육식 욕구를 대신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얼굴은 먹고 싶지 않기에 자신의 클론 고기가 배달될 땐 얼굴은 잘려져서 배달된다. 이 작품의 경우 클론은 배달한 당사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테니 얼굴을 자르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소나 돼지고기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로 얼굴은 먹지 않는다. 얼굴을 먹기 힘든 이유는 머리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육식이 매우 잔인한 일임을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 잔인한 나머지 육식 행위 자체가 삽시간에 혐오스러워질 수도 있는데 이 작품에선 실수로 몸과 함께 배달된 얼굴이란 설정만으로 그 혐오스러움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는 육식에 대한 욕구보단 클론을 만들어서 먹어야 할 만큼 탐욕스러운 주제에 그 탐욕의 혐오스러움을 외면하려는 것에 대해 한껏 비웃음을 날리는 작품이었다. 


 자신의 클론을 만든 인간이 자기 입맛대로 착취한다는 설정을 듣고 마이클 베이의 영화 <아일랜드>가 떠올랐는데 이 소설은 그 영화의 설정보다 훨씬 적나라하고 구역질이 난다. <아일랜드>에선 적어도 클론들의 장기를 취하되 그전까지는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나름대로 고도의 거짓말을 꾸며냈는데 이 작품의 인간들은 순수하게 클론 인간의 고기를 탐하는 만큼 성장 촉진제를 먹여 살을 뒤룩뒤룩 찌우고 가축처럼 우리에 가둬서 키운다. 언어도 지능도 없이 살만 찐 비만 인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형언하기 힘들다. 게다가 고객에게 보낼 고기에 머리만 자르는 업무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일그러진 심리, 그리고 주인공이 갖고 있는 비밀의 내용도 엄청나게 충격적이라 대체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끝낼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 말하자면 난 이 작품의 엔딩이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에 동시에 속한다고 본다. 클론 인간을 배양한 장본인이나 클론 인간을 관리하고 배송하는 플라나리아 센터의 직원 모두 '천벌'을 받는다. 이 작품에서의 클론 인간의 대우나 클론 인간을 홀대한 인간들의 최후를 보면 이런 말이 떠오른다. 자업자득. 클론 인간을 배양할 수 있는 기술을 가졌으나 그 기술이 가져올 재앙을 지나치게 간과한 인간의 미래는 정말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 작품에 후속작이 나올는지 모르겠지만 결말이 인간에게 절망적이면서 클론에게 희망적이라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에 동시에 속한다고 생각됐다. 작중의 인간들이 클론한테 하는 짓을 보고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생각에 해피엔딩이, 그래도 인간의 입장에 이입하면 배드엔딩이니까... 


 호불호도 많이 갈리고 무리수도 있었지만 탁월한 장르적 재미와 치밀한 설정 및 세계관, 또 그에 걸맞는 윤리적 주제의식까지. 아주 간만에 접한 모든 면에서 현혹되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최종 후보작에 그치다니...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미치오 슈스케의 지지 덕분에 이 작품이 세상의 빛을 봤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아까운 일이 벌어질 뻔했다. 한편으론 그만큼 소설로 뜨기가 힘들구나 싶어 소설가 지망생인 나는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졌다. 정말... 여러모로 자극이 됐다. 

 만약에 이 작품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나는 낙담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라 이후에 작가의 다른 작품이 출간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인데 다행인 건 이미 작가의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가 출간됐다기에 앞으로도 작가의 다른 작품도 출간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 테지만 이 정도 데뷔작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다른 작품도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그에 준하는 대단한 작품일 테니 그것 참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작가가 있었다니, 세상이 정말 넓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인간에게는 타인과 자신의 관계를 명백하게 정의하고 싶어 하는 본능 같은 게 있죠. 상대가 자신보다 열등한가 뛰어난가. 열등한 것처럼 보이면 상대가 자신보다 열등한가 뛰어난가. 열등한 것처럼 보이면 상대를 깔보고 공격하죠. 뛰어나다면 아양을 떨고요. 하지만 그런 마음의 작용을 멈추고 숨을 쉬는 인간을 물건으로 대하는 능력은 사회의 우중충한 부분에서 분명 필요하거든요. -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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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 프랑스인 눈으로 ‘요즘 프랑스’ 읽기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오헬리엉 루베르.윤여진 지음 / 틈새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9.3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는 예전에 즐겨 봤던 방송 <비정상회담>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멤버인 오헬리엉이 집필한 책이다. 출연자가 많은 방송의 특성상 멤버들에게 할당된 시간이 적다 보니 필연적으로 내가 좋아했던 멤버들의 비중이나 활약이 불충분하다 여겨졌는데, 이렇게 책으로나마 분량 제한 없이 좋아했던 멤버의 얘길 들을 수 있는 게 퍽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오렐리엉은 자국에 대한 비판을 거리낌 없이 하고 독특한 면모도 있으며 대학에서 교편을 잡을 만큼 지적이라 그가 집필한 책이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나 분량 제한 없이 프랑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은 오헬리엉에게도 매력적이었는지 서두에서부터 그가 책 집필에 정력적으로 임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오헬리엉은 이 책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프랑스 북쪽 지방 출신의 프랑스인이라는 필터를 거친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얘기임을 서두에서 강조했는데, 그런 것치고 다루는 내용이 광범위하고 파리와 자신의 고향 릴과 프랑스의 다른 지방의 차이,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 등을 수시로 열거하며 진행하기에 지극히 사적이라는 예고가 무색할 정도로 생각보다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덮어 놓고 맹신하는 건 금물이지만, 오헬리엉은 단순히 한국에서 몇 년 넘게 살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사람이 아닌 한국 교단에서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보니 아무리 최근에 프랑스에 살지 않았다 한들 그 내용의 신빙성이나 현실 반영도가 뒤떨어질 리 만무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요즘 프랑스의 모습에 입문하기에 최적의 책이었는데 인상적인 것은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사람 사는 곳이란 감상이 절로 나오게 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프랑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책이나 뉴스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는 선에서 아는 것이지 실제로 직접 가봤거나 프랑스인과 대화를 하거나 하물며 프랑스어를 배워본 적이 있다는 사람은 현저히 적을 것이다.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방대하고 또 그런 만큼 선입견 또한 두터운데, 대표적으로 혁명, 미식의 나라, 화가와 낭만의 나라, 나폴레옹, 영국과 경쟁하듯 식민지를 만든 나라 등 좋고 나쁜 것들이 섞였을 것이다. 어느 이미지나 우리나라완 물리적으로는 물론 심리적 거리도 멀거나 정반대인 지라 여러모로 현실에 존재하는 나라라거나 우리와 공감대가 있는 나라라는 인상은 잘 들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와중에 81년생 오헬리엉이 얘기하는 요즘 프랑스에 대한 얘기는 사뭇 흥미로웠다. 다시 말하지만 그야말로 프랑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 사는 곳이란 인상이 드니까 말이다. 물론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역사적 배경도 판이하고 걸어온 근대사 역시 많이 다르기에 당연히 다른 점이 더 많지만 그래도 한 발자국 더 들어가면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정치나 교육 등에서 느껴지는 부정적 인식, 불완전함과 권위주의 등은 닮은 데가 많아 공감하며 읽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기회가 많고 풍요로운 삶을 살았기에 부모가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대목은 의외면서 납득이 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우린 효 때문에 부모의 도움을 받는 현실이 제아무리 어쩔 수 없다 해도 부끄러운 일로 자책하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세상에 데려왔으니 책임과 배려는 부모 쪽에 더 있다는 인식일 텐데... 


 책의 내용이 워낙 다양해서 내용을 정리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단연 좋았던 것을 꼽자면 단순히 프랑스를 소개하고 한국과의 차이를 비교하고 어디가 더 어떻고 좋다는 식의 의견을 덧붙이지 않는다 - 굳이 말하자면 프랑스나 한국보단 오히려 영국을 까는 내용은 좀 있는 편이었다...ㅋ - 는 점일 것이다. 물론 두 나라의 다름이 신기하고 이 부분은 괜찮고 저 부분엔 자성이나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지의 글은 많았지만 이 책은 일단은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 얘기인 터라 작가가 책의 내용들로 하여금 종합된 의견 내지는 주제의식을 끌어내려는 시도를 하진 않았다. 덕분에 프랑스에 대한 거리감이 오히려 더 사라졌고 그 무수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태도, 인종 차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 관광 대국이란 명성에 비해 턱없이 부실한 인프라 등 - 프랑스에 여행을 가거나 단기적으로 살아봤으면 좋겠단 생각까지 들었다. 그 전엔 완전히 다른 나라라는 생각에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로의 차이가 어떤 것이고 서로 사람 사는 곳이란 걸 느낀다는 게 뭐 그리 중요하고 매력적인지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생각엔 무조건적으로 숭배를 하든 무시를 하든 상대에 대한 무지는 상대를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별개의 존재로 선을 긋는 행위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타인과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하는 게 아닐까? 비단 프랑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나 혹은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평소에 자주 접하는 걸 특별한 계기 없이 관심을 가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프랑스와 한국 등 여러 나라의 문화를 경험한 오헬리엉 같은 사람이 쓴 글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특히 요즘처럼 방송으로도 여행을 접하기 어려운 시국엔 여행이나 외국 문화를 엿보고 추억할 신간이 꾸준히 나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행에 대한 갈증이 극심한 사람이 많은지 적잖은 책이 앞다퉈 출간되고 개중엔 그 내용이 그 내용 같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아무튼 - 참고로 이 책은 코로나 이전인 19년도 출간된 책이다. - 우리가 다른 문화에 대한 거리감이 조금씩 사라지게 해주는 책은 요즘 시국에는 그 역할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본다. 

 한때는 <비정상회담>이 매주 월요일마다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줬는데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4년이 된 지금에 이렇게 개인적으로 좋아한 패널이 쓴 글을 읽으니 <비정상회담>을 본방사수했던 기억도 나고 또 방송에서 오헬리엉이 하지 못해 입이 근질거렸을 내용이 사사로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다 담겨있어 실로 유익했다. <비정상회담> 시즌 2 제작은 요원해 보이니 오헬리엉을 비롯해 비정상회담 멤버들의 책이 여럿 출간됐으면 소원이 없겠다. 정말이지 바라 마지않는다. 

다만 빈부 격차, 경직된 계층 제도, 인종 차별 등의 진짜 분열을 해결할 정책을 강구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프랑스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 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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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9.4 







 치바는 자신에게 배정 받은 인간이 죽을 만한 인간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사신이다. 그는 인간을 일주일 동안 조사한 끝에 언제나 '가'를 보고해 해당 인간의 죽음을 확인하고 다시 새로운 인간을 배정 받는다. 치바에게 인간을 배정해주는 부서는 '어차피 똑같은 내용의 보고를 할 텐데 하루만에 보고 좀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대놓고 태업을 권장하고 실제로 치바는 동료 사신들로부터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거 아니냐며 별종 취급을 받기도 한다. 

 치바가 굳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주일을 다 사용해가며 인간을 관찰하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일이니까 할 뿐이다. 추정컨대 그리스 철학자를 담당했을 정도라니까 인간이란 종족을 오랫동안 봐온 만큼 이골이 났을 그에게 새삼 죽음에 직면한, 바꿔 말하면 사신인 자신에게 걸린 인간에게 동정심이 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인간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존재로 여기는 - 오직 인간이 낳은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음악을 듣기 위해 일주일이란 시간을 다 쓰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 치바는 정말이지 인간을 성실히 조사하되 그들에게 감정이입은 하지 않는 쿨한 사신이다. 


 이사카 코타로 최고의 캐릭터라 평가받는 치바가 처음 등장하는 <사신 치바>엔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됐다. 첫 번째 수록작이자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인 '치바는 정확하다'는 왜 추리소설과 관련된 상을 받았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애매한 장르와 허무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추리소설로 명명하기엔 불공정한 단서들과 또 무리수까지 있기에 이 수록작이 수상작이란 게 많이 의아했다. 그렇다고 첫 번째 수록작으로 적합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신의 보기 드문 변덕을 본 것에 의의를 둬야 하나? 바꿔 말하면 인간의 생과 사는 누군가의 변덕으로 결정되는가 하는 어디에도 쓸모없는 교훈만 남았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수록작들도 다 마찬가지다. 네 번째 수록작은 꿈에 그리던 여성과 교제를 시작한 남성이 반전 없이 죽는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해졌지만 이야기의 교훈이나 결말엔 신선한 구석이 없었다. 치바가 사신이기에 벌어지는 해프닝들도 일종의 장난처럼 느껴져 잔잔한 웃음만 던져줄 뿐 특별히 인상적이진 않았다. 아무리 좋게 얘기해줘도 첫 번째부터 네 번째 수록작까지는 평작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섯 번째 수록작인 '살인용의자와 동행하다'는 나머지 수록작 전부를 합친 것보다 압도적으로 좋았다. 앞선 수록작들은 치바와 그가 속한 사후세계의 설정을 설명하거나 치바가 사신인 탓에 벌어진 해프닝을 약간의 추리소설적인 기교로 풀어낸 엔터테인먼트였다면 다섯 번째 수록작부터는 7년 뒤에 출간된 장편 <사신의 7일>에 버금갈 만큼 인간과 죽음에 대한 사색이 짙게 녹여져 이 캐릭터와 시리즈만의 개성이 온전히 전달됐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겪는 일보단 관찰하는 일에 가깝다. 누군들 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고 단지 주변 사람이 떠나는 일은 무수히 겪으며 살아가지 않은가. 추측이지만 이사카 코타로가 치바란 캐릭터를 쿨하게 설정한 이유는 단지 그게 멋있고 때때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서가 아닌 죽음이란 곧 관찰되어지는 것이란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신에게 있어 인간이 죽기 직전에야 자신의 오해를 깨닫거나 자신의 운명을 바로잡는 아이러니조차 아무런 심리적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데 도리어 이러한 쿨함, 혹은 냉정함이 독자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공연히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만들었다. 우리는 대개 삶과 죽음에 대해 얘기할 때 운명이나 아이러니, 희망이란 단어를 섞어가며 뭔가 멋있게 포장하곤 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 모습이 사신이 아닌 제3자가 봤을 때 참 부질없게 비쳐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살인용의자와 동행하다'는 살인용의자인 모리오카를 치바 특유의 심드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후반부에서 반전에 도달하는 추리에 비약이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대단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심드렁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일관해 살인용의자인 모리오카를 동정하게 되지만 그래도 선은 지키고 있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짧다면 짧은 삶 속에서 고통 받으며 실수만 반복하다가 끝내 그 무엇도 만회하지 못한 채 죽는 일이 비일비재하단 진리에 형언할 수 없는 서글픔이 몰아쳤다. 동시에 치바처럼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 없이는 인간은 자신의 삶 속에서 영원히 갇혀 지내는 것 같아 한편으론 죽음이 곧 절망이 아닌 구원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는 희한한 감상이 남기도 했다. 

 마지막 수록작은 반전도 반전이지만 치바 못지않게 캐릭터의 매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사실 반전의 내용이야 얼추 예상이 갔기에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이전 작품의 에피소드나 캐릭터가 언급돼 반가움과 더불어 여운이 제법이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 반드시 절망이 아니라는 명제를 깔고 이야기가 진행돼 독자인 나는 물론이고 치바조차 시종 감탄하며 이야기에 끌려다니기까지 해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그간 치바는 모든 일의 원흉이자 뒷정리를 담당하거나 심드렁한 채 인간을 깔보기 직전인 자세로 음악만 듣던 기본적으로 정적인 캐릭터였으나 이 이야기에선 눈에 띄는 깨달음을 얻지 않음에도 그의 내면에 변화가 생긴 듯해 읽으면서 묘하게 쾌감이 솟아났다. 이렇게 가끔 사신도 감탄시키는 인간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는데, 뜬금없지만 이 부분에서 내 인생의 목표가 막연하면서도 특이하게 방향이 전환됐다. 사신도 당황하거나 감탄할 정도로 지혜 있는 인간이 되자고. 인간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치바의 모습을 보노라니 나 역시 그에 못지않은 인간으로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들었다. 


 이 시리즈는 <사신 치바>, <사신의 7일>까지 총 두 권 나왔으며 세 번째 작품에 대한 소식은 아직 없다. 이사카 코타로가 워낙에 이야기꾼인 지라 아마도 치바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가 언젠가 나오리라 생각하는데... 오래 걸려도 상관없으니 제발 좀 나왔으면 좋겠다. <사신 치바>를 처음 읽었을 땐 그저 쿨하고 독특한 사신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 느낌이 아주 새로웠다. 두고 두고 읽을 듯하니 세 번째 작품이든 네 번째 작품이든 꾸준히 출간되길 소망한다. 

인간이란 종족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은 제쳐놓는다. - 155p



자주 생각하는 거지만, 동물과는 다른 인간만이 가진 고통스러운 일 중 하나는 환멸이 아닐까요. - 240p



그렇게 부질없이 엇갈리기만 하는 게 인간의 특기 아닌가? - 287p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로서는 슬프고 중요한 일이라고. - 3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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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 - 일러스트레이터가 도시를 수집하는 방법
영민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9.2 







 이전에 포르투갈에 관련된 책을 읽고 다른 책은 더 없을까 찾아보다가 이 책도 읽게 됐다.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포르투갈 여행기를 공유하는 일종의 자랑하는 듯한 뉘앙스로 비쳐졌다. 그런데, 사실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일종의 자랑하기 위한 행위지 않은가 라며 나는 애써 그런 뉘앙스를 신경 쓰지 않으며 책장을 펼쳤다. 

 포르투갈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은 대체로 이렇다. 날씨가 좋고 음식이 맛있으며 여유롭고 낭만이 있으며 물가가 싸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관광지라 차분한 분위기의 나라라는 것. 작가가 우연한 기회로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를 한 달 가까이 여행한 내용을 기록한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는 이제는 천운을 타고나야지 외국에 가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암울한 시국에 까닭 모를 따스함과 희망을 안겨줬다. 최근에 친구와의 목포 여행이 불발됐음에도 '괜찮아, 돈 아꼈다 생각하고 다음에 가면 되니까.' 하고 애써 밝게 말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우리가 여행을 그리워하는 한 반드시 기회가 오리라고 확신까진 아니더라도 일종의 위로를 받았다. 뭐, 해외여행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테지만. 당장 파리 올림픽도 무관중이 아닐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비관적인 걸까?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여행기는 내용보다는 느낌 위주라 실질적인 여행 정보를 얻기엔 부적절할 수도 있다고 미리 밝혔다. 하지만 걷기에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는 리스본과 포르투라 그랬던 걸까? 이 목적 없이 골목을 돌아다니는 여정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실질적인 여행 정보로 다가왔다. 로컬들이 갈 만한 루프탑 펍이나 카페, 서점 등 일반적인 여행책에서 잘 나오지 않을 법한 가게가 적잖이 소개돼 그 정보를 접하는 것만으로 현지의 분위기나 작가가 그 가게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간접적으로 전해졌다. 직전에 읽은 <베네룩스 맥주 산책>이란 책은 순전히 맥주의 종류와 맛, 역사에 집중한 서술 때문에 마니악하게 느껴져 맥주를 좋아하는 나도 살짝 지루한 구간이 있었던 반면, 이 책에서의 서술은 전반적으로 과하지 않고 마니악하지 않으며 일러스트나 사진의 양과 배치가 적절해 절로 몰입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러스트를 전공한 작가라 그런가, 시각적으로 감각적이면서 가독성이 돋보였던 책이다. 

 이 책의 집필 시기나 작가가 실제로 여행한 시기가 몇 년이 지난 지라 포르투갈이 작가가 방문했던 그대로의 모습일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포르투갈의 코로나 상황은 자세히 모르지만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워낙에 장기적이고 또 궤멸적인 탓에 무엇 하나 낙관적으로 기대하기가 힘들다. 하물며 유럽에서 가장 인종 차별이 적은 포르투갈이지만 과연 향후에 내가 방문했을 때 그러한 분위기가 여전하리라는 기대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리란 생각도 든다. 아마도 내가 실제로 포르투갈을 방문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뿐더러 마음의 준비도 상당히 필요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거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볼 수 있는 <당신의 포르투갈은 어떤가요>의 내용은 포르투갈이라는 미지의 나라를 나로 하여금 꼭 방문해보리라는 다짐을 굳건히 다지게 만드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위에서 말했듯 난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포르투갈 여행기를 공유하는 일종의 자랑하는 듯한 뉘앙스로 비쳐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뒤틀린 심성의 소유자인 듯 싶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자랑하는 듯한 어조는 별로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당신의 포르투갈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하고 묻는 듯해 내 여행 욕구가 속절없이 들끓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나의 포르투갈은 과연 어떨까. 나는 실제로 포르투갈에 입국하면 어떤 인상을 받을 것이며 실망할 것인지 기대 이상일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과연 10년 안에 해외여행을 할 수 있을까. 꼭 그럴 수 있길 바란다. 

그리웠던 것은 포르투라는 도시에 나를 집어넣는 일이었다. 계획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도시를 느끼는 일. - 4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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