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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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이 작품 주인공인 이름인 미숙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이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내 또래인 90년대생 중에도 간혹 있을 텐데 실제로 미숙이들이 다 '미숙아'라고 놀림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결국 미숙이도 미숙이 나름이긴 하지만, 요즘 세상에 이름이 미숙이라고 해서 미숙아라고 놀리는 건 너무 노골적일 뿐더러 아재 개그라 핀잔을 들을 수도 있으니 정말로 그렇게 놀리는 사람은 적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세상의 따돌림은 훨씬 더 교묘하고 비겁하고 잔인하니까. 차라리 대놓고 미숙아라고만 부르는 건 귀여운 수준이지. 본작의 미숙이의 고통을 폄훼하자는 건 아니지만, 세상이 점점 나쁜 쪽으로 진화하고 있어서 정말 별 감상이 다 나오게 된다. 

 80년대 중후반 출생의 여성이며 가난한 집안에다 언니가 있고 시인인 아빠를 둔 미숙은 나와 크게 공통 분모가 없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여러 이유로 학창 시절을 잘 보내지 못했고 친구가 극히 적고 그 얼마 되지 않은 친구와도 사이가 소원해지는 일련의 전개는 내 삶과 맞닿은 부분이 많아 알게 모르게 꽤나 감정 이입했던 것 같다. 큰 틀에서, 아주 큰 틀에서 봤을 땐 이 작품도 페미니즘을 근간에 뒀다고 할 수 있으나 내겐 그보단 역경을 딛고 일어선 주인공의 성장 만화로 읽혔다. 이래저래 메시지 보단 몰입에 더 초점을 둔 작품이므로 어두운 작풍임에도 생각보다 부담 없이 읽히는 게 일품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가장 골때리는 요소 중 하나로 수틀리면 상대를 비방하다 못해 손찌검을 날리기까지 하는 미숙의 아버지를 꼽겠다. 꼴에 지가 남자고 가장이니 어떤 식으로든 권위가 무시되는 걸 견디지 못해 저러나 싶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가장이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분량이 은근히 많지 않음에도 등장할 때마다 역겨웠다. 그래도 국어 교사들 사이에선 이름이 알려졌을 정도로 괜찮은 시를 썼던 모양이지만 - 그런데 전공의 특성상 시인인 교수를 많이 봤지만, 실제로 인격적으로 어른이라 느껴지거나 닮고 싶은 사람은 내 경험상 정말 거의 없었다. - 예나 지금이나 시인은 직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집안 살림에 별 보탬이 못 됐을 테니 실질적 가장은 미숙의 어머니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길 외조하는 아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해야 정상인데 주인공네 아버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등장하는 장면의 반 이상이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는 장면이다. 돈 잘 벌어오는 회사원이라면 아내를 패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미숙의 엄마가 사람이 무른 것인지 아무튼 집안의 위계 질서가 신기할 정도로 유일한 남자인 미숙의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가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진짜 요즘엔 좀처럼 상상도 못할 풍경이다. 

 그럼에도 미숙이네 학교의 국어 교사는 아버지의 새로운 시집은 언제 나오냐며,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남다르시다'며 칭찬을 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국어 교사는 시집만 보고 한 발언일 테니 악의는 없었겠지만, 안 그래도 아버지 닮아 필력이 좋은 것도 탐탁찮은 미숙에게 그 말은 거대한 반발을 샀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심리적 저항감이 없었다면 재이가 아닌 미숙이 문단에 진출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는 일이다. 


 재이에 대한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주변에 친구와 자기 스스로의 상하 관계를 구분하며 상대를 깔보는 사람이 참 많은데 재이도 결국 그 많고 많은 쓰레기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한결 같이 쓰레기였던 아버지보다 미숙에게 더한 배신감을 안긴 인물인데, 처음엔 미숙과 재이 둘 사이의 우정이 어딘지 심상찮아서 이 만화가 백합물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 사실 이 부분은 지금 생각해도 모호하다. - 이내 미숙의 가정사를 허락 없이 '문학적으로' 만천하에 까발리는 만행을 저질러 둘의 관계는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가슴 아프게도 미숙에겐 재이 입장에선 '만만한 쪼다'로 비쳐진 걸 제외하면 잘못한 점이랄 게 전혀 없고 재이는 철면피라도 깐 듯 나중에 아는 친구를 통해 미숙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무신경하단 것이다. 그렇다 보니 진짜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고 상식이라는 가치에 기대기엔 세상엔 비상식적인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탄식을 시종 굳은 표정인 미숙이 대신 내가 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3부에서 언니가 죽고 남자친구를 만나고 집에서 키우던 개를 미숙이가 독립하면서 데려와 이름을 본래 자신이 정했던 '절미'로 바꾸는 전개를 내내 불안하게 지켜봐야 했다. 언니의 죽음도 결국 아버지가 남긴 유전적인 문제가 원인이라 더 비극적이었는데, 나는 내심 미숙이에게 이보다 더한 비극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남자친구도 지금까지의 분량 안에선 꽤 건실한 사람인 듯하고 절미도 미숙이가 극진히 보살펴 자기 똥을 먹지 않는 등 우려했던 것에 비해 여운과 희망이 넘치는 결말이라 가볍게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었다. 속시원히 해결된 갈등도 없고 적절히 죗값을 치른 인물도 없지만 그럼에도 상관없이 세상은 돌아가고 주인공인 미숙 역시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열린 결말에서 독자인 나 역시 까닭 모를 정도로 큰 위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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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개
하세 세이슈 지음, 손예리 옮김 / 창심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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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 5년째 되는 지금에 이 책을 읽으니 난 사실 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반려견을 안락사시킬 때 얼굴의 피부에 경련이 올 만큼 울었었고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지만 시간이 약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반려묘를 무려 세 마리나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그날의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개를 다룬 소설이라기에 읽으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소년과 개>를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나오키상 수상작이란 것치고 서사적으로 그리 촘촘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집으로 내용으로만 따지면 일본의 그 유명한 하치 이야기에 비견될 만한 감동적인 서사를 자랑하면서 눈물을 쥐어짜는 듯한 신파적인 문체가 아닌 담백하면서 가독성 있는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글쎄, 이 가독성 있는 문체란 것이 담백하게 집필된 덕분도 있지만 촘촘하거나 무게감이 있는 문장이나 서사와는 거리가 멀어 구현된 장점이라 생각하는데, 저자가 본래 누아르 작품을 쓰던 분이라 당초 예상보다 개와 일종의 거리감을 둔 듯한 문체가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나오키상 심사평을 보니 미야베 미유키가 '개를 의인화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낸 감동적인 수작' 이라고 하던데, 잘은 몰라도 동화가 아닌 이상 개를 의인화하는 작품이 그렇게 많나 싶어 그게 이 작품만의 장점인지 잘 모르겠으나 '개와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큰 부담감 없이 읽히리란 점에서 말이다. 


 개를 싫어하다 못해 공포를 느끼는 사람 앞에서 아무리 개가 위대한 동물이라고 떠들어도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저자가 서두에서 개는 인간에게 가르침을 주는 동물이라며 예찬을 하길래 이 작품 자체도 개에 대한 근거 없는 예찬으로 점철됐으면 어쩌지 하고 우려됐으나 누누이 말했듯 신파적으로 흐르지 않고 상당히 자연스런 감동을 연출했다. 재밌는 건 개는 가만히 있는데 그 개를 대하는 사람들이 자기들 멋대로 깨닫고 삶을 돌아보고 모종의 결심을 하는 장면들인데, 인간을 향한 개의 무조건적인 태도로 하여금 인간이 모종의 깨달음을 얻는 구도가 워낙에 흔한 클리셰고 이 책에서만도 여섯 번 반복되기에 뒤로 갈수록 지겨웠던 걸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서사에 특별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예상했던 대로 어느 정도는 감성에 호소하는 측면이 강해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어필할 만한 작품이리라곤 장담하진 못하겠다. 그럭저럭 감동적이라고 느낀 내가 너무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인 걸까? 

 하나 격하게 공감한 것은 동물은 인간에게 큰 감정은 없지만 인간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동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는 대목이었다. 그를 제외하면, 난 아직까지 동물에게 매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하지 않았는지 이 여섯 편의 단편이 안일하게 반복되는 시나리오란 감상만 나왔을 뿐이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둘러싸면서 감동적이라고 하면서 심지어 나오키상을 수상한 걸 보니 이 책을 작가의 문체 그대로 덤덤하게 읽은 내 스스로가 다소 얼떨떨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건가? 차라리 신파가 더 효과적이었으려나? 마지막 수록작이자 표제작인 '소년과 개'에서 살짝 위태로운 순간이 있었지만, 어쩌면 마음속 깊이 묻어둔 탓에 더 이상 개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여력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고 분석하게 됐다. 


 누가 누아르 작가 아니랄까봐 개의 이야기라고 예상했던 것에 비해 수위 높은 범죄 묘사도 나오고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힘들 만큼 강렬한 결말에 이르게 되니 순전히 개의 이동, 개가 이동하는 목적에 몰입하기 힘들었던 측면도 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이 굳이 개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서사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이 충만했는데 개가 등장함으로써 서사가 느슨해지고 획일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어 이 점이 단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대중소설에게 수여되는 상이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나오키상인데 이렇게 느슨한 서사여도 괜찮은 건가 하는 의구심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개를 등장시킨 소설로 나오키상을 받은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니 너무 어깃장을 놓고 싶지 않지만, 솔직히 말해 언제부터 나오키상 수상이 이렇게 쉬웠나 하고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물론 이 작품이 쉽게 집필된 작품이라는 말은 아니다. 획일적인 서사긴 해도 사람의 이야기나 사람들이 개와 교감하는 이야기는 결코 안일하게 그려졌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과 개가 교감한 역사가 무척 길기도 하고 실제로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모두가 알 만한 장면을 다룬 서사가 나오키상 수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반려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지 5년이 지난 탓에 내 감성이 덩달아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교감의 이야기가 아직도 너무 당연한 탓에 이 소설의 내용이 강렬하지 못했던 것인지... 난 후자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무슨 연유인지 잘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저자가 범죄를 그리는 솜씨가 보통내기가 아닌 듯해 저자가 주특기라는 누아르 작품이 읽고 싶어졌다. <불야성>이라는 작품이 상당히 유명하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정작 그 소설을 읽었는데 어색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들지만, 뭐... 왠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보단 읽을 만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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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미술관 산책 - 파리, 런던, 뉴욕을 잇는 최고의 예술 여행 미술관 산책 시리즈
최경화 지음 / 시공아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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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일전에 읽은 <런던 미술관 산책>이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당연히 <스페인 미술관 산책>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페인의 미술관 중 몇 곳은 내가 버킷 리스트에 넣은 곳이기도 해 저자가 그곳의 대표작을 어떻게 소개해줄는지, 그리고 그밖에 알려지지 않은 스페인 명화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미술관엔 어떤 작품이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알기론 스페인은 영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거의 자국 화가의 작품으로 미술관을 꾸린 것에 자부심이 있는 나라다. <런던 미술관 산책>에서 내가 모르고 지냈던 좋은 영국 화가, 영국 그림을 소개받았듯 이 책도 내가 몰랐던 신세계를 선사해주지 않을까 하며 적잖이 기대를 품었다. 

 허나 같은 시리즈에 속했을 뿐 저자도 다르고 저자의 전공도 엄밀히 말해 미술 쪽도 아니고 무엇보다 두 책의 방향성이 달라 내 기대는 상당 부분 어긋났다. 내가 이 책을 먼저 읽었다면 <런던 미술관 산책>을 그토록 기대했을까 하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책의 제목을 차라리 '마드리드 미술관 산책'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로 마드리드에 있는 미술관에 비해 바르셀로나나 빌바오에 있는 미술관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내가 몰랐던 신세계에 대한 갈망은 채워지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카탈루냐 미술관이나 미로 재단, 빌바오에 있는 그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엔 어떤 대표작이 있을지 궁금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도 그 미술관은 그냥 미술관 자체가 더 유명하단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저자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작에 대한 소개는 어땠느냐면, 말 그대로 그 미술관의 대표작과 그 그림들을 그린 화가를 소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마찬가지로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다. 프라도 미술관이 책의 초반을 장식하는데도 처음부터 흥미가 반감된 채로 읽게 된 셈이다. 계속 비교하는 게 저자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새삼 <런던 미술관 산책>이 대단히 뛰어난 미술 서적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책에선 해당 미술관의 대표작 여부를 떠나서 런던, 나아가 영국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 위주로 소개해 굉장히 신선했고 - 누가 영국 미술관에서 'made in 영국'은 건물과 경비원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건 틀린 말이었다. - 그럼에도 대표작들을 차마 소개하지 않고는 못 지나가겠는지 뒤에 따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이라고 소개하는 걸 놓치지 않아 구성적으로 매우 풍부하고 다채로웠던 기억이 난다. 

 <런던 미술관 산책>은 2010년에, 이 책 <스페인 미술관 산책>은 3년 뒤인 2013년에 출간돼 저자가 같은 시리즈의 이전 책을 참고할 만도 했는데... 이 특성이 미처 이어지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비롯해 여러 스페인의 명화는 확대도 하고 긴 시간을 들여 설명을 곁들이는 등 가독성을 높인 점과 왜 이 작품들이 명화라 칭송받는지 그 이유를 저자가 원래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솔직하게 자기도 몰랐었는데 하고 운을 떼는 점은 사뭇 인상적이었지만 말이다. 이 책으로 스페인의 미술 세계를 처음 접할 독자에겐 좋은 입문작이자 길라잡이가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진입 장벽도 굉장히 낮아서 읽는 데엔 여러모로 부담이 없었다. 이는 그만큼 깊이가 얕다는 말과도 같지만...... 생각해보니 이와 비슷한 감상을 작가의 다른 책인 <포르투갈, 시간이 머무는 곳>의 포스팅에도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진입 장벽이 낮은 길라잡이 책을 집필하는 것에 특화된 작가인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이 책을 실컷 까긴 했지만, 달리 보면 진입 장벽이 낮고 길라잡이가 될 만한 책을 쓰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재주인 만큼 분야가 다르긴 해도 작가를 지망하는 내가 함부로 씹고 뜯을 만한 작가가 아니란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쉽게 읽히는 문체를 얕잡아 본 적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이 포스팅을 마무리하려는 지금 어딘지 '주제 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자존감이 낮은 탓이겠지? 그래서 매우 뜬금없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참,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참 많은 것 같다. 당장 이 책에 관련된 이유만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나 고야의 <1808년 5월 3일>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의 건축물들과 피카소 미술관에서 피카소의 <시녀들>을, 소로야 미술관에서 소로야의 작품들과 미로 재단에서 미로의 작품들을, 그리고 책에서 다뤄지지 않았지만 달리 미술관에서 달리의 작품들을 감상해야 하니까 말이다. 시국을 떠나서 내게 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그리고 착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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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1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 -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
김금숙 지음, 정철훈 원작 / 서해문집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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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퀴즈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내가 모르고 지내던 우리나라의 위인들의 존재를 알게 되기도 하는데 이 책을 읽을 때의 느낌이 그때와 비슷했다. 내가 진짜 식견이 좁긴 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 업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데엔 어느 정도 이유가 있다고 고개가 끄덕거려지도 했다. 이 책의 표지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라고 김알렉산드라라는 인물을 수식한다.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라니, 볼셰비키라는 단어 자체가 여러 이유로 일상적이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업적을 달성했음에도 김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것엔 어떤 의미에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다. 

 사회주의, 인민, 혁명, 노동운동... 사전적 의미나 최초의 의도완 다르게 점점 변질되다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단어들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말하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이란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서 저 단어들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일은 없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이나 노동운동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지만 사회주의나 인민은 정말 돌이킬 수 없다. 특히 인민은, 그 단어의 본뜻을 생각한다면 참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뜻을 곡해한 채 남발하는 소련, 중국, 북한은 인민이란 단어에 대한 어마어마한 실례를 저질러버렸다. 그렇게 인민을 상대로 통제하고 감시하고 학살하고 지들 입맛대로 벗겨먹을 때 명분으로 내세우라고 있는 단어가 아닌데. 


 의외로 그런 경우가 많지만 받아들인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단어가 원래 가졌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인식되는 단어로 인민을 넘어서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사실, 이슬람교부터 시작해 그런 단어나 개념이 몇 개 더 떠오르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그 단어들과 관련된 포스팅에서 얘기해보기로 하겠다. 아무튼 이 책은 그래픽노블이란 장르에 걸맞게 만화다운 가독성보단 정보와 메시지 전달에 주력하는 책이다. 때문에 배경 지식이 거의 없거나 관심이 없었다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텐데, 뿐만 아니라 사실상 김알렉산드라를 제외하면 우리가 정을 두거나 눈길이 자연스럽게 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도 전무해 아무리 실화 바탕이라지만 엄연히 그림이 있는 형식의 작품임에도 그냥 역사책처럼 읽게 돼 그 딱딱함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그 점은 반대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사회주의가 어찌 됐든 인류 역사에서 왜 중요하고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 납득시키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이미 실패가 검증됐음에도 배워둬야 하는 이유를 학창 시절의 윤리 시간엔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역사를 가미해, 이렇게 한 인물의 생애를 쫓아가다 보니 비로소 그 필요성이 이해됐다. 그리고 표지에선 '조선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라고 보기 쉽게 수식했지만, 김알렉산드라의 이야기는 비단 조선만의 이야기가 아닌 동아시아를 넘어 극동 러시아,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이야기임을 강조하는 터라 저 수식은 약간 의미가 맞지 않는 표현이라 생각됐다. 맞는 비유인지 모르겠는데, 김알렉산드라를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라고 하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외국인 부부한테 입양된 아이가 나중에 유명 인사가 됐을 때 '자랑스런 한국인'이라고 언론에 보도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김알렉산드라는 조선에서 태어났을 뿐 사실상 러시아에서만 활동했기에 본인이 조선 출신이란 것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며 정체성을 가졌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 김알렉산드라 여성 노동자이자 운동가로서의 자부심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죽기 직전 법정에서 '여성으로서 죄를 뉘우치라'고 제안받았을 때 그건 세상의 절반인 모든 여성들을 배신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니, 대체 '여성으로서' 죄를 뉘우치라는 건 또 뭔지? 발언 자체가 역겹기 그지없어 김알렉산드라가 꽤 시원하게 되받아쳤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나의 분노가 미처 다 가시지 않을 정도였다. 

 20세기 초반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모든 나라가 민족주의로 미쳐 날뛰는 한편으로 지금보다 사람들이 훨씬 글로벌하고 국경이 없다시피 지냈다고 느끼곤 했는데 이 책에서도 또 한 번 느꼈다. 특히 노동자를 부려먹고 여성이라 더 무시당하고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받지 못한 이에겐 동일한 욕구가 있다는 걸 통해 진정 국경따윈 무의미한 인간으로서의 동지애라는 게 있긴 하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그 덕분인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지금까진 돌이키기 힘든 흑역사의 출발점으로 인식하던 내가 처음으로 그 혁명이 정말로 시작만큼은 희망 가득한 것이었겠음을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됐다. 정작 그 뒤가 문제였지만 그만한 혁명이 일어나고도 남을 이유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뤄져서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 말미에 김알렉산드라의 연보도 수록됐는데 거기서 김알렉산드라가 2009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고 적혀 있다. 이 책의 내용 외의 다른 정보는 모르는 내게 있어 김알렉산드라가 건국에 이바지한 위인이라기엔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라서 정확히 애국장이 추서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건 다른 책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고, 내가 봤을 땐 이 책에서의 김알렉산드라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선구자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여성의 몸으로 전설적인 업적을 남기기 쉽지 않은데 100년도 더 전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아마 이 책의 내용이 실화가 아닌 픽션처럼 느껴지는 이유일 터다. 

 아무튼 그 덕분에 그래픽노블로는 가독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역사책으로 생각한다면 짧고 쉽게 넘어가고 임팩트가 상당해 알게 모르게 공부 좀 했다는 보람마저 안겨주는 책이었다. 정말이지 위에서 언급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단어들이 그 강을 건너기 전엔 좋은 의미로도 사람들 입에 쓰였겠구나 하고 몇 번을 체감했는지 모른다. 이 책의 원작이 되는 책과 그림을 담당한 김금숙 작가의 다른 책도 이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으니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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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없는 동물원 - 수의사가 꿈꾸는 모두를 위한 공간
김정호 지음, 안지예 그림 / Mid(엠아이디)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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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몇 년 전에 어린이대공원에 간 적이 있었다. 난 어렸을 때 그 공원에 간 기억이 없어서 그 안에 동물원이 있는 줄도 몰랐고 설마 코끼리까지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동물원 특유의 동물 냄새와 미묘한 배설물의 냄새를 맡으면서 멀리 있는 코끼리를 바라보며 쟤네는 이곳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괜히 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 입장에서야 괜히 왔을 뿐이지만 평생 여기서 지냈고 자기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는 동물들 입장에선 이 동물원이란 공간이 대체 어떤 곳일까 생각해볼 법도 했지만, 그땐 그저 거부감만 들었다. 

 <코끼리 없는 동물원>은 동물원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동물, 원>에 등장했었다는 청주 동물원의 수의사인 저자의 에세이집이다. 덤덤하고 따뜻한 문체로 동물과 시선을 맞추며 어떻게든 동물원을 동물들의 본성에 맞게끔 최대한 살기 좋게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수록됐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동물들과 이름도 처음 듣는 동물들이 많아서 순서대로 소개되는 그들의 이야기, 동물의 본성에 대한 수의사의 전문적인 시선과 그 동물의 본성에 따라 바뀌는 동물원의 시스템도 대단히 흥미롭게 읽혔다. 아쉽게도 저자가 필력이 좋은 편이긴 하나 전문 작가까지는 아니라서 반복되는 글의 전개에 뒤로 갈수록 지루해지긴 했는데 이분의 인격이나 철학이 느껴져 뒷장을 저항감 없이 넘길 수 있었다. 이분이 출연하신다는 영화도 나중에 볼 생각이다. 영화라면 조금 더 흡입력 있게 동물 이야기가 다뤄졌을 테지. 


 2020년 초에 코로나에 대응하고자 유럽에서 시행된 극단적인 봉쇄 조치로 인해 독일의 동물원에서 동물들이, 주로 인기 없는 동물들부터 순서대로 안락사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한 일이라지만, 관람객을 위해 경쟁력 있는 동물들을 모아 애지중지 키웠을 동물들을 너무 개죽음으로 내모는 게 아닌가 싶어 그 기사를 접하고서 인간의 이기심에 분노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코끼리 없는 동물원>에선 - 여담이지만 위의 동물원 논리대로라면 코끼리야말로 어느 순서에 안락사를 당할까? 돈이 많이 드니까 의외로 금방 순서가 올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 공간의 특성상 한도 끝도 없이 동물만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없지만, 절충과 합의를 거쳐 동물들로 하여금 심신이 괜찮은 공간으로 여겨지게끔 노력하는 저자의 이야기 내지는 철학을 접할 수 있어 진정 동물을 위한 공간이란 무엇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대공원에 가기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동물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없앨 수 있으면 다 없애버려야 하는 곳으로 여겨왔다. 물론 동물을 연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필요한 공간일 순 있겠지만, 이 책의 저자도 얘기했듯 동물원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심을 우선한 공간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서 삶 전체가 희생당해야 하는 동물들 입장에선 감옥 그 이상의 공간이다. 감옥은 지은 죄가 있으니 못 나오는 거지만 동물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건 아니잖은가. 그런 의미에서 감옥과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모든 변화에는 그에 적절한 속도가 있으며, 또 동물원에서 태어나 야생이 뭔지 모르고 건강의 문제로 동물원에 있을 수밖에 없는 동물들을 생각해서라도 동물원은 여러모로 당장 없애기엔 시기상조란 것을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게 된 사실이다. 결국 동물원에서 그 누구보다 동물을 우선하며 동물의 삶의 개선에 가장 관심이 있고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바로 동물원의 직원들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새로이 알게 됐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동물원 직원들이 무슨 악의 축이라 다 같이 합심해서 동물원 우리를 지은 것도 아닐 텐데 우린 왜 그토록 싸잡아 동물원을 안 좋게 봤는지 모르겠다. 

 따라서 동물원 직원들의 태만을 의심하되 그들의 열정과 철학을 지지해야겠다며 책을 읽기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감상이 도출됐다. 난 아마도 어지간하면 동물원에 제 발로 갈 일이 앞으로도 없을 테지만 그전까진 무조건 불편하고 빨리 나가고 싶은 공간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그 공간을 최대한 동물에게 편한 공간으로 꾸미고자 하는 직원들의 노력을 떠올리고 발견하려고 노력할 테니 그 공간이 마냥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제 발로 갈 일은 없을 것 같으나 최소한 동물원을 경시하고 봐선 안될 일임을 염두에 둬야겠다고 읊조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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