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쏘다 반니산문선 4
조지 오웰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9.3


 인상적인 제목의 표제작과 첫 번째로 수록된 '너무나 즐겁던 시절'이 기억에 남는 조지 오웰의 산문집을 읽었다. 조지 오웰의 대표작은 흔히 <1984>와 <동물농장>이 꼽히는데 두 작품 다 안 읽었다. 아니 못 읽었다. 읽다가 흥미를 못 느껴서 이탈했다. 이 산문집을 다 읽은 지금은 두 작품을 다음엔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읽어야겠노라고 벼르고 있다. 일단 그 전에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는 <버마 시절>부터 먼저 읽어야지. 표제작 '코끼리를 쏘다'처럼 이국적이고 특별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 사뭇 기대된다.

 조지 오웰은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에세이스트로서의 명성도 상당하다는데 대표적인 에세이로 스페인 내전 참전을 바탕으로 쓴 <카탈루냐 찬가>를 들 수 있겠다. 아무튼 이 책엔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는 짧고 인상적인 제목의 에세이가 총 일곱 편 수록됐다. 위에서도 말했듯 첫 번째로 수록된 '너무나 즐겁던 시절'과 두 번째로 수록됐으면서 표제작이기도 한 '코끼리를 쏘다'가 제일 인상적이었고, 그밖에 '사회주의자는 행복할 수 있을까'와 '영국적 살인의 쇠퇴' 등의 글은 나름대로 흥미로웠지만 제목이 주는 기대감을 충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짧은 분량임에도 오웰의 시선, 절대주의를 혐오하고 목적성을 띈 정치적 글쓰기에 대한 소신을 확실히 엿볼 수 있어 여러모로 충족감을 안겨주는 글들이었다. '나는 왜 쓰는가'는 내가 나중에 <1984>와 <동물농장>까지 읽고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저자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입장과 당시 가졌던 마음가짐이 부분부분 언급돼 해당 작품을 읽고서 그 글을 접하면 더 감명 깊게 읽힐 듯하다. 


 '너무나 즐겁던 시절'은 오웰이 자신의 학창 시절을 통해 아동의 인권에 대한 고찰과 동정심을 드러낸 수준급 에세이다. 길이도 제일 길고 실제로 다루는 에피소드도 다양하고 많아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다. 속물적이고 폭력적인 학교, 지금 기준으론 도저히 빈말로라도 학교라 부르기 힘든 인권 유린의 현장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반면교사 삼아야 하며, 조지 오웰이 그렇듯 보상 심리를 가질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린 시절을 불합리하다 여겼던 만큼 지금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태도로 배풀어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뜻깊은 글이었다.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으로 가감없이 묘사된 폭력 교사나 부자 가문의 자제들의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는데 나도 그렇게 묘사될 만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아주 철저히 반면교사 삼으려고 한다.

 '코끼리를 쏘다'는 오웰이 제국주의 경찰로 버마(지금의 미얀마)에 근무할 당시에 겪었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고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다룬 짧은 글이다. 오직 피식민지인들인 버마인들 앞에서 체면을 구길 수 없단 이유로 코끼리를 쏴죽이는 내용인데, 발정난 코끼리라는 심증만 있는 상태에서 소보다 안전해 보이는 눈앞의 코끼리에게 무자비하게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너무 사실적이고 그에 대해 뉘우치거나 훗날 여러 정황 증거로 인해 면죄부를 받는 순간에서도 부끄러워하는 묘사가 일품이었다.


 여담이지만 오웰이 행동하는 지식인이긴 하지만 '코끼리를 쏘다'의 경우 작가가 스무살 초반이었던 지라 그 당시의 감정이 깊이가 얕고 버마인들에 대한 감정이 썩 좋지 않으며 서스럼없이 '노란 얼굴'이란 표현을 쓰는 등 작가의 명성에 비해 좀 깨는 구간이 몇몇 있다. 그래도 결국 제국주의 시대 영국에서 태어나 시대적 한계로 인해 차별적인 언행을 보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얼마든지 멋있게 포장할 수 있음에도 그렇지 않았던 건 그냥 작가가 에세이 특유의 자기 고백적 성격에 충실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뭐, 그래봤자 '백인의 의무' 같은 개소릴 운운했던 키플링의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이 점 유의하며 읽으면 보다 흥미로운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오히려 이런 솔직한 태도가 작가가 그토록 추앙받는 비결이려나? 작가의 소설들도 읽어봐야겠다. 올해가 바로 조지 오웰의 진정한 명성을 확인해볼 시기인 것인가! 새해부터 좋은 글을 읽어 올해 어떤 좋은 책들을 접할지 몹시 설렌다. 


‘내가 저지른 무엇인가‘만이 죄가 아니었다. ‘내게 일어난 무엇인가‘도 죄가 될 수 있었다. - 15p


아이가 정말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기란 몹시 어렵다. 겉으로는 아주 행복해 보이는 아이도 실제로는 드러낼 수 없거나 드러내기 싫은 공포에 시달리고 있을 수 있다. 아이는 일종의 이질적인 수중 세계에 살고 있고, 우리는 기억이나 점술을 통해서만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단서는 우리도 한때는 어린아이였다는 사실뿐이다. - 93p


아이의 약점은 백지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시하지도 않는다. 또한 무엇이든 쉽게 믿기 때문에 남들에게 쉽게 휘둘린다. 남들의 농간으로 열등감에 쉽게 빠지고, 이해할 수 없고 가혹한 법을 어기는 데 대한 공포에 쉽게 물든다. - 97~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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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밀실살인게임 3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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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0


시리즈 전편의 스포일러 있음 


 이 시리즈는 뭐랄까... 1편에서 끝냈어야 하는 게 나았다고 본다. 2편으로 본격미스터리대상을 수상하고 3편은 세계관을 더욱 확장시켰지만 그래도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1편의 다섯 주인공의 캐릭터를 모방한 새로운 다섯 명 살인게임을 즐기는 2편의 설정은 다소 억지스러웠고, 3편에서 1인 5역을 하며 불특정 다수에 문제를 내거나 아예 살인 생중계를 하는 건 참신했지만 아무래도 우려먹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덕 관념이 마모된 인물들을 통해 인터넷 기술, 익명성의 병폐를 낱낱이 묘사하거나 극한의 악과 더불어 유희를 추구하는 방향성 자체는 그래도 이 시리즈만의 개성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그럼에도 2편과 3편이 1편보다 못한 아우라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데엔 아무래도 유희로 다뤄지는 트릭들의 퀄리티가 그닥이기 때문이 가장 크다. 낭만의 복권이니 뭐니 떠들면서 이유도 목적도 없는 살인이 범람하는데, 그 사고방식 자체도 역겨운데 살인 방식과 해답이 드러나는 연출도 상투적이고 구려서 뒤로 갈수록 빠져들긴커녕 점점 의무적으로 읽게 됐다. 원한이 끓어올라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동기가 전무한 채 오직 유희 때문에 살인에 손을 대는 인물들을 보노라면 긴장감이고 완전범죄의 성사 여부고 뭐고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히 지루할 수밖에.


 1편의 5인방은 진즉에 무대를 떠났건만 수준 미달인 캐릭터들이 선배의 인기에 편승하는 듯한 분위기도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오리지널' 두광인, 잔갸군, 반도젠 교수, aXe, 044APD는 캐미도 재밌고 생김새나 말투, 그리고 선보이는 트릭도 모두 개성적이라 희대의 살인마들임에도 쉽게 부정하기 힘든 매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편부터는 그저 어설픈 반복에 전편보다 더 선을 넘은 트릭이 나와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마 2.0 잔갸군이 자신의 작은 체구를 활용해 시체 속에 은신한다는 트릭은 꽤 볼 만했지만, 2.0 두광인은 실망스러웠고 2.0 044APD는 허무했다. 2.0 aXe와 반도젠 교수는 너무 수수했고... 3편의 1인 5역 범인은 미친 정도로 따지면 시리즈 전체에서 으뜸이지만 선사하는 트릭의 기발함이나 완성도는 끽해봐야 중위권 수준을 맴돈다. 개인적으로 원격 살인과 투명 망토 트릭은 좋았지만. 특히 투명 망토 트릭을 얘기하면서 작가가 직접 개입하는 듯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이 얘길 하려고 이 시리즈를 집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트릭이 너무 쉬우면 실망이라 하고 너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뭐라 하고... 우타노 쇼고는 추리소설가의 고충을 작품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토로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어느 정도 본격추리소설적인 요소가 들어가지만 그래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포착하고 비판하는 작가의 시선을 높이 사왔던 터라 순수하게 트릭을 추구하는 추리소설가로서의 고충은 나름대로 신선하게 읽히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살인을 전제로 한 트릭만 다루는 걸까? 작가는 작중 인물들 중 그 누구의 입을 통해서도 이에 대해 고찰하지 않는다. 살인이란 극단적인 범죄와 추리소설적 트릭은 별개의 개념 아닌가? 작가가 깊이 생각하지 않은 주제인지 모르겠으나 그에 대한 고찰이 동반하지 않으니 작중 인물 모두가 살인을 저지르고 싶어 안달이 난 참에 밀실살인게임이란 좋은 핑곗거리를 접했다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점이 1편과 후속작 두 편의 평가가 갈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작가가 작품을 통해 뭘 토로하는 건 좋은데 2편과 3편, 분량으로 따지면 전부 합해 700페이지가 넘는데 그 안에 이 시도 저 시도 참 다양하게도 하느라 밀도와 완성도가 1편에 뒤진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다. 본격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알겠으니 4절은 그만 듣고 싶다. 만약 4편이 나온다면 1편의 5인방의 캐릭터성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등장인물과 시스템을 고안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우려먹은 나머지 두광인의 다스베이더 마스크에 대한 묘사만 나와도 신물이 나올 것 같으니 말이다.

 마니악스가 출간된 지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고 4편이 나올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우타노 쇼고의 신작 소식 자체도 안 들린다. 추리소설에 관한 아이디어와 애정이 넘치는 작가인 만큼 <벚꽃~>이나 '밀실살인게임' 시리즈 같은 작가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을 집필하기를 팬의 입장에서 간절히 기도한다. 

이 행위는 못된 장난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저 행위는 무거운 범죄다. 그렇게 선을 긋는 기준은 뭐지? 개인의 감각이야. 사람마다 다르다고.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 약국 앞의 개구리 마스코트를 훔쳐가는 건 괜찮지만, 그 마스코트를 창문에 집어던져서 유리를 깨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 또 어떤 사람은 유리를 갠 것까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깨진 틈으로 안에 들어가서 금전등록기를 털면 안 된다고 선을 그을 거야.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안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빌리거나 물을 마시는 정도는 괜찮다고 여길 수도 있고. 어차피 보험에 들었을 거라며 영양 드링크나 위장약을 실례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약국에서 잔업하던 점원을 때려죽이고 ‘잔업 수당 늘리려고 일하지 마라.ㅋㅋ‘ 라고 트윗하는 녀석이 있다고? - 196~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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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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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8.4


 <화이트 래빗>은 이사카 코타로가 간만에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으로 쓴 범죄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러시 라이프> 같은 초창기 작품에 자주 출연한 도둑 구로사와가 오랜만에 주역으로 등장하고, 때마침 토끼의 해가 얼마 남지 않았던 연말에 토끼와 관련된 소설을 읽어서 묘하게 반가웠던 소설이다. 게다가 소설의 문체가 내가 좋아하는 <레 미제라블>을 패러디한 문체인 터라 그 점도 인상적이었다. 옛스러운 걸 넘어 가끔은 촌스럽게도 느껴졌지만 오히려 그 점을 노리고 쓴 것 같아 나중엔 순수하게 즐기면서 읽게 됐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즐거움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철학적인 요소가 다분했던 다른 작품에 비해 트릭과 반전에 공을 들인 작품이라 작가 특유의 퍼즐식 구성을 기대했다면 만족을, 반대로 내적 깊이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싱거울 수 있다. <레 미제라블>을 비롯해, 오리온자리, 토끼 등 여러 소재가 다뤄지지만 의미 있게 활용되기보다 그때그때마다 이야길 원활하게 풀어나갈 소도구로 기능할 뿐이다. 이 소재들에 얽힌 잡설 또한 가볍게 읽고 넘어가면 됐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에선 짧게 언급되는 잡설도 놓쳐선 안 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터라 이런 가벼움이 2% 부족한 아쉬움을 자아냈다.


 재밌고 유쾌했던 작품이지만 재독하거나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평하기엔 약간 주저된다. 주역인 구로사와라는 캐릭터가 하도 오랜만이라 외려 낯설었고 작가의 다른 캐릭터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매력적이라 구로사와가 출연한 작품이라며 소장할 생각까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상술했듯 작가가 철학적 깊이를 크게 노리지 않고 집필된 작품이라 다시 곱씹을 만한 얘깃거리가 사실상 없었다. 서사도 트릭의 놀라움에 비해 꽤 단순해서 재밌었지만 두 번이나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다.

 작품의 핵심 트릭은 분명 후반부에 그 내막이 밝혀졌을 때 놀랍긴 했지만 놀라움을 제외하고 봤을 때 대단한 의미가 있었나 싶다. 뭐하러 이리 복잡하게 썼을까 하고 의문이 남자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훌륭한 트릭이다. 하지만 오직 놀라움과 즐거움에 주목했지 작품 내적으로 긴밀하게 얽혀있는, 이른바 그 트릭을 써야만 주제의식이 살아난다는 감탄이 나오지 않으니 엔터테인먼트 소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감상이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론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란 정체성이 작품의 단점이라 얘기할 순 없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라 나도 모르게 까다롭기 그지없는 잣대를 들이대는 듯하다. 이렇게까지 깔 만한 작품이 아닌데... 연말이라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작중 활극이나 드라마의 묘미가 스며들지 못했던 것 같다. 작가가 바라듯 그저 즐기며 읽으면 그만인 것을.

 그래서 나중에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내가 작가의 팬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지금보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읽으면 뭔가 다른 감상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만약 다시 읽는다면 <레 미제라블>을 읽은 다음에 읽어보는 게 좋겠다. 그럼 등장인물들의 수다나 인용이 더 반가우면서 감동적으로 읽힐는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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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본미술 순례 1 - 일본 근대미술의 이단자들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연립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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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친구가 생일 때 선물해준 책이다. 선물받고 자그마치 반년이 지난 뒤에 읽었는데, 내 평소 생활 패턴을 생각하면 일찍 읽은 편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하면 친구가 내가 딱 좋아할 만한 책을 선물해줘 그 친구의 안목이 새삼 고마웠다.

 사실 누군가 선물한 책을 읽을 때 기대만큼 불안이 앞선다. 그도 그럴 것이 타인이 내 취향에 100% 들어맞는 책을 선물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 손으로 고른 책도 기대를 배신하곤 하잖은가. 그렇다고 읽고 별로였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그런 이유 때문에 반년이나 뭉그적거린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반년이건 얼마만이건 간에 미술 서적만이 주는 감동을 고스란히 갖춘 책이어서 읽는 내내 흥미롭고 시종 포만감 넘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책에서 소개하는 화가들은 일본의 근대 화가들이다. 전부 처음 듣는 이름들이고 작품도 처음 접했다. 흔히 일본 미술이라고 하면 우키요에를, 작가 이름은 샤라쿠나 호쿠사이 정도만 알았는데 그 이후의 근대, 고흐와 피카소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일본의 화가는 일자무식이었다. 그래서 생소했지만 한편으론 저자가 한국 독자에게 소개하고픈 화가들이라기에 제법 기대가 됐다.

 더군다나 서문에서 저자는 질병과 전쟁으로 분위기가 황폐해진 세상에 미술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미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하고 자문하며 책의 본문을 집필했다고 밝히는데 이와 같은 주제의식도 독서의 몰입감을 드높였다. 비록 저자가 감동을 받았던 것처럼 소개된 화가들의 생애와 작품이 모두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책에 왜 이 일곱 화가를 소개했는가 언급하는 저자 나름대로의 이유와 목적만큼은 진정성이 있어 흘려 읽지 않게 됐다.


 책에 소개된 화가들의 공통점은 천재성과 요절, 그리고 암울한 시대에 의해 희생된 양심적 지식인이라는 것이겠다. 특히 군국주의에 찌들어 전쟁을 일으키고 국가를 위해서랍시고 자국의 젊은이들을 닥치는 대로 사지로 내모는 일본에 의해 전쟁터에서 개죽음을 당한 사연이 가슴 아프게 읽혔다. 이처럼 극도로 우경화되는 자국의 세태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화폭에 담기도 하는 마쓰모토 슌스케의 투지가 인상적이었고, 요절하게 될 자신의 운명에 거역하듯 뭉크 못지않게 죽음을 화폭에 담은 나카무라 쓰네도, 제법 글로벌한 감성을 중무장해 탈일본스런 화풍을 선보인 노다 히데오 같은 화가도 인상적이기 그지없었다.

 한국 독자에게 미지나 다름없는 일본의 근대 미술계에도 이렇게 우리의 눈길을 잡아끌고 몰입할 수 있을 만한 개성과 배경을 가진 화가들이 있는 것이 신기하고 이제라도 알게 해준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단순히 일본에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있다고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문에서 밝혔듯 이 세상에 뭔가 의미 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거나 뜻밖에 그렇게 된 화가들의 드라마틱한 인생 궤적을 엿볼 수 있게 도와준 저자한텐 감사하단 말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새로운 세계를 알려준 저자에게 감사하단 말은 결코 과찬이 아닐 터다.


 소개되는 그림들은 자화상부터 풍경화, 종교화, 추상화 등 종류가 다양해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더군다나 책의 말미엔 본문에 소개된 화가들의 작품을 어느 미술관에서 직관할 수 있는지 표시된 일본 지도도 수록됐다. 일본에 여행을 그렇게 많이 갔으면서 미술관엔 거의 가보지 않은 나에게 -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미술관을 갔었다. 원폭박물관말고. - 꽤 유익한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솔직히 말해 이 책에 뭉크의 <절규>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클림트의 <키스>처럼 그 작품을 보기 위해 오슬로와 마드리드, 빈을 언젠가 가겠노라 결심하게끔 만드는 걸작은, 오직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여행을 기획할 정도로 뛰어난 인상을 준 작품은 없었다. 하지만 이 미술관들에 구미가 당긴 것 역시 분명 사실이다. 굳이 이 그림들이 아니더라도 유명하지 않아도 내 눈과 마음에 쏙 드는 작품과 우연찮게 만나게 될 수 있으니까.


 따라서 언젠가 도쿄나 오사카 여행을 혼자 가게 된다면 이 미술관들에 들러볼 예정이다. 그때라면 저자의 글을 지금보다 열 배쯤 더 정독하며 읽겠지. 그날이 머잖아 오길, 그리고 나의 이 말이 공수표에 불과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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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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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막 출간했을 때 엄청 재밌게 읽었다는 것을 제외하곤 크게 기억이 남는 게 없던 작품이다. 추리소설은 보통 두 번 읽으면 재미가 반감된다는데, 그 말에 의하면 차라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 유리한 점으로 작용됐으려나? 만약 내용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더라면 이 전형적인 본격 미스터리 소설은 더욱 지루하게 읽혔을 공산이 크다.

 물론 87년도 작품이니 전형적이라 느껴진다고 해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부분일는지 모른다. 물론 다른 독자분은 액자식 구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 에필로그에서 뜻밖의 트릭을 구사한 것 등 여타 본격 미스터리와 차별점을 둔 부분이 있는데 왜 전형적이라 여기느냐고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뜻밖의 트릭마저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렇게 새롭지 않고 - 다만 왜 시시야 가도미란 인물이 굳이 자신이 겪은 일을 소설로 썼는가, 라는 의문을 말끔히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트릭이자 반전이었다. - 극중극이라고 할 수 있을 미로관에서의 사건은 그야말로 본격의 극치라... 추리소설에 대한 애정이 10년 전보다 옅어진 지금의 내겐 다소 시들하게 읽혔다.


 도입부엔 놀랐지만 중반부부턴 기억이 나냐, 아니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됐달까...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부분은 미로관의 구조나 장치보다 분위기에 있었다. 대작가의 유산을 둘러싸고 후배 추리소설가들이 작품을 써 가장 놀라운 작품을 선보인 쪽이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설정도 흥미진진했고 참가자들이 자신이 쓰고 있는 중인 추리소설의 내용대로 죽어가는 것은 가히 압권이었다. 이 설정에 굳이 아쉬운 점을 얘기하자면 여러 작가가 쓴 글들이 묘하게 천편일률적인 문체들이라 아야츠지 유키토의 필력이 그렇게 다채롭지 못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데, 이것도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면 납득이 가는 흠인 지라 대수롭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추리소설을 읽거나 쓰는 입장에선 은근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요소들이 대동소이한 것 같다. 트릭과 반전, 탐정과 범인 사이 혹은 작가와 독자 사이의 두뇌 싸움을 위해 그 외의 다른 요소가 홀대당하는 것이다. 문체도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인명과 캐릭터성이다. 간혹 추리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개성이 부족하거나 아예 힌트를 주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거나 허무하게 퇴장하는 일이 허다하지 않은가. <미로관의 살인>의 경우 진범의 정체가 뜬금없었는데 이래저래 사람의 마음을 묘사함에 있어 설명과 추리로만 공을 들이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 보니 읽는 내내 공감이 가지 않고 그저 피곤해진다는 게 본격 미스터리의 단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중 대작가가 말한 것처럼 추리소설은 수수께끼 풀이를 위한 기형적인 형태의 소설이라 이런 단점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바로 직전에 읽은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은 본격의 전형을 넘어 거의 극한을 찍은 작품이고 등장인물들도 서로 앞다퉈 정신병자임을 과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작가의 뛰어난 식견이 가미돼 사회의 병폐라든가 반면교사 내지는 '인간은 놀이를 위해 이렇게나 윤리가 마모될 수 있는 존재인가' 하고 자문하게 만드는 묵직한 맛이 있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젊은 소설로 느껴진 반면 <미로관의 살인>은 몇몇 기발한 변주가 있긴 해도 늙은 소설로만 여겨졌다.

 이 작품이 <밀실살인게임>보다 30년 전에 출간됐으니 당연한 감상이라고? 에이, 여기서 말하는 젊음과 늙음이 단순히 출간 연도를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잖은가. 이건 출간 시기와는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만 지금은 이렇게 한 마디로 마무리하고 싶다. 소설의 생명력은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가 여부로 결정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미로관의 살인>은 그다지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아쉬운 소설이란 말밖엔 할 말이 없다. 10년 전에 이 작품을 극찬했던 나 자신한테 눈치가 보일 만큼 박한 평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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