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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구속받지 아니하고 자신만의 삶을 꾸리는 자유로움의 대명사로 조르바라는 이름이 내 머리 속에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역작, 그리스인 조르바 말이다.
실제로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의 존재를 십여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책을 좀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감명깊게 본 소설을 추천하기라도 한다면 으레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바로 조르바.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이 책을 흘낏대긴 하였으나 쉽게 들어오지는 않았던 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드디어 십년만에 성공을 거두었다. 마침내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완독한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미 영화로도 유명하다. 조르바역으로는 정말 적격이라고 생각되는 안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다. 둔탁하고 우직한 사나이 조르바의 이미지로서 안소니 퀸만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나는 열린 책들에서 출간한 이윤기번역판을 읽었는데 그 책의 표지는 다름 아닌 안소니 퀸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주인공 나는 30대 중반의 지식인으로 불교에 심취하였으며 삶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펜 대신 노동과 자연을 택하고자 갈탄 광산을 개척할 꿈을 키운다. 우연찮게 그는 조르바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매력을 느껴 그와 함께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 갈탄관을 개척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들의 첫만남에서부터 주인공은 조르바의 알 수 없는 힘에 매료되고 백면서생이 '왜?? ' 하면서 궁금해하고 이유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단박에 무시해버리는 조르바의 강력함이 빛을 발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조르바는 기존의 사고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느끼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으며 주인공은 그러한 조르바의 원시적인 힘이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조르바의 자유로움이란..보기에 따라서는 매우 극단적이라, 그는 질그릇을 빚는데 손가락이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도끼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위인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마음내키는 대로 해버리는 조르바. 또한 그는 여인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사람이며 사랑을 나누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몸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니 애시당초 그에게 일부일처제의 안정된 가정이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기분 내키는 대로 춤을 통해 표현을 한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과도 춤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갈탄광을 개척하는 일이 실패로 끝난 것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조르바는 춤을 멋들어지게 추며 주인공 역시 그에게 감화되어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춤을 추며 화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조르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찌 그의 자유로움과 광활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들의 동행길은 갈탄광이 실패로 끝나면서 함께 마무리되고 헤어진다. 헤어진 후 조르바는 주인공에게 엽서를 보내 여전한 애정과 거친 격정을 표한하지만 그 후로 주인공은 조르바를 두번 다시 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받은 엽서는 조르바가 죽기 전 머문 독일의 어느 마을 교장이 보낸 것으로 조르바는 죽는 순간까지도 힘이 넘쳤으며 주인공을 위해 아끼던 악기 '산투리'를 마음의 징표로 남겼으니 나중에 그 마을에 들를 일이 있으면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그 마지막 구절을 대하면서 나는 끝없이 자유롭고 또한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넘쳤던 조르바의 큼지막한 마음에 감탄하였다. 아마 주인공 역시 그러하였을 것이다.
내가 그리스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그리스의 고대 유적을 보고 싶은 호기심도 아니고 지중해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껴보고 싶은 것도 아니다. 오로지 조르바라는 사람이 태어나서 자랄 수 있었던 그 그리스라는 나라 자체가 궁금한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실제로 만난 사람을 모델로 삼아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사람이 그리스에는 있을 것인가? 아니 내 주위에도 조르바같은 존재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보통인의 시각으로 조르바다움을 퇴색하게 만들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