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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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이라는 계기 때문에 알게 됐지만, 이번 상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전작인 체르노빌의 목소리로 이미 받아야 했을 상이니까.. 책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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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노래 - 가토 슈이치 자서전
가토 슈이치 지음, 이목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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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말동안 가토 슈이치의 자서전 <양의 노래>를 읽었다..

가토 슈이치의 저작은 한국에서도 꽤 많은 번역본이 나왔지만, 솔직히 그닥 <이거다>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은 번역이 소개되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했고, 딜레탕티즘을 고집하는 가토 자신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문화를 폐기하고, 나아가 비전문화의 전문가가 되기를> 지향한 가토의 모색 자체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것이야말로 과거 한 시대를 지배했던 知의 존재방식이기도 했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강조했던 지식인의 한 전형(사회 안에서 사고하고 고민하는 인간=아마추어)이기도 하고, 또 그래서 현대 우리 사회에 가장 부족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름 세분화된 전문가들만이 넘쳐나는, 그래서 사회전반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발언을 하지 못하는, 또 너무나 이 시대를 걱정하셔서 자신의 목소리만이 진리라고 부르짖는 소수의 학자들이 준동하는 현재의 학계를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가토 슈이치의 목소리가 차지하는 위치를 잘 보여주는 것이 <양의 노래 그 후>에서 그가 남긴 발언이다..

나는 무엇을 하지 않았던가. 첫째, 재산을 모으지 않았다. 문필업 수입과 대학 급료로 내 호구지책을 삼는 정도에 만족했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둘째,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어떤 정다이나 그 외 다른 어떤 정치적 조직에도 속하지 않았고, 선거 때 투표는 했지만 선거운동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가두의 대중집회나 시가행진에 가담했던 적도 없다. 적극적인 정치저 행동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성벽과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또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는, 개인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늘 일본 사회의 주변에 머물렀다..

 

가토의 저작에서는 마루야마 마사오나, 다케우치 요시미, 오에 겐자부로, 혹은 후지타 쇼조와 같은 전후 일본의 지식인들이 보여주었던 명쾌한 분석, 명징한 언어를 찾기 어렵다.. 아마 나 역시 <양의 노래> 이후 다시 가토의 다른 저작을 찾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사유의 깊이나 분석의 정확성은 위에 언급한 <대가>들에 비하면 당연히 떨어진다..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성찰도 그다지 철저하지 않고, <제 3세계>에 대한 인식 역시 그다지 깊이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결여>가 <양의 노래>가 던지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폄하시키지는 않는다.. <양의 노래>가 보여주는 것은 일본이라는 한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교양의 한 정수를 보여준다.. -서경식 선생은 <일본에는 드문 '저항하는 휴머니즘'>이라고 소개했지만,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나마 <일본에서는 소수나마 발견할 수 있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좀처럼 드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방향감을 상실하고 앞으로 질주하는 사회 내부에서 고독하게, 항상 주변인의 시선으로, 지금 이 사회가 가는 방향성이 옳은 걸까 하는 자문을 던지게 한다.. 다시 말하면 가토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그의 <발언내용>이 아니라, 그의 <발화위치>에 있다.. <양의 노래>는 그러한 <발화위치>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자신이 살아온 전 삶을 성찰하면서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흡사 짐멜이 강조했던 <이방인>이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그가 말 그대로 <주변인>이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본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구제고교와 최고학부인 제대 의학부를 졸업한 그를 <주변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주변성이란 <교양으로서의 지>가 갖는 위치성, 다시 말하면 문학에 대한 권위는 문학박사에게, 경제에 대한 권위는 <경제학박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시를 쓰고, 누구나 경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의 교양이 갖는 위치성이다.. 그 자리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그다지 빛깔이 나지 않고, 또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희미하지만 그래서 더욱 없어서는 안 되는 자리이다.. 가토가 간 길은 그 자리를 스스로 감내해나가는 길이었다..   

 

한국사회에서든, 일본사회에서든 그러한 교양을 찾기는 이제 힘들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야말로 이러한 발화위치가 더욱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양의 노래는 결코 아름다운 시대에 자연발생적으로 울려퍼진 것이 아니다.. 가토의 삶이 보여주듯 그가 선택한 자리가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끝없는 <결단>-때로는 많은 것을 포기하는-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양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이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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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병사들 -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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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고나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읽어가는 내내, 그 자료의 생생한 현장성에 압도당하는, 말 그대로 살 떨리는 체험이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당시 적군인 <독일군 포로들의 도청기록>과 같은 자료수집 시스템을 구축한 영국의 역량에 대해 우선 경이로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이 이런 인간정보를 수집한 이유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즉 적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이 먼지 쌓인 자료를 영국 국립보존기록관에서 찾아낸 독일인 저자는 영국 측의 의도와는 다른 목적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지난 2차대전 시기 군대가 그토록 엄청난 집단적 학살-섬멸, 박해,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을 자행한 원인은 무엇인가.. 

 

저자들에 따른다면, 그것은 광기도,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학살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군대와 전쟁이라는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독일군 병사들의 증언들을 읽고 있노라면, 전시라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전쟁 노동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때로 자신들 앞에 펼쳐진 풍경들에 두려움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집단의 규범에 따라 평시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이 엄청난 만행을 묵묵히 수행했다.. 저자의 개념을 빌린다면 <집단사고>, 그리고 <경로의존성>에 따라..

 

이를 염두에 둘 때, 사회적 범죄의 한편에는 범죄를 계획하고 예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가해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런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방관자나 관객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모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즉 어떤 사람은 더 강력하고 열성적으로, 어떤 사람은 좀 더 회의적이고 무관심하게, 공동의 사회적 현실을 함께 만들어 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회적 현실이 제3제국의 프레임을 이루었다.

 

<악의 평범함>(아렌트), 그리고 밀그램의 실험에 이어, 우리는 폭력의 역학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프레임>. 그것은 밀그램이 강조한 <사회적 관계>를 조금 더 사회문화적으로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는 말일텐데, 그게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일까.. 저자들은 왜 평범했던 그들이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괴물로 화하는 과정을 막을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상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과정 자체가 너무나 당연한natural 것처럼 느껴져서 무력감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10만 페이지가 넘는 그 자료들을 꼼꼼히 읽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자료들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작업이야말로,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프레임이 아무리 탄탄하고,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무리 비관적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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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서은혜 옮김 / 녹색평론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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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마타병>에 대한 기록문학의 전범. 이시무레는 자신의 언어를 통해 무녀처럼 병으로 쓰러져간 죽은 넋들을 건져올린다. 전작인 <고해정토>, 혹은 하라다 마사즈미의 <미나마타병>와 함께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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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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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미국사회의 감정교육(플로베르). 조금 더 압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혐오와 수치심이 노골적으로 횡행하는 한국사회에 사는 나로선, 자신들의 이념인 자유주의 체제에 적합한 <정치심리 상태>를 담보하는 공적, 법률적 문화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그들의 노력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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