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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의 순간 - 오늘의 러시아를 탄생시킨 '정치적 사고'의 파노라마 ㅣ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블라디슬라프 M. 주보크 지음, 최파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평점 :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 줄 평을 달았으니까..
6월 16일 읽기 시작..
하지만 6월 중하순.. 학기말은 항상 그렇듯 이동수가 많고, 치워야 할 눈들이 쌓여 있어서(눈 치우기 작업!) 벽돌책 읽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동안 띄엄띄엄 다른 책들도 읽긴 했지만.. 이 책은 6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완독..
결론이 너무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아.. 굳이 600여 페이지를 읽어야 했는가 하는 '사특한'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항상 역사는 디테일에 깃드는 법이니..
어쨌거나.. 서문에 제시한 흥미로운 퍼즐..
소련 붕괴 원인에 대한 여러 시각들..
(1)미국의 우월성과 냉전 정책이 소련을 후퇴하고 굴복하게 만들었다.
(2)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노선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훼손했고 소련 체제가 실패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3)소련은 경제가 내부적으로 붕괴했기 때문에 멸망했다.
(4)가장 막강한 소련 엘리트층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에 반대했고, 뜻하지 않게 소련의 종말을 야기했다..
이 시각들을 나열한 이유는 물론 이 원인 가운데 어느 것도 개별적으로는 소련을 무너트릴 수 없었음을 논증하기 위해서일 터이고.. 그리고 이 모든 가닥가닥이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통치로 인해 촉발된 일종의 퍼펙트 스톰 안에서 어떻게 합쳐졌는지 이해하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이 얼마간의 시간이 80년대 말부터 91년 겨울의 실질적인 소련 붕괴까지의 시간일 것이고.. 그 시간들은 엄청난 속도와 규모의 여느 역사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주요 행위자들이 딜레마에 직면하고 결정적 선택을 내리거나 회피한 여러 전환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이 책은 그 타임 라인에 따라 소련과 서구의 주요 행위자들(정치가들)의 궤적을 꼼꼼하게 추적한 노작이다..
자.. 이제 결론으로 가보자..
1. 역시 소련 붕괴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행위자는 고르바초프_ 고르바초프의 리더십, 성격, 신념은 소련의 자멸에 주요 요인이었다. 그는 이데올로기적 개혁가적 열성과 정치적 소심함을, 도식적인 메시아주의와 현실과의 거리 두기를, 비전이 넘치고 숨막히는 외교정책과 결정적인 국내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모두 갖췄다. 그러한 특징이 그를 소련사에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2. 소련이라는 단일 연방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던 하나의 가능성/대안으로서의 당 독재를 왜 추구하지 않았는가_ 당 독재는 적어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개혁을 시작하고 통제할 수 있다. 당 독재를 대체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은 해방과 자유화를 의미했지만, 견제와 균형을 제공하지 않고 특히 러시아연방에서 악성 포퓰리즘과 민족 분리주의로 가는 관문도 열었다. ... 그가 국내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다면 소련의 미래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 하지만 레닌의 찬미자는 마법사의 제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이 풀어헤친 힘들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을 방법을 몰랐다. .. 하지만 역사에서 마법사의 제자가 한 둘이던가..
3. 소련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될 때까지 구 지배계급은 무엇을 했는가_ 구 지배계급의 급속한 해체는 단일 국가성의 사망을 뜻했다. 거대한 요인은 잠자는 거인 러시아의 각성과 연방 최대 공화국에서 자유로운 민선으로 합법화된, '모스크바의 '러시아' 대항 엘리트의 등장이었다. But 나라를 갈라지게 한 시스템의 위기에서 줄곧 중요 요인이었던 것은 '러시아 야권;의 강성함이 아니라 크렘린 지도부의 허약함이었다는 것.
4. 그렇다면 러시아 대항 엘리트의 실체는?_ 이렇듯 글라스노스트가 레닌주의적 신화를 포함해 사회주의 유토피아 전체를 박살 내는 동안 이상과 현실 사이 벌어지는 간극은 냉소적인 폭리 취득 추구는 물론이고 민족주의, 반공주의, 포퓰리즘이 채웠다는 것. 당시와 이후 많은 사람에게 믿기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러시아 지도자들은 기가 막히도록 순진하게 서방에 인정되고, 정당화되고, 받아들여지고, 편입되기를 원했다. 이데올로기적 혁명에 가까운 그러한 기대를 빼고는 소련이 내부적으로 무너진 이야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5. 마지막으로 소련 붕괴에 있어 서방의 역할은?_ 소련의 개혁과 붕괴에서 서방 요인은 비록 서방과 소련 모두에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 책이 입증하듯이 언제나 중심적이었다는 것. 미국 주도의 서방이 소련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면 생존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서방은 붕괴하는 소련에 투자하지 않았고(소련 엘리트들이 그토록 열망했던 새로운 마셜플랜 따위는 없었다), 미국의 정책 형성자들은 소련을 갱생이 불가능한 '악의 제국'으로 취급했다.
6. 소련의 붕괴가 그 땅에 불러일으킨 파국을 보여주는 놀라운 수치..
러시아인의 기대 수명은 1990년 69세에서 1994년 64.5세로 떨어졌다. 남성의 경우는 64에서 58세로 급락했다. 1990년대 말에 이르자 러시아의 아동 인구는 1990년보다 370만 명 감소했다. 노동 연령 남성 가운데 340만 명이 조기 사망했다. 많은 젊은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를 여력이 없었다. 이것은 평화 시의 인구학적 파국으로, 러시아는 오늘날까지도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7. 그리고 소련 붕괴가 전 세계에 가져다 준 여파_ 과연 냉전으로부터의 행복한 탈출,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 자유주의적 가치의 승리, 그리고 영구적 평화와 번영이었을까?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의 즉각적 점화, 러시아-발트 긴장, 트란스니스트리아, 체첸, 그루지야,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의 계속된 분쟁들..
소련의 붕괴와 서방에서 최근에 전개되는 일련의 사태 간의 병렬 관계? 결국엔 소련 수수께끼(퍼즐)가 우리 시대에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역사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필연적 승리에 관한 도덕극이었던 적은 없다. 그 대신 세계는 항상 그래 왔던 대로, 이상주의와 권력, 훌륭한 통치와 부패, 자유의 고조와 비상시에 자유를 제한해야 할 필요 사이의 투쟁의 장이다.
사라져버린 소련의 유령은 유럽과 아시아, 세계를 떠돌고 있지 않다. 그러나 소련의 갑작스러운 소멸에 대한 수수께끼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상상 속을 여전히 떠돌고 있다. 전에 승승장구하던 서구 자유주의적 질서의 확실성이 우리 발 아래서 흔들리고 깎여나가는 모습을 목도하는 지금 특히 그렇다. 소련의 종식은 거대한 역사적 의미와 어마어마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인간 드라마였다. 그것은 냉전 종식과 탈식민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지구적 서사에서 하나의 각주로 축소될 수 없다. 이 놀라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속성의 외관상 확실성을 믿지 말라고 가르쳐주며 미래의 갑작스러운 충격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리라.